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명작 게임이 리메이크된다는 것은 게이머에게도, 제작사에게도 양날의 검이다. 게임의 퀄리티에 따라 팬들의 추억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제작사는 찬사 혹은 악평을 듣게 된다. ‘랑그릿사’로 예를 들자면 과도한 DLC 장사를 예고하며 발매 전부터 험한 소리를 듣고 있으니 말이다. 반면 비공식이긴 하지만 하프 라이프(Half Life)의 리메이크, 블랙 메사(Black Mesa)는 큰 호평을 받았다.
‘바이오 하자드 2’가 ‘바이오하자드 RE : 2’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 출시 소식이 발표되었을 때, 필자는 반신반의했다. 제작사인 캡콤은 이미 바이오 하자드1의 리메이크, ‘리버스’로 엄청난 호평을 받은 적이 있지만, 그때의 평가가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 결론부터 말하겠다. 잠시나마 의심해서 미안하다, 캡콤. 당신들이 원작 팬들에게 보내는 찬사는 너무나도 황홀했다.
PS1 시절에 손꼽히는 명작, 바이오 하자드 2
본격적으로 게임 리뷰에 들어가기 전, 먼저 원작부터 살펴보자. 1998년 발매된 ‘바이오 하자드 2’는 1편 사건 이후, 몇 개월 뒤 라쿤 시티를 다루고 있다. 만악의 근원인 엄브렐러사의 바이러스가 모종의 사건을 통해 유출되어 좀비가 들끓는 생지옥이 되어버린 라쿤 시티. 하루아침에 지옥으로 변한 그곳에서 신임 경찰인 ‘레온 S. 케네디’와 오빠를 찾아 라쿤 시티에 방문한 ‘클레어 레드필드’가 탈출을 감행한다.
캐릭터 진행 순서와 행동 종류에 따라 다른 캐릭터에게 영향을 끼치는 ‘재핑 시스템’과 더욱 커진 스케일 덕분에 혹자는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 최고의 명작으로 뽑기도 한다. 만약 이 게임이 졸작으로 리메이크된다면, 팬들은 폭동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다.
이곳 이상의 지옥은 없다.
만약 당신이 좀비들이 들끓는 도시의 한가운데 있다면 어떨까. 어떤 이는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바리케이드라도 설치하겠고, 다른 사람은 그저 절망하며 죽음을 기다릴 수도 있다. 제작진은 이런 상황을 매우 강렬하게, 때로는 담담하게 플레이어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연출해 냈다. 게임의 주 무대인 경찰서는 물론, 잠시 지나치게 되는 라쿤 시티의 전경에도 생존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런 디테일이 지금 있는 라쿤 시티의 상황을 뼈저리게 느껴지도록 한다. 21년 만에 다시 찾게 된 라쿤 시티는 원작보다 더한 지옥이 되었다. 상황만으로도 충분히, 절망감을 느낄 수 있도록.
이건 미친 짓이야, 나는 여기서 빠져나가야겠어.
주인공인 레온과 클레어, 어느 캐릭터를 골라도 상황은 심각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좀비를 위시한 B.O.W(Bio Organic Weapon, 생체 병기)는 원작보다 더욱 단단해져 쉽사리 쓰러지지 않는다. 크리쳐들의 약점만 골라 사격을 가해도 당신이 가진 탄환은 턱없이 부족하다. 악랄한 제작진은 1편의 리메이크인 ‘리버스’와 3편의 요소를 매우 효율적인 방법으로 다시 채용했다. 머리를 터뜨리지 않으면 다시 살아나는 좀비, 일정 시점 이후 플레이어를 뒤쫓아 오는 ‘그것’. 이런 요소들이 맵 디자인과 맞물려 플레이어를 절망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다.
적들은 쓰러뜨려도 결국 다시 살아나고, 판자로 막아놓지 않은 창문을 통해 끊임없이 기어들어 온다. 하지만 내가 가진 총알은 너무나도 부족하다. 그리고 결국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서 살아나가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적들은 쓰러뜨려도 결국 다시 살아나고, 판자로 막아놓지 않은 창문을 통해 끊임없이 기어들어 온다.
어떻게든 간신히 게임을 진행해도 ‘그것’이 나오는 순간, 당신은 패닉에 빠지게 된다. 어떠한 공격도 잠시 멈추게만 할 뿐, 당신의 목을 비틀어버리기 위해 묵묵히 다가오는 ‘그것’은 소리만으로도 플레이어를 위축시킨다. 간신히 따돌려도 아련히 들려오는 발소리에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 사냥감이 되었다는 긴장감, ‘그것’을 피해 도망쳐도 앞길을 막아서는 크리쳐들. 이건 미쳤다.
