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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는 아는 만큼 더 맛있다
2025-07-07T08:27:33+09:00
위스키 입문

위스키 기자가 말하는 내 취향 찾기.

조선일보 김지호 기자는 뉴스레터 <위스키디아>를 통해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비싼 위스키도 자신의 취향이 아니라면 그 의미가 퇴색되기 마련”이라고. 그리고 덧붙인다. “하나둘씩 마셔보면서 내 취향을 찾아가는 여정이 위스키의 매력이다.”

그의 말에 위스키가 더 궁금해진다. 정말 위스키는 취하려고 마시는 술이 아닌, 음미하고 탐구해야 할 술일까? 향을 한 번 맡고, 천천히 마실수록 뒤따르는 많은 질문. “나에게 맞는 위스키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기 위해, 위스키 입문자의 시선으로 김지호 기자에게 물었다.

위스키,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중요한 건 호기심

처음부터 고도수 술을 즐긴 건 아니었다고요

처음엔 맥주부터 시작했어요. 독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맥주로 술을 배웠고, 화이트 스피릿(보드카, 진)을 거쳐 증류주에 익숙해졌죠. 그러던 어느 날 동유럽 친구가 슬리보비츠라는 자두 증류주를 가져온 거예요. 50도가 넘는 술이라 처음엔 무서웠는데, 마시다 보니 어느새 병이 비어 있었죠. 그 경험이 증류주에 대한 인식을 바꿔줬어요.

위스키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위스키는 독일에서 유학하던 형들과 어울리며 어깨너머로 배웠어요. ‘비싼 거니까 한번 마셔봐라’는 식이었죠. 싱글 몰트니 블렌디드니 구분도 못 했어요. 그저 바닐라 향이 나고, 달콤하다는 느낌 정도.

그러다 만난 게 피트 위스키였어요. 처음엔 당황스러웠죠. 불향, 탄내, 요오드 같은 향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독특한 맛. 그런데 자꾸 생각나는 거예요. 마치 평양냉면처럼. 익숙하진 않은데 계속 궁금하고 다시 찾게 되는 맛. 억지로라도 몇 번 더 마시다 보니, 어느 날 아침 그 맛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스며든 거죠.

피트 위스키는 쉽지 않은데요. 과거 위스키 마시던 경험이 도움 됐을까요?

그보다는 호기심과 애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술에 호기심을 갖고 다가가면서 취향을 발견한 편이죠. 피트 위스키 라프로익의 브랜드 슬로건은 ‘Love it or hate it’이에요. 누구에게는 최고의 술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도저히 못 마실 술인 거죠. 처음부터 완전히 맞거나 안 맞거나. 사람마다 입맛과 취향이 다르니까요.

나만의 위스키 취향 찾기

내 감각을 믿어라

내게 맞는 위스키를 찾으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좋아하는 증류소의 엔트리 제품부터 시작해 보세요. 나와 맞다고 느끼면, 숙성 연수를 점점 늘려가면서 그 증류소만의 매력을 찾아가는 거예요. 예를 들어 라프로익 10년 제품이 마음에 들면, 15년, 18년, 25년 등으로 점차 확장해 보는 식이죠. 한 증류소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그 브랜드만의 정체성이 느껴집니다.

취향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방법이 있나요?

만약 라프로익이 마음에 들었다면, 그 옆에 있는 라가불린, 아드벡, 브룩라디 등 다른 증류소의 위스키도 경험해 보는 거예요. 증류소마다 특색이 다 다르니까요. 피트 위스키 성지로 알려진 아일라섬에는 증류소가 여러 개 있거든요. 한 바퀴 돌아봐야 무엇이 나와 잘 맞는지 알 수 있죠. 숙성 연수와 오크통의 종류, 증류소별 특성을 비교해 가며 나만의 위스키 지도를 완성해 보세요.

