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스타워즈 팬들에게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 중 하나였다. 그전까지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 이후로 포스의 균형을 잃고 방황하던 팬들에게 큰 이정표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분명 ‘스타워즈 제다이: 오더의 몰락’과 ‘더 만달로리안’ 같은 작품은 진짜 ‘제다이의 귀환’을 알리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 위대한 여정의 끝에 꽃길만 가득하길 기원한 것은 이기적인 바람이었을까. 순풍에 돛을 단 듯 나아가던 항해는 암초에 부딪혔다. 외전들이 아무리 잘 나와도,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본편이다. 그리고 그 길목에서 팬들은 결국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라는 또 다른 다크 사이드와 맞닥뜨리게 됐다.
그래도 좋은 건 좋았다고 말해야겠지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서 좋았던 부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반란 연합 최고의 파일럿 중 한 명인 ‘레드 2’ 웨지 안틸레스는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분명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부분이다. 한 가지 또 덧붙이자면, 아담 드라이버가 배역을 맡은 카일로 렌좌의 연기도 상당히 훌륭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에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가 전부다.
나는 쌍제이를 믿었다, 아니 믿고 싶었다
라스트 제다이가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에 거대한 분뇨를 투척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지점이다. 이미 터져버린 사태를 수습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팬들은 그래도 J.J 에이브럼스 감독과 제작진을 다시 믿어보려 했다. 그런데 어떻게든 수습해보려는 노력은 가상했지만, 그 이상의 낯부끄러운 책임회피가 따라왔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것은 내 잘못이 아니잖아? 쟤가 잘못한 거니까 대신 욕 해줄게. 몇 번이라도.’같은 식의 수습은 민망할 정도로 조야하고 유치하다.
이미 망쳐버린 프리퀄과 클래식 시리즈의 설정은 둘째 치더라도, 적어도 납득할 수 있는 개연성이라도 부여해야 했다. 이를 통해 향후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을 심어준다면 충분히 긍정적인 성과로 평가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는 시퀄 시리즈마저 부정하며 결국 이도 저도 아닌 결과를 낳았다. 심지어 우리는 제임스 카메론이 돌아왔다가 핀잔만 듣고 시원하게 망한 ‘터미네이터: 다크페이트’라는 훌륭한 반면교사도 목도하지 않았던가. 과연 이게 최선이었을까?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던 존엄
놀라운 사실은 이 부분이 그나마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지점이라는 것이다. 스타워즈의 팬으로서 용납이 되지 않는 것 한 가지는 다스 베이더에 대한 대우다. J.J 에이브럼스는 루크 스카이워커와 함께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최고 존엄인 다스 베이더를 포스에 선택받은 자(Chosen One)가 아닌, 그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허당’으로 연출해버렸다.
적어도 에피소드 6까지의 스타워즈 사가는 다스 베이더의 이야기로 축약할 수 있다. 고통스러웠던 어린 시절 끝에 사랑을 찾게 되고,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어둠에 물들면서도 아들에 대한 애정으로 포스의 균형을 맞추게 된 그다. 그러나 영화는 팬들이 사랑하고 경애해 마지않는 다스 베이더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그것이 의도건 아니건 간에. 차라리 이게 단지 필자의 억측이었다면 기쁨과 안도의 한숨이라도 내쉴 텐데.
우주 너머로 사라진 캐릭터성을 찾습니다
등장 캐릭터가 너무 빨리 소모되는 것도 안타까운 요소다. 이는 디즈니가 손을 댄 MCU 시리즈에서도 똑같이 나타나는 문제 중 하나다. 일단 프리퀼과 클래식 시리즈의 캐릭터는 둘째 치더라도, 당장 시퀄 시리즈부터 우리에게 눈도장을 찍었던 캐릭터들마저 개연성을 상실하고 방황하다 결국 소모된다.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거지?’라는 의문만이 남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주연 캐릭터 관계에서도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점은 심각한 문제다. 깨어난 포스에서부터 착실히 쌓아왔던 복선들은 어느 순간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허공으로 사라진다. 쌍제이가 떡밥 투척과 낚시의 달인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 정도로 대책이 없진 않았다. 혹시 ‘스토리의 완결에 급급해 많은 것을 희생해야 했던 건 아닐까’ 싶은 의문마저 갖게 하는 부분이다.
맥빠지는 액션신을 팬들은 용납할 수 없다
무스타파 시스템에서 벌였던 오비완과 아나킨의 광검 대결은 연출이 다소 작위적일지라도, 결국은 스타워즈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 액션은 아무리 합을 맞춰도 쉽사리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런 완성도 높은 신의 부재는 시퀄 시리즈의 고질적인 단점이기도 했지만,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의 액션 수준이 너무 낮은 것도 문제라 할 수 있다.
역대 최고의 연출을 보였어야 했을 이번 광검 대결은 결국 어리바리하며 허공에 허우적대는 초라한 모습으로 끝난다. 왜 부끄러움은 관객의 몫일까. 팬들은 보는 내내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했다. 하다못해 스타워즈 액션신의 양대 축인 함대전 연출이라도 좋았다면 아쉬움이 덜했겠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시리즈의 정체성마저 부정당한 느낌이다.
이런 팬 서비스는 없어도 됐는데
앞서 웨지 안틸레스를 언급했을 때부터 짐작했겠지만, 라오스는 스카이워커 사가의 최종장 답게 많은 팬서비스를 곳곳에 넣어두었다. 하지만 결국 팬서비스도 개연성을 갖추고 적절한 곳에 첨가해야 팬들이 이해하며 추억에 잠기게 된다. 단지 냅다 욱여넣기만 하면 그건 좋은 팬서비스가 아닌 사족에 불과하다.
갑작스러운 타이밍에 잠시 스치듯 지나가는 추억의 캐릭터와 기체가 팬들에게 선사하는 감정은 반가움보다는,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가깝다. ‘도대체 왜 나온 걸까?’ 같은 혼란만 한껏 키운다. 팬들은 바보가 아니다. 그저 추억팔이 하나둘 보여주고 호의적인 평가를 바라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셈이다. 추억팔이에도 나름의 설득력이 필요하다. 마니아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조지 루카스 감독을 돌아보게 되는 의미에서는 고마운 작품
상술했던 여러 가지 문제 외에도 이번 작품의 많은 부분은 팬들을 슬프게 한다. 용납하기 어려운 설정 파괴는 라스트 제다이와 다를 것이 없고, 너무나 즉흥적으로 일을 벌이지만 다행히 운이 따라줘서 사태를 해결하는 주인공들을 보면 답답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팰퍼틴 황제는 굳이 다시 나와서 모진 굴욕을 당한다. 3류 악당을 자처하면서까지 말이다.
한때 필자는 조지 루카스가 감독했던 프리퀄 시리즈를 싫어했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는 천사였다. 그때는 최소한 스타워즈라는 느낌은 있었으니까. 팬들이 바라던 스타워즈 시퀄 시리즈의 끝은 이런 형태가 아니었다. 오죽했으면 사람들마저 조지 루카스가 메가폰을 잡았던 그 시절을 그리워할까.
Edited by 조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