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밤잠을 설쳐가며 즐겼던 배틀 그라운드에는 이런 꼬리표가 붙어 있었다. ‘앞서 해보기’ (Early Access, 이하 얼리액세스). 어떤 개념인지 잘 모르겠다면 다음처럼 이해하면 쉽다.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은 개발자들이 개발 중인 게임을 판매하며 후원을 받는 개념이라고.
물론 이는 양날의 검이다. 완성판 게임과 달리 리스크를 안고 있어서 결국 완성도 못 하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배틀 그라운드라는 모범적인 사례가 증명하듯 멋진 게임이 되는 케이스도 많다. 당연히 우리는 이중 후자에 가까운 스팀(STEAM)의 알짜배기 얼리액세스 게임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자신의 후원이 게임 개발에 일조했다는 뿌듯함까지 덤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GTFO
약어만으로도 이미 짐작했겠지만, GTFO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직설적인 제목(Get The Fxxx Out)이 맞다. 순화해서 표현하면 ‘이건 미친 짓이야, 난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정도일까. 온갖 괴물들로 난장판이 된 지역을 돌파하여 목적을 달성하고 탈출하는 게임의 목적을 여실히 말해준다. 페이데이 시리즈를 개발한 ‘울프 안데르손’의 작품인 만큼 게임성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단 약을 한 사발 들이킨 듯한 기괴한 분위기가 일품. 굳이 단점을 뽑자면 4인 협동(Co-Op) 게임이지만, 아직은 온라인 매칭을 지원하지 않아 스팀 친구를 초대해서 즐길 수밖에 없다는 것 정도다. 물론 이 부분은 업데이트로 해결될 예정이다. 항상 멋진 사운드 트랙을 선보이는 ‘사이먼 비클룬드’가 참여한 것도 플러스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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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DJMAX Respect V)
소싯적에 판 좀 돌려봤던, 아니, 키보드 좀 쳤던 게이머들의 눈물을 뽑아낼 시리즈가 돌아왔다. 한국 리듬 게임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디제이맥스(DJMAX) 시리즈가 오랜만에 PC로 발매됐다. 한동안 콘솔에서만 시리즈를 출시하며 PC 게이머들의 속을 애타게 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돌아왔으니 반갑지 아니한가.
디제이맥스 리스펙트 V는 PS4로 발매된 동명의 게임을 PC로 이식한 작품이다. 현란한 백그라운드 영상과 함께 많은 아티스트가 참여해 수록곡들의 퀄리티가 매우 좋다. 시리즈의 팬들, 그리고 리듬 게임을 사랑하는 게이머들에게는 필수 구매 타이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남은 것은 손가락 준비 운동을 충분히 하고, 내구성 좋은 키보드만 준비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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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메사(Black Mesa)
온몸에 넘쳐흐르는 충만한 덕심과 주체하지 못할 개발 욕구를 합친다면, 새로운 전설이 탄생하지 않을까? FPS 역사에 대격변을 일으킨 명작 ‘하프라이프’의 1편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재해석한다면, 그것도 팬들이 발 벗고 나서서 움직인다면 응당 지원해줘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블랙 메사(Black Mesa)는 대놓고 ‘나에게 투자해’라며 게이머들을 마약처럼 선동한다.
사실 명작이라 칭송받는 작품이지만, 하프라이프는 벌써 출시된 지 20년이 훌쩍 넘은 게임이다. 당연히 2020년의 눈높이에서 보면 부족한 것처럼 보이는 부분도 있다. 그러나 제작진은 뛰어난 센스를 발휘해 이 FPS의 고전에 레벨 디자인 등 많은 요소를 추가시켜 큰 호평을 받고 있다. 마침 얼마 전 원작의 마지막 챕터인 ‘Zen’ 구역의 개발이 종료됐다는 반가운 소식. 이 말인즉슨, 블랙 메사의 완성판 발매가 멀지 않았다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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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토리오(Factorio)
중요한 일, 예컨대 내일모레 공무원 시험을 앞두고 있다거나 하는 게이머들은 절대 팩토리오(Factorio)에 커서를 가져가지 말길. 왜냐고? 한번 손을 대는 순간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무감각해진 시간 감각 속에서 정신줄 놓고 플레이할 것이 뻔한 막장 제조 게임이니까.
게임의 목적은 단순하다. 자동화 공장을 세우고 물품을 생산하는 것. 이를 위해서 직접 자원을 채취하면서 초기 단계의 공장을 세운 뒤, 효율적인 자동화 공정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하며 게임에 임해야 한다. 여기에 각종 자재와 설비 시설을 조합하다 보면 마치 레고를 가지고 노는 듯한 재미도 느낄 수 있다. 덤으로 게이머들의 시간도 제대로 ‘삭제’된다. 확실히 게임을 하며 머리를 굴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현실의 시간은 뒷전이 된다는 만고의 진리를 팩토리오가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추천 : 현실을 잊고 미래로 시간 이동을 하고 싶은 사람
스쿼드(Squad)
배틀필드 2의 인기 MOD, 프로젝트 리얼리티의 개발진들이 모여 만든 대규모 전쟁 게임 스쿼드(Squad)는 대형 제작사 게임이 부럽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완성도를 지녔다. 정녕 인디 게임의 퀄리티가 맞는지 어리둥절할 정도다. 언리얼 엔진으로 구현된 뛰어난 그래픽 수준은 눈을 호강시켜주고, 최대 100인이 참여해 제병 협동 전투를 벌이는 남다른 스케일의 전장은 게이머들을 압도한다.
경쟁작이라 할 수 있는 배틀필드와의 차이점은 바로 현실성. 제목처럼 분대 단위 전투가 잘 구현되어 있어 혼자서 무쌍을 찍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하지만 분대원들과 협동하며 치르는 전투는 배틀필드보다 더욱 현실적인 전장을 체험하게 해 준다. 밀덕이라면 이 게임에서 헤어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추천: 배틀필드 같은 대규모 전쟁 게임을 즐기고 싶은데 EA의 행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게이머
스페이스 엔진(Space Engine)
가끔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반짝이는 별들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봐도, 보고 싶었던 별들은 이제 잘 보이지 않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불행 중 다행이랄까. 스팀에는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측 욕구를 대리 만족할 수 있는 스페이스 엔진(Space Engine)이라는 훌륭한 대안이 존재한다.
스페이스 엔진은 과학적 이론과 사실을 기반으로 우주를 구현한 3D 시뮬레이션이다. 현재까지 인류에게 발견된 여러 은하계와 항성, 행성 등을 재현해놓고 정보까지 알차게 수록했다. 물론 게이머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은 우주를 탐험하며 천체들을 감상하고 정보를 습득하는 것뿐이지만, 무한한 우주의 경이로움을 체험하기에는 충분하다. 특히 VR 장비로 즐기면 감동이 더욱 커진다. 물론 그만큼 우리의 주머니도 가벼워지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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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ed by 조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