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특성상 새로 나온 스마트폰은 대부분 써본다. 사기도 하고 빌리기도 하고, 국내 미출시 폰은 여행 간 김에 만져보거나 사 온 적도 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폰을 사러 여행을 간 적도 있다.
이렇게 여러 폰을 만지다 보면 눈만 높아진다.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안 되고. 흠잡지 못할 폰은 없다지만, 전체적인 성능부터 시작해서 디스플레이, 카메라 기능, 배터리, 디자인, 웨어러블 기기와의 연계성, 고음질 음원 플레이까지, 따질 부분은 한둘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아이폰SE 2세대를 충동적으로 샀다고 페이스북에 적었더니, 이런 댓글이 달렸다. ‘어차피 아이폰 12도 충동적으로 살 거면서 뭘’. 사놓고 이런저런 장단점을 살펴보다 서랍에 집어넣고, 단점을 핑계 삼아 내일도, 세상에 없을 가장 좋은 폰을 찾아서 헤매지 않겠냐고.
딱히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고민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들이 정말 그렇기 때문이다. 내가 까다로워서가 아니라, 뭔가 하나씩 결핍된 부분을 가지고 있다.
아이폰 SE 2세대도 마찬가지다. 아이폰치고는 저렴하다지만, 이런 낡은 디자인에 적당한 성능이라니. 몇 년을 우려먹은 클래식한 디자인에 대한 지적은 넘어가자. 이 디자인은 너무 많이 써먹어서 역사책에 남을 테니까.
AP는 A13 바이오닉, 아이폰 11에도 들어간 최신 칩셋을 썼지만, 램은 쩨쩨하게 3GB만 넣었다. 카메라 모듈, 배터리 같은 주요 부품은 모두 아이폰8과 같은 것이다. 야간 모드 카메라 기능은 당연히(?) 안 들어갔다. 배터리도 그대로라서, 온종일 쓰려면 보조 배터리가 필수다. 리니지2M 같은 게임도 아직 할 수 없다.
정말 흠잡으려고 마음먹으니, 흠잡을 것이 너무 많다. 참 많은데, 한 달이 지난 지금, 가장 많이 만지작거리는 폰은 아이폰 SE 2세대다. 같이 쓰는 5G 스마트폰은 필요할 때만 쓰고, 주된 ‘도구’로는 아이폰SE 2세대를 사용한다. 작고 가벼워서다. 항상 들고 다니기 편하다. 애플 앱스토어에는 예쁘면서 자기 할 일만 잘하는 유틸리티 앱도 많다. 그런 앱을 주로 실행하니 사실 배터리 걱정도 하지 않는다.
그동안 ‘쩨쩨하다’ 여겼던 모든 기능은 어느덧 ‘적당하다’로 바뀌었다. 적당한 크기, 적당한 화면, 적당한 배터리, 괜찮은 성능으로. 여전히 카메라는 많이 아쉽지만, 이것도 자료 수집용이나 일상 스냅 사진 수준의 용도라면 충분히 적당하다.
달리 말해, 아이폰SE 2세대는, 애플이 참 오랜만에 내놓은, ‘이거 사야 할지 저거 사야 할지 모르겠어’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그럼 그냥 이거 사’라고 말할 수 있는 폰이다. 애플의 실수다.
매일경제 신현규 기자가 전에 썼던 것처럼, 한때 어떤 스마트폰을 쓰는지가 나를 표현하고, 또 소속감을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던 시절이 있었다. 미친 듯이 가격을 올려도, 그런 사람들이 계속 그 폰을 사준 적도 있었다.
스마트폰 가입자수가 한국 인구와 맞먹는 시대에, 이제는 계속 그럴 거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여전히 최고가 폰을 택하겠지만, 많은 사람은 다른 길을 택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아이폰, 갤럭시, 화웨이, 샤오미에 구글 픽셀까지, 가장 많이 팔리는 모델은 이미 최상위 모델이 아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폰은, 그저 적당한 스마트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