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자동차 시장은 소형 SUV 춘추전국시대다. 그동안 크고 우람해야 한다는 선입견의 SUV에게 ‘콤팩트’라는 단어는 전혀 매칭되지 않는 개념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난 5~6년 사이에 흐름이 급격하게 변했다. 쉐보레 트랙스로 시작된 소형 SUV 시장은 이후 쌍용 티볼리가 돌풍을 일으키며 자동차 시장 전반의 판세를 바꿨다. 이제는 각 제조사가 동일한 체급의 중복 모델을 2~3개씩 만들 정도로 소형 SUV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파이 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현재 국내 5개 제조사에서 생산 중인 소형 SUV는 파워트레인 분류에 따른 중복 기종을 제외하면 총 9종이다. 각각 현대 베뉴, 코나, 기아 스토닉, 니로, 셀토스, 쉐보레 트랙스, 트레일블레이저, 르노삼성 XM3, 쌍용 티볼리다. 여기에 3세대로 오면서 포지션을 SUV로 바꾼 기아 쏘울 부스터까지 합치면 무려 10종의 모델이 같은 체급에서 동시에 경쟁하는 셈이다.
분류는 소형, 사이즈는 준중형
최근 자동차 업계는 소형 SUV 시장의 확대로 체급이 양극화되는 특징을 갖는다. 소형 SUV 모델이 많아지고 그 안에서도 다양한 사이즈의 모델이 나오면서, 이들이 바로 위 체급 차종까지 삼킬 정도로 볼륨이 커진 것이다. 덕분에 끼인 체급인 준중형 SUV 시장은 대폭 축소되고, 대신 그 위의 중형/대형 SUV 시장이 커졌다.
소형과 대형으로 양극화된 이 시장 구도에 결정타를 날린 건 최근 삼파전을 벌이고 있는 셀토스, 트레일블레이저, XM3다. 이들은 10종의 소형 SUV 중에서 지난해부터 순서대로 출시된 가장 최근의 모델들인데, 이 셋은 모두 세일즈 포인트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바로 데뷔 시점에서 서로 모두 ‘소형 SUV 중 최고 사이즈’였다는 점을 내세워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소형과 대형으로 양극화된 이 시장 구도에 결정타를 날린 건 최근 삼파전을 벌이고 있는 셀토스, 트레일블레이저, XM3다.
지난해 출시된 셀토스는 4,375mm, 2,630mm의 전장과 휠베이스로, 당시 현행 소형 SUV 중 거의 최고 사이즈였다. (물론 티볼리 에어가 있었지만, 이 경우 뒤의 트렁크 길이만 키운 기종이고 현재는 단종되어 의미가 없다) 이 크기는 바로 1세대 전 같은 브랜드의 상위 체급인 스포티지보다 큰 사이즈다. 그리고 연달아 출시된 트레일블레이저와 XM3가 각각 4,410mm에 2,640mm, 4,570mm에 2,720mm로 기록을 계속해서 갈아치우고 있다.
치열한 소형 SUV 시장의 가장 뜨거운 삼파전
준중형에 육박하는 빅사이즈 소형 SUV의 삼파전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다만 그 명과 암은 비교적 빠르게 갈리고 있다. 셀토스가 굳건한 위치를 수성하는 입장에서, 트레일블레이저는 초반 기세가 무색하리만치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XM3는 무서운 기세로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지난해 데뷔한 셀토스는 이 셋 중에서 제원상 사이즈로는 가장 불리한 입장이다. 하지만 현대·기아자동차 특유의 실내공간 창출 능력 덕분에 체감 공간이 커서, 단순 페이퍼 스펙이 전혀 단점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게다가 AWD 시스템과 멀티링크 서스펜션, 177마력의 1.6 GDI 터보 파워트레인 같은 스펙은 드라이빙 본질 측면에서도 눈을 혹하게 만든다. 물론 실제 주행 성능은 제원과 달리 실망스럽다는 평이 많지만, 어쨌든 셀토스는 지난 3월에도 여전히 소형 SUV 1위, 내수 시장 자동차 판매 4위를 달성하며 순항하고 있다.
