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에 따라 선호하는 남성상이 다르다는 건 유구한 이야기. 남자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남자와 여자가 마음이 가는 남자는 외모부터 성격, 취향까지 따로 논다. 이 간극은 때때로 남성을 시험에 들게 한다. 최근 연애 시장의 화두, ‘테토남(테스토스테론남)’ 담론이 대표적이다. 분명 여자들이 테토남을 좋아한다고 해서 있는 힘껏 남성성을 끌어올렸는데, 그거 아니라며 손을 내저어 버리니까.
최근 나는솔로, 환승연애4 출연진 중 여성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두 남자가 있다. 29기 영철과 정원규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여론이 썩 좋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사랑을 쟁취하고, 화면 너머 다수의 이성에게도 어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여자가 좋아하는 테토남은 무슨 의미일까?
남자는 ‘남자다움’을 착각하고 있다
몸 좋으면 상남자?
MBTI에 이어 하나의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테토’와 ‘에겐’. 처음에는 누가 더 우월하다는 식의 위계를 나타내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너 에겐남 같다’라는 말은 어쩐지 비하 발언으로 전락해 버렸다. 에겐남이 일종의 모욕이 된 상황에서 남자의 추구미는 자연스럽게 테토남으로 귀결될 수밖에. ‘여자들은 테토남을 좋아한다더라’ 같은 카더라 통신에 현혹된 영향도 있겠다.
그렇다면 테토남은 무엇을 뜻하는가? 첫 발화자가 테토-에겐 개념을 제시했을 때는 성격적, 사회적 특성과 연애 스타일까지 나름 구체적으로 정립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부차적인 요소일 뿐, 테스토스테론이라는 껍데기만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테토남은 마초, 상남자, 짐승남처럼 ‘남성성 짙은 남자’와 다를 바 없는 말이 되어버린 것이다.

여자는 테토남을 좋아하고, 테토남은 남자다운 남자다. 남자는 삼단논법에 따라 ‘여자는 남자다운 남자를 좋아한다’라는 결과를 도출한다. 여기까지는 그렇다 치자. 문제는 ‘남자다움’이다. 명확한 기준 없는 이 모호한 단어를, 남자는 쉬이 개인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행동에 옮긴다. 힘을 기르고, 능력을 키우고, 강단을 세우고. 여자가 바라는 남성성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이 말이다.
물론 꾸준한 운동으로 멋진 몸매를 가꾸고, 열심히 일해 명예를 쌓아 올리는 건 훌륭한 일이자 박수받아 마땅한 행위다. 이성에게도 충분히 소구되는 포인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이 목적을 어디에 두는지가 중요하다. 성취감과 자아도취가 유일한 동력인지, 내 여자와 지금의 관계를 위한 건지. 여성은 그 지점에서 확실한 차이를 느낀다.
부드러움이 강하다는 역설
핵심은 ‘심리적 유연성’
둘은 어떻게 다를까? 쉬운 예시를 들어보겠다. 여기, 연애 중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테토남이 되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운동하고, 철저히 식단을 관리한다. 데이트 중에도 그는 닭가슴살 도시락을 꺼내 든다. 여자 친구가 맛있는 것 좀 먹으러 가자고 제안해도 그는 단호하다. 서운해하는 여자 친구 앞에서 그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한다. “내가 몸 좋아지면 너도 좋은 거 아니야? 다 널 위해서 하는 거야.”
그의 말은 언뜻 논리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여기서 결정적인 오류가 발생한다. 그는 ‘멋진 몸을 가진 나’를 여자 친구에게 제공하는 것이 사랑이라 착각하지만, 정작 여자 친구가 바라는 건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보내는 즐거운 시간’이다. 당사자의 입장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결국 ‘멋진 몸’을 바라는 건 여자 친구가 아닌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최근 연말 무대에 선 남자 아이돌 그룹 NCT WISH는 트와이스의 ‘TT’라는 파격적인 커버를 선보였다. 사실 그들의 행보는 꽤나 일관적이다. 소녀시대의 ‘Kissing You’, 파파야의 ‘내 얘길 들어봐’ 등 청량하고 깜찍한 무대를 꾸준히 이어왔으니 말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무대 콘셉트가 아니라, 그 영상을 본 팬들이 남긴 ‘진정한 테토 그룹’이라는 의외의 반응이다.
오해하지 말자. 단순히 귀엽거나 애교가 많아서 테토남이라 부르는 게 아니다. 팬들이 원한다면 오글거림이나 체면 따위에 갇히지 않고 거리낌없이 변신할 수 있는 그 태도가 테토력으로 치환되는 것이다. 실제로 사복 패션에서는 무채색밖에 없는 그들이, 무대 위에서는 기꺼이 핑크빛 애교로 무장한다. 내 여자를 위해서, 관계의 더 나은 방향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고집이나 자존심을 유연하게 내려놓을 줄 아는 태도. 이 심리적 유연성이야말로 여성이 바라는 ‘뉴 테토남’의 진정한 정체성이다.
