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셔리 자동차 브랜드가 건축의 꿈을 꾸고 있다. 자동차가 이동 수단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경험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서다. 자동차 브랜드는 자신의 이미지와 철학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건축이라는 매개체를 선택했다. 자동차 브랜드는 건축과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벤틀리 레지던스
벤틀리가 마이애미에 짓는 63층 건물
61층에 749피트 높이, 200세대에 이르는 규모. 2026년 벤틀리 레지던스가 완공된다. 위치는 마이애미 서니아일랜드 비치. 전면 통유리창으로 마이애미 해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각 세대에는 벤틀리 컨티넨탈 및 플라잉 스퍼를 수용할 수 있는 개인 차고가 있다. 차는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차고로 들어간다. 차고라기 보다는 갤러리란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둥근 유리 벽으로 둘러싸인 차고는 거실에서 차를 감상할 수 있게 만든 구조. 최대 4대까지 주차 가능하며, 전기차 충전 설비도 갖췄다. 건설은 부동산 개발업체 덴저 디벨롭먼트와 지거 수아레즈 아키텍츠가 맡았다.
벤틀리가 자동차와 건축을 접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두 분야 모두 예술 표현을 지향한다는 데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자동차와 건축은 서로 동떨어진 분야 같지만, 그 근본은 삶의 공간을 다루는 예술 영역에 놓여있기 때문. 럭셔리 자동차 브랜드는 자동차가 물리적 공간을 통해 라이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예술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부가티 레지던스 바이 빈가티
프렌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
부가티 또한 건축과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두바이 비즈니스 베이에 들어선 부가티 레지던스가 바로 그것. 두바이의 건축업체이자 부동산 개발업체인 빈가티와 협업했다.
부가티 레지던스의 중심 또한 자동차 전용 엘리베이터다. 차고에는 세대당 최대 2대의 자동차를 세울 수 있고, 집 전체 어디서나 도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발코니가 있다. 부가티 레지던스는 프랑스 남부 휴양지 리비에라의 콘셉트를 지향한다. 지중해와 맞닿고 있는 고급 휴양지다.
그렇다면 부가티와 빈가티 두 브랜드의 공감을 이끌었던 건 무엇일까. 이들은 답한다. “리비에라만이 가진 독특한 감각을 레지던스에 통합하고 싶었다”고. 이를 통해 “프렌치 리비에라에서 불어오는 산들바람의 느낌을 두바이에서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부가티가 프렌치 럭셔리를 재현한 것처럼, 부가티 레지던스는 프랑스의 고급 라이프스타일이 두바이에 펼쳐진 것과 같다.
BMW 본사
건물로 혁신을 말하다
독일 뮌헨에 있는 BMW 본사는 자동차 브랜드의 건축적 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으로 뮌헨의 상징이 된 이 건물은 혁신적인 기술과 감각이 브랜드 이미지를 새롭게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본사를 짓기 전 BMW의 사무 공간과 생산 시설은 독일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하지만 점차 브랜드가 성장하며 원활한 워크 플로우 공간이 필요했던 것. 그 결과 브랜드 이미지를 반영하고, 오피스와 생산 공장, 주변 도로, 뮌헨 하계 올림픽 시설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BMW 테마파크가 조성됐다.
공모를 받아 선택된 건 건축가 칼 슈반저의 디자인. BMW의 4기통 엔진을 건축물로 표현했다. 건물은 아래에서 위로 짓는 대신, 100m 높이에 달하는 꼭대기 층을 먼저 완성해 지붕 위 십자형 강철 구조에 매달리도록 했다. 22층을 먼저 세우고 수압을 이용해 각 층을 위로 끌어올렸다는 말이다. 건축은 BMW의 혁신과 진보적인 기술력을 전달하는 매개체였다.
롤스로이스 프라이빗 오피스
자동차와 라이프스타일
롤스로이스는 뉴욕에 프라이빗 오피스를 오픈했다. 두바이, 상하이에 이은 전 세계 세 번째 지점이다. 롤스로이스 오피스가 뉴욕에 생긴 것은 당연한 일. 북미는 지난 20년 동안 롤스로이스의 가장 큰 시장이었으며, 최근 몇 년 간 맞춤형 주문(비스포크)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프라이빗 오피스의 위치는 맨해튼에서 가장 트렌디한 미트 패킹 지구. 디자인은 영국 굿우드 롤스로이스의 본사를 방문하는 느낌으로 재현했다. 프라이빗 오피스에는 디자이너와 고객 경험 전문가가 상주한다.
점점 복잡해지는 맞춤 제작에 따라 롤스로이스의 디자인 및 기술, 장인정신에 대한 욕구를 구현한 건물이 필요했을 터. 이곳에서 고객은 가죽과 직물, 페인트 마감재 등을 직접 고르며, 비스포크 차량이 손수 제작되는 과정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다. 건축이 자동차 브랜드의 표현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
자동차로 만나는 K-문화
2021년 11월 개관한 제네시스 하우스 뉴욕은 관광 명소가 됐다. 이곳에서 자주 들리는 말은 영어 게스트(Guest)가 아닌 손님. 집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처럼 한국 라이프스타일을 전달하기 위함이다.
1층은 제네시스 및 콘셉트 카 전시 공간, 2층에는 티 파빌리온, 라이브러리, 제네시스 하우스 레스토랑 등 한국 정서와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실내는 한국 전통 가옥의 기와지붕을 재해석해 다듬었다. 창밖으로는 허드슨강 건너편 저지시티의 스카이라인이 펼쳐진다.
제네시스 하우스는 뉴욕에서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탐구한다. 과거 고가 철도를 공원으로 조성한 하이라인, 휘트니 미술관이 인접한 지역에서, 자동차와 건축이 사회 역사적 배경을 어떻게 재해석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건물만 보면 제네시스가 쉽게 연상되진 않는다. 하지만 1층 자동차 전시 공간을 둘러본 후 2층으로 올라가면 그 정갈하고 우아한 분위기가 어딘가 비슷해 보이기도 한다. 내부의 기와지붕 디자인에서 제네시스 라디에이터 그릴이 떠오른 건 지나친 해석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