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을 선보이는 뉴진스. 이번 일본 데뷔의 협업 파트너는 일본 스트리트 패션의 대부로 불리는 후지와라 히로시다. 그에겐 프로듀서, 뮤지션, 패션 디자이너 등의 수식어가 붙지만, 정작 자신은 디자이너가 아니라고 말하는데. 뉴진스와 협업한 후지와라 히로시는 어떤 인물일까?
후지와라 히로시
스트리트 패션의 대부
일본의 뮤지션이자 패션 디자이너. 90년대 하라주쿠 뒷골목에서 스트리트 문화를 이끈 상징적인 인물이다. ‘스트리트 패션의 대부’로 불리지만 그는 유명 패션 학교를 졸업한 적도, 럭셔리 브랜드에서 일한 적도 없다. 어떤 계기가 있다면 패션과 음악이 좋아 미국으로 갔다는 것?
어느 날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숀 스투시를 만난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스트리트 브랜드 스투시를 만든 남자다. 숀은 자신의 싸인이 담긴 티셔츠와 서핑 보드를 일본에 유통해달라 제안했고, 히로시는 도쿄로 돌아와 스투시를 론칭한다. 그를 통해 서핑과 스케이트 보드, 펑크, 힙합 등 서브 컬처와 결합한 스트리트 문화가 일본에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베이프, 휴먼메이드, 비즈빔, 네이버후드 등 지금 우리에게 친숙한 일본의 스트리트 브랜드 또한 그의 손을 거쳤다. 그가 비즈빔의 나카무라 히로키에게 영국 그룹 ‘FUN BOY THREE’ 앨범 자켓을 보여주며 모카신을 제안했고, 이를 계기로 비즈빔의 베스트셀러 FBT 슈즈가 탄생했다는 건 유명한 얘기. 베이프, 휴먼 메이드를 만든 니고의 이름은 ‘후지와라 히로시 2호’에서 비롯됐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프라그먼트 디자인
생각을 디자인하다
나는 디자이너가 아닌 방해꾼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일상적이라 생각하는 것에 변화를 주죠. 편한 것은 패션이 아닙니다. 사람을 어딘가 불편하게 만들고 도전하게 해야 패션이지요. 나는 디자인 스케치도 단 한 번 해보지 않았습니다. 대신 사람들 생각을 디자인하는 ‘콘셉트 디자인’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일보 인터뷰
후지와라 히로시는 사실 디자이너가 아니다. 직접 스케치하거나 패턴을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하는 것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컨셉을 정해주는 것. 전체적인 컨셉을 만들고, 이미 존재하는 것에 약간의 디테일과 편집을 더한다. 단순화된 제품이 아닌 상품화된 아이디어를 파는 것이다.
그의 브랜드 프라그먼트 디자인은 협업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때 ‘브랜드와의 협업’보단 ‘사람과의 협업’이란 표현을 쓰는데, 이는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작업을 이어 나간다는 뜻. 상대의 베이스는 건드리지 않고 최소한의 디테일을 얹는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제품이 품절돼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와 무언가 만드는 걸 즐길 뿐,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것. 그저 하고 싶은 걸 하는 그에겐 협업 파트너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
협업 장인
요망한 번개
후지와라 히로시와 나이키의 협업은 스니커즈 씬을 발칵 뒤집었다. 추첨권을 받기 위해 3천 명의 인파가 모였고, 번호가 불리길 간절히 기도해야 했을 정도. 2014년 23만 원으로 발매됐던 신발의 현재 가격은 300만 원을 호가한다. 기존 디자인에서 컬러를 바꾸고, 번개 로고 하나를 더했을 뿐인데.
프라그먼트 디자인의 번개 로고는 ‘요망한 번개’로 불린다. 번개 로고 하나만 붙으면 가격이 배로 뛰었고, 리셀 시장마저 확장됐기 때문. 제한된 수량으로 제품을 출시해 희소성을 높인 것 또한 사람들을 열광케 했다.
