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인생에도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듯, 사물에도 각각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 주위 조연처럼 머물러 있는 사물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한 사람의 인생을 찬찬히 거스르다 보면, 그를 더 잘 이해하게 되는 법. 사물도 마찬가지다. 탄생 배경과 걸어온 역사를 따라가면 그 사물의 속성과 쓰임이 얼마나 인간의 행보와 밀착되어 있는지 느낄 수 있을 거다. 당신 앞에 놓여있는 사물의 험난한, 혹은 레드카펫만이 놓인 인생사를 읽어주는 시간. 첫 번째 사물은 즉석 사진기, 폴라로이드 카메라다.
찍으면 바로 사진을 뱉어내는 폴라로이드는 스카치테이프, 대일 밴드, 포크레인처럼 브랜드가 곧 그 물건들의 총칭이 되는 아이템 중 하나다. 그만큼 이 물건이 등장했을 때 인화라는 과정, 즉 시간을 스킵시켜주는 성질 때문에 카메라계의 혁명이라 불렸다. 게다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이라는 낭만성까지 배가 되어 여전히 많은 이들은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이 즉석 사진기를 찾는다.
영화 ‘접속’(감독 장윤현)에서도 동현(한석규)과 수현(전도연)이 폴라로이드에 대해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오래 기다리지 않아 좋고, 늘 약간 흐릿해서 좋고, 쉽게 구겨지지 않아 좋고, 한 장밖에 없어 좋다고.
3살 딸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좋은 것 천지인 이 흥미로운 물건을 처음 만든 이는 바로 에드윈 H. 랜드(Edwin H.Land). 카메라 사업에 뛰어들기 전 그는 1937년 물리학자 조지 휠라이트와 빛의 산란을 줄여주는 편광기술을 적용한 제품을 만드는 회사로 걸음을 뗐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군사용 편광 렌즈, 편광 고글 등 편광 필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었고, 그는 즉석카메라로 시선을 돌려 연구를 시작한다. 이 폴라로이드 탄생에 불을 지핀 건 바로 그의 부성이었다.
1943년 에드윈 랜드는 가족과 뉴멕시코로 여행을 떠났다. 3살짜리 딸은 그에게 발상의 전환을 꾀하는 질문을 던진다. 사진을 찍은 후 왜 바로 확인할 수 없는지 말이다. 아빠를 시대의 한 페이지에 장식시키려는 딸의 큰 그림이었을까. 이 질문이 발단이 되어 에드윈 랜드는 본격적으로 즉석카메라 개발에 매진한다.
마침내 1947년 2월 21일 미국 광학 협회 회의에서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아도 알아서 필름 인화지가 빛에 노출되고 즉석에서 현상되는 프로세스를 발표, 공개 시연회를 가졌다. 촬영 후 1분 이내에 사진이 완성되어 인화까지 소요되는 이틀이 순삭되는 순간이었다.
1948년 11월 26일, 최초의 즉석카메라가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있는 조던 마쉬(Jordan Marsh) 백화점에 모습을 드러냈다. 가격은 89.95달러. 약 60대의 제품은 첫날, 완판되었다. 이는 폴라로이드 랜드 카메라의 프로토타입이 되는 ‘모델 95’다. 이후 1960년대 폴라로이드 모델은 수십 가지에 달했다. 1978년에는 직원이 2만 명을 넘었고, 1994년 매출은 무려 23억1천 달러를 찍었다.
대표 모델
앞서 언급한 모델 95 랜드 카메라를 필두로 1963년에는 컬러 필름을 선보이며 세계 최초 전자 셔터식 AE카메라 폴라로이드 ‘오토매틱100’을 출시했다. 1965년에는 대중을 위한 ‘모델 20 스윙거(Swinger 20)’를 내놨는데 세련되고 가격까지 착한 제품이었다.
그리고 아마 많은 이들이 익히 알고 있을 ‘SX-70’이 1972년 등장했다. ‘오겡끼데쓰까’, 죽은 연인에게 닿을 수 없는 안부를 묻던 영화 ‘러브레터’로 유명세를 치른 이 제품은 접는 방식의 폴라로이드로 일안반사식 SLR 카메라다. 아이폰이 좋아하는 ‘혁신’이라는 단어와 맞물려 있는 모델이다.
기존 즉석 필름은 사진을 찍은 후 사용자가 직접 필름을 뽑아내고 인화지 위의 필름을 떼야 했다. 한마디로 손 많이 가는 스타일. 하지만 하나의 시트에 네거티브와 포지티브의 인화지를 결합해 편의성을 높였다. SX-70 단종 전까지 판매된 양은 약 70만대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또한, 초기 인스타그램 아이콘 모양으로 사용된 1977년 나온 저가형 카메라 ‘원스텝(OneStep)’도 있다.
