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주말에 서울숲을 방문했다가 처음 보는 광경을 목도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야외 잔디밭에 매트를 깔고 요가를 하는 모습이었다. 그 자체로도 생소한 장면이었지만, 속속들이 보이는 남성의 존재는 더욱 짙은 인상을 남겼다. 취미의 영역에서 젠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는 순간. 그래서 에디터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남자 뜨개질 입문에.
갑자기 무슨 뜨개질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하지만 남자들이 무관심한 사이 뜨개질은 하나의 거대한 유행이 되었다는 사실. 수많은 사람들이 푹 빠진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 않을까? 평소 손재주와는 영 거리가 먼 에디터지만, 백문이 불여일견의 마음으로 직접 뜨개질의 한복판에 뛰어들었다.
뜨개는 어떻게 트렌드가 되었나
사실은 유서 깊은 취미
한동안 잠잠하던 뜨개질 취미를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건 아무래도 펜데믹이었다. 친구를 만나기는커녕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취미의 폭은 확 줄어들기 마련. 좁디좁은 카테고리를 물색하던 사람들의 눈에 들어온 게 바로 뜨개질이었다. 공간의 제약을 전혀 받지 않고, 온전히 혼자서 행하며, 대단한 기술을 요하거나 물리적 공간을 크게 차지하지도 않는다. 집순이, 집돌이에게 최적화된 취미지 않는가.
코로나 상황이 사그라들자 사람들은 그간의 칩거에 대한 반발심으로 모든 관심을 밖에 두었다. 열정적으로 뜨개하던 사람들이 바늘을 내려놓게 되면서, 자연히 뜨개는 소강 상태로 돌아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다시 한번 그 불씨가 타오르고 있다. 다양한 뜨개 모임 활성화는 물론이요, 유튜브와 SNS에는 뜨개 과정과 결과물 인증이 수두룩하게 올라온다. CGV에서는 뜨개하며 영화를 보는 ‘뜨개상영회’를 운영하고, 르세라핌 멤버 사쿠라는 뜨개질 굿즈 브랜드 ‘꾸로셰’를 선보인 바 있다.

뜨개질의 부상은 독서의 하입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디지털이 당연한 요즘 세대에게 아날로그한 취미는 접해본 적 없는 흥밋거리다. 복고적인 문화가 그들에게는 되레 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고된 현생에 지친 이들에게 뜨개질은 사념으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날 수 있는 정서적 안식처가 된다. 실제로 뜨개질처럼 반복적인 동작에 집중하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출 수 있다고. 독서가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듯, 뜨개질도 하나의 힙한 문화로서 니팅힙을 형성하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우리나라 뜨개 문화를 이끈 주체의 절대다수는 여성이다. 그렇다고 남자는 뜨개질과 완전히 무관한 존재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유럽, 특히 아이슬란드나 노르웨이 같은 북유럽에서는 뜨개하는 남자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영국 다이빙선수 토머스 데일리는 올림픽마다 뜨개하는 모습을 비추고, 핀란드의 스노보드 코치인 안티 코스키넨 역시 긴장감 해소를 위해 뜨개질을 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바늘이야기 김대리’가 말하는 남자 뜨개질
뜨개질에 성별이 어디 있나요
국내 뜨개 커뮤니티에서 ‘김대리’라는 이름 석 자는 하나의 브랜드다. 국내 최대 규모의 뜨개용품 기업 바늘이야기의 마케팅 담당자이자, 45만 구독자를 가진 유튜브 채널의 얼굴. 단순히 홍보 담당자를 넘어, 수십만 명에게 뜨개질의 문을 열어준 문지기다. 지난 몇 년간 뜨개질 분야를 누구보다 가까이, 치열하게 바라본 김대리는 남자의 뜨개질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에디터가 바늘이야기를 방문해 들은 이야기는, 어쩌면 뜨개질 입문을 바라는 남자들에게 가장 필요할 현실적인 내용이었다.

