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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 룩, 프레피 룩, 그리고 리넥츠 (+영상)
2024-09-10T18:30:09+09:00

이태열 대표는 트래드의 주류화를 꿈꾼다.

미국을 대표하는 스타일이자 시대를 풍미했던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이 시간과 공간을 넘어 우리나라에서 움트고 있다. 이제야 새싹이 자라고 잎을 틔우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이를 지탱하는 뿌리는 생각보다 훨씬 견고해 보인다. 이태열 대표는 누구도 발 들이지 않는 불모지를 묵묵히 개간해 왔다. 어떤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따라가고 있는 그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GSB 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에서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을 지향하는 리넥츠(RENACTS)와 슈메이커 브랜드 미라보로(MELAVORO)를 운영하는 이태열이다.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스타일은 어떤 건지 설명해달라.

말 그대로 미국의 전통적인 스타일이며, 트래드라고 줄여 말하기도 한다. 핵심이 되는 건 아이비 룩과 프레피 룩이다. 아이비 룩은 미국 북동부 8개 대학을 칭하는 아이비리그의 학생들이 입었던 스타일을 뜻한다. 더불어 명문 사립학교인 프렙스쿨을 다니는 고등학생들이 아이비 룩을 따라 입기 시작하면서 생긴 장르가 프레피 룩이다. 그래서 두 스타일의 경계가 애매모호하다. 굳이 구분하자면 아이비 룩은 비교적 점잖고, 프래피 룩은 좀 더 다양한 컬러를 활용하는 화려한 스타일 정도랄까. 우리는 이를 정의하는 게 크게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

브랜드를 2개나 운영하고 있다. 원래 전공이 패션 쪽인가?

전공도 패션이고, 브랜드 론칭 전에도 패션 업계 쪽에서 일했다. 그때는 마케팅 최고 책임자라는 포지션에서 여러 브랜드를 성장시키는 역할이었다. 퇴사 후에 젠틀맨즈 클럽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었고, 그 이후로 브랜드까지 운영하게 됐다. 사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사회 초년생 때부터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다.

리넥츠를 만들어가고 있는 구성원

직장 생활을 할 때부터 기반을 준비하고 있었던 건지.

아무래도 그렇다. 회사에서 어느 정도 경력을 쌓았을 때 꽤 괜찮은 회사들에서 오퍼를 받았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가장 작은 회사로 이직했다. 소규모 회사에 가야 프로세스 전반을 경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일을 하면서 젠틀맨즈 클럽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패션사관학교 커뮤니티를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언제부터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스타일을 추구하게 됐나.

고등학생 때부터 수트를 좋아했다. 그때는 이탈리아나 영국 기반의 수트를 입었었는데, 이쪽 계열의 수트가 사실 좀 불편하다. 너무 갖춰 입은 느낌이 강해서 조금 부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그러다 2013년쯤 아메리칸 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메리칸 수트는 지금껏 입었던 옷들에 비해 착용감도 훨씬 편안하고 착장 자체도 캐주얼해서 좋았다. 그 이후부터는 쭉 트래드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편안함이 트래드의 가장 큰 매력인 건가.

입었을 때 편하기도 하지만 스타일링하기에도 편하다. 명확한 규칙들이 있기 때문이다. 옥스포드 버튼다운 셔츠에 레지멘탈 타이, 치노팬츠에 네이비 금장 블레이저와 같은. 공식에 따라 입기만 하면 되니 오히려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아이템 하나하나의 범용성도 좋다. 버튼다운 셔츠는 트래드 스타일에서 상징적인 아이템이지만 다른 스타일에 곁들여도 전혀 문제가 없다. 어찌 보면 이런 실용주의적인 면모가 아메리칸 트래디셔널의 핵심이 아닌가 싶다.

이태열 대표는 스타일링을 할 때 항상 블레이저를 먼저 염두에 둔다고 말한다.

정해진 방식이 있다면 디테일이 중요하겠다.

맞다. 다트선이 있느냐 없느냐 하나 때문에 미국적인 재킷인지 아닌지가 갈리고, 타이의 스트라이프 방향에 따라 고객의 구매 여부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리넥츠는 명확한 규칙에 따라 의상을 복각하는 브랜드인가.

따지자면 복각에 가깝다. 다만 우리는 그때의 옷을 완벽하게 재현하려 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옛날 청바지는 대부분 버튼 플라이 형태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그 시대에 YKK 상위 라인의 지퍼를 사용할 수 있었다면? 우리는 무조건 썼을 거라는 입장이다. 중요한 디테일을 최대한 가져가려고 하지만 똑같이 만드는 데에 방점을 두지는 않는다.

