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싶은 거리와 클럽가를 지겹게 싸돌아다니던 20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30대에 접어들 무렵부터 우리 집 안마당처럼 돌아다니던 그 북적이는 시장통 같은 홍대 거리는 시나브로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비단 필자만의 경험은 아닐 것이다. 엄청난 인구밀도와 평준화된 프랜차이즈 범벅의 거리를 벗어나 조금 더 한적하고 조용한 곳으로 발길을 돌리고 싶어지는 것은 아마도 앞자리가 3으로 바뀐 이들의 보편적인 심리가 아닐까 싶다.
내가 망원동을 나름의 알코올의 전당으로 삼은 이유도 바로 이때문이었다. 30대의 초입에서 이 동네를 주말의 고향으로 삼았고, 시간은 쏜살같이 달려 어느덧 40대를 바라보는 시점이 됐다. 그렇게 30대의 추억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알코올로 지새운 나날들을 되돌아보며 찐 술꾼도시에디터(라고 쓰고 대책없는 주당이라고 읽는) 취향에 기반한 망원동 최애 술집 리스트 여섯 곳을 소개한다.
1식당
구어로 표현하면 단순히 카테고리로써의 일식당을 지칭하는 것처럼 들리지만, 텍스트를 보면 비로소 그 중첩적인 의미가 이해되는 곳이다. 물론 일식을 메인으로 하는 메뉴 구성을 가지고 있기에 ‘일’이라는 음성으로 들리는 ‘1’을 붙인 것이기도 하지만, 혼술을 먹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은 분위기와 합리적인 가격대를 가진 것에서도 기인한다.
이처럼 손님의 규모가 1~2인 위주인 덕분에 매장은 직사각형의 긴 내부에 바 타입의 좌석이 대부분이며, 중간중간 220V 콘센트도 설치되어 있어 대놓고 혼술족의 편의를 챙기고 있다. 테이블은 4인 손님만 받을 수 있는 단 한 자리 뿐이다. 적당히 어둡지만 얼굴은 충분히 식별 되는 은은한 조명 덕에 시작부터 술맛이 제대로 도는 집이라는 것을 단번에 느낄 수 있다.
1식당을 찾는 손님 대부분이 주문하는 메뉴는 그날그날 공수해온 해산물과 횟감으로 라인업을 구성하는 오늘의 사시미다. 특히 선도 좋은 날 입고되는 단새우 같은 경우는 따로 단품으로도 주문이 가능해 새우 마니아라면 꼭 추가 주문을 추천하는 편이다. 그 외에도 표고하사미아게와 각종 생선구이류의 퀄리티도 좋다. 메뉴 전반에 걸친 사장님의 정성과 솜씨가 가히 수준급. 주류는 사케부터 평범한 국내 소주까지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부담 없이 찾기에 좋다.
주소 서울 마포구 포은로 52-1
인스타그램 @ilrestaurant
꼬치주간
이름만 봐도 이곳이 야키토리를 주력으로 하는 곳임을 단번에 짐작할 수 있는 곳. 다만 야키토리 전문점이라고 하면 으레 떠올리는 숯불내음 가득하며 왠지 모르게 끈적한 테이블이라던가 지저분한 바닥의 매장 분위기를 연상할 수 있겠지만, 그랬다면 완벽한 오산이다. 청결하게 관리되는 매장 내부와 아기자기하면서도 깔끔한 구성으로 내어주는 메뉴들은 꼬치주간을 많은 연인들을 데이트 코스로 찾게 만드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취향에 따라 입맛은 다를 수 있겠으나, 대부분의 야키토리 메뉴는 수준급 퀄리티를 보장한다. 또한 오뎅바 분위기를 내는 테이블 자리도 있으니, 주력 메뉴를 어묵으로 골랐다면 이곳에 착석하며 구미가 당기는 꼬치를 마음대로 (물론 각자 지갑 사정은 알아서들 생각하면서) 집어먹어도 좋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메뉴에 아기자기한 비주얼과 정성을 들였지만, 오토시로 내어주는 토마토 절임은 이곳의 비밀병기다. 기본 안주라 쉽게 지나칠 법도 한데, 한입 먹으면 그 맛에 반해 결국 사이드메뉴로 따로 마련된 매실방울토마토&리코타치즈 메뉴를 시키는 경우가 부지기수. 참고로 이 매실방울토마토는 500g 1병 단위로 따로 포장 구매도 가능하다. 주류는 소주와 맥주, 하이볼, 사케 등이 기본적인 구성으로 마련되어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포은로 70-1
인스타그램 @joogan92
뿔
물론 망원동에도 맛있는 소고기를 파는 식당이야 많지만, 적당히 분위기 내면서 같이 한잔 곁들이기 좋은 곳은 단연 뿔이다. 1++ 한우만 판매하는 야키니쿠로, 메뉴는 100g 단위로 판매하는데 기본 400g 이상을 주문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단가가 조금 세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1++ 한우임을 감안하면 의외로 접근성이 나쁜 가격대도 아니다.
