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12가 출시됐다. 변함없이 끝내주게 좋은 스마트폰이다. 외형은 더 멋있어졌다. 안테나를 바깥으로 빼서 각지게 둘렀고, 꽤 세련되게 변했다. 카메라 기능은 물론이고 OLED를 채택해 더 얇아진 베젤과 화사해진 화면을 갖췄고, 세계 최고의 모바일 프로세서도 탑재했다. 아, 맞다. 5G를 빼먹을 뻔했다. 환경을 생각해서 충전기와 이어폰도 없앴다. 늘어난 컬러, 그리고 다양한 입맛에 맞춰 무려 세 가지 크기와 네 가지 종류의 아이폰12를 같이 내놓는 배려심도 발휘했다.
이 멋진 스마트폰을 앞에 두고, 아직도 살까 말까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 왜 고민하는 건지 궁금해할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래서 거두절미하고 핵심만 깔끔하게 정리해봤다. 아이폰12를 사야 할 이유와 사지 말아야 할 이유에 대해.
사야 할 이유 1: 아이폰이다
온갖 미사여구를 붙여봤자, 솔직히 우리가 아이폰을 사는 이유는 결국 ‘아이폰이기 때문’으로 귀결된다. 그렇지 않은가? 매끄럽게 돌아가는 인터페이스부터 시작해, 안정적으로 동작하는 앱들, 최고는 아니어도 그럭저럭 작동하는 기능들. 한마디로 믿고 마음 편하게 쓸 수 있다. 그동안 앱스토어에서 사들인 앱도 한두 개가 아니고, 앱이나 게임도 더 부드럽게 작동한다. 광고로 떡칠 된 게임이나 개인 정보를 빼가는 앱도 적다. 아이패드나 애플워치, 맥, 에어팟 같은 다른 애플 기기를 가지고 있다면 놀라운 조화를 맛볼 수 있다. 게다가 아이폰이다. 이상하지만 자부심이 든다.
사야 할 이유 2: 신제품 아이폰이다
요즘은 스마트폰을 사면 쉽게 바꾸지 않는다. 적어도 3년은 쓰는 것 같다. 그럴 거면 기왕 살 때 비싸도 좋은 폰을 사는 게 좋다. 5G가 당장은 의미 없다고도 하지만, 그래도 3년 안에는 대중화되지 않을까. 아이폰11이나 12나 체감 성능 차이가 없다는 이들도 있지만, 그래도 앞으로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어쨌든 애플은 OS 업그레이드 지원을 꼬박꼬박 계속해준다. 신제품일수록 더 오래 지원받을 수 있는 건 당연하다. 잊지 말자. 어쨌든 OS가 업그레이드되는 동안, 적어도 내 아이폰은 ‘현역’이다.
사야 할 이유 3: 중고값도 비싼 아이폰이다
사실 값비싼 아이폰 가격을 이해할 수 있는 건, 중고 가격 방어가 꽤 잘되기 때문이다. 나온 지 1년 안에 헐값으로 떨어지는 안드로이드 스마트폰과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엔 가격 방어가 좀 안 되는 것 같다고? 괜찮다. 나온 지 5년이 지났어도 값어치를 인정받는 스마트폰은 여전히 아이폰밖에 없다. 중고 마켓을 둘러봐라. 2015년에 나온 아이폰6s가 아직도 거래되고 있다. 같은 해에 나온 다른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기로 하자.
자, 이런데도 아이폰12를 사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있긴 있다.
사면 안 되는 이유 1: 아이폰이다
아이폰이란 사실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아이폰12를 사려면, 아이폰이기 때문에 겪는 온갖 불편함에 익숙해져야 한다. 삼성페이나 LG페이 같은 편리한 서비스를 쓸 수 없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에선 여러 앱과 게임도 구글 플레이에 먼저 출시된다. 그리고 무엇이든 더 비싸다. 끝내주게 비싼 제품 가격을 비롯해 유튜브나 멜론 같은 서비스를 구독할 때도 남들보다 더 비싼 돈을 내야 한다. 혹시 뭔가 잘못되면 대안도 없다. OS를 업그레이드할 때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면, 애플에서 고쳐줄 때까지 손가락 빨고 있어야 한다. 다른 좋은 스마트폰이 나와도 갈아타기 힘들다. 아이폰은 편한 대신 비싸고, 불편하고, 때론 자유를 헌납한다.
