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그는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던 걸까. 메소드 연기일까. 데브 파텔(Dev Patel)을 아는 사람들은 2008년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 속 소년을 떠올릴 것이다. 어색하게 레드카펫을 걸어가던 모습, 기억하는가. 물론 그때는 지금과 같은 아우라를 풍기던 때는 아니다. 청년이라는 두 글자에 걸맞은 순수함이 묻어났고, 주위 휘황찬란한 모든 것들을 반짝이는 눈으로 바라보던 시기였다.
사실 ‘슬럼독 밀리어네어’가 그의 첫 작품은 아니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흥행한 이 영화에서 역할을 따낼 수 있었던 것도, 하이틴 드라마 시리즈 ‘스킨스’에 출연했던 덕이었다. 이 오디션 참가는 즉흥적이었지만, 인생을 바꿔 놓는 계기가 된 셈. ‘슬럼독 밀리어네어’ 감독인 대니 보일이 자신의 딸이 스킨스에서 그를 발견하고 추천했다고 밝혔으니 말이다.
영화 개봉 이후, 그에게 많은 변화들이 찾아왔다. 영국 독립 영화상, 시카고 영화 비평가 협회상,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드를 수상했고, 2009년 SAG의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다. 그의 연기력은 영화계에서 존재를 단단히 굳히기에 충분했고, 이후 그는 주디 덴치와 함께 ‘베스트엑조틱 메리골드 호텔’에 출연했다.
2008년 타지마할 호텔에서 일어난 테러 사건을 다룬 영화 ‘호텔 뭄바이’, 2017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라이언’에서도 연이어 열연을 펼쳤다. 또한 ‘그린 나이트’에서 주연 가웨인 역을 맡아 올해 스크린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 예정이다.
눈에 띄게, 혹은 심플하게
파텔은 어린 청년의 이미지에서 날카롭게 변신을 감행했다. 그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세트로 구색을 갖췄지만, 어딘가 어색한 스타일을 더는 고수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어울리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으니까. 그의 시그니처 수염과 함께 어우러지는 캐주얼한 무드를 선보이고 있다.
그의 뛰어난 연기력 말고 모두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영화 ‘라이언’ 언론 시사회 중 보여주었던 샤프한 스타일이다. 그는 어찌어찌 가장 예상치 못한 아이템으로 의외의 스타일을 완성했고, 가장 베이직 아이템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는 슬림한 블랙 슬랙스에 절제된 디자인 다크 브라운 풀오버를 매치했다. 이는 너무 심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반대로 더욱 편안한 인상을 심어주기도 한다. 또한 파텔은 변주를 감행해 소프트 그레이 티셔츠 위에 베이비 핑크 더블 스포츠 코트를 매치했다.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이 컬러웨이를 그는 찰떡같이 소화해 냈다. 무채색의 티셔츠 위에 얹힌 핑크 향연은 너무나 그럴듯했다.
하지만 파텔이 항상 캐주얼 룩이나 의외의 아이템만 입는 것은 아니다. 그는 아주 차분한 인상을 주는 말쑥한 차림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번은 핀 스트라이트 슈트로 세련된 스타일을 선보였다. 줄무늬 패턴은 차콜 수트를 은은하게 시선을 끄는 아이템으로 바꿔냈다.
그리고 팜스프링스 국제 영화제 시상식에서 그는 3피스 수트를 입고 나타났는데, 이 스타일은 경이롭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 절제된 고급스러움을 위해 모두가 매는 넥타이와 탑 버튼을 과감히 생략하면서, 신선한 착장을 완성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성공했다.
시상식이 아닌 다른 행사에도 여러 가지 아이템을 믹스매치해 흥미로운 룩을 선보이곤 한다. 그는 패션은 규칙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러니 그가 루즈 핏 샴브레이 탑과 레드 브라운 팬츠에 대학 재킷을 매치한 것도 이해할만 하다. 사실 그의 스타일을 글로 읽으면 감흥이 크게 일지 않지만, 사진으로 목도한다면 모든 아이템이 아름답게 어우러졌음을 확인할 수 있을 거다.
특정 스타일에 집착하는 것은 아니지만, 파텔은 심플함을 선호한다. 모두 알지 않은가. 기본에 충실하는 것이 제일 어렵고, 아무나 소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파텔은 애쓰기보다 자연스럽게 스타일을 완성하는데 이 점이 바로 그의 스타일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요소다.
특히나 남성복에 관해서, 자연스럽게 옷을 잘 입는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패션계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게 있다면, 남성복은 항상 진지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많이. 남성복 대부분이 아주 타이트하게 재단되고, 대체로 무채색 컬러 팔레트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파텔은 잘 만들어진 남성복 핵심은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의 새로운 한끗을 더해 절대 구태의연한 스타일을 만들지 않는다.
스타일 따라하기
우리는 파텔의 데일리룩을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아이템으로 따라 해볼 수 있다. 그는 공항에서 통풍이 잘되는 가벼운 핏의 흰색 티셔츠에 카모 그린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다. 이는 마치 본 더치 속 올드스쿨 모자를 쓴 트럭 운전사를 연상케 하며 시크한 매력을 풍겼다. 뿐만 아니라 그는 청청 패션에도 성공했을 뿐 아니라, 헐렁한 청바지에 흐릿한 녹색 스웨터로 아주 간단하게 스타일링한 적도 있다.
특히 그의 버건디 풀오버는 청바지부터 카키 바지까지 정말 모든 아이템에 매치해 입을 수 있는 제품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크루넥 스웨터는 럭셔리함을 더해주며 매력을 한껏 끌어올린다. 혹시 아직도 앞에서 봤던 분홍 블레이저를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가. 그렇다면 리스 울블랜드 더블 브레스트는 당신의 최애 아이템으로 등극할 수도 있다. 청바지와 흰 티에 걸치면 캐주얼한 룩을, 좀 더 포멀한 팬츠에 걸치면 놀랍도록 고급스러운 룩이 완성된다.
파텔은 한때 잡지에 구찌 체크무늬 수트를 입고 화보를 찍은 적이 있는데, 당신이 지금 상상하는 바로 그대로다. 입이 떡 벌어지게 하는 대담함을 갖췄고, 샤프하고 매혹적이기까지 했다. 이는 깔끔한 라인과 테이퍼드와 같은 디테일로 적절한 콤비네이션을 완성해냈다.
이런 스타일을 시도해보고 싶다면, 아소스 디자인 스키니 슈트 재킷이 정답이다. 여기서는 단순함이 포인트인 만큼 샤프한 검정 터틀넥과 청바지 위에 매치하면 완벽할 것이다.
파텔의 스타일을 말하고 있지만, 그를 향한 모든 수식이 모두 아웃핏에 집중되지는 않는다. 그는 매우 솔직한 부류에 속하는 배우다. 그런 면모와 우아하고 완벽하게 잘 차려입은 스타일을 선보이는 파텔에게 ‘스타일 아이콘’이라는 수식어는 아주 적절한 듯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