매장을 방문하는 인원 중 남성은 체감상 5% 남짓에 불과할 정도로 소수. 그마저도 여자친구나 아내를 따라온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매일 매장을 방문해 뜨개를 하거나 강의를 수강할 정도로 열정적인 남자도 분명히 존재한다. 파주 매장의 경우 인접한 군부대가 많아 군인 손님이 많다고. 바늘이야기 인근의 매장 ‘묘한술책’의 사장님 또한 ‘다뜨베이더’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저명한 남자 뜨개인이라 귀띔했다.
그가 뜨개의 장점으로 꼽은 효율성과 실용성은 남성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질 만한 요소였다. 처음에는 어려울 수 있어도 어느 정도 숙련되면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면서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취미라는 점이 첫 번째 장점. 옷부터 가방, 액세서리 등 본인이 필요한 물건을 직접 만들어 사용할 수 있어 활용도가 높다는 게 두 번째 장점이다. 특별한 장비 없이도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동반자 같은 취미라는 점도 그가 꼽은 메리트였다.
단발성의 뜨개질 경험을 가진 남성이라면, 본인이 쓸 물건보다는 선물을 위한 시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사랑하는 사람이 성심성의껏 떠준 목도리는 꽤나 로맨틱하니까. 하지만 김대리는 선물보다는 자신을 위한 뜨개를 권장한다. “떠보면 알거든요. 이거 못 주겠다는 느낌이 와요. 너무 오래 걸리고 고생스러운데, 옆에서 자꾸 떠달라고 그러면 진짜 화나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도 주지 말라고 해요. 자꾸 주다 보면 뜨개인이 그냥 주는 사람들인 줄 알아요.”

그렇다면 뜨개하는 남자에 대한 시선은 어떨까? 김대리는 혼자 하는 남자들이야 해당 사항이 없겠다만, 모임처럼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는 경험상 달가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다고 조심스레 전했다. 혼자 해보려는 시도도 없이 ‘초보니까 알려달라’는 식의 요구는 누구라도 반감을 사기 마련. 여자도 있었지만 유독 남자가 그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뜨개질 외의 목적으로 모임에 들어오는 케이스도 적지 않았다고.
분명한 건 뜨개질은 성별과 완전히 무관하다는 것이다. 그저 손으로 하는 하나의 취미일 뿐. 근본적으로 혼자 힘으로 할 수밖에 없는 행위인 만큼, 타인이나 주변 환경보다는 본인이 어떻게 하느냐가 뜨개질의 관건이다. 최근에는 커뮤니티를 만들거나 모여서 뜨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긴 하지만, 혼자 하기 좋은 취미라는 사실을 김대리는 다시금 강조했다. “혼자 잘하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사람이 모여요.”
4년 차 남자 뜨개인을 만나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분명히 있다
김대리와의 인터뷰 자리를 마무리하는 와중,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남성 한 분이 매장으로 들어섰다. “저분이 아까 말씀드렸던 매일 오시는 남자 뜨개인이세요.” 김대리가 소개한 프리랜서 음식 평론가 이용재 씨는, 하루에 두세 시간은 꼭 바늘을 쥐는 어엿한 4년 차 뜨개인이었다.

그의 뜨개 시작은 단순했다. 털실 모자를 쓰고 싶었던 어느 겨울. 새로 산 모자가 머리에 맞지 않아 방법을 강구하던 그는 처음으로 뜨개방의 존재를 알게 됐다. 원하는 디자인을 들고 뜨개방에 방문했지만, 소재처럼 세세한 부분에 대해서는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다. 고민 끝에 직접 만들기로 결심한 그는 다이소에서 판매하는 저렴한 실과 바늘로 첫 코를 뜨기 시작했다. 지인에게 최소한의 도움만 받고, 대부분은 스스로 익혔다.
뜨개질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그는 기성의 뜨개 도안을 벗어나 직접 디자인을 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실력이 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도안의 대부분이 여성용이라는 점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남녀 공용에 치수상으로도 문제가 없는 도안이었지만, 막상 떠보면 잘 안 맞는 경우가 많았어요. 디자인이 대단하지 않더라도 내 몸에 맞는 옷을 떠서 입을 생각을 해야 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는 뜨개를 막 시작하는 이들에게 목표를 가지라고 조언한다. 뜨개질이 익숙해지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기 마련인데, 뚜렷한 목표가 없으면 그 초입에서 쉽게 포기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이성과 함께 온 남성들을 종종 봐요. 호기심인지 잘 보이고 싶은 건지 모르겠지만, 적당히 골라서 시작하곤 하죠. 대부분은 실패하더라고요.” 그는 최소한 ‘목도리를 떠보겠다’, ‘스웨터를 만들어 입어보고 싶다’ 정도의 구체적인 목표는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경험에서 비롯된 실용적인 조언도 인상 깊다. “남자한테는 코바늘보다 대바늘이 맞아요. 보통 코바늘은 가방이나 파우치처럼 소품을 많이 뜨는데, 남자한테 어울리는 건 별로 없거든요. 바늘하고 실은 굵은 걸 추천해요. 가늘면 기술적으로 어렵거든요. 뭣 모르고 코바늘 패키지 샀다가 잘 안되니까 여자친구한테 짜증 내고 싸우는 커플도 꽤 봤습니다.”
물론 남자의 뜨개질을 낯설게 보는 시선은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그 시선이 취미를 가를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뜨개를 통해 자신에게 딱 맞는 품질 좋은 옷을 손에 넣고, 깊은 몰입으로 생활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에디터가 직접 해봤습니다
손수 체감한 남자 뜨개질 효능
이러니저러니 해도 뭐든 직접 해 봐야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법. 십수 년 전 가정 시간에 배운 어린아이 장난 수준의 뜨개질 정도가 경력의 전부인 에디터가 뜨개질에 도전했다. 바늘이야기에는 재료 사는 일조차 버거운 초보자를 위해 제작에 필요한 물품을 전부 모아둔 입문자용 패키지를 판매하고 있다. 에디터가 선택한 종목은 코스터. 앞선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위한 뜨개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된 만큼, 직접 사용할 만한 물건인지를 기준으로 삼았다.