사면 안 되는 이유 2: 당신에겐 이미 아이폰이 있다
아이폰12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 대부분은 아이폰 유저다. 물론 아이폰 7이나 8 유저라면 OK. 아이폰X까지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폰XR, Xs, 아이폰11을 가지고 있는 사용자가 굳이 아이폰12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사실 아이폰7으로도 딱히 못 할 것은 없다. AR 카메라 관련 기능이 아니면, 조금 느리지만 거의 모든 앱을 다 쓸 수 있다.
아이폰12에 새롭게 들어간 기능은 아이폰Xs 이후 유저라면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게다가 이번 아이폰12에 새롭게 들어간 기능은 아이폰Xs 이후 유저라면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 아이폰11이라면 십중팔구 달라진 게 없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분명히 더 좋아지긴 했다. 하지만 이미 충분히 좋아진 상태기에, 대다수 이용자가 알아차리기 어렵다. 사실 아이폰은 충분히 쓸 만큼 쓰다가, OS 지원이 끊기면 바꾸는 게 가장 알뜰한 방법이다.
대놓고 말하자면, 이번에 아이폰12에서 업그레이드된 기능은 대부분, 또 대다수 유저가 안 쓴다. 5G? 그건 아직 더 빠른 배터리 소모량과 요금제를 강요하는 악의 축이다. LTE만 써도 넷플릭스도 안 끊기고 모바일 게임도 잘할 수 있는데, 굳이 더 빠른 네트워크가 필요한 이유가 있을까?
사면 안 되는 이유 3: 아이폰은 계속 유지비를 요구한다
고백하자면, 필자는 결국 아이폰12를 안 사기로 했다. 이미 여러 대의 아이폰을 가지고 있는 탓도 있지만, 요 몇 년간 바뀌고 있는 애플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낀 탓이다.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답이 나오지 않았달까. 우선 비싼 가격을 생각해보자. 아이폰12 미니 때문에 알아채기 어렵지만, 아이폰12 가격은 실질적으로 상승했다. 799달러로, 예전 아이폰 플러스 모델 가격이다. 아이폰6s는 549달러, 아이폰8은 699달러부터 시작했다는 걸 기억해보자. 한국 리퍼 비용도 56만 4천 원으로 소폭 올랐고, 이 때문에 2년간 19만 9천 원 하는 애플케어 플러스 가입은 사실상 필수다.
2년이 지난 다음 사설 수리를 받는 것도 문제가 생겼다(개인적으론 이게 마음을 식게 만든 가장 큰 이유다). 아이픽스잇에서 아이폰12를 분해하다 발견한 내용을 보면, 애플 공인 기술자에게만 지급되는 애플 전용 도구 없이는 아이폰12 카메라, 스크린 수리가 불가능하거나 어렵다. 2년 지나 카메라가 고장 나면 56만 4천 원을 내고 리퍼를 받아야 하고, 액정이 깨지면 36만 3천 원을 내고 바꿔야 한다. 에어팟과 마찬가지로 아마 이럴 바엔 새로 사는 사람이 꽤 많을 거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2년 지나 고장 나면 새 걸 사라고 권하는 거다.
그런데, 이건 일단 그냥 전화다
가방과 시계, 신발에 몇백, 몇천만 원을 쓰는 사람도 있는 세상에, 가장 많이 쓰는 도구에 돈을 투자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몇십만 원 가지고 지질하게 왜 그러느냐는 소리도 들었다. 괜찮다. 나는 돈이 얼마나 무섭고, 얼마나 아까운 건지를 아니까. 이건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올라가는 명품이 아니고, 잘 관리하면 오래도록 대를 물려 쓸 수 있는 물건도 아니다. 딱히 더 필요한 기능을 넣은 것도 아닌데 계속 가격이 올라가는 이유도 모르겠고, 내가 산 물건에 내 코가 꿰이는 상황이 자꾸 생기는 것도 질렸다.
어쨌든 이번 아이폰12는 잘 팔릴 거라고 한다. 애플에서 부품 발주 물량을 늘렸다는 소식도 들리고, 전 세계에 엄청난 교체 수요가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애플이 슈퍼사이클에 올라탈 거라는 예상도, 한국에서 예판 물량만 50만대였다는 뉴스도 들었다. 그래도 이번엔 사지 않기로 한다. 뭔가 호구가 되는 기분이 들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