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버샵은 왜 비쌀까?

바버샵 하면 떠오르는 스테레오타입이 있다. 상남자다운 짧은 머리와 팔 곳곳에 그려진 문신, 묵직한 분위기 같은 것들. 가격도 만만치 않아 망설여진다. 하지만 한 번 바버샵을 경험해 본 남자들은 계속 바버샵에 간다. 도대체 바버샵이 뭐길래? 남자가 바버샵에 가는 이유는 뭘까? 바버샵이 비싼 이유는? 논현동 골목으로 들어가 더노블핸즈 바버샵을 관찰했다. 권오훈 바버가 들려주는 이야기도 함께 전한다.

‘더노블핸즈 바버샵’ 간판이 없다면 이곳은 남자들이 모인 동네 카페처럼 보인다. 의자에 앉아 눈인사를 건네고, 서로의 관심사에 관해 얘기 나누는 모습은 세련되게 꾸민 작업실 같기도 하다. 클래식한 인테리어와 무심하게 기르는 식물, 그 옆에 놓여있는 바이크와 기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아늑한 음악은 요즘 남자들이 향유하는 일상의 일부를 편집해 놓은 듯하다. 곧이어 멀끔해진 모습으로 문을 나서는 남자들. 여기는 남성을 위한 이발소가 맞다.

바버샵은 여전히 낯설고 어렵다. 짧게 자른 머리에 깊은 가르마, 포마드 짙게 바른 스타일을 떠올리게 된다. 손질하기 어렵다는 편견도 있다. 하지만 바버샵은 남성이 이발하는 곳일 뿐. 정해진 스타일은 없다. 바버샵은 나와 잘 어울리는 헤어 스타일을 찾아가는 공간이다.

“알아서 해달라고 하는 분이 많아요. 어떤 모습이면 좋겠다는 전체적인 이미지만 전달하죠. 바버는 원하는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함께합니다. 두상이 튀어나왔는지 직선적인지, 모질은 어떤지 세부적으로 파악해 가장 잘 맞는 스타일을 함께 찾아가죠”

바버는 오직 한 사람에게만 신경 쓴다. 샴푸와 헤어컷, 헤드 마사지, 면도, 스타일링으로 이어지는 한 시간은 나 자신을 가꾸는 데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 가위질은 도화지 빈칸을 채우듯 차곡차곡 구조를 만들고, 면도 비누가 쫀득한 거품을 내며 남자의 감각을 자극한다.

바버샵에 익숙해진 남성들은 어떤 머리를 할지보다 그곳에서 무슨 이야기를 나눌지를 먼저 떠올릴지도 모른다. 앉자마자 마음이 편해지는 마법의 의자가 있는 곳. 바버샵에 가는 이유는 남자의 마음을 열게 만드는 분위기, 그리고 사람들과 이루어지는 대화다.

“머리 자를 때가 되면 항상 보죠. 그 시간이 쌓여 1,2년이 되고, 그렇게 5,6년이 되면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알고 있는 거예요. 고객들도 제 삶을 다 알고 있고요. 별 얘기를 다 해요. 연애부터 최근 읽었던 책 얘기, 남들에겐 못하는 비밀스러운 얘기까지. 사이가 점점 더 깊어지는 것 같아요. 앞으로 더 깊어지겠죠.”

그저 머리와 수염을 다듬으러 간 곳에서 대화가 잘 통했다고 느껴졌다면, 그건 같은 관심사를 지닌 사람들과 만났기 때문. 벽에 걸린 카우보이모자, 위스키와 바이크가 풍기는 분위기는 이곳을 찾는 남성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채워준다.

“오시는 손님들이 좋아하는 게 비슷해요. 자동차, 바이크, 술, 시가같이 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있잖아요. 그냥 좋아한다는 수준이 아니에요. 이 차는 몇 기통이고, 언제 나왔던 무슨 모델이 제일 멋있더라. 스카치위스키는 어떻고 버번위스키는 어떻다 하며 깊이 파고들죠. 저도 모르면 안 되니까 더 듣고 찾아보게 되고요.”

공통 관심사가 모이는 곳에서 커뮤니티가 생겨난다.

“옆에 있는 에스코티지 테일러 샵과 함께 연말 파티를 열었어요. 위스키와 시가, 음식을 준비해 사람들을 초대했죠. 바버샵이 이발 외에 다른 무언가를 얻어가는 복합 공간이 됐으면 해요. 비슷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쉽지 않잖아요. 요즘 같은 때에는 더더욱이요. 연말 파티는 이곳을 오가며 봤던 사람들과 인사하고, 이런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됐어요.”

마음 맞는 사람과 만나 이야기 나눌 기회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남성이 모이는 바버샵은 이 연결고리를 능숙하게 만들어낸다.

“파티에 사람들을 초대해 놓고 보니, 이미 서로 알고 있던 사람들이 꽤 많았어요. 인스타그램 팔로우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고요. 그 자리에서 안면 트고 비즈니스 거래가 이뤄지기도 했어요. 저만 모르고 있었죠.”

바버샵은 바버 한 사람의 취향이 아닌 여러 사람의 취향이 공존한다. 손님이 선물한 조명이 공간 분위기를 안락하게 만들고, 누군가는 다른 손님이 선물한 책을 보며 자기 차례를 기다린다. 

“한쪽에 세컨핸즈 샵이 있었어요. 손님들의 물건을 위탁받아서 판매했죠. 기다리면서 어떤 물건이 있는지 구경하고, 머리 자르고 나면 하나 집어서 사가고. 사람들의 취향이 다 비슷했어요. 제품 실루엣만 보고도 뭔지 한눈에 알아보더라고요. 옆선만 봐도 알든 구두인 줄 알고, 코트는 일본 브랜드 어디 건지 다 알고요. 샵을 이사 하면서 정리했는데, 돌려드릴 물건이 거의 없었어요.”

“바버샵 방문하길 어려워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한 번 오고 마음에 들면 오히려 더 편안해하는 것 같더라고요.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이 되니까. 주변에 방해되는 게 없잖아요. 오늘 오신 분들은 다 주무셨어요. 어제 술 많이 먹어서 피곤하다고요.”

바버샵을 찾은 남성들은 오직 자신만을 위한 환경을 제공받고, 여기서 만난 사람들과의 상호작용은 또 다른 영감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만을 위한 헤어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는 것. 이것으로 바버샵이 비싼 이유가 설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