제작진들이 사실 악마가 아닐까.
이 참상에서 살아서 탈출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넘어야 할 난관이 너무나 많다. 주인공을 저녁 식사로 삼고자 하는 끈질긴 크리쳐와 부족한 물자, 이런 상황을 역이용하는 악랄하면서도 치밀한 맵 디자인. 바이오 하자드 4편부터 6편까지의 액션을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임하면 화면에 표시되는 유다희 양(You Are Dead)을 자주 영접하게 될 것이다.
보이는 적을 모조리 쓰러뜨리면 머지않아 탄환은 다 떨어지고 어느새 좀비들이 가득하게 될지니 이들을 처치하기보다는 약점을 정확히 공격하여 경직시키는 무력을 가져야 한다. 한정된 물자를 관리하며 맵을 파악하고 적들을 되도록 마주치지 않을 경험이 필요하다. 아울러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순간적인 판단력까지 요구된다. 이렇게까지 레벨 디자인을 한 제작진이 사실 악마가 아닐까 의심이 되지만 경외감이 들 정도다.
다정하지는 않지만 황홀한 경험.
이쯤 되면 알겠지만, 이 게임은 초심자들에게 그리 다정한 게임은 아니다. 난이도를 따지자면 매우 어려운 축. 부끄럽지만 바이오 하자드 시리즈를 즐긴 경력이 20년 이상 되는 필자 또한 유다희 양과 베스트프렌드 될 뻔했으니까. 시각적인 충격은 심리적인 압박감과 공포감을 조성해 상황 판단력을 훅 떨어뜨린다. 정신 차려보면 우리는 어느새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가볍게 즐기고 싶은 이에게는 ‘바이오하자드 RE: 2’를 권하지 않겠다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당신이 이 참사에 수몰되지 않으리라는 의지가 있다면, 그리고 원작 팬이라면 지금까지 당신이 경험한 어떤 게임보다도 황홀한 경험을 선사할 것이다. 그것은 장담할 수 있다.
이 게임은 초심자들에게 그리 다정한 게임은 아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당신들을 훌륭했어.
‘바이오하자드 RE : 2’는 물론 장점 일색은 아니다. 상술한 원작의 재핑 시스템이 사라져 두 주인공 사이에서 느낄 수 있던 ‘같은 공간에 존재한다’라는 느낌은 사라졌다. 이로 인해 스토리가 중간에 붕 떠버린 인상을 받을 수도. 하지만 하드웨어가 발전함으로써 연출과 그래픽이 향상된 것을 감안 하더라도 이 게임은 그 이상의 것을 플레이어들에게 제공한다.
플레이어에게 절망을 안겨주는 레벨 디자인과 훌륭한 원작 재현, 그리고 공포감. 바이오 하자드 4 이후 액션성이 돋보인 시리즈가 7편에서 뭔가 바뀌는 것을 보여주고 이제 다시 초심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결과물은 만족스러움을 넘어 원작을 처음 즐겼을 때의 그 전율을 다시금 플레이어에게 각인시켰다. 이는 제작사인 캡콤에게 무한한 믿음을, 바이오 하자드 3의 리메이크를 간절히 바라는 팬들에게는 희망을 던져주었다.
원작 팬의, 원작 팬에 의한, 원작 팬을 위한 헌사.
압도적인 공포감과 절망, 조금은 아쉽지만 레온과 클레어 사이의 케미, 한번 엔딩을 감상해도 계속 즐길 수 있는 ‘제4의 생존자’와 ‘두부 시나리오’ 같은 원작 재현이 대단히 훌륭하다. 정체불명의 소리가 들려오면 플레이어가 육성으로 욕을 내뱉을 타이밍에 먼저 하나님과 지옥, 해변의 아이를 찾는 참신함도 돋보인다.
원작의 팬이라면 캡콤이 팬들에게 바치는 헌사를 며칠 동안 밤을 지새우며 즐길 수 있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이라면 요즘 게임에서 느낄 수 없는 생소한 게임성에 신세계를 만난 느낌일 것이다. 리메이크작으로써는 100점 만점에 94점, 처음 즐기는 게이머들을 고려하면 89점이 본 리뷰어의 점수이다. 부디 이 참극에 잠식되지 말고 반드시 살아서 라쿤 시티를 탈출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