1차 도전자였던 트레일블레이저는 극초반의 상승세를 뒤로하고 벌써부터 고군분투 중이다. 후발주자인 XM3 때문이다. 트레일블레이저는 그동안 쉐보레의 이해할 수 없는 가격정책 기조를 깬 모델로, 셀토스와 비슷한 판매가를 형성하며 출시 초기에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XM3가 시작가 1,700만 원대의 파격적인 가격표를 붙이고 데뷔하면서, 트레일블레이저의 가격도 순식간에 경쟁력을 잃었다.
반면 XM3는 가격을 필두로 디자인, 편의장비, 주행 기본기까지 다양한 측면에서 엄청난 상품성을 내세우며 단번에 시장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XM3는 위의 두 모델과 직접적인 가격 비교가 힘들다. 이들과 달리 XM3는 AWD 사양이 아예 없고, 후륜 서스펜션도 가장 기본적인 토션빔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후드를 열면 보이는, 커버조차 없는 엔진룸을 보면 이런 가격표가 붙은 것도 이해가 간다.
대신 르노 삼성의 상품성은 일반 소비자가 시각적으로, 또 피부로 느끼는 부분에 집중했다. 일단 외형 사이즈부터 디자인까지 비주얼로 기존 경쟁자들을 압도한다. 특히 ‘쿠페형 디자인의 SUV’라는 속성은 이전까지는 메르세데스-벤츠나 BMW 같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요소였다. 이를 대중 브랜드에서, 그것도 어색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식해낸 점이 가장 큰 세일즈 포인트가 됐다.
큰 차체와 유려한 디자인을 내세웠지만, 파워트레인 역시 안정적이다. XM3에는 메르세데스-벤츠와의 합작으로 알려진 1.3리터 터보 직분사의 TCe260 엔진이 들어간다. 물론 실제로는 소형차엔 르노 엔진을, 대형차엔 메르세데스 엔진을 서로 가져다 쓰는 공유 수준에 가깝다. 하지만 어쨌든 이 파워트레인은 A클래스에서도 올라가는 것으로, 엔진 자체는 157마력의 배기량 대비 파워풀한 출력을 낸다. 세팅도 잘 이뤄져서, 가격을 생각하면 2WD와 토션빔의 단점을 충분히 커버하고도 남는다.
지키려는 자, 그리고 뺏으려는 자
사실 현대·기아가 잡고 있는 기존의 굳건한 시장 진입을 위해서 쉐보레나 르노 삼성은 거의 판을 갈아엎을 정도의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쉐보레는 이런 부분에서 추진력이 부족했다. 현재 트레일블레이저의 가격정책은 어디까지나 쉐보레의 앞선 사례에 비해서 저렴해진 것이지, 시장의 절대 지표로 보면 결코 매력적인 수치는 아니다.
게다가 특유의 차량 기본기로 승부를 보는 쉐보레의 강점 또한 이번에는 잘 먹히지 않고 있다. 이는 트레일블레이저에 적용된 3기통 엔진이 여전히 국내 소비자에게 ‘경차 전용 엔진’ 이미지가 강하고, 또 태생적으로 진동과 소음에 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3월의 판매량에서도 트레일블레이저는 코나보다 더 떨어지는 3,187대를 기록했다. 다만 현재 트레일블레이저의 글로벌 수출모델이 국내에서 동시에 생산되어 출고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반면 르노 삼성은 거의 사활을 건 수준의 가격정책을 펼쳐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분위기다. 일단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파격적인 시작가로 발목을 잡아두며, 여기에 파워트레인의 마케팅 전략으로 ‘메르세데스와의 합작 엔진’이라는 프레임을 입혀 심층적으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꽤 성공적인 전략이다. 경쟁사보다 차종의 볼륨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르노 삼성에게는 결국 이 XM3의 성공 여부가 국내 시장의 생존 여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셀토스는 아직 시장 1위를 수성하고 있지만, XM3의 맹렬한 추격이 부담스럽다. 사전예약 물량만 2만여 대 이상이 쌓인 XM3는 3월 9일에 정식 출시됐는데, 판매일수를 꽉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도 5,581대로 벌써 3월 소형 SUV 판매량 2위를 기록했다. 아마 4월이 되면 더욱더 놀라운 성적표를 받아들지도 모른다. 덕분에 소비자들은 르노 삼성과 쉐보레가 현대·기아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진귀한 상황을 보며 팝콘각을 재고 있다. 제조사들로부터 더욱 긍정적인 피드백이 도출될 것이라는 희미한 기대감 한 줌을 안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