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2024 서울국제불교박람회를 방문했다. 오해할까 봐 미리 말해두자면 필자는 무교다. 그러면 거길 뭐 하러 갔냐고?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인기란다. 종교가 패션도 아니고, 어떻게 불교가 유행할 수가 있다는 건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더라. 그리고 불교박람회장에 입장도 하기 전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 출구를 나오자마자 구름 같은 인파가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이 펼쳐졌기 때문. 아, 유행 맞네.
이 글을 통해 특정 종교를 지지하려는 의도는 티끌만큼도 없다. 분명한 사실은 MZ 세대 사이에서 불교가 화제의 중심이라는 것. 믿기 어렵겠지만 진짜다. 불교는 어쩌다 힙한 종교가 됐을까?
MZ의 레이더망에 들어온 불교
너, 내 종교가 돼라
불교에 대한 MZ 세대의 관심은 반짝이 아닌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르신의 종교라는 이미지가 강했는데 말이다. 그들이 다른 종교가 아닌 불교에 눈독을 들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상처를 치료해 줄 교리 어디 없나
육체적 건강만큼이나 정신건강이 큰 이슈인 시대. 과도한 학업과 업무로 스트레스는 끝없이 쌓이고, SNS 속 삐까뻔쩍한 삶과의 비교로 자존감은 바닥을 친다. 이제는 번아웃이라는 말이 친숙해질 지경. 인식의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고는 해도, 정신적인 이유로 병원을 찾는 건 여전히 쉽지 않은 일이다. 해결은 못할지언정 해소라도 하고 싶은 근심 가득한 젊은 세대에게는 해우소가 절실했다.
불교는 ‘마음의 평안’이라는 키워드에 적합한 종교다. 그도 그럴 것이 중생에게 행복을 베풀며 고뇌를 제거해 주는 ‘자비’가 핵심 교리니까.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힐링 콘텐츠로 꼽히는 템플스테이, 명상, 다도가 그 위세에 한몫을 더했다. 수많은 2030이 자발적으로 절에 찾아가 자연을 느끼고, 사찰음식을 먹고, 미디어와 거리를 두며 적극적으로 자신의 마음을 돌보고 있다.
‘나’를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세대
언젠가 한 개그맨이 ‘당시에는 화났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럴 수 있겠다’고 말한 일화가 있다. 다 같이 설렁탕 먹으러 가는 길에 누군가 자기는 돈가스가 먹고 싶다며 혼자 먹으러 간 일이었다. 이 세대의 개인주의는 자신의 득을 위해 물불 안 가리는 게 아닌, 자기 자신을 중심에 세우는 것이다. 분명한 호불호가 있다는 뜻. 사회성이 떨어져서 혼자이길 바라는 게 아니다. 나의 행복을 뭉그러뜨리면서까지 집단과 단체에 속해 있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할 뿐.
불교의 진리는 거대 담론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집중한다. 부처의 마지막 가르침인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아 진리에 의지하라)만 보아도 그렇다. 그 아래서 우리는 모두 한 명 한 명의 부처다. 자기 자신의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인정하고 응원하는 불교의 말씀은, 나 자신이 무엇보다 중요한 MZ 세대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시대의 부름에 응답하다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다. 힐링 한 번 하고 끝낼 일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성행하지는 않았을 터. 극락도 락(樂), 번뇌멈춰, 깨닫다 등 인터넷 밈으로까지 번지는 상황 속에서, 불교는 불편한 기색 하나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MZ 세대에게 친숙하게 다가갈 기회로 삼고, 다채롭고 공격적인 기획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뉴진스님으로 하나 된 불교박람회
올해 불교박람회의 캐치프레이즈였던 ‘재밌는 불교’는 겉치레가 아니었다. SNS를 뜨겁게 달군 ‘뉴진스님’만 봐도 그렇다. 이는 실제 불자인 개그맨 윤성호의 부캐로, 스님 복장으로 불교 음악 디제잉을 한다. 불경 리믹스에 “이 또한 지나가리 이 또한 지나가”를 외치는 모습은 저세상 힙 그 자체. 5월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연등놀이 행사에서 다시 한번 무대에 오른다고 하니, 궁금하다면 방문해서 직접 부처핸접 하고 오자.