그는 나이키 HTM 라인을 이끌기도 한다. 후지와라 히로시(H)와 나이키 디자이너 팅커 햇필드(T), 나이키 대표 마크 파커(M)를 중심으로 한 프리미엄 라인이다. HTM은 나이키 신기술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실험의 장. 나이키 덩크, 에어 조던 등 클래식 아카이브를 바탕으로 새로운 콘셉트를 탐구하기 때문에 상업성에서도 자유롭다. 일본에 온 팅커 햇필드와 마크 파커에게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준 것에서 시작된 일이다.
컨셉 스토어
공간을 낯설게 하기
후지와라 히로시의 협업은 패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아니 어쩌면 공간도 패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달까. 그의 아이디어는 컨셉 스토어로 확장되어 패션과 건축, 인테리어, 브랜딩의 융합을 시도한다. 무슨 제품을 어떻게 보여줄지를 생각한 것이다.
작은 수영장을 개조해 만든 더 풀 아오야마가 대표적이다. 낡고 오래된 수영장이 밝고 깨끗한 콘셉 스토어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전의 기억을 가진 수영장 사다리와 투명한 유리 바닥, 그리고 이곳에 놓인 한 장의 티셔츠는 비일상적인 감각을 불러 일으키며 수집하고 싶은 작품이 된다. 수영장이라는 익숙한 공간과 이곳에서 구매하는 슈프림 티셔츠 모두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편의점의 탈을 쓴 옷 가게도 있다. 편의점을 컨셉으로 한 콘비니다. 까만 비닐봉지 속에 편의점에서 볼법한 물병과 샌드위치가 들어있지만, 이 안에 들어있는 건 티셔츠와 반다나. 사람들은 마치 편의점에 온 듯 가볍게 패션 아이템을 구매하고 나간다.
패션지 하이스노바이어티는 그를 ‘이 시대의 뒤샹’이라고 명명한다. 익숙한 것을 낯선 것으로, 새로운 발견을 통해 다른 가치를 만든다는 점에서 말이다. 평범한 소변기에 서명과 날짜를 새겨 전시했던 뒤샹과 낯선 생각을 디자인하는 후지와라 히로시. 오늘날 예술과 창의력이란 단어를 재정의한다는 점에서 이 둘은 어딘가 닮아있다.
후지와라 히로시의 협업 컬렉션
뉴진스부터 태그호이어, 나이키까지. 장르와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그의 협업을 살펴보자.
뉴진스의 일본 데뷔 싱글 <Supernatural> 발매를 기념한 협업. 티셔츠, 반다나, 모자, 가방 등을 선보인다. 티셔츠에는 후지와라 히로시의 손글씨로 적은 멤버들의 이름이 프린팅되어 있다.
시계의 가장 기본적인 요소만을 드러내고자 했다. 빨간색 인덱스와 래커 처리된 핸즈, 케이스백에 부분적으로 드러난 무브먼트가 그 핵심이다. 광택 처리된 스틸 브레이슬릿은 움직일 때마다 미세한 빛을 포착해 낸다.
스테인리스 스틸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그래픽에서 영감받은 화이트 링을 그려 넣었다. 단순하고 클래식한 디자인과 함께 대담함이 느껴진다.
인덱스 없는 검정 다이얼에 날짜 창이 전부. 단순한 디자인 아래로 번개 로고가 그려져 있다. 블랙과 그레이의 나토 스트랩은 스트릿 패션의 거친 느낌을 더한다. 불가리 시계에 나토 스트랩은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번에는 왠지 납득되는 느낌.
2014년 발매된 프래그먼트 에어 조던 1에서 영감받았다. 바랜 듯한 컬러의 미드솔, 흰색 가죽으로 만든 쿼터와 토박스, 선명한 파란색이 특징이다. 뭔가 이상한거 같다고? 맞다. 스우시 모양이 뒤집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