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싱은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올림픽의 주역이 되어 대한민국을 들썩이기도 했고, 드라마 소재로 탈바꿈해 안방극장을 울고 웃게 하기도 했다.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탄탄한 인지도의 스포츠 종목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그럼에도 심리적 거리감이 드는 건 직접 펜싱 칼을 쥐어본 사람은 소수 중의 소수이기 때문 아닐까. 취미 펜싱, 말 자체로 생경하지 않은가.
섣불리 시도하지 못하는 건 여러 이유가 있겠다. 귀족 스포츠라는 별명이 붙을 만큼 값비싼 운동이라는 인식 때문일 수도, 순식간의 순발력 경쟁을 해낼 자신감이 없어서일 수도 있다. 팔만 휘휘 젓는 것처럼 보이는데 운동이나 되겠냐는 기고만장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펜싱은 취미가 될 수 있을까? 에디터는 궁금했고, 그래서 직접 해봤다.
펜싱 원데이클래스를 듣다
걱정 마, 내돈내산이니까
시작은 클럽 선택부터
에디터가 방문한 곳은 도쿄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준호 선수가 운영하는 신사역 부근의 펜싱 클럽이었다. 원데이클래스 기준 금액은 7만 원으로, 5만 원 내외 선이었던 타 클럽 대비 가격대가 조금 있는 편. 하지만 대부분의 클럽이 여러 명이 함께 진행하는 클래스인 데 비해 수업 내내 1:1로 코칭을 받을 수 있다는 확실한 메리트가 있었다. 운동복 바지와 실내 운동화는 개별 준비물이니 참고하자.
펜싱은 대표적으로 플뢰레(Fleuret), 에페(Épée), 사브르(Sabre) 세 종목으로 나뉜다. 어떤 종목이냐에 따라 경기 방식, 공격 부위, 사용하는 장비까지 모두 다르다. 이를 알아둬야 하는 이유는 펜싱 클럽마다 다루는 종목이 상이하기 때문. 본인이 방문한 곳은 사브르만을 가르치는 곳이었다. 사브르는 종목 중 유일하게 찌르기와 베기가 모두 허용되는 만큼 시원시원한 경기가 특징이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수업은 가벼운 몸풀기 운동으로 시작한다. 가장 먼저 배우는 건 자세도 규칙도 아닌 인사다. 어텐션(Attention), 살뤼(Salut). 차렷, 경례의 의미이며 프랑스 스포츠이니 용어도 모두 프랑스어다. 실제로 상대방에 대한 예의와 존중의 표현은 펜싱의 오랜 전통이다. 명예를 중시하는 신사들이 결투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했기 때문. 그래서인지 운동의 차원을 넘어 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으로 느껴졌다.
이후에는 준비 자세인 앙 가르드(En Garde), 전진과 후퇴를 뜻하는 마르셰(Marche), 롱빼(Rompre)를 순차적으로 익혔다. 펜싱은 몸으로 하는 체스라 불릴 정도로 심리전이 중요한 종목이니만큼 스텝이 큰 부분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구본길 선수가 자신의 선수 생활을 ‘나의 마르셰는 끝나지 않았다’는 말로 표현했었는데, 펜싱에서 마르셰가 얼마나 상징적인 기술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앞뒤로 이동하는 중에도 발과 발 사이는 한발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데, 이게 생각 이상으로 집중력을 요했다. 정신이 흐트러지면 일순간에 스텝이 꼬이기 일쑤였고, 자세 유지를 위해 밸런스를 맞추는 것도 쉽지 않았다. 걸음걸음에 온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 거울에 비치는 엉거주춤한 모습에 민망한 시간도 잠시뿐, 어느 순간 완전히 몰입한 자기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펜싱이 하체 운동인 이유
수업의 하이라이트는 팡트(Fente)였다. 펜싱의 대표적인 공격 동작으로, 앞발을 쭉 찢으면서 상대를 가격한다. 따지고 보면 반복적으로 런지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자세. 유럽의 경우 손을 많이 쓰지만, 우리나라는 발펜싱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발로 승부를 보는 플레이가 주를 이룬다. 실제 수업에는 하체 훈련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고. 자고로 남자는 하체인 만큼 남자에게 적격인 운동이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부끄럼이 남아 있던 탓인지 소극적인 속내가 동작에 그대로 담겼다. 상대방을 찔러야 목숨을 건사할 수 있다는 상황을 코치님에게 부여받고 나서야 과감한 모양새가 나오기 시작했다. 양발의 간격과 허벅지로 전달되는 자극의 정도는 완벽한 정비례 관계. 펜싱 선수들의 하체가 왜 그렇게나 대단한 건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첫 장비 착용
드디어 칼을 쥘 시간. 펜싱이 귀족 스포츠로 알려지게 된 데는 장비값이 한몫을 한다. 실제로 개인 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몇백만 원은 족히 깨지니 아니 땐 굴뚝의 연기는 아닌 셈이다. 하지만 가벼운 취미러는 걱정 마시길. 펜싱 클럽에 공용 장비가 구비되어 있으니 대여해서 사용하면 그만이다. 좀 더 본격적으로 발을 담가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 장비를 사도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파지법을 배운 후 칼을 처음으로 치켜들었다. 맨손으로 하던 자세를 펜싱 칼과 함께 하니 또 다른 느낌이 들었다. 코치님의 지도에 따라 자세를 교정하고 마르셰, 롱빼, 팡트를 다시금 연습했다. 나의 첫 공격 대상이 된 건 마스크를 쓴 코치님의 머리. 마스크와 칼이 부딪칠 때 팔을 타고 흘러 들어오는 타격감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호쾌함이었다.