나는솔로에서 발견한 뉴 테토남
빌런에서 스윗가이로 완벽 변신
최근 이를 완벽하게 보여준 케이스가 연애 프로그램에 나타났다. <나는솔로> 29기의 진정한 주인공, 영철이다. 방송 초반부터 그에게는 ‘유교 보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내뱉은 발언만 보면 이 정도 별명은 순한 맛. ‘샤넬 백 든 여자는 다 아웃’, ‘여행 좋아하면 환자인 줄 알았다’, ‘아침밥은 꼭 다 함께 먹어야 한다’ 등 주옥같은 명대사를 쏟아내며 여자 출연자는 물론 시청자까지 조선시대로 회귀시켰으니 말이다.
물론 영철의 철학에도 이유는 있다. 지나치게 자유분방했던 가정환경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는 가족에게 책임을 다하는 가장을 이상향으로 삼게 되었다. 어쨌든 시대의 흐름과는 동떨어진 영철의 모습에 모든 여성 출연진이 진절머리를 쳤지만, 딱 한 명, 정숙은 달랐다. 그녀는 영철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고 존중해준 유일한 사람. 그렇게나 견고해 보였던 영철에게 정숙은 균열이었다.

여기서 갈림길이다. 상대가 나를 이해해 줬으니 내 방식을 고수할 것인가, 아니면 상대가 마음을 열어준 만큼 나 또한 나의 세계를 확장할 것인가. 영철의 선택은 후자였다. 오히려 한 발짝 더 나아갔다. 본인의 오만을 반성하며 “내 기준점은 이제 다 없어졌다”라고 정숙에게 고백한 것이다.
앞으로의 변화를 진심으로 약속한 그의 모습은 정숙에게도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결국 최종 선택에서 영철과 정숙은 이어질 수 있었고, 현재는 초고속으로 혼인신고를 마치고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본인을 기피 대상으로 여기던 정숙을 피앙세로 맞이하게 된 영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와 행동력이야말로 진정 이성이 바라는 뉴 테토남의 필수 조건임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환승연애4 원규가 보여준 변화
사랑 앞에 이성적 판단은 무용하다
환승과 재회를 넘나드는 연애 스릴러, <환승연애4>에서도 뉴 테토남의 정석을 보여준 사례가 있다. 숱한 갈등을 딛고 재결합에 성공한 정원규, 박지현 커플이다. 이들의 이별 사유는 지극히 현실적이었다.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슈퍼 T’ 성향의 원규 눈에,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지현의 태도는 다소 느슨해 보였다. ‘밥 먹고 취업 준비만 해도 모자라다’라는 원규의 잣대는 지현에게 서운함과 상처로 돌아갔다.
따지고 보면 누구의 잘못이라 단정하기는 어렵다. 하루빨리 안정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었던 원규의 책임감과 새로운 시작을 꿈꾸던 지현의 열정이 충돌했을 뿐. 그러나 그 가치관의 괴리는 관계를 좀먹었고, 평행선처럼 좁혀지지 않는 견해를 고수하던 둘은 이별에 종착하게 되었다.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중에도 둘은 수차례 부딪혔다. 초반에는 원규를 향하던 비난의 여론이 지현에게 옮겨갈 정도로, 그녀의 태도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에 머물렀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원규는 거기서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성적인 논리로 상대를 굴복시키는 대신 다른 길을 택했다. 대신 “나와 다른 것을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며 자신의 견고했던 기준치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고백을 전한 것이다.
심지어 지현이 다정한 다른 출연자에게 호감을 느끼자, 그는 질투에 함몰되는 대신 “저 사람의 다정함을 배워야겠다”라며 자신의 부족함을 담담히 인정했다. 이는 자존심 부리는 남자라면 결코 선택하기 힘든 길. 그는 프로그램 속에서 깨닫지 않았을까? 자기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랑하는 여자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수정하는 사람이 진정한 남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변화는 굴복이 아니라 확장이다.
뉴 테토남이 버려야 할 세 문장
알고 보니 내가 빌런?
영철과 원규가 사랑을 쟁취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가진 남성성이라는 자원을, 관계를 지키는 방패로 활용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테토남’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다음과 같은 말과 행동을 반복하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유통기한 지난 고집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
무릇 사람이라면 자기만의 방어기제가 있기 마련이지만, 이런 식의 태도는 관계를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 상대로서는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수준. ‘나’라는 존재를 고정된 틀에 가두면 상대가 들어올 틈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자.
“다 너 생각해서 하는 소리야.”
조언이라는 이름하에 자신의 기준을 상대에게 강요하는 것만큼 비겁한 것도 없다. 원규가 멋있었던 지점은 지현의 삶을 자신의 잣대로 재단하던 오만을 거두고 그녀의 속도와 방식을 존중하기 시작했을 때다. 내 방식이 정답이라는 확신은 미련 없이 갖다 버리자.
“미안하긴 한데, 너도 잘못했잖아.”
남자 중에는 결과나 팩트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심지어 사실이 아님이 밝혀져도 어물쩍 넘어가 버린다. 최악이다. 첫 번째,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아무리 사실이더라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상처를 입었다면 잘못이 될 수 있다. 두 번째, 잘못을 했다면 사과할 줄 알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