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만달로리안’ 그 두 번째 시즌이 순항 중이다. 이제는 본명보다 애칭이 익숙한 베이비 요다를 지키기 위해 저 먼 행성에서 지금도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을 주인공 딘 자린. 광활한 우주 속에서 그는 도피처로 삼을 행성이 필요했고, 우리도 지난한 날들 속에서 몸을 숨기고 싶은 순간이 있다. 평소 혼자 걷는 것에 익숙하지만 폴라로이드 나우 만달로리안 에디션을 들고 잠시 숨을 고르고 싶던 어떤 날 서울, 이 거대한 도시에 숨겨진 행성 속을 걸었다.
베스카 스틸로 만든 만달로리안 갑옷을 모티브로 한 이 카메라. i-타입 필름도 역시 만달로리안 에디션이다. 장소마다 상이한 감상이 자리하듯, 한 팩에 든 8장 필름 프레임에 다른 만달로리안 상징이 적용돼 디테일이 훌륭한 편. 필름을 끼우면 자동 배출되는 다크 슬라이드도 물론 버리지 않고 챙겼다. 머드혼 등에 업은 이 매력적인 동반자와 함께할 코스는 바로 남산 자락.
첫 번째 행성, 리사르 커피 로스터스
진하고 달콤하게 하루를 시작하고 싶을 때 들르는 곳. 그래서 첫 장을 이곳에서 기록하기로 한다. 필름을 뱉어내는 기계음도 이곳에서는 모서리 깎인 별의 옹알이처럼 차갑지 않다. 마음 바쁜 아침, 시간을 잠시 정박시키고 싶은 이들이 오도록 7시에 문을 연다. 사진만으로도 공간의 온기가 전해지는 듯 따뜻한 장면이다.
두 번째 행성, 소월로
산책이 좋다. 내가 나랑 있는 기분이 드니까. 추운 겨울을 제외하고는 퇴근길, 버스 두 정거장 전에 내려 집까지 걷는다. 지는 해를 마주 보고, 적막한 골목 불빛도 머리에 이고, 계획에 없던 장을 보기도 하면서. 한적한 소월로는 내가 좋아하는 산책 코스 중 하나다. 이 길을 따라 광화문 교보문고까지 걷곤 하는데 마음 바뀌면 해방촌 길로 새, 피자와 맥주를 마시며 낮술을 걸치던 날들도 있었다.
카메라에 적용된 타이머 기능으로 남산 타워와 투 샷 도전. 난간에 조심히 카메라를 올렸다. 이 길 위에 서서 타자를 담기만 했는데, 나도 풍경 속 한 자락으로 기록됐다. 유난히 파랗던 그 날의 하늘도 선명히 담겼다. 산책이 종교라는 어느 시인의 책 속에 끼워 넣기로 했다.
세 번째 행성, 회현 제2 시범 아파트
낡은 것들이 주는 위로가 있다. 주위 풍경들이 바뀌어도 조금씩 헐어가는 몸을 붙들고 견디며 선 것들. 언젠가는 과거형으로 남을 공간이 될까 가끔 이곳 주위를 서성인다. 이 낡고 작은 방 안에 삶을 누이는 이들이 아직 있고, 벽돌 하나, 덧대진 나무판자 하나 그 어느 것 하나 새것이 아닌, 안온함이 좋다. 카페 마뫼 통창으로 이곳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도 있다.
어느 방향을 담아야 하나 이러 걷고 저리 걸었지만, ‘회현 시범’이라는 오래된 글자가 보이는 곳에 섰다. 공포 영화 배경이 되기도 한 내공 탓인가. 새벽 공기가 서린 듯, 차가운 필름 톤과 시범 아파트 분위기가 썩 잘 어울린다.
네 번째 행성, 한양 도성 성벽 길 남산 구간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오르막과 내리막, 서울 전경, 산책 나온 강아지, 곳곳에 놓인 벤치와 땀 식히기 좋은 정자, 좋은 것들로만 가득하다. 성벽 길 밖 도로에는 소품 샵, 카페, 또 영화 ‘메기’ 이주영 배우가 자전거를 타고 집을 구하러 다닐 때 엑스트라로 출연한, 빨간 플라스틱 의자가 놓인 충남 슈퍼도 자리한다. 마음 트이는 높이에 올라 촬영 후, 날씨가 추우면 사진이 더디게 나와 필름을 품에 품고 내려왔다.
다섯 번째 행성, 슬기 분식
가게에 들어서자, 우리 딸도 ‘그거’ 있다며 손에 들린 카메라를 보며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하시는 사장님. 이런 넉살 덕에 유난스러워 보이지 않게 사진을 찍었다. 매운 프랜차이즈 떡볶이보다 달달한 초등학교 분식집 스타일을 좋아해 자주 찾는 곳. 김이 올라 올 때 셔터를 눌러 화염 속에 휩싸인 거 같지만, 겨울이라는 계절 느낌이 잘 드러났다는 합리화를 해본다. 뭐든 입에 넣기 좋아하는 베이비 요다는 밀덕파일까 쌀떡파일까, 잠시 생각했다.
마지막, 광화문 교보문고
술도 파는 광화문 한 카페에서 빨대로 맥주를 쪽쪽 마시고, 마감 시간이 다 된 광화문 교보문고에 가 책 하나를 들고 구석에 앉아 책장을 넘긴다. 아무도 찾지 않는 어떤 책 한 페이지처럼 세계의 변두리에 납작하게 놓인 듯한 기분을 끌어안고. 아무도 모르게 이대로 소멸해도 좋을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겨울나무 가지와 시집은 결핍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타이머 버튼을 두 번 눌러 교보문고 앞 나뭇가지를 첫 번째 장면으로 하고, 그다음은 시집 코너로 뛰어가 셔터를 눌렀다. 이중 노출 기능으로 감성 샷을 찍고 싶었지만, 판단은 고독이 무엇인 줄 아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