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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을 위한 공간, 스피크이지 바
2026-04-01T15:48:58+09:00
스피크이지 바

몰래 마시는 술이 더 맛있는 법.

“이 밤이 너무 조용해, 좀 시끄러웠으면 좋겠어.”

불과 반세기 전, 대한민국의 밤은 국가의 명령 아래 멈춰 서 있었다. 안보와 치안이라는 명분으로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 통행이 금지된 시대. 하지만 억압이 피 끓는 청춘까지 길들이지는 못했다. 영화 <고고70> 속 장면처럼, 사람들은 동이 틀 때까지 고고클럽에서 춤을 추며 억눌린 에너지를 분출했다. 통제와 금지는 욕망을 지우지 못한다. 다만 숨어들게 할 뿐이다.

은밀한 저항의 역사는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술을 범죄로 규정한 금주법은 역설적으로 미국 밤 문화의 황금기를 여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잔재는 자유가 허락된 지 한참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딘가에 남아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법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피어난 문화, 스피크이지 바를 소개한다.

금주법이 만든 공간

마시지 말라니 더 마신 미국인들

스피크이지(speak easy). 조용히, 속삭이듯, 비밀스럽게 말하라는 뜻이다. 1920년부터 1933년까지 미국 전역에 술 제조 및 판매가 금지됐을 때, 법망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비밀 주점을 일컫는 이름이기도 했다. 어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지배적이다. 1844년 영국의 밀매점을 뜻하던 ‘speak softly shop’에서 파생되었다는 설, 그리고 무허가 주점 주인 케이트 헤스터가 소란스러운 손님들에게 “조용히 말하라(Speak easy.)”고 주의를 준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다.

스피크이지 바

하지만 이 비밀은 공공연한 사실에 가까웠다. 뉴욕에만 무려 3만 개 이상의 스피크이지 바가 성행했으니까. 이 또한 공식 집계에 불과하며, 10만여 곳 이상으로 추산하는 기록도 존재한다. 흥미로운 점은 금주령 이전 뉴욕의 합법 술집이 고작 1만 5천여 개뿐이었다는 사실이다. 술을 금지하자 역설적으로 술집이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당시 뉴욕은 간판만 없을 뿐이지 어딜 가든 술집 하나쯤은 발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운영이 허술했던 것은 아니다. 어찌 됐든 스피크이지 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은 철저한 은닉이었으니까. 이를 위해 다양한 위장술이 동원되었는데, 어떤 곳은 평범한 꽃집이나 이발소의 뒷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었고, 또 어떤 곳은 식당의 대형 냉장고 문이 비밀 통로로 기능하기도 했다. 심지어 장의사의 관으로 입구를 위장한 사례까지 있었다. 내부 사정을 모르는 외부인으로서는 짐작조차 어려울 수밖에.

스피크이지 바
평범한 가게로 위장한 스피크이지 바. 꽃집, 이발소 등 그 종류도 다양했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스틸컷

어렵사리 입구를 찾았다 해도 마지막 관문이 남아 있었다. 바로 암호다. 가장 상징적인 암호는 “조가 보냈어(Joe sent me).”였다. 당시 ‘조’는 김철수만큼이나 흔한 이름의 대명사여서, 설령 단속반에 적발되더라도 모두가 ‘조가 알려줬다’라고만 말하면 배후의 특정 인물을 지목하기 어려웠다. 암호는 말뿐만 아니라 특정 리듬으로 노크하거나 동전, 카드 등 정해진 물건을 제시하는 방식 등 갈수록 교묘해졌다.

은밀함은 바 안에서도 이어졌다. 사람들은 스피크이지에 눈먼 돼지(blind pig)나 눈먼 호랑이(blind tiger)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기이한 동물을 구경시켜 준다는 명목으로 입장료를 받은 뒤 술을 서비스로 내어주던 편법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술을 지칭하는 이름 또한 다양했다. 소스, 주스, 커피처럼 무난한 대체어부터 독약이나 관 광택제처럼 마셨다가는 큰일 날 섬뜩한 표현까지 두루 쓰였다.