취향이 넓어진다고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엔트리급 위스키만 마시다가 고숙성 위스키를 맛봤을 때. 식견이 확장된다는 걸 경험했어요. 맛이 완전히 다르거든요. 특히 올드 보틀(과거 60, 70년대 만들어진 위스키)을 경험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더 또렷이 느꼈고요. 사용된 보리 품종이나 오크통, 숙성 환경이 지금과는 달랐으니까요. 과거 출시된 제품들이 경매 사이트에서 비싸게 거래되는 걸 보면 그 가치를 인정받는 이유가 있지 않나 싶어요.

테이스팅 노트도 필요할까요?

꼭 써야 하는 건 아니지만,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해요. 테이스팅 노트는 결국 내 감각의 기록이자 기준점이에요. 반복해서 같은 향을 느낀다면, 그건 내 미각이 어느 정도 기준을 잡기 시작했다는 뜻이죠. 반대로 매번 다른 향이 느껴진다면 “왜 그럴까?” 하고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되고요.

노트를 쓰다 보면 내가 자주 느끼는 향이나 맛의 패턴이 보이기 시작해요. 위스키를 더 깊이 즐기기 위한 나만의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예전에는 테이스팅 노트를 썼어요. 특히 비싸고 귀한 위스키를 마실 땐 기억에 남기고 싶었죠. 항상 쓰는 건 아니에요. 위스키를 편하게 즐기고 싶지, 공부하듯 마시고 싶진 않거든요. 

다른 사람들과 내 감각이 다를 땐 어떻게 하죠?

남의 말에 너무 휘둘릴 필요 없어요. 내가 느끼는 대로 표현하는 게 제일 중요하거든요. 남들이 “바닐라, 서양배, 자두”라고 해도 내가 못 느끼면, 그건 내 입맛에 없는 맛인 거예요. 애초에 대부분의 테이스팅 노트는 서양인 기준이고, 우리와는 자라온 맛 환경이 다르죠.

혹시 서양배 맛 아세요? 안 먹어봤다면 상상조차 어려울 거예요. 게다가 서양배도 종류가 여러 가지예요. 잘 익은 것도 있고, 떫은 것도 있고, 어떤 건 거의 무 같기도 하죠. 그러니 1:1로 정확히 매칭되긴 어렵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이면 남들이 왜 그렇게 느꼈는지 어느 순간 이해되기 시작해요. 훈련을 통해 감각의 폭이 확장되는 거죠.

중요한 한 건 나만의 기준을 만드는 거네요.

맞아요. 바나나 맛이 난다고 느껴졌다면, 그냥 바나나라고 써두면 돼요. 그게 바로 출발점이에요. 물론 경험이 쌓이면, 남들이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감이 잡히기 시작하죠. 직접 바나나를 못 느꼈더라도, “아, 그 계열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뉘앙스를 말하는 거겠구나” 하고 짐작은 가능해지거든요.

주변 영향을 받기도 하나요?

위스키는 참 묘해요. 누군가 “오렌지 향 나지 않아요?” 하고 말하는 순간, 진짜 오렌지 맛이 느껴지게 되죠. 그래서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는 게 중요해요. 그 범위 안의 향을 더 잘 인식하게 되니까. 일종의 훈련이자, 위스키 테이스팅의 재미에요.

위스키 고르는 법

얼마까지 알아보고 오셨어요?

위스키 고르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위스키 고를 때 항상 처음 던지는 질문은 “예산이 얼마예요?”예요. 누구에겐 5만 원도 부담이고, 또 어떤 이에게는 30만 원이 가벼울 수도 있으니까요.

또 중요한 건 유행에 따라가기보다 자기 혀로 확인하는 것. 처음부터 큰돈 들여서 덜컥 사는 것보단, 바에서 잔술로 먼저 마셔보고 입맛을 찾아가는 게 리스크가 훨씬 적어요. 요즘 보틀 하나에 10만 원, 20만 원은 기본이니까요.

