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밀리 퓨드(Family Feud)’에 출연했다고 상상해보자. 진행자 스티브 하비가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한 차종을 묻는다. 아마 현재 북미시장의 기준에서는 지프, 도요타 랜드 크루저, 그리고 랜드로버를 정확히 꼽겠지만, 항상 그래왔던 것은 아니다. 수년 동안 미국은 영국에서 온 랜드로버의 SUV에 대해서 다른 나라들과는 조금 다른 인식을 갖고 있었다.
꼭 한 템포 느리게 반응하는 사람처럼, 북미시장에서 랜드로버에 대한 반응은 한참 뒤에야 왔다. 전 세계인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미국인들에게도 이해시키기 위해 연구진의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결단을 내렸고, 또 좋은 타이밍을 기다리고, 미국만을 위한 랜드로버를 설계하는 등 많은 노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도대체 이렇게까지 하면서 랜드로버가 알리고자 했던 것은 무엇일까. 바로 랜드로버는 모험에 의한, 모험을 위한 자동차라는 사실이다.
랜드로버가 북미에 데뷔한 건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다. 하지만 성공의 시기는 그로부터 무려 40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럭셔리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대자연 어디로든 갈 수 있는 막강한 성능을 자랑하는 랜드로버가 대체 왜 미국에서 성공하는데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던 걸까? 이미 사륜구동 SUV가 넘쳐나던 북미시장에서 랜드로버가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럭셔리 SUV의 대명사로 이름을 날리게 된 과정을 천천히 살펴보자.
말의 역할을 대체한 지프에서 영감을 얻다
전쟁이 막 끝난 상황에서 로버 컴퍼니(랜드로버)는 망하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마침 전 세계는 새롭게 재정비에 들어간 상황이었고, 자연히 원자재 공급도 원활하지 않았다. 전쟁에서 사용되고 남은 군사 장비들은 유럽의 재건을 위해 민간으로 흘러 들어갔는데, 여기에는 포드, 윌리스 오버랜드 지프와 같은 군용 차량들도 있었다. 이때 로버 컴퍼니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모리스 윌크스 역시 가족 농장에서 사용할 여분의 윌리 지프를 갖고 있었는데, 그는 여태 말이 해왔던 모든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지프의 실용성에 큰 매력을 느꼈다.
수리를 위한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윌크스는 자신만의 4륜구동 차량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이 믿음직한 지프에게도 고장의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는 리스크였다. 하지만 수리를 위한 부품을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윌크스는 자신만의 4륜구동 차량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마침 모리스의 동생이었던 스펜서 윌크스도 로버 컴퍼니의 상무로 합류하면서 형제는 시리즈 1으로 선보이게 될 차량에 대한 작업에 들어갔다. 4륜구동 로버 차량이라는 점에서 착안해 이 모델은 랜드로버라는 이름을 얻게 됐다.
로버 컴퍼니는 랜드로버 제작에 필요한 원자재 수급을 위해 이 새로운 차량이 영국의 주요 수출품이 될 것이라는 가능성을 어필해야 했다. 또한, 랜드로버 제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최대한 활용하면서 제작 프로세스도 간소화해야 했다. 랜드로버에 필수적이었던 4륜구동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로버 컴퍼니는 자체 트랜스퍼 케이서를 제작했다.
이 엔진은 원래 1.4리터 직렬 4기통이었던 것을 4륜구동에 적합하게 업그레이드시켜 1.6리터의 배기량과 52마력 출력의 스펙을 갖추게 됐다. 또한 차체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강철 공급이 부족하자 알루미늄을 활용했고, 원가절감을 위해 외관 디자인은 최대한 직선적인 라인의 박스 형태로 설계됐다. 콘셉트 제작부터 최종 마무리까지 랜드로버 시리즈 1의 시제품 완성에 걸린 시간은 단 1년에 불과했고, 그렇게 1948년 암스테르담 모터쇼에서 전 세계에 첫선을 보였다.
