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스니커즈의 인기는 40년 전 등장한 나이키 에어 조던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0년대 이전까지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이었지만, 1985년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을 선보이면서 사람들은 매장 앞에 줄을 서서 운동화를 사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단순한 스포츠 브랜드를 넘어 스트리트 패션, 문화의 상징이 된 브랜드 에어 조던의 이야기다.
신발 장수 마이클 조던
작년 마이클 조던이 나이키 운동화 판매로 벌어들인 수익은 2억 5,600만 달러, 약 3225억 6천만 원이다. 미국 프로농구 현역 시절 벌어들인 것보다 더 많은 돈이다. 조던은 나이키가 자신의 이름을 사용한 대가로 대략 에어 조던 전체 매출의 5%를 받았다.
에어 조던의 탄생
나이키는 업계 꼴찌였다. ‘백인들의 러닝화’ 이미지가 강했고, 농구화 시장에서 고전했다. 1980년대 당시 농구화 시장은 컨버스가 장악하고 있었다. 1917년 처음 출시된 농구화의 조상 컨버스 척 테일러를 시작으로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대부분은 컨버스를 신고 코트를 누볐다. 아디다스는 래퍼와 협업하며 흑인 힙합 문화를 이끌어갔다. 아디다스 트랙 수트를 입은 런 디엠씨의 스타일과 애티튜드는 미국 젊은 흑인들 사이에서 쿨한 이미지로 자리매김했다.
나이키로서는 흑인 문화와 스포츠 시장 점유율, 둘 모두를 잡기 위한 묘수가 필요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바로 루키 마이클 조던. 나이키는 슈퍼스타가 될지 아닐지 물음표였던 신인 선수에게 모험을 건다. ‘마이클 조던을 위한 농구화를 만들어보자’며 에어 조던을 만든 것이다.
에어 조던의 대표적인 모델 몇 가지를 뽑아봤다.
에어 조던1
특정 선수의 이름을 딴 최초의 스니커즈로, 오늘날 스니커즈 문화를 탄생시킨 에어 조던의 첫 번째 모델. 피터 무어의 디자인으로, 나이키가 새로 개발한 에어솔 기술을 러닝화가 아닌 농구화에 도입했다. 나이키 스우시 로고가 들어간 유일한 에어 조던이기도 하다.
처음 에어 조던은 레드와 블랙 컬러 웨이로 출시됐다. 하지만 당시 NBA는 해당 컬러의 농구화 착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반항의 아이콘이 된 에어 조던은 발매 첫해 만에 1억 2천만 달러의 신발을 팔아치운다. 조던과의 계약 당시 나이키가 기대한 수익은 3년 300만 달러였다.
당시 NBA 선수들의 농구화는 거의 흰색이나 검은색이었다. 팀 유니폼과 동료들에 맞는 색상의 농구화를 신어야 한다는 규정이 존재했고 이를 어기는 선수는 없었다. 여기에 나이키는 신발 전체에 검정색과 빨강색으로 도배를 했으니, 얌전한 농구 코트 위에 개성 넘치는 반항아가 나타난 셈이다.
조던이 강렬한 색의 에어 조던을 신을 때마다 NBA에서 벌금을 물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NBA 경고에도 불구하고 나이키는 에어 조던을 계속 신게 했고, 이로 인한 벌금 5천 달러를 나이키가 내줬다는 이야기였다. 나이키는 이를 홍보에 이용했다. “NBA에서는 금지했지만 여러분은 괜찮다. 신어라.” 신발은 밴드(Banned, 금지된)라는 별칭이 붙으며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하지만 이는 마케팅을 위해 만들어낸 거짓말. 조던은 정규 시합에서 단 한 번도 이 신발을 신지 않았고, 벌금도 내지 않았다. 1985년 2월 10일 NBA 올스타 게임 덩크 콘테스트에서 단 한 번 검정·빨강 에어 조던을 신었는데, 이는 정규 시합이 아니었기에 별다른 제재가 없었다.
