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울려대는 긴급재난 문자가 마음을 쓸어내리게 하는 요즘, 아마 신인류의 얼굴은 마스크를 낀 모습일 게다. 퇴근 후 저녁 약속, 계절의 변화를 살갗으로 느끼며 가볍게 걷는 산책, 훌쩍 떠나는 여행 등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이 무엇인지 이토록 뼈저리게 체감한 적 있었던가. 하지만 우린 알고 있다. 모든 것은 지나갈 테고, 이 노래가 갑갑한 오늘에 숨통이 되어줄 것이라는 사실을. 볼륨을 높여 인간의 주특기 공상, 망상, 상상 이용해 방구석 여행을 떠나보자.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1. Rodriguez – Climb Up My Music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의 쓴맛은커녕 엄살만 많았던 사회 초년생. 퇴근 후 집에 돌아와 불을 끄고 항상 로드리게즈(Rodriguez)의 ‘Climb Up My Music’을 틀었다. 이 노래는 서부 영화에서처럼 건조한 흙먼지가 날리고, 햇빛은 정수리를 괴롭힐 만큼 뜨겁고, 맥주는 아주 차갑게, 둘이 아니라 혼자여서 더욱 충만해지는 그런 상태로 나를 소환했다. 만약 가사처럼 당신을 자유롭게 해 줄 무언가가 필요하다면 이 음악을 틀어야 할 때. 이 노래에 취했다면 그의 견고하고 단단한 삶을 그린 영화 ‘서칭 포 슈가맨’을 볼 차례다.
Track 02. 마이 앤트 메리 – 공항 가는 길
여행이 시작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여러 선택지를 펼쳐 놓고 닿고 싶은 곳의 지명을 더듬거리는 그때부터일까, 혹은 목적지에 도착해 낯선 공기를 가르며 노곤한 걸음을 뗄 때부터일까. 각자가 생각하는 시작점은 다 다를 수 있지만 ‘공항 가는 길’에 움트는 설렘, 그 매력적인 감각은 모두 다 느껴봤을 것이다. 이 노래는 제2회 한국대중음악상 올해의 모던락 앨범으로 선정된 우리 이모 메리, 마이 앤트 메리의 3집 ‘Just Pop’ 앨범 수록곡이다. 이는 유학을 떠나는 멤버를 위해 만든 곡이라고. 영종대교 위를 달리며 설렘과 불안이 교차했던 새벽의 길목, 그때의 나를 떠올리며 지금을 견뎌보자.
Track 03. 오장박(오석준, 장필순, 박정운) – 내일이 찾아오면
컵 떡볶이에 그 귀한 목숨 걸던 초딩 시절, 아빠가 비디오테이프 좌판에서 사온 1989년 작 영화 ‘굿모닝! 대통령’을 보게 됐다. 기억나는 건 이상은과 허준호가 출연했었다는 것, 묘하게 긴장감 넘쳤지만, 어린 내가 봐도 엉망진창이었던 스토리, 파도가 철썩였던 푸르른 바다다. 그리고 바로 이 노래가 남았다. 이 영화 OST로 삽입된 오석준, 장필순, 박정운의 ‘내일이 찾아오면’ 은 도입부의 시원한 파도 소리가 기분을 청량하게 만들고, ‘행복이란 우리들 마음속에 있다’는 닳고 닳은 메시지를 희망적인 전언처럼 읽히게 한다. 이 노래로 마음을 씻고, 내일이라는 기적을 맞이하자.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4. Wig Wam – Bless the Night
21세기의 초입, 노르웨이에서 어마어마한 밴드가 하나 탄생했다. 미국에서 유행했던 1980년대 글램 메탈과 디스코의 소스를 잔뜩 활용하면서도, 북유럽 특유의 생동감 넘치는 멜로디를 잃지 않은 사운드로 엄청난 임팩트를 선사했던 아재 밴드. 윅 웜(Wig Wam)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리바이벌 글램메탈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불금에도 어쩔 수 없이 셀프 감금되어 방 안에 쳐박혀 있지만, 대신 이 노래를 빌어 뜨거운 밤을 축복이라도 해보자.
Track 05. The Midnight – Los Angeles
레트로 신스웨이브와 마이애미는 그 음악이 가진 속성과 이미지로 인해 자연히 엮이는 관계를 갖지만, 더 미드나잇(The Midnight)은 예외다. 싱어인 타일러 라일과 프로듀서인 대니얼 맥이완은 각각 애틀랜타와 덴마크 출신이지만, 이 둘이 만나고 정착한 곳은 바로 LA. 이곳을 너무나도 사랑했던 두 청년은 진솔한 마음을 담아 이 천사들의 도시에 대한 아름다운 찬가를 써 내려갔다. LA에 대한 아무 연고 없는 사람마저 환상을 갖게 하는 마성의 트랙.
Track 06. Joe Satriani – Summer Song
코로나19로 어지러운 이 시국만큼, 꽃샘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쌀쌀한 날씨가 우리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조 새트리아니(Joe Satriani)의 고전 ‘Summer Song’을 플레이리스트에 걸면 아마 뜨거운 여름이 조금 더 빨리 찾아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띄워본다. 수십 년이 지나도, 이 기타 톤의 대가가 들려주는 청명한 사운드는 여전히 더하거나 뺄 것이 없을 만큼 완벽하다.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07. California Dreamin – The Mamas & Papas
왕가위 감독의 영화 중경삼림 OST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드리밍. 이 노래를 들으면 패스트푸드점 청킹 익스프레스에서 두 팔 들고 춤추는 왕페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언젠가 반드시 캘리포니아에 갈 거라며 손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큰 볼륨을 높이고 리듬에 몸을 맡기던 그녀의 몸짓이. 사랑하는 이(양조위)의 집에 몰래 숨어들어 옛 애인의 흔적을 지울 때에도 어김없이 이 노래가 흐른다. 그리곤 정말로 떠난다.
가고 싶은 곳도 먹고 싶은 것도 산더미 같은데 집 밖으로 나설 수 없다고 푹 퍼져 멍하니 천장만 보지 말고, 이 노래를 틀자. 신나는 듯 하면서도 어딘가 우울함이 깃든 멜로디에 수심을 흘려보내자. 그리고 다짐하는 거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가 지나가면 가장 먼저 어디로 달려 나갈 것인지. 그렇게 자신만의 드림 여행지를 만들고 그 장소가 떠오르는 노래를 새로 찾아봐도 좋겠다.
Track 08. Sugar town – Nancy Sinatra
이번 행선지는 저 세상 슈가 타운. 첫 음부터 경쾌하게 시작하더니, 낸시 시나트라의 요염한 목소리가 흥을 돋운다. “문제가 생겼지만 오래가지 않을 거야. 다 사라져 버릴 거야. 왜냐하면 나는 슈슈슈~ 슈가 타운에 있으니까” “친구를 가진 적도 없고 강아지마저 자신을 외면해도 태양을 보며 웃는다. 슈가 타운에 있으니까.” 이거 너무 밝고 씩씩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바로 이런 무한 긍정의 자세. 이 노래가 계속되는 2분 23초간은 잠시 긴장이 풀리고 마음이 놓일지 모른다. 대책 없는 긍정 속으로 빠져드는, 달콤한 진통제같은 이 노래가 당신의 씁쓸한 고충을 어루만져 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