이게 끝이 아니다. 불교박람회는 풀소유 욕구를 자극하는 굿즈와 미술품의 향연이었다. 대표적으로 여진 작가의 티셔츠는 화제의 중심. ‘깨닫다!’, ‘묵언중’, ‘중생아 사랑해’ 등 MZ 감성이 제대로 느껴지는 문구를 담아낸 이 굿즈는 힙스터의 이목을 끌며 순식간에 품절됐다. 그 외에도 스님의 밀크티 스밀스밀, 토우랑의 자빠진 쥐, 서린 작가의 초콜릿붓다, 스튜디오하심의 Be a buddha 시리즈 등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 법한 종교라는 키워드를 신선하게 풀어낸 제품과 작품이 방문객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
난 소개팅하고 싶을 때 절로 가
매 기수 세간의 관심을 받는 나는 솔로의 불교 버전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절에서 이루어지는 간질간질한 만남, 일명 ‘나는 절로’는 벌써 3회차까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불과 얼마 전에 성사된 3회차 행사는 30대 미혼남녀 각 10명씩을 선발했다. 신청자는 남성 147명, 여성 190명으로 무려 15대 1, 19대 1에 달하는 박 터지는 경쟁률. 네 쌍의 커플이 탄생했다고 하니, 거진 절반이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난 셈이다.
나는 절로는 원작이 그렇듯 이름도, 직업도 밝히지 않는다. 모두가 법복을 입고 절을 거닐며 천천히 서로를 알아간다. 일상과 분리된 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이성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큰 메리트. 이를 기획한 데는 우리나라에 닥친 인구 감소 문제를 도움이 될 수 있게끔 적극적으로 나선 면모도 있다. 대의명분과 이슈 몰이를 모두 챙긴 성공적인 콘텐츠라고 할 수 있겠다. 관심이 있는 솔로라면 내년을 기약해 보자. 내년에도 없을 거라는 말은 아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템플스테이를?
템플스테이, 관심도 있고 해볼 의향도 있지만 멀리 갈 엄두가 안 난다면 이곳이다. 게스트하우스와 템플스테이를 결합한 ‘홍대선원 저스트비’는 이름 그대로 홍대에 있다. 역에서 도보 5분이니 접근성 하나는 최고. 물론 가까운 게 전부는 아니다. 홍대선원은 종교적 공간이라기보다 수행의 공간을 표방한다. 그래서인지 명상, 채식, 요가, 환경 등 불교 관련 문화를 향유하는 세계 각지 사람들이 방문한다고.
이곳에서는 전통 불교 수행과 더불어 명상 댄스나 드로잉, 요가, 태극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매일 진행된다. 티텐더가 내려주는 차를 마시며 스님과 차담을 나누다 보면 어느덧 속세의 근심은 눈 녹듯 사라진다. 종교적인 색채를 덜어내고 재미와 위로가 있는 ‘글로벌 수행 놀이터’를 추구하는 공간이니 만큼, 불교 찍먹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여기만 한 곳이 없다.
종교라기보다 하나의 문화로
불자가 아니어도 좋을 순 있잖아요
여기서 확실히 해야 할 건 MZ 세대가 불교에 관심이 있다는 거지, 머리 깎고 절로 들어가고 있다는 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에게 있어 불교는, 신앙심을 가져야 할 종교보다는 라이프스타일의 일종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불며들었다
사실 불교가 하나의 종교를 지칭하는 단어기 때문에 거창하게 느껴질 뿐, 관련된 생활 양식은 우리에게 낯설지만은 않다. ‘효리네 민박’에서는 이효리가 요가를 하고, ‘나 혼자 산다’에서는 화사가 싱잉볼로 명상을 한다. 불교 유치원 출신의 아이돌끼리 친목하는 모습을 보면 대체 불교 유치원이 뭔지 궁금해진다. 인지하지 못했을 뿐, 시식 코너처럼 맛 보고 가라는 제안은 미디어 속에서 끊임없이 있어 왔다.