에어 조던 3
조던이 가장 좋아하는 신발로 알려져 있다. 스니커헤드 사이에서 ‘에어 조던 역사를 바꾸고 에어 조던 문화를 만들어낸 운동화’라고 극찬받기도. ‘조던의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린 수석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의 첫 번째 디자인이다. 처음으로 점프맨 로고를 적용했다. 이와 관련한 일화도 있다. 팅커 팻필드가 조던에게 “마음껏 뛰어봐”라고 했더니, 조던은 발레하듯 점프했고 이 모습이 그 유명한 점프맨 로고로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에어 조던 3는 스니커즈 최초로 코끼리 가죽 패턴 디자인을 도입했다. 당시 나이키가 가지고 있던 에어 기술을 운동화 뒤축에 보이게 만든 것도 이때부터다. 진정한 에어 조던의 탄생이었다. 에어 조던 3을 신은 조던은 첫번째 MVP와 올해의 수비 선수상을 동시 수상했고, 자유투 라인 슬램 덩크로 2년 연속 슬램덩크 챔피언을 차지한다. 경기당 평균 37.7점을 올린 마이클 조던은 농구의 신 반열에 오르게 된다.
경사는 계속됐다. 당시 최고의 힙합그룹 NWA가 에어 조던 3을 신고 나타난 것이다. 나이키가 그토록 바라던, 흑인 문화에 발을 들이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에어 조던 6
소속팀 시카고 불스에 우승을 안겨준 신발이다. NBA 챔피언십의 첫 우승을 함께하며 90년대 황금기를 열었다. 조던은 다섯 번째 리그 득점왕이 됐고, 개인 통산 두 번째 MVP를 수상했다. 에어 조던 6의 디자인은 건담을 모티브로 했다. 뒤축에 플라스틱 고리를 달았고, 설포에 손가락을 걸 수 있는 구멍을 뚫어 놓았다. 반투명 아웃솔과 레이스 잠금장치, 가죽 오버레이로 조던의 등번호 2와 3을 표시한 디테일도 특징. 만화 <슬램 덩크>의 강백호 신발로도 유명하다.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납뜩이가 신고 있던 신발이기도 하다.
에어 조던 10
에어 조던은 어느새 매년 나와야 하는 신발이 됐다. 조던이 농구 코트를 떠났을 때도 에어 조던 시리즈는 멈추지 않았다. 에어 조던 10은 은퇴한 마이클 조던에게 헌정하기 위한 농구화였다. 아웃솔에 선수 시절 주요 업적을 글씨로 새겨 넣었다. 깔끔한 라인과 측면 스트라이프를 바탕으로, 발바닥 3/4 면적에 해당하는 에어 솔을 내장해 쿠셔닝을 향상시켰다. 끈을 고리 타입으로 만든 스피드 레이싱 또한 특징이다.
에어 조던 11
에어 조던 11 만큼 큰 인기를 끌었던 농구화가 또 있을까? 발매 당시의 엄청난 인기는 물론, 그 후 출시되는 레트로 버전 모두 발매 직후 품절됐다.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팀 컬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규정을 보란 듯이 어긴, 흰색과 검은색만 있는 신발. 에어 조던 11은 스포츠 슈즈 처음으로 페이턴트 가죽(에나멜)을 사용하고, 아웃솔 전체에 투명한 클리어 창을 장착했다. 페이턴트 가죽은 천연 가죽에 비해 가볍고 많이 늘어나지 않아 방향을 전환하는 데 유리했다. 특유의 깔끔한 느낌으로 정장에 구두 대신 에어 맥스 11을 신는 사람 또한 늘어났다. 애니메이션 <스페이스 잼>에서 조던이 착용한 신발이기도 하다.
에어 조던 11이 담긴 박스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있다. ‘Tinker made them Shine, Mike made them Fly, You made them Iconic.’ (에어 조던 디자이너) 팅커가 에어 조던을 빛나게 하고, 마이클 조던이 에어 조던을 날게 하고, 당신이 에어 조던을 아이코닉하게 만든다는 뜻이다.
지금 만나볼 수 있는 에어 조던 시리즈
에어 조던은 1985년부터 지금까지 총 37개의 시리즈를 내놓으며 스니커헤드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고 있다. 이제는 당시 출시된 오리지널 모델을 쉽게 구할 수 없지만, 레트로 버전으로 얼마든지 쉽게 만나볼 수 있다. 나이키 매장으로 향하자. 조던이 더욱 부자가 될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