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를 뒷받침할 기술은 어떤 것이 있을까? 많은 답을 얻을 수 있겠지만, 핵심은 XR 기기다. XR(eXtended Reality, 확장 현실)이란 이름 그대로 VR(가상 현실)부터 AR(증강 현실), MR(혼합 현실) 등을 모두 포함해 스마트폰 화면이나 모니터를 대신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기술을 탑재한 기기를 말한다.
조금 낯설긴 하지만, 단어 자체가 등장한 지는 꽤 됐다. 실패한 구글 글래스나 구글 카드보드를 빼고 이야기해도 그렇다. MS는 홀로렌즈란 기기를 계속 개선하고 있고, 애플은 곧 XR 글래스를 내놓을 예정이다. 메타(구 페이스북)는 작년에 오큘러스 퀘스트2를 선보이며 VR 헤드셋 시장을 되살렸다. 삼성 역시 곧 AR 글래스를 내놓을 거란 소문도 들린다.
조금 낯설긴 하지만, XR이라는 단어 자체가 등장한 지는 꽤 됐다.
이는 빅테크 기업에만 국한된 이야기도 아니다. 메타버스가 뜨기 시작하자, 기존 XR 기기 업체들도 다시 본격적인 시장 참전을 선언했다. 앞으로 수도 없이 얘기 듣게 될 XR 기기들, 10월에 발표된 제품들을 정리해 본다.
메타 프로젝트 캠브리아
지난 10월 29일 페이스북, 아니 메타는 내년에 출시할 하이엔드 VR 헤드셋을 개발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름은 ‘프로젝트 캠브리아’. 당연히 공식 명칭은 아니고, 개발 코드명이다. 참고로 하이엔드 VR이란 수식어는 메타에서 공식 발표한 워딩인데, 실제로 최첨단 기술이 들어가기에 굉장히 고가의 장비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회적 존재감 향상(improved social presence), 컬러 바깥 보기(colour passthrough), 얇은 렌즈 광학 기술(pancake optics) 같은 기능을 제공한다.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면, 앞으로 기존 오큘러스 시리즈에 적용할 최신 기술을 일단 ‘프로젝트 캠브리아’에 적용해서 써보겠다는 말로 이해하면 된다. 불투명 고글을 쓰고 있는데도 투명 안경을 끼고 있는 느낌으로 현실 세계를 볼 수 있다. 안면 인식을 통해 사용자의 표정을 아바타 표정에 그대로 반영할 수 있어 메타버스 의사소통이 더 쉽다. 디자인 또한 눈앞으로 튀어나온 모양 대신 좀 더 날씬한, 물안경을 쓴 듯한 디자인으로 바뀌게 된다. 2022년 출시 예정이며, 상세한 내용은 나중에 공개할 거라고.
한줄평: 하지만 우리가 기다리는 건 메타 퀘스트(구 오큘러스 퀘스트)3지.
엔리얼 에어(Nreal Air)
10월 발표의 첫 문을 연 제품은 엔리얼 에어다. 한국 유플러스와 협력 관계에 있어서, 관심 있는 사람에겐 조금 익숙한 이름이기도 하다. 작년에 출시한 엔리얼 라이트를 다운그레이드해 영상 시청에 초점을 맞춘 제품으로 바꿨다. 얼핏 보기엔 평범한 선글라스처럼 보이는 디자인, 그리고 77g에 불과한 가벼운 무게가 장점이다. 스마트폰에 연결해서 써야 하고, iOS와 안드로이드 OS를 지원한다. 이 제품으로 영화를 보면 3m 거리에서 130인치 스크린을 보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발매는 올해 12월 예정.
한줄평 : AR 글래스 공략 포인트를 찾긴 했는데.
HTC 바이브 플로우 VR
XR 헤드셋 업계 1위가 메타라면, 3위는 HTC다(2위는 소니). 지난 10월 14일, HTC도 새로운 VR 헤드셋을 내놨다. 바이브 플로우라 불리는 이 제품은 189g이라는 가벼운 무게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요즘 스마트폰보다 가볍고, 다른 VR 헤드셋(약 500g대)과 비교하면 무게가 절반도 되지 않는다. 가벼워진 덕택에 디자인도 머리에 쓰는 것보다 눈에 끼는 안경에 가깝게 변했다. 심지어 접어서 보관할 수도 있다. 다만 가볍게 만들다 보니 한계도 분명하다. 성능이 좀 떨어지고, 배터리가 없어서 USB-C 포트를 통해 전력을 공급받아야 하며, 스마트폰과 연동해서 사용해야 한다.