포인트는 직접적으로 포교 목적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 강요한다는 생각이 들면 되려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게 요즘 사람들이다. 불교박람회 방문객 중 다수가 SNS 속 힙한 불교의 면모에 흥미를 느껴 찾아왔다고 한다. 아무래도 미디어와 밀접한 MZ인 만큼 그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진정으로 좋아서 스스로 찾아오기까지를 기다린 불교의 인내에 박수를 드린다.
비건 트렌드도 불교가 앞장선다
채식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수요가 증가세를 그리는 건 분명한 사실. 그 주축에는 윤리적 실천을 중시하는 MZ 세대가 있다. 그리고 채식하면 가장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게 바로 사찰음식 아니겠는가. 요즘은 절에서 벗어나 사찰음식점 또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조계사에서 운영하는 발우공양은 미슐랭 1스타로 선정되기도 했다고.
불교 음식의 변신은 무죄. 한국 불교계에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화엄사에서 비건 버거 출시를 앞두고 있다. 공개적으로 진행한 시식회에서 먼저 맛을 본 사람들의 표정 또한 밝아 보였다. 햄버거 참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참 반가운 소식이네.
불교 용품 추천 6
지금은 대 굿즈 시대. 불교에서도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다채로운 아이템이 쏟아지고 있다. 불교의 세상 힙한 굿즈들이 수많은 MZ의 발길을 이끌어 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진짜 스님 픽 아이템부터 SNS를 뜨겁게 달군 굿즈까지, 풀소유 하게끔 만드는 다양한 추천 제품을 꾸려 왔다.
불교 굿즈 사상 가장 성공한 아이템이 아닐까? BTS RM의 작업실 책상에 놓여 있던 바로 그 불상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대표 유물 반가사유상을 내 방에 들일 기회. 반가사유상 78호와 83호 두 버전이 있다. 78호는 장신구와 날개옷 등 화려한 디테일이 특징이고, 83호는 간결하고 부드러운 선이 유려하다. 색상도 다양하게 있어서 여러 색상을 함께 두면 그 멋이 두세 배가 된다.
스님이 승복을 선택하는 기준은 뭘까? 당연히 디자인보다는 기능성이겠다. 엔티콜드는 진짜 스님이 입는 브랜드다. 부드럽게 닿는 촉감에 한 번, 에어리즘 저리 가라 할 냉감에 또 한 번 감동. 세탁 후 금방 마르고, 다림질도 필요 없어 편의성까지 잡았다. 제일 중요한 건 일반인이 입어도 부담스럽지 않을 디자인이다. 사람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불교박람회에서 어마어마한 인파를 불러 모으며 품절 사태를 일으킨 주인공.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나를 바라보는 듯한 깜찍한 비주얼이 인상적이다. 별매품인 연잎 접시는 선택 아닌 필수. 안 그래도 귀여운 이 친구에게 한층 더 완성도 높은 귀여움을 더해준다.
싱잉볼 하면 떠오르는 놋그릇 같은 모델은 보이는 곳에 두기에는 조금 애매한 비주얼이다. 하지만 인테리어 소품으로 활용해도 될 만큼 아리따운 싱잉볼도 있다는 사실. 물론 싱잉볼은 자신에게 맞는 소리를 내는 제품을 찾는 게 가장 중요하니, 오프라인 매장에 방문해 직접 들어보고 구매하기를 추천한다.
일반적으로 루드락샤 씨앗을 칭하는 루드락샤로 만든 염주 팔찌. 독특한 표면 형태를 가지고 있어 염주의 느낌보다는 액세서리에 가까워 보인다. 전부 루드락샤로 이루어진 모델도 있지만, 원석이 포인트로 들어간 이 모델이 조금 더 영롱하달까.
지는 해를 한 폭에 담아낸 포스터. 고려 불화에 표현된 상징적 이미지인 도상을 소재로 제작되었다. 보살의 청정한 마음에 대한 비유로 사용되었던 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까지 깨끗해지는 기분이다. 방 한편에 걸어두고 마음이 탁해질 때 차분하게 바라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