기술은 걸음을 재촉했고, 폴라로이드는 시대의 손을 놓쳤다
동종 업계에서 돈 되는 사업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폴라로이드에 필름을 공급하던 코닥이 기회를 엿봤다. 1976년 즉석 사진기 사업에 뛰어든 코닥은 일주일 만에 폴라로이드에게 목덜미를 잡혀 소송에 휘말렸다. 그리고 10년 동안의 지난한 공방이 있은 후, 코닥은 1조 원에 이르는 배상금을 물게 되었고 1986년 사업을 완전히 정리했다. 이런 상황들로 비춰봤을 때 이 구역의 즉석카메라는 폴라로이드뿐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이 덫이었다. 시대는 변하고, 기술은 발전한다. 그들은 카메라 세대교체에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1981년 소니는 상용화된 최초 디지털카메라 ‘마비카(MAVICA)’를 내놨고, 1988년 후지필름은 촬영과 저장까지 가능한 풀 디지털카메라인 ‘DS-1P’를 출시해 버렸다. 폴라로이드사도 1990년대에 디지털카메라 만들기에 부랴부랴 합류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결국 폴라로이드사는 2001년 파산신청을 하고 2005년 피터스그룹월드와이드(Petters Group Worldwide)로 안주인이 바뀌었다. 하지만 피터스그룹 창업자와 경영진들이 34억 달러어치의 거대한 피라미드 다단계 판을 벌여 감옥행 특급열차에 탑승, 2008년 또다시 쓰라린 상처를 안고 파산 신청을 했다. 폴라로이드 한국 지사도 2008년 1월 철수하게 된다.
회사가 이렇게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면, 구매자들 마음 초조해지기 마련이다. 파산 신청 전인 2006년, 일찍이 카메라 생산 중단 선언을 했었고, 카메라야 곁에 두면 치명적인 타격을 입지 않는 이상 쭉 같이 가는 물건이니 신상 못 만나는 아쉬움 달래며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2008년 필름 생산 공장 가동을 멈추기로 한 폴라로이드의 결정은 유저들에게 충격이었다. 사양에 맞는 필름이 없으면 카메라는 무용지물 아닌가. 사람들은 자신의 카메라가 영영 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을까 봐 수천 달러에 이르는 필름을 사재기하는 해프닝이 일었다.
이대로 죽을 순 없으니까
하지만 인생,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죽으라는 법은 없었다. 폴라로이드 필름 부활을 알릴 플로리안 캡스(Florian Kaps)가 나타났다. 1999년 로모그래피에 입사해 일했던 그는 마지막 남은 네덜란드 엔스헤데에 자리한 폴라로이드 필름 공장을 인수했다. 2008년 6월 14일 폐쇄를 앞두고 있었던 공장을 말이다. 18만 유로를 어렵사리 모아 장비를 사들이고, 기술 담당 안드레 보스만(AndrBosman)과 힘을 모아 기름칠을 시작했다. ‘임파서블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본사는 필름 제작의 핵심기술을 쉽게 내줄리 없었다. 기술자들은 310만 달러를 들여 새로운 필름 용지와 화학품을 만들어 냈다. 물론 처음에는 필름의 질이 떨어졌다. 테일러 스위프트 ‘1989’ 커버 사진이 바로 임파서블 프로젝트 필름으로 찍은 것이다. 문제점은 점차 개선해 나갔다. 이렇게 영원히 잠들어 있을 줄 알았던 해묵은 카메라에 숨이 불어 넣어지게 됐다.
이 지난한 과장을 거쳐 임파서블 프로젝트 대주주가 폴라로이드의 상표권과 지식재산권을 완전히 인수하게 되면서 임파서블 프로젝트의 필름은 ‘폴라로이드 오리지널스’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발매되었다. 임파서블(불가능)해 보였던 프로젝트가 파서블(가능)이 된 순간이다. 폴라로이드 오리지널스는 2017년, 폴라로이드 80주년을 기념해 ‘원스텝 2’를 출시 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 공식 수입처는 ‘두릭스’다.
뭐라 해도 현재 즉석카메라 시장의 대세는 후지필름이다. 1998년 후지필름에서 인스탁스라는 브랜드를 내놨는데, 인스탁스 시리즈는 젊은 층을 공략하는 트렌디한 디자인과 필름 규격이 통일되어 있다는 편의성이 매우 강점이다. 폴라로이드처럼 하루아침에 없어질 일도 없으니 자연스레 따라오는 정신적 안도감은 덤이다.
빨간 딱지로 유명한 라이카에서도 라이카 소포트를 내놨고 로모그래피도 폴라로이드 시장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펀딩 사이트에서도 심심치 않게 폴라로이드 사진기를 만나볼 수 있는데 이는 즉석카메라가 많은 이들의 가슴 속에 펄떡이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 하기 충분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당신의 손에서 순간이 영원으로 기억될 때
예술계 인사들도 이런 폴라로이드의 매력을 모를 리 없었다. 특히 앤디 워홀의 폴라로이드 사랑은 유명하다. 그는 SX-70 모델을 애용했는데, 모나코 공주 캐롤라인, 실베스터 스탤론, 제인 폰다, 돌리 파튼 등 여러 유명 인사들을 찍은 바 있다. 아울러 그의 얼굴이 담긴 ‘자화상-찡그린 얼굴’ 사진은 14만 6,500달러에 팔리기도.
또한 데이비드 호크니도 1981년부터 1983년까지, 여러 장의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은 후 이를 이어 붙여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실험적인 포토 콜라주 작품을 약 150점 제작해 매력적인 작업을 선보였다.
Photo Credit: Richard Schmidt
영원할 것 같은 사랑 앞에 이별이 당도하듯,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듯, 즉석카메라로 시대를 뒤흔들었던 폴라로이드 사는 이제 그 찬란했던 빛은 잃었다. 하지만 이 카메라가 주는 의미는 결코 증발하지 않을 거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래서 더욱 귀한, 눈앞의 순간을 바로 손에 쥐여주는 낭만성은 시대를 초월한 인류 보편의 정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