부위는 살치살과 안심, 등심을 필두로 채끝, 새우살, 갈비살 등을 판매하는데 바 안쪽에서 바로 고기를 썰어서 내어주기에 고기의 퀄리티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고기 외에도 사이드로 모듬 야채나 치즈, 그리고 라면과 된장찌개 같은 식사 메뉴도 있지만, 먹다 보면 탄수화물 생각은 나지 않고 자연히 고기에 집중하게 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다양한 주류를 구비해 각자의 취향에 맞게 주종을 타지 않고 야키니쿠를 즐길 수 있다는 점은 뿔의 또다른 강점. 소주와 맥주의 기본 구성 외에 전통주 라인업도 적지 않게 있으며, 와인과 위스키도 있다. 참고로 업장에서 신청곡도 틀어주는데, 대신 지나치게 시끄럽거나 아이돌은 신청 금지라고 하니 참고하자.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9길 86 1층
인스타그램 @yakinikubbul
녹턴사카바
녹턴사카바는 망원동에서 가장 고풍스럽고 클래식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 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느껴지는 빈티지한 분위기에 1차로 압도되고, 앤틱한 소품과 인테리어가 고전적이면서도 동시에 아늑한 공기로 손님을 품는다. 어두운 조명과 잘 선곡된 재즈의 조합 역시 이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일등공신.
고전적인 바 느낌의 업장이지만, 주종은 예상과 다르게 굉장히 넓은 카테고리와 볼륨을 자랑한다. 와인리스트는 다소 평범한 편이지만, 칵테일과 위스키로 넘어가면 선택의 폭이 확 넓어진다. 이 정도 선에서 끝나면 그래도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일본 소츄까지 다양하게 갖춰놓은 점은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 각자 다른 술 취향을 가진 사람도 함께 올 수 있다는 점이 좋다.
아무래도 술이 중심이 되는 바이기에 곁들여지는 안주는 딱히 다채롭진 않다. 그런데 평범한 기대감으로 접근했던 예상과 달리 면 요리의 맛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사케를 마신다면 야끼소바를, 위스키나 와인에는 나폴리탄을 곁들여보자. 가격대도 모두 2만 원 이하로 책정되어 있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동교로 37
인스타그램 @noxsakaba
위드바틀
아마도 지금 주류 시장에서 가장 핫한 키워드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내추럴 와인이 아닐까. 현재 유래없는 내추럴 와인의 인기로 많은 와인바는 조금이라도 더 다채롭고 매력적인 내추럴 와인 리스트를 꺼내 들기에 여념이 없다. 망원동의 위드바틀은 이 내추럴 와인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와인바다.
7인 테이블 하나, 4인 테이블 2개가 전부인 소규모 업장으로, 화이트 톤의 인테리어는 센스 있고 깔끔하면서도 동시에 감성을 놓치지 않는다. 일단 와인바와 보틀숍을 겸하는 업장답게 이곳의 방대한 와인리스트는 입문자부터 주당까지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가게를 운영하는 부부 사장님의 구력이 상당한지라, 잘 모르겠다면 추천을 부탁해보자. 웬만해선 실패할 일이 없다고 봐도 좋다.
안주는 주로 와인에 어울리는 것들로 구성되어 있다. 흔히 와인바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스테이크와 파스타, 치즈 등을 메인으로 하고 있는데, 요일에 따라 주문 가능한 메뉴가 바뀌기도 하니 주의할 것. 참고로 위드바틀에는 업장의 마스코트인 반려견 ‘감자’가 상주하고 있으며, 댕댕이 동반도 가능해 애견인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주소 서울 마포구 월드컵로13길 2층 201호
인스타그램 @with_bottle_
선술집 위군
숙성 사시미를 찾는다면 위군은 믿고 찾아가는 망원동의 영순위 이자카야다. 실내는 단 하나의 4인 테이블을 제외하면 전부 다찌석으로 마련되어 있으며, 내부 공간도 상당히 협소한 편. 하지만 빈티지 감성에 아늑한 조명으로 구성된 인테리어가 이자카야라는 업장에 포커스가 잘 맞춰져 있어 분위기 측면에서는 오히려 장점으로 작용한다.
위군은 메뉴판의 구성에서부터 숙성 사시미에 대한 진심을 엿볼 수 있다. 여러가지 잡다한 메뉴 일절 없이 오로지 오늘의 사시미를 메인으로 밀고 있는데, 구성은 당연히 그날그날 들여오는 횟감의 상태와 철에 따라 바뀐다. 물론 그 외에 생선구이와 수육 등 2~3가지 정도가 더 있긴 하지만, 추가 메뉴는 주문이 불가능한 날도 많아 기본적으로는 사시미를 시키게 된다.
주류는 역시 사케가 메인이지만, 메뉴판에 없는 소주도 구비되어있긴 하다. 그래도 분위기 덕분인지, 소주보다는 자연히 사케를 시키게 된다. 한편 사시미가 나오기 전에 오토시로 내주는 무조림의 맛 또한 일품이다. 푹 익어 달착지근한 맛을 내는 무에 양념이 고루 배어들어 이 기본안주만으로도 소주 1병을 뚝딱 해치울 수 있을 정도. 참고로 1인 업장이라 서브가 다소 느린 편이니, 이를 감안하고 무조림에 술을 먼저 한 병 해치우는 술꾼 센스를 발휘해보자.
주소 서울 마포구 포은로 74 1층
인스타그램 @wigo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