미국의 밤 문화를 바꾸다

술을 매개로 하나가 된 사람들

금주법이 되레 음주 인구를 늘렸다는 아이러니 뒤에는 숨은 이유가 있다. 바로 여성이다. 1920년대만 하더라도 술은 철저히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일부 주에서는 여성의 술집 출입 자체가 범법이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법 바깥의 영역이었던 스피크이지는 남녀불문으로 손님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성별의 장벽으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다. 여성이 낡은 관습을 벗을 수 있는 유일한 장소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스피크이지 바
금주령이 절정에 달한 1929년 시카고를 배경으로 한 장면 ©영화 <뜨거운 것이 좋아> 스틸컷

이 시기에 등장한 플래퍼(Flapper)는 이를 효과적으로 대변한다. 짧은 머리에 도발적인 드레스를 입고 스피크이지 바를 종횡무진한 그들의 존재는 스타일을 넘어 여성의 독립성을 상징하는 문화 운동에 가까웠다. 직접 바를 운영하는 여성 경영인도 등장했는데, “안녕, 이 자식들아(Hello, suckers!)”라는 인사말과 함께 뉴욕 밤 문화를 쥐락펴락했던 텍사스 구이난(Texas Guinan)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스피크이지 바가 만든 또 하나의 생경한 풍경이 있다. 바로 흑인과 백인이 한 테이블에 앉아 어울리는 모습이다. 차별과 격리가 당연시되던 시대에, 이곳은 인종 간 경계가 허물어진 독특한 공간이었다. ‘어차피 법을 어기고 술 마시는 마당에 무슨 소용이냐’라는 심리가 공공연하게 퍼져 나가면서, 스피크이지 바에서만큼은 사회적 금기나 다름없던 유색 인종과의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스피크이지 바

스피크이지 바는 재즈가 대중화되는 결정적인 무대이기도 했다. 당시 주류 사회에서 배척받던 재즈는 단속을 피해 모여든 지하 클럽의 폐쇄적인 분위기와 결합하며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다. 실제로 루이 암스트롱, 듀크 엘링턴, 엘라 피츠제럴드 등 걸출한 재즈 뮤지션이 이곳을 기반으로 활동했을 정도다. 성별도, 인종도 무의미해지는 이 작은 공간에서 미국의 다문화주의는 그야말로 우연한 계기로 싹을 틔우고 있었다.

시대를 풍미한 스피크이지 바

대통령도 찾았다

스피크이지 바 뉴욕 21 클럽
©21 Club

뉴욕 21 클럽

뉴욕 맨해튼 52번가는 비밀 주점의 온상이나 다름없었다. 그중에서도 압도적인 인지도를 자랑했던 공간이 바로 뉴욕 21 클럽. 프랭크 시나트라, 월트 디즈니,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수많은 유명인이 사랑한 곳이었고, 금주령이 해제된 이후에도 빌 클린턴과 존 F. 케네디, 도널드 트럼프를 비롯한 수많은 역대 대통령이 직접 발걸음을 할 만큼 그 위상이 대단했다.

이곳이 이렇게나 유명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감시를 무색하게 만드는 치밀함에 있었다. 단속의 낌새가 보이면 즉시 선반에 진열된 술병을 하수구로 던져 버리는 장치를 마련해 두었고, 특정 벽돌에 난 아주 작은 구멍에 고기 꼬챙이를 찔러 넣어야만 비밀 와인 셀러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덕분에 수차례 연방 요원이 들이닥쳤음에도 21 클럽은 단 한 번도 덜미를 잡히지 않았다.

스피크이지 바 워싱턴 DC 크레이지 캣 클럽

워싱턴 DC 크레이지 캣 클럽

낡은 마구간을 개조한 크레이지 캣 클럽은 재즈 시대의 가장 전위적인 아지트였다. 예술가부터 보헤미안, 플래퍼에 이르기까지 각양각색의 자유로운 영혼이 이곳에 모여 술과 재즈를 만끽했다. ‘크레이지 캣’이라는 이름은 조지 헤리먼의 만화에서 따왔는데, 작품의 주인공은 성별이 모호한 고양이였다. 이러한 캐릭터를 마스코트로 내세움으로써 모든 성적 지향을 가진 사람들이 환영받는 곳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당시 클럽 입구에는 스피크이지 바답게 ‘술 반입 절대 금지’라는 표지판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비누를 버릴지어다’라는 익살스러운 경고 문구를 함께 적어두기도 했다. 단테의 <신곡>을 패러디한 이 글귀는 비누로 비유되는 청결함, 즉 가식이나 규격화된 도덕을 내려놓는 공간임을 표현한 것이다. 마구간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에 실제로 더러워질 각오도 필요했지만.