우리나라에도 트래드 스타일을 찾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은 듯하다.

이전에 회사를 다닐 때만 해도 컨템포러리 기반의 브랜드가 대세였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브랜드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빈티지라든지 폴로, 알든 같은 브랜드가 화두에 오르는 걸 보고 급선회했다. 물론 아직은 비주류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열심히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스타일을 알리고 있다.

브랜드의 성장보다 스타일을 알리는 데 초점을 두는 이유가 있나.

회사 생활을 할 때 매출을 키우는 데만 혈안이 되었다가 내리막길을 걷는 브랜드를 수도 없이 봤다. 단일 브랜드가 현실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최대 판매치를 찍으면 멈춰야 하는데, 그 이상을 바라고 트렌드만 쫓다가 기존의 아이덴티티조차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리넥츠는 그런 추락을 겪지 않게끔 목표치를 10억으로 정하고 시작했다. 지금은 감사하게도 달성을 한 상태고, 이 이상의 외형 성장을 위한 활동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스타일을 알리기 위한 모임이 젠틀맨즈 클럽인가.

그렇다. 젠틀맨즈 클럽은 국내에서 유일한 아메리칸 스타일을 즐기는 신사들의 모임이다. 어떻게 하면 트래드 스타일이 주류 문화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미디어에 나오거나 멋진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트래드 스타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알리는 게 가장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들이 자발적으로 드러내고 싶을 만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야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젠틀맨즈 로터리 클럽은 시립서울청소년센터와 함께 화보 촬영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대표적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나.

자기관리와 진취적인 태도를 보여줄 수 있는 젠틀맨즈 풋볼 클럽, 봉사 활동을 통해 사회적인 책무를 다하는 젠틀맨즈 로터리 클럽, 자기 계발을 위한 젠틀맨즈 그로스 클럽 등이 있다. 아이비리그의 정신을 계승하는 측면도 있지만, 대외적으로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나. 아웃핏만 멋있는 게 아니라, 놀기도 잘 놀고 가치 있는 활동도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이끌어내는 선순환의 구조를 만들고 있다.

아메리칸 트래디셔널 스타일의 홍보대사를 자처하고 있는 셈이다.

이 시장의 파이가 커지면 우리도 성장할 수 있는 거니까. 젠틀맨즈 그로스 클럽의 활동도 일맥상통한다. 실제 리넥츠 고객에게 숏폼 전문 강사의 교육을 제공해 인플루언서로 키우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브랜드의 가치는 누가 브랜드를 소비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 유명한 톰브라운도 소비층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젠틀맨즈 그로스 클럽의 모임 현장

활동의 성과를 체감한 적이 있나.

우리가 육성한 인플루언서의 콘텐츠를 보고 일본에서 협업 제안이 왔다. 심지어 아이비의 근본 브랜드 J.Press, 일본 남성 패션 잡지 2nd 매거진이었다. 미국 기반 스타일이지만 일본 또한 트래드 스타일 강국이기 때문에 더 놀랍고 기뻤다. 협업 당시에 브랜드 담당자가 해준 말이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한국이 일본보다 트래드 스타일에 있어서 앞서 있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젠틀맨즈 클럽이 그 문화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이었다. 뿌듯한 순간이었다.

J.Press와 2nd 매거진이 함께한 젠틀맨즈클럽의 팝업 현장

책임감도 느껴지겠다.

확실히 그렇다. 최근에 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책임감의 무게를 더욱 실감했다. 트래드 스타일은 씬이 작다 보니 우리보다 더 소규모로 운영되는 업체가 많다. 그들도 스타일에 대한 이해도나 제품 퀄리티는 훌륭하지만, 사업가적인 역량이 부족한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이들에게 필요한 사업적 측면을 지원해 주고, 근래에 예정된 더현대 서울에서의 팝업을 함께 진행해 보고자 한다. 이런 역할을 도맡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행보가 올바른 방향이라는 확신이 있다. 

궁극적인 목표가 있다면.

해외 진출처럼 전체 시장 크기를 늘리기 위한 노력은 이어가겠지만, 우리의 색채를 잃어버리면서까지 외형의 성장을 추구하지 않는 건 변하지 않을 거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100억짜리 브랜드를 만드는 게 아니라 10억짜리 브랜드 10개를 만드는 쪽에 있다. 작지만 뚜렷한 브랜드로 오랫동안 지속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