한줄평: VR 헤드셋인 줄 알았더니 안경형 스마트폰 모니터
바르요 에어로
바르요는 산업용 VR, 레티나급 해상도를 가진 PC 연결형 VR 기기로 유명한 회사다. 당연히 가격도 비싼데, 대략 6,000달러 정도 한다. 10월 21일에 공개된 바르요 에어로(Varjo Aero)는 보다 VR 마니아에게 다가가기 위해 만든 제품으로, 가격도 1/3 정도로 낮췄다. 즉, 1,999달러짜리 게임용 VR 기기인데,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에 적합하다고 회사에서 대놓고 말할 정도니 말 다 한 셈. 출시는 2021년 말로 예정되어 있다.
장점은 선명한 화면으로, 산업용 VR 기기를 만들던 기술을 투입한 덕분에 매우 뛰어난 그래픽을 보여준다. 소프트웨어 지원도 좋은 편. 이전 제품과는 달리 연간 소프트웨어 구독료가 필요 없다. 회사에서 제공하는 바르요 리얼리티 클라우드 플랫폼을 이용하면 주변 환경을 스캔해 바로 메타버스 공간으로 만드는 재주도 갖췄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제품을 만든 이유 중 하나가 그래픽 카드 대란 때문이라는 사실. 이전 제품은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80급 그래픽 카드가 필요했다. 하지만 요즘 그런 카드를 구하기 어려워서, 이보다 더 낮은 지포스 RTX 2060에서도 쓸 수 있는 VR 헤드셋을 만든 결과라고 한다.
한줄평 : 컨트롤러 등은 별도입니다.
파이맥스 리얼리티 “12K”
메타의 발표가 있기 전 10월 25일, VR 하드웨어 전문회사 파이맥스에서 새 하이엔드 VR 헤드셋을 발표했다. 이름은 리얼리티. 미니 LED 백라이트를 가진 QLED 12K 디스플레이(한쪽 눈에 6K)에 수평 200도 수직 135 시야각을 가진 VR 기기로, 인간 시야각 범위보다 넓다. 좋은 사양만큼 값도 비싸서, 2,399달러(약 282만 원)나 된다. 출시 예정은 2022년 4분기. 전면 4대의 카메라를 통해 컨트롤러나 손 움직임을 추적하고, 헤드셋 하단과 측면에 배치된 카메라를 이용해 표정 및 전신 추적도 가능하다.
가지고 있는 PC와 연결해서 쓸 수도 있고, ‘VR 스테이션’이라 불리는 번들 PC를 연결해 쓸 수도 있다. 완전 독립형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데, 다만 프로세서를 오큘러스 퀘스트2와 같은 퀄컴 스냅드래곤 XR2를 쓰는 것은 조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총 11대의 내장 카메라와 12K 해상도를 가진 영상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을까?’라고 의심하는 사람이 꽤 있다. 실제로도 독립형으로 쓸 때, 해상도가 한눈에 4K, 주사율은 120Hz로, 시야각도 제한된다고. 파이맥스는 동급 최강 해상도를 가진 기기를 제공하지만, 항상 사후 지원이 미흡하다는 사실도 참고하자.
한줄평: 세상엔 내 손에 들어와야 인정할 수 있는 기기가 있다.
애플, 소니, MS, 매직리프
2021년 XR 기기 시장은 초기 가정용 게임기 시장과 비슷해 보인다. 메타가 시장을 이끌고 가는 이유는 기기를 팔면서 이익 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제품들은 오큘러스 퀘스트2와는 다른 시장을 공략해야 한다. 영상 시청이 주목적인 입문용 XR 기기 시장을 비롯해 산업용 XR, 게임용 XR 같은 시장이 대상이다.
그럼 애플이나 MS, 소니 같은 회사는 어떨까? MS는 사실상 메타와 정면으로 맞붙어야 한다. 올해 선보인 Mesh와 엮어서 쓸 보급형 홀로렌즈를 발 빠르게 선보이지 못하면 질 공산이 크다. 애플은 지난 몇 년간 다수의 XR 기기 특허를 얻었고, 2022년 XR 기기를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VR 헤드셋일지 AR 안경일지, 어떤 기기일지는 아직 말하기 어렵다. 소니도 2022년 PS5용 VR 헤드셋을 출시할 거라고 알려진 상태다.
2021년 XR 기기 시장은 초기 가정용 게임기 시장과 비슷해 보인다. 메타가 시장을 이끌고 가는 이유는 기기를 팔면서 이익 볼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빅테크가 아닌 다른 도전자도 있다. 증강 현실 영상으로 유명한 매직리프다. 초기 사업 실패 후 기업용 기기로 사업 분야를 전향한 이 회사는 지난 10월 12일 미 CNBC에 출연해 새로운 매직리프 2를 공개했다. 2021년 연말에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2022년으로 출시일이 바뀌었다. 신기하게도 비슷한 시기에 불이 붙었다. 이 불길이 잘 번지면, 2022년은 정말 뜨거운 한 해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