랜드로버 시리즈 1은 지프와 비슷해 보였지만, 지프가 해변에서의 주행이 주목적이었던 반면, 랜드로버는 농장에서 가족이 함께 탈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었다. 80인치 휠베이스의 랜드로버는 콤팩트한 디자인으로 다양한 기능을 제공했다. 랜드로버의 첫 번째 광고 중 하나는 시리즈 1을 ‘힘든 일은 뭐든 할 수 있는’, ‘건방진’ 자동차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는 여태 말이 해오던 모든 일을 3배나 더 빠르게 해낼 수 있음을 뜻했다. 당차게 세상에 나간 영국제 오프로더, 랜드로버 시리즈 1은 출시와 함께 주문량을 생산량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히트했다.
1952년에는 2.0리터 배기량의 엔진 라인업을 추가했고, 시리즈 1의 바리에이션 모델들도 차차 하나씩 추가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랜드로버 픽업트럭이나 럭셔리한 스펙을 자랑하는 프릭포드 보디를 구매한 후, 나중에 스테이션 왜건 모델을 살 수 있었다.
시리즈 1은 1958년까지 생산되었고, 이후 시리즈 2로 바뀌게 된다. 이 모델은 시리즈 1보다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세련미를 자랑했고, 험로주행의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트랙도 더 넓어졌다. 또한, 이전 모델의 박시한 디자인에 변화를 주기 위해 차체의 날카로운 모서리를 곡선으로 처리했고, 편의를 위한 사이드 스커트도 장착했다. 더 넓은 시야 확보를 위해 전면 유리도 커졌다. 엔진 라인업에는 2.0리터 디젤 엔진이 추가됐고, 기존의 가솔린 엔진은 70마력의 출력에 124lb-ft의 토크를 만들어내는 2.25리터의 4기통 스펙으로 출시됐다. 이쯤 되자 랜드로버는 초기 타깃인 농업인뿐 아니라 전 세계의 군대에서도 큰 사랑을 받았다.
선천적 탐험가
랜드로버가 인기를 끌면서 사람들은 점차 다양한 목적으로 이 차를 운행했다. 자동차 커뮤니티에서는 새로운 서브컬쳐를 형성하기 시작했고, 오프로드에서도 문제없이 달릴 수 있는 뛰어난 성능 덕에, 이전까지 다른 자동차들은 가지 않았던 곳에도 갈 수 있게 됐다.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세계 인구의 1/3이 태어나서 처음 본 자동차가 바로 랜드로버’라는 이야기다. 아무래도 초창기 랜드로버 하면, 주로 자동차가 가본 적 없는 아프리카의 사파리나 동남아시아의 진흙탕 정글을 탐험하는 모습이 주로 연상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랜드로버는 자연히 대륙을 횡단하는 그랜드 투어의 상징이 되었다.
이렇게 랜드로버는 자연히 대륙을 횡단하는 그랜드 투어의 상징이 되었다.
하지만 시리즈 1이 전 세계의 사랑을 받는 동안, 랜드로버 아메리카 시리즈 2와 3는 인기를 끌지 못했다. 왜 그랬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간단하다. 미국인들은 수입산 랜드로버를 구매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의 농부들이 말 대신 쓸 수 있는 4륜구동 차량이 필요하다고 느꼈다면, 그저 포드를 비롯한 수많은 자국 브랜드의 가까운 대리점에 가서 픽업트럭을 사 오면 그만이었다.
북미시장에 문을 두드린 레인지로버
1960년대에 이르러 SUV는 점점 세분화 되었다. 랜드로버는 출퇴근 시에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오프로드 차량 제작에 돌입했고, 1969년 레인지로버를 출시했다. 이 신형 3도어 SUV는 130마력에 3.5l 로버 V8 엔진으로 풀타임 4륜구동 사양을 갖추고 있었다. SUV는 패밀리 세단의 넓은 공간, 픽업트럭의 실용성과 내구성, 모험을 위한 4륜구동의 성능까지 모두 제공했고, 곧 큰 인기를 끌었다.
1980년대에 레인지로버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랜드로버의 경영진 또한 여전히 미개척지로 남아있는 미국 시장 진출을 원했지만, 연구진은 ‘미국인들은 고급 오프로드 SUV에 더 많은 돈을 쏟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표했다. 그러나 랜드로버는 그런 연구진의 반대 의견을 무릅쓰고, 결국 미국인을 타깃으로 한 레인지로버 제작에 돌입했다. 이전 모델에서는 제공된 적이 없었던 옵션을 대거 추가, 럭셔리 스펙을 가진 차량이 될 계획이었다.
