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를 사랑하는 사람도 뿌리기 전 잠시 멈칫하게 되는 때가 바로 장마철. 매일 아침 오늘 뿌릴 향수를 고민하는 즐거움에 제동이 걸리는 때다. 비가 오면 대기 중 수증기 농도가 높아지면서 공기 밀도도 함께 증가한다. 이로 인해 향기 분자의 확산 속도가 느려져 향이 공기 중에 오래 머무르게 된다. 잘못된 향 선택은 밀폐된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장시간 후각적 테러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뜻. 하루 종일 비가 내리는 장마철에는 특히 향수 선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향은 파우더리한 느낌보다는 상쾌하고 산뜻한 향을 고르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하지만 향료의 배합, 체취와의 조화 등이 색다른 결과를 만들지도 모르니 구매 전 미리 시향을 해보는 것이 베스트.
향수를 뿌리는 방법에도 변화를 주자. 30cm 정도의 거리에서 온몸에 도포하듯이 뿌리는 방식을 즐겼다면,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 옮기는 거다. 상의 끝단, 하체 등 코로부터 먼 곳에서 은은히 향이 풍기도록 분사하고 횟수도 1~2회 정도가 적당하다. 지속력이 약한 향수라면 모두 증발했을 때 추가적으로 뿌려주도록.
이제 막 시작된 장마철, 그럼에도 향기는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을 위해 준비한 비 올 때 뿌리기 좋은 향수 추천 리스트다.
장마철 향수 추천 7

작년에 새롭게 출시된 이솝 비레레. 비 오는 날 안개 낀 숲속의 차분한 무드를 선사해 줄 향수다. 지중해에서 보낸 휴가의 추억을 담아냈다는 조향사의 기억 한 조각이 똑 떨어진 듯한 느낌. 초록의 싱그러운 녹차, 베르가못 향 사이로 무화과의 풋풋한 내음이 감도는데 달콤한 과일 향이 아닌 무화과 줄기와 잎의 청량감이 꿉꿉한 기분을 날려 보낸다. 청량한 공기, 흙냄새를 맡으며 천천히 무화과나무 곁을 스치는 기분을 느껴 보시길. 잠뿌용으로도 좋다.

향친자들이 비와 어울리는 향수로 가장 많이 꼽는 아이템이 바로 롬브로단로다. 흡사 흠뻑 비를 맞은 장미 정원에 선 느낌. 하지만 파우더리한 장미향은 아니라 쌉쌀한 향이 싱그럽다. 처음 뿌렸을 때는 블랙커런트와 토마토 꼭지에서 나는 향이 올라오며 잠시 후 섬세한 장미향이 천천히 감돈다. 마무리는 은은한 머스크향이 남는데 과하지 않아 장미향을 더욱 부드럽게 느껴지도록 한다. 남자들도 사랑해 마지않는 브랜드 베스트 셀러. 비 온 뒤 더욱 진하게 올라오는 풀과 장미, 자연의 향기 그 자체다.

상큼한 시작으로 포문을 연다. 시트러스한 레몬, 베르가못과 향기롭고 따뜻한 머틀, 바질 등 허브향이 어우러진 조합이다. 하지만 이내 탑 노트는 사라지고 허브 향과 드라이한 우디 베이스가 어우러진 옅은 꽃향기가 남는다. 바닷바람의 짭짤한 향기도 살짝 느껴진다. 극적이진 않지만 꿉꿉한 날 깨끗하고, 편안하게 사용하기 좋은 향수로 지중해의 정수를 느껴보자.

숲속에 이낀 낀 나무향을 생각하면 리켄 데코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비가 와 촉촉이 젖은 땅에서 올라오는 풀내음을 잔뜩 머금은 브랜드 시그니처 향이다. 알코올이 아닌 워터베이스라 한여름에 뿌렸을 때 땀 냄새와 향이 붕 뜨지 않고 체취와 잘 어우러진다. 비 오는 날 함께 하기에도 제격. 해바라기씨 오일 성분으로 착향 시 피부 자극이 없고 발향성도 좋다. 헤어 미스트, 바디 미스트 겸용으로도 사용 가능하니 어쩌면 가성비 아이템.

톡 쏘는 베르가못 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레몬 향이 시트러스하게 올라온다. 상큼하고 적당히 달콤한 무드가 기분 좋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기분. 탑 노트가 서서히 걷히면서 부드러운 목련향이 우아하게 등장한다. 이는 화려하고 강렬한 무드가 아닌 시트러스한 레몬 향을 품은 꽃향기로 건조하고 시원한 나무 이끼 뉘앙스의 베티버 향이 올라오는 것이 특징이다. 남성들이 산뜻하게 쓰기에도 좋은 이유. 프렌치 러버가 봄비, 가을비에 어울린다면 매그놀리아는 확신의 여름 비뿌 향수로 추천한다.

풀 내음에서 시작해 비누향으로 마무리되어 여성들도 선호하는 제품이다. 깨끗한 느낌의 향수로 사무실처럼 자극적인 향을 최소화해야 하는 환경에도 잘 어울린다. 첫 향은 플로럴 노트와 생강이 어우러져 생동감이 넘치고, 그다음 흙냄새 없는 깔끔한 베티버 향이 풋풋함과 신선함을 더한다. 마무리는 은은한 비누향이 깔끔한 인상을 준다. 첫 향에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편안하고 친근한 이 향은 결국 사랑할 수밖에 없을 듯.

우아하고 세련된 에르메스 운 자르뎅 수르닐. 넓은 잔디밭을 떠오르게 하는 청량한 첫 느낌이 스치고 전형적인 과일향이 아닌 갓 수확한 듯한 향긋하고 푸른 망고, 자몽 향기가 피어오른다. 아울러 스파이시한 노트와 함께 토마토, 당근 등 야채 주스가 생각나는 일반적인 프루티한 향수가 아닌 유니크한 매력이 넘친다. 그다음 향은 조향사가 나일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언급했듯 수생 식물을 떠올리게 하며 우디한 잔향으로 마무리된다. 여자 향수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남자가 뿌렸을 때 또 다른 아우라를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