주변 사람들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분명 주변에 위스키 좋아하는 사람 한둘은 꼭 있거든요. “야 너 위스키 좋아한다며, 좀 줘 봐”라고 살짝 강탈하는 게 제일 빠릅니다. 자기 보틀 하나쯤은 갖고 있으니까요. 같이 한잔하면서 입맛을 찾는 거죠.

위스키 가격은 천차만별이에요. 비싼 위스키는 확실히 맛있나요?

위스키는 오래 숙성될수록 인건비, 창고 비용, 그리고 숙성 중 증발하는 엔젤스 쉐어까지 더해져 자연스럽게 가격이 올라갑니다. 물론 잘 숙성된 고숙성 위스키는 풍미나 밸런스 면에서 훌륭한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가격이 높다고 해서 반드시 더 맛있는 건 아니죠. 어떤 위스키는 10년이 가장 맛있고, 어떤 건 30년이 지나도 아쉬운 법이에요.

가격 외에 위스키 고르는 중요한 기준이 있을까요?

먼저 라벨이나 설명서에 적힌 키워드를 확인해 보세요. ‘스모키, 버번, 쉐리’ 같은 단어만으로도 대략적인 맛의 방향을 가늠할 수 있어요.

지역을 기준으로 고르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스코틀랜드만 해도 스페이사이드, 하이랜드, 아일라, 캠벨타운, 로우랜드 등 지역마다 스타일이 뚜렷하거든요. 스페이사이드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편이고, 아일라는 스모키하고 피트 향이 강한 위스키로 유명하죠. 마치 우리나라 지역마다 김치 맛이 다른 것처럼요. 처음엔 어떤 지역 스타일이 내 입맛에 맞는지 탐험해 보는 것, 그게 좋은 시작일 수 있어요.

바텐더나 전문가의 추천을 받는 건 어때요?

주변 추천을 따라가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믿을 만한 바에 가서 바텐더에게 추천을 받거나, 위스키 좋아하는 지인에게 조언을 구해보세요.

주변에 위스키 마니아가 있다면 블라인드 테이스팅 놀이를 제안해 보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정보 없이 맛과 향만으로 위스키를 마시고, 증류소나 숙성 연수, 오크통, 알코올 도수를 추측해 보는 거예요. 의외로 내가 가진 편견이 깨지고, 믿고 있던 기준이 흔들릴 수 있어요. 같은 위스키도 다시 보이고, 내가 가진 제품들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새로운 시야가 열립니다.

위스키는 경험의 술

아는 만큼 보인다

여러 나라의 증류소, 바를 다니셨는데요. 위스키 즐기는 문화가 나라마다 다른가요?

칵테일 바 문화만 봐도 차이가 커요. 한국이나 일본은 마치 파인 다이닝처럼 정교하고 섬세한 스타일이에요. 디테일 하나하나를 신경 쓰는 바가 많죠. 반면 유럽이나 미국은 좀 더 자유롭고 즉흥적인 분위기예요. 물론 완성도 높은 바도 많지만, 스타일이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저에겐 아시아 쪽의 섬세한 접근이 더 잘 맞았어요.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건, 일본엔 ‘올드 보틀’을 경험할 수 있는 바가 아직 많다는 점이에요. 일본은 바 마스터가 자기 취향대로 보틀을 꾸려가는 문화가 자리 잡혀 있거든요. 오래전에 구입한 보틀을 지금도 꺼내 주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당시 구입가에 가까운 가격으로 제공하는 걸 자부심으로 여기는 분들도 있고요. 물론 어느 정도 프리미엄은 붙지만, 납득 가능한 선이에요.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경험을 확장해 가는 게, 위스키를 즐기는 재미 중 하나죠.

컨디션도 술맛에 영향을 줄까요?

소주도 가끔 달게 느껴질 때 있잖아요? 위스키도 똑같아요. 피곤한 날엔 좋은 위스키도 그냥 쓴 술이고, 기분 좋을 땐 평범한 술도 정말 맛있게 느껴지죠. 또 위스키는 시간이 지나면서 맛이 변해요. 처음 오픈했을 땐 밋밋했던 술이, 병이 3분의 1쯤 줄어들고 공기와 닿으면서 향이 더 피어오르기도 해요.