1987년, 랜드로버는 가죽 인테리어와 선루프,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 V8 엔진을 탑재한 레인지로버를 미국 시장에 내놓았다. SUV의 폭발적인 인기를 앞둔 시점에서 랜드로버의 출시 타이밍은 정확했다. 오늘날 레인지로버의 위상은 메르세데스 벤츠의 G-바겐과 거의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왔다. 물론 G-바겐이 바퀴에 크롬을 입힌 대신, 레인지로버는 흙탕물을 멋지게 묻혔겠지만 말이다.
새로운 시대를 연 랜드로버
2021년에도 랜드로버는 모험 속에서 럭셔리함을 놓치지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랜드로버는 50주년을 기념해 50 에디션이라는 이름의 한정판 레인지로버를 출시했다. 이 모델은 1,970대만 한정 생산되며, 차량에는 50주년 배지가 달려 독특한 외관을 자랑한다. 50 에디션 레인지로버의 내부는 랜드로버의 프리미엄 오토바이오그래피를 기반으로 제작됐다.
물론 9만 달러가 넘어가는 레인지로버가 SUV를 사려는 대부분의 사람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가격대의 모델은 아니다. 하지만 랜드로버는 역동적인 성능을 갖춘 레인지로버 스포츠, 스타일리시한 레인지로버 벨라, 소형으로 제작된 레인지로버 이보크를 통해 훨씬 더 많은 고객에게 다가가고 있다. 물론 그 가운데 레인지로버는 브랜드의 플래그십 모델로 여전히 큰 사랑을 받고 있다. 2021 레인지로버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인라인 6기통 터보차저 엔진에서 시작해 V6 디젤 터보차저, 심지어는 557마력의 5.0리터 V8 슈퍼차저 엔진까지 아우른다. 이 모델의 경우 5.1초라는 0-60mph의 정지가속 능력을 발휘하고, 최고속도도 249km/h에 달한다.
2019년, 랜드로버는 완전히 새로운 디펜더를 선보였다. 랜드로버 디펜더가 마지막으로 출시된 것은 1983년으로, 이 모델은 2016년까지 생산됐었다. 신형 2020 랜드로버 디펜더는 디펜더 90과 디펜더 110으로 나뉘는데, 디펜더 90의 경우 5만 달러에서부터 시작한다. 스탠다드 엔진은 2.0리터 4기통 트윈 터보차저로 296마력의 출력과 295lb-ft 토크를 갖고 있다. 최고급 라인으로 출시된 디펜더 X는 8만 달러의 시작가에 3.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했고, 395마력과 406lb-ft의 토크를 갖는다. 모든 디펜더는 4륜구동과 LD, 8단 자동 변속기가 기본으로 제공된다.
신형 2021 랜드로버 디펜더는 기존의 프레임 방식을 버리고 모노코크 바디로 제작됐다. 현가장치도 기존의 솔리드 엑슬 대신 독립형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또한, 오프로드에서 디펜더의 높이를 올려줄 수 있는 에어 라이드 서스펜션 역시 업그레이드되어 지상고는 11.5인치가, 물속에서는 35.4인치 높이에서까지 달릴 수 있다. 이는 지프 랭글러의 수치를 넘어서는 스펙이다.
전후 시절의 대용품, 럭셔리 SUV가 되다
한때 험난했던 전후 시절의 대용품으로 쓰이던 자동차는 이제 상류 사회의 이목을 끄는 럭셔리카로 탈바꿈했다. 현대적인 랜드로버와 그에 영감을 준 지프는 오늘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브랜드가 되었다. 물론 이들은 도시를 떠나지 않는 픽업트럭일 수도, 혹은 차고에 박혀 관상용으로만 자리하는 스포츠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뭐가 됐든 괜찮다. 랜드로버를 가졌다면 진흙탕을 걸어가기 위한 장화도, 전동 윈치도 필요 없다. 때로는 단순한 선택지를 고르는 것이 최고의 사치가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예컨대, 럭셔리한 가죽 인테리어의 실내에 앉아 안락하게 몸을 기댄 채 오프로드를 내달릴 수 있는 그런 선택권 말이다. 물론 반대로 러시아워의 출퇴근길 위에서 오프로드를 탐험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것 역시 랜드로버가 주는 또 다른 행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