이제는 실전
남자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베야 하니까. 마지막으로 장비를 갖춰 입고 코치님과 가볍게 경기를 가졌다. 일일 강좌임에도 바로 실전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건 꽤나 큰 메리트로 다가왔다. 잠시 탁구를 배웠던 시절에 한 달 내내 자세 연습만 하는 바람에 흥미가 파사삭 식었던 기억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취미를 지속하게 하는 건 무엇보다도 재미 아니겠는가.
장비 자체도 신기했는데, 전자식으로 되어 있어 유효 부위를 가격하면 자동으로 점수가 올라가는 시스템이었다. 수업 때 배운 스텝과 공격법으로 미숙하지만 나름 치열한 공방을 펼쳤다. 코치님이 봐주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만, 그럼에도 내 쪽 전광판에 불이 들어올 때마다 피어오르는 미소.
마네킹과 싸우는 게 아니다 보니, 나 혼자 신나게 칼을 휘두르기만 할 수는 없는 노릇. 당연히 보호 장비를 착용하지만 경기를 하다 보면 본인이 맞는 일 또한 허다하다. 평소 겁이 많다면 현실적으로 배우는 과정이 험난할 수 있다. 그렇지만 통계적으로 따졌을 때 펜싱은 비교적 안전한 스포츠에 속하니 너무 무서워 말자. 흔히들 하는 달리기나 자전거보다 오히려 부상률이 낮은 편이다.
결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였다. 경기를 마무리하니 어느덧 수업을 마칠 시간. 클래스는 1시간가량 진행됐다. 수업이 상당히 압축적으로 구성돼 있어, 짧은 시간임에도 취미 후보로 경험해 보기에는 충분했다.
취미 펜싱 실전 요약
몸으로 느낀 점
이런 점이 좋았다
- 일단 재밌다. 남자라면 다들 칼싸움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은가. 배운 기간이 짧아도 바로 실전에 돌입할 수 있는 점도 메리트다.
- 진입 장벽이 높지 않다. 수강생의 성비는 반반, 연령은 초등생부터 50대까지 폭넓다. 남녀노소 누구라도 하기 좋은 운동이라는 뜻.
- 운동량이 생각보다 꽤 된다. 기초 체력 단련도 가능하고, 특히 하체 운동 강도는 어마어마하다. 하체가 중요한 남자에게 특히 좋은 이유다.
- 그럴듯하면서 희소성이 있는 취미다. 웬만해선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을 찾기 어려운 만큼, 이야깃거리로 꺼내면 그 자리의 주인공은 바로 나.
고려 사항도 있다
- 가격대가 있다. 장비는 빌릴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레슨비 자체가 저렴한 편은 아니다. 당연히 클럽마다 가격은 상이하니 잘 알아보도록 하자.
- 등록 전에 어떤 종목을 다루는 곳인지 체크하자. 사브르를 배우고 싶었는데 플뢰레만 다루는 곳이면 난처해진다. 원데이클래스도 1:1인지 다수로 진행하는지를 미리 파악하고 취향껏 선택하자.
- 남을 때리는 만큼 본인도 맞아야 한다. 보호 장비 덕에 큰 부상의 위험은 적지만 멍 정도는 쉽게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겁이 많은 편이라면 배우는 과정이 쉽지 않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