스피크이지 바 애리조나 빌트모어 호텔 피닉스
©Arizona Biltmore

애리조나 빌트모어 호텔, 피닉스

피닉스 사막 한복판에 세워진 애리조나 빌트모어 호텔 2층에는 ‘미스터리 룸’이라는 이름의 은밀한 공간이 존재했다. 표면적으로는 남성 흡연실이나 포커 룸으로 사용되는 곳이었지만, 알고 보면 당대 권력자와 셀러브리티가 즐겨 찾던 스피크이지 바였다. 할리우드의 전설로 불리는 배우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은 이 비밀 아지트와 가장 가까운 객실에 머물기를 고집했을 정도였다고.

이곳은 철저히 초대 기반으로 운영되었다. 내부에 들어선 손님들은 회전식 책장 뒤에 마련된 비밀스러운 바에서 불법 주류를 마음껏 즐겼다. 검문이 뜨면 옥상의 감시병이 서치라이트로 신호를 보냈고, 이를 확인한 손님들이 증거를 없애는 방식으로 공권력에 대응했다. 이 공간은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는데, 책 두 권을 움직여야 열리는 비밀 바 시스템을 재현해 당시의 페르소나를 그대로 이어가는 중이다.

나만 알고 싶은 매력, 스피크이지 바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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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라인드 피그
와일드한 맛

블라인드 피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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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크이지 바를 은유하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공간. 한남동 좁은 골목의 건물로 들어가, 허리를 한참 숙여야 할 만큼 작은 쪽문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야 겨우 진입할 수 있다. 벽을 가득 채울 정도로 수많은 종류의 위스키,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 수준급 칵테일로 얼큰하기 취하기 제격. 지금은 아니지만 한때 시가 바였던 터라 흡연이 가능하니 비흡연자라면 참고하자.

Information

  • 주소 | 서울 용산구 대사관로 62 B1F
  • 시간 | 매일 20:00-03:00
  • 주차 |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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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인앤코
친구 집 놀러 온 듯

파인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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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틈새의 좁디좁은 계단을 내려가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가야 하는 독특한 시스템의 공간. 이곳이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이름을 올린 이유는 당연히 뛰어난 실력의 오너 바텐더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로스팅한 보리를 담은 그릇에 칵테일을 올려 마시는 누룩, 미니어처 김밥이 가니쉬로 올라가는 피크닉 등 한국의 색채를 가미한 특색 넘치는 메뉴를 경험하자. 찾는 사람이 많은 만큼 예약 방문을 추천한다.

Information

  • 주소 | 서울 강남구 선릉로157길 33 B1F
  • 시간 | 매일 19:00-02:00
  • 주차 | 불가
  • 인스타그램 | @pineandco_seoul
03
더 그리핀 바
호텔에도 있어요

더 그리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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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의 가장 높은 층에 자리한 루프톱 바. 원목 서랍장으로 빼곡한 벽에 가까이 다가가면 숨겨져 있던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매주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재즈 라이브 공연이 이루어져, 술과 음악을 한껏 즐기던 그 시절의 감성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루프톱 테라스에서는 도심의 야경까지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투숙객은 칵테일 한정으로 할인도 받을 수 있으니 놓치지 말 것.

Information

  • 주소 |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279 11층
  • 시간 | 매일 18:00-01:00
  • 주차 | 가능 (유료)
04
더스토리지룸
치즈샵의 비밀 창고

더스토리지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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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크이지 바의 헤리티지를 가장 충실하게 따른 공간. 지도의 안내에 맞춰 도착한 장소가 웬 치즈 가게라면, 제대로 찾아온 게 맞다. 뒤편의 흰색 비밀 문을 열고 진입하면 숨겨진 창고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 더스토리지룸은 금주령 당시 단속을 피해 몰래 마시던 레시피를 구현한 칵테일을 선보인다. 거기에 와인, 위스키 등 다양한 주류를 함께 갖춰, 특정한 형식보다는 각자의 취향에 맞춰 즐길 수 있는 편안한 공간에 가깝다.

Information

  • 주소 | 서울 성동구 연무장7길 8-1 B1F
  • 시간 | 매일 18:00-01:00
  • 주차 | 불가
  • 인스타그램 | @thestorageroom.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