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 소프트웨어 유통망(ESD)은 한때 스팀의 깃발 아래 뭉쳐 PC 게이머들이 대동단결 하던 시절이 있었다. 스팀의 엄청난 성공이 부러웠던 걸까. 대형 게임 유통사들은 너도 나도 독자적인 ESD 사업을 시작했다. 선택지가 많아진 건 좋은 일이지만, 피곤한 점도 생겼다. 게이머들이 자기 입맛에 맞는 플랫폼을 고르는 것이 꽤나 골치 아픈 일이 됐기 때문이다.
한때 ‘방 한구석에 진열된 게임 패키지’가 게이머들에게 주던 낭만은 이제 게임 플랫폼 라이브러리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여러 플랫폼에 분산된 게임 목록을 보면 심란한 마음만 가득할 터. 여러분이 최대한 선택과 집중을 할 수 있도록 게임 플랫폼을 선택할 가이드를 제시해 보겠다.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ESD인 스팀은 밸브 코퍼레이션에서 운영하는 플랫폼이다. 스팀의 가장 큰 장점은 압도적인 타이틀 숫자, 그리고 ‘연쇄 할인마’ 게이브 뉴웰의 은총이 깃들 때마다 보여주는 경이로운 할인율이라 할 수 있다. 결제 시스템도 무척 간편하다. 덕분에 게임의 할인율과 시너지를 이루면서 그야말로 ‘미친 듯이 게임을 구매해 놓고, 정작 플레이는 하지 않는’ 기현상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됐다.
윈도우는 물론, MacOS, 리눅스까지 지원하여 게이머들이 사용하기에 최적인 플랫폼이다. 다만 최근에는 게임 유통사들이 자체 플랫폼에서 대작 게임을 독점 서비스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그 위치도 조금씩 흔들리고 있다. 이 위기에 대한 해답은 하나다. 게이브 뉴웰이 하프 라이프 3를 출시하는 것뿐.
이런 게이머들에게 추천: 여러 가지 런처를 설치하기 귀찮은 게이머.
오리진은 EA(Electronic Arts)에서 서비스하는 플랫폼이다. EA의 트리플 A급 타이틀인 배틀필드와 스타워즈 배틀 프론트, 에이펙스 레전드 같은 대규모 전쟁 게임은 물론이고, 여기에 피파, NBA 같은 스포츠 게임을 독점으로 유통하고 있다. 오리진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오리진 엑세스’. 비교적 저렴한 월정액료만 내면 엑세스에 해당하는 타이틀을 구매하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강력한 서비스다. 프리미엄 엑세스에 가입하면 최신 대작까지 즐길 수 있으니, 나름 꿀 떨어지는 서비스가 아닐 수 없다.
다만 R&D 모드를 런처에 적용하지 않으면 다운로드 속도가 느려진다. 또한 종종 발생하는 클라이언트의 버그도 발목을 잡는다. 그래도 배틀필드와 심즈를 즐기기 위해서는 뭐가 됐건 간에 오리진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런 게이머에게 추천: 대규모 전장, 그리고 스포츠 게임 매니아.
명작을 내놓으면 ‘유황숙’이라 칭송받고, 졸작을 내놓으면 ‘귀 큰 놈’이라 놀림 받는 유비 소프트웨어의 플랫폼이다. 네임밸류가 높은 대작 타이틀도 많이 보유하고 있고, 유비 소프트에 대한 한국 게이머들의 인식도 상당히 긍정적이라 꽤 인지도가 높다. 무엇보다도 스팀에서 유비 소프트의 게임을 구매해도 결국 실행은 유플레이를 통하게 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어새신 크리드나 레인보우 식스를 즐기는 게이머들에게는 필수나 다름없는 플랫폼이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유플레이는 서버 문제로 유저들의 골머리를 썩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심하면 터져나가는 서버는 마치 최근 열린 불꽃 축제 폭죽과도 같다. 오죽했으면 전자 회로가 아닌, 감자로 만든 서버라는 얘기가 있을까. 다른 건 몰라도 서버 문제는 하루빨리 해결해 주길 바라며.
이런 게이머에게 추천: 톰 클랜시 원작의 리얼한 FPS와 오픈 월드 게임을 좋아하는 게이머.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으로 유명한 에픽 게임즈에서 비교적 최근에 선보인 플랫폼이다. 신생 플랫폼이자 후발주자인 만큼 가입자 확보를 위해 대단히 공격적인 프로모션을 펼치고 있는 것이 눈여겨볼 점이다. 사실 이 공격적인 프로모션의 내용이 가히 충격과 공포로, 기간 한정으로 특정 게임을 무려 ‘무료’로 제공한다. 이미 지난 9월에는 배트맨 아캄 시리즈를 제공하며 게이머들을 뒤집어지게 만든 전적이 있다.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 전 세계를 강타할 대작 독점 타이틀의 수가 적다는 것. 보더랜드3나 디트로이트 비컴 휴먼, 포트나이트 등이 눈에 띄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한 감이 있다. 다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플랫폼이라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런 게이머에게 추천: 일단 가입해서 프로모션 진행하는 게임부터 받자. 손해볼 게 없다.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플랫폼 중 가장 오래된 전통을 자랑한다.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에서 1996년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배틀넷은 디아블로와 스타크래프트의 흥행에 힘입어 멀티 플레이를 체계화시킨 위업을 달성한 바 있다. 비록 게임의 수는 적지만, 게임 하나하나가 묵직한 존재감을 자랑하는 독점작들이다. 대한민국의 민속놀이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는 물론 오버워치와 WoW,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최신작까지. 도무지 거를 게임이 없다.
하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다. 해외 플랫폼 주제(?)에 무려 결제 시스템에서 액티브 X를 사용한다는 것. 물론 대한민국 인터넷 환경이 액티브 X 천국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배틀넷은 엄연한 해외 게임사 서비스다. 그런데도 액티브 X를 사용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도대체 안 좋은 부분만 골라서 로컬라이제이션을 시키는 그들의 의도가 뭘까?
이런 게이머에게 추천: 한국인이라면 가입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최근에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락스타 게임즈 런처는 블리자드의 배틀넷과 비슷한 면이 있다. 서비스하는 게임의 숫자는 적지만, 하나하나가 불멸의 명작이다. GTA 시리즈 하나만 놓고 따져도 이견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 여기에 우리가 락스타 게임즈 런처에 주목해야 하는 다른 이유가 또 있다.
콘솔로 발매되어 2,500만 장 이상의 엄청난 판매량을 기록한 레드 데드 리뎀션 2가 PC로 컨버전 된다는 루머가 있다. 불후의 명작이 락스타 게임즈 런처에서 독점 서비스 된다면, 그동안 군침만 삼키던 PC 게이머들에게 가입을 종용하는 협박이나 다름없다. 아서 모건의 장대한 스토리를 즐기고 싶은 PC 게이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런 게이머에게 추천: 넓은 오픈 월드 기반의 자유도 높은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