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수가 흐르기 시작하는 계절이 오면 가장 먼저 상의가 반팔로 바뀌고, 이제 하의도 반바지로 짧아진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으로 변화를 기다리는 부분, 신발이 남았다. 답답한 우리의 발에 해방감도 주면서 나름 센스 있다는 칭찬까지 듣고 싶다면, 지금부터 다음의 리스트에 집중할 것.
10여 년 전만 해도 패션 리더들의 전유물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거의 국민 쓰레빠급으로 자리매김한 버켄스탁. 그중에서도 밀라노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가장 선호되는 스테디셀러이다. 어떤 샌들을 고를지 몰라 난처한 입문자라면, 가장 무난하게 택할 수 있는 선택지이다. 생긴 것만 봐서는 시원하고 막 신어도 될 것 같지만, 제발 물은 멀리할 것. 코르크 소재 바닥 부분 때문에 물가에 들어갔다 나오거나 비 오는 날 신으면, 쿰쿰한 발 냄새가 후두엽까지 뚫고 올라온다. 똑같이 생긴 카피캣 제품도 많이 나오는데, 내구성 측면에서는 비교가 안 되니 꼭 정품을 구매하도록 하자.
버켄스탁과 비슷한 시기에 유행을 타기 시작해 역시나 국민 신발급으로 치고 올라온 닥터마틴. ‘닥마’ 하면 특유의 고무 밑창과 발목 살 다 파먹는 딱딱한 가죽의 둥글둥글한 구두나 부츠가 떠오르지만, 샌들 라인도 괜찮은 제품이 꽤 있다. 최근 한 방송에서 엑소 카이가 신고 나와 유행을 타고 있는 테리는 로마 전사를 떠올리게 하는 글래디에이터 샌들이다. EVA 소재 아웃솔로 가볍고 푹신한 착화감을 선사하며, 은은한 광택의 가죽 사이사이로 들어간 닥마의 시그니처 노란색 스티치로 심심할 수 있는 디자인에 포인트를 주었다. 4~5cm가량의 키 높이 효과는 덤.
스트랩으로 점철된 샌들은 살과 닿는 면적이 까슬하면 손 안 가기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아이템은 눈으로 봐도 보들보들한 감촉이 느껴져 우천 시를 제외하고는 문신처럼 장착하게 될 듯. 겉감에는 양가죽을 사용해 가죽 특유의 예민하지만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살렸고, 안감도 가죽을 적용해 착용감을 높였다. 발목을 잡아주는 디자인으로 안정적인 착화감까지 투척하니, 격식 차리지 않는 캐주얼한 둥근 앞코 디자인을 찾는다면 추천.
2001년에 걸음을 뗀 브랜드 마르셀(Marsèll).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할 수 있으나 아는 사람은 이미 직구를 통해 이 브랜드를 탐닉하는 중이다. 제품이 이탈리아 베네치아 근처 지역 공방에서 수작업으로 제작되는 만큼 퀄리티에 대한 의구심을 접어도 좋을 거다. 가죽 결이 살아있는 이 제품은 두툼한 고무 밑창으로 찰싹찰싹 지면에 닿는 슬리퍼와는 무게감이 다르다. 더블 스트랩 디자인으로 색깔 있는 양말과 매치하면 착장에 활기를 더할 아이템.
장마라는 한 철이 무색해질 만큼, 우리나라도 시시때때로 열대성 소나기인 스콜 같은 비를 퍼붓는 날씨가 됐다. 마르니 버클 클로저 멀티 스트랩 샌들은 폴리에스터 100% 소재인 만큼 갑작스러운 비를 만났을 때 가죽보다 부담 없이 신을 수 있다는 사실이 심신에 안정을 준다. 다만 안감은 가죽을 써 보드랍게 두 발과 만나는 중이다. 옆면 흰색 로고 패치 디테일은 산뜻한 분위기를 선사하고, 고무 아웃솔로 접지력을 높였다. 다만 찍찍이가 아닌 버클 잠금 형식이라 좌식 식당은 피하고 싶어질 터.
언뜻 보면 샌들을 연상하기 어려운 디자인을 하고 있지만, 보테가 베네타의 이 제품은 분명 샌들이 맞다. 전면이 모두 밀폐된 라운드 토 형태의 슬링백 샌들로, 오히려 복잡한 스트랩이 없어 신기에는 더 편하다. 겉감과 아웃솔은 모두 고무지만, 인솔만큼은 가죽 소재를 사용해 부드러운 착화감을 만드는 세심함도 보여준다. 힐의 높이도 2.5cm로 어느 정도 두께감이 있다.
1988년에 탄생한 캠퍼의 클래식 샌들은 트윈스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있었다. 네이밍이 무색하게 한 쌍의 신발이 서로 다른 컬러 디자인을 가진 샌들이었고, 이 캠퍼 트윈스는 지금도 건재한 모습으로 많은 이에게 사랑받고 있다. 오픈 토 형태의 디자인에 패브릭 소재의 어퍼를 적용했고, 루버 소재의 마감 처리는 결코 저렴해 보이지 않도록 좋은 퀄리티로 뽑아냈다. 하이라이트는 역시 후면 스트랩으로, 좌우 각각 그린과 블루의 다른 컬러를 적용해 독특한 매력을 뽐낸다.
이번 여름의 대세는 뭐니 뭐니 해도 글래디에디터 샌들이다. 사카이의 로프 스트래피 플랫 샌들은 글래디에이터 샌들의 확장판 느낌이 강하게 드는 제품이다. 로프 스트랩이 돋보이는 이 캐주얼한 무드는 넓은 발볼도 좁게 보이게 만들어주는 마법을 지녔다. 게다가 편안하게 오래 신을 수 있도록 평평한 밑창까지 갖추었다.
하지만 이런 화려한 디자인에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터. 사카이는 그를 이미 잘 알고 있는 듯하다. 복잡한 로프 스트랩 구조이지만 블랙 컬러로 출시해 이번 여름 데일리 샌들로서 한 자리 제대로 꿰찰 모양새다. 확실히 여름다운 캐주얼 스타일링이 가능한 사카이 로프 스트래피 플랫 샌들은 한화로 110만 원에 획득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