어느 날 문득 “어? 이 술이 이렇게 맛있었나?” 싶은 날도 있어요. 마지막 한 잔이 제일 인상 깊을 때도 있고요. 보틀 하나를 천천히, 오롯이 다 비우는 과정 자체가 위스키를 즐기는 낭만 아닐까요?

다양한 위스키를 경험하셨잖아요. 가장 인상 깊었던 위스키는 무엇인지 궁금해요.

고숙성 라프로익 제품을 특히 좋아하는 편이에요. 특히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한 제품들은 잘 익은 파인애플이나 망고 같은 열대 과일 노트가 짙은 편이에요. 그 사이로 은은하게 깔린 피트 풍미가 감초 같은 역할을 합니다. 너무 튀지 않고, 복합적으로 밸런스를 잡아주는 느낌이랄까요? 

젊은 피트 위스키는 풍미가 날카롭게 튀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뾰족한 부분들이 차분히 눌리고 부드러워지죠. 숙성의 미덕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가 라프로익 고숙성 라인이 아닐까 싶어요. 마시면서도 “시간이 맛을 이렇게 바꾸는구나”라는 걸 느끼게 해준 위스키들이었어요.

위스키와 함께 먹으면 좋은 음식이 있을까요?

위스키 맛을 잘 느끼고 싶다면, 너무 자극적인 음식은 피하는 게 좋아요. 간이 세거나 기름진 음식은 위스키의 섬세한 풍미를 덮어버릴 수 있거든요. 오히려 간단하고 조용한 음식이 위스키의 맛을 더 끌어올려 준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쉐리 위스키엔 말린 무화과나 다크 초콜릿, 아몬드 같은 안주가 잘 어울려요. 위스키 안에 숨어 있는 건과일 노트나 너티한 풍미가 더 또렷하게 드러나거든요. 피트 위스키엔 살짝 짭조름한 치즈나 훈제 햄처럼 스모키한 풍미를 따라가 줄 수 있는 음식이 좋아요. 복합적인 향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입안을 정리해 주는 역할도 해주죠.

결국 중요한 건, 서로 ‘협업’할 수 있는 조합을 찾는 거예요. 위스키와 안주가 서로의 매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좋은 페어링이죠. 물론 정말 좋은 위스키라면, 물 한 잔이면 충분할지도 몰라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위스키 페어링 조합이 궁금해요.

저는 하몽을 좋아해요. 특히 잘 숙성된, 품질 좋은 하몽이면 더할 나위 없죠. 예를 들면 ‘베요타 등급’처럼 도토리를 먹으며 자연 방목된 흑돼지에서 만든 최상급 하몽이요. 

지나치게 짜지 않고, 육즙과 기름기의 밸런스가 정말 절묘해요. 부위에 따라선 은은한 산미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어떤 하몽은 입안에서 토마토 향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있어요. 짭조름하면서도 깊은 맛이 위스키와 참 잘 어울리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위스키 입문자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전한다면?

남들이 좋다고 무작정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결국 정답은 내 혀가 알고 있거든요. 내가 맛있게 느껴지면, 그게 바로 나한테 맞는 위스키예요.

요즘엔 몇 병 마셔보고 “난 이 스타일이야” 하고 멈추는 분들도 있는데, 거기서 한 걸음만 더 나가보면 훨씬 재밌어져요. 예를 들어 라프로익이 마음에 들었다면, “비슷한 스타일의 다른 위스키는 뭐가 있을까?”, “아일라 섬엔 또 어떤 증류소가 있을까?” 하고 탐험을 넓혀보는 거죠. 찾아보고, 마셔보고, 즐거우면 또 하나 알아가고. 위스키의 세계는 그렇게 조금씩, 계속 확장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