방식은 간단했다. 패키지에 동봉된 QR 코드를 스캔하면 해당 제품의 튜토리얼 영상이 나온다. 설명을 따라 차근차근 따라 하면 끝이다. 초반 20분 정도를 코잡기와 겉뜨기라는, 아주 기초적인 방식만 익히고 나서는 쭉 반복이었다. 바늘에 걸린 실에 다른 바늘을 집어넣고, 실을 바늘에 걸고, 바늘에서 실을 빼고.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제대로 된 곳에 바늘을 찔러 넣은 건지 헷갈리기도 했고, 잠깐 방심한 사이에 실이 바늘에서 탈출해 버리기도 했다. 한 코 한 코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손끝 스릴러였다.
한 시간가량의 반복 수련으로 어느 정도 손에 익은 후부터는 한결 수월했다. 다른 취미와 비교하면 배우는 데 드는 시간이 확실히 짧은 편. 점차 뜨개 속도는 빨라졌고, 실도 조금씩 코스터의 행색을 갖춰갔다. 오로지 뜨개에만 집중하니 기묘할 정도로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이 순간만큼은 온 세상에 바늘과 실, 그리고 분주히 움직이는 손만 존재했다. 생각을 정리하는 여유까지는 갖추지 못했지만, 습관처럼 달고 사는 근심과 걱정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며칠간 틈틈이 시간을 쏟은 결과, 대략 세 시간 반을 들인 코스터가 탄생했다. 매번 과하게 실을 당긴 탓인지 예상보다 자그마했다. 결과물에 대한 개인적인 아쉬움도 있었지만, 자랑스럽게 코스터를 내밀었을 때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주변인의 반응도 감내해야 했다. 그렇다고 대단히 신경이 쓰인 건 아니다. 내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더 컸으니까. 다만 복슬복슬한 실은 피하는 편이 좋겠다. 너무 두꺼워서 실수해도 티가 안 나는 건 장점이지만, 제대로 꿰고 있는지 당최 파악이 되지가 않아 아쉬웠다.

여러 차례 나눠 완성한 만큼 뜨개한 장소도 다양했다. 집에서, 카페에서, 사무실에서. 어디서든 할 수 있기 때문도 있었지만, 남자의 뜨개질을 바라보는 시선을 직접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도 컸다. 다행히 ‘남자가 무슨 뜨개질이냐’는 식의 질타는 날아오지 않았다. 오히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내 거도 떠달라는 주문이 쇄도했다. 그럴 때마다 비슷한 답변을 고수했다. 손바닥만 한 이 코스터 하나 만드는 데도 몇 시간을 들이고 있다고. 뜨개 문화에 티끌만큼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직접 뜨개질을 해보니 그 매력은 확실했다. 시공간의 제약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롭고, 실용적인 결과물을 산출해 낸다. 난도나 비용을 따졌을 때 진입 장벽도 낮은 데다가, 혼자서도 여럿이서도 즐거울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제일은, 온갖 소음과 정념으로 떠들썩한 주변과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완벽한 도피처가 되어준다는 사실이다. 당분간 에디터는 마음이 소란할 때마다 도망칠 예정이다. 무엇 하나 끼어들 틈 없는 뜨개질 삼매경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