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아식스가 한 일반인과 협업했다. 그 일반인이 누구냐고? 알려진 건 거의 없다. 인스타그램 계정 히든 뉴욕(@hidden.ny)을 운영하는 영국 출신의 20대 남성이라는 정도 뿐.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도, 거대한 자본가도 아니었다. 한 가지 특이점이 있다면, 자신의 취향을 나열한 인스타그램 무드 보드를 운영했다는 것.
히든 뉴욕
시작은 인스타그램
그는 온종일 인터넷을 돌아다녔다. 영감이 되는 이미지를 찾고, 이를 모아 인스타그램에 올렸을 뿐이다. 그가 모은 건 스트리트 패션, 스니커즈, 자동차, 시계, 아트워크와 같은 것들. 좋아하는 것을 한 곳에 담아 전시했고, 그 위에 ‘Past, Present & Future’라는 슬로건을 달았다. 과거와 현재, 미래의 패션 및 음악 문화를 살펴본다는 뜻이다.
히든 뉴욕은 시작한 지 불과 1년 만에 수십만 명의 추종자를 갖게 됐다. 한 사람의 감각에 많은 이들이 매료된 것이다. 1980년대 발표된 카멜 담배의 홍보 이미지, 몇 년 전 발표된 트래비스 스캇의 믹스테잎 등 한 개인이 사물 곳곳에서 느낀 아름다움은 사람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하나의 브랜드가 되다
감성 말고 물건도 팔아요
히든 뉴욕은 거대한 셀럽의 마음마저 사로잡았다. 퍼렐, 릴 야치, 버질 아블로, 로니 피그 등 패션 문화계 인물들이 히든 뉴욕을 팔로우했고, 드레이크는 직접 DM까지 보냈다. 히든 NY이 파는 옷을 사기 위해서다. 2019 NBA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드레이크가 입은 비즈빔 재킷이 바로 그 옷이다. 이후 히든 뉴욕 운영자는 드레이크와 절친한 친구가 됐다고 한다. 드레이크의 새 음악을 먼저 들어볼 만큼.
놀라운 일은 계속해서 일어났다. 세계적인 브랜드와 함께 일하자는 러브콜이 빗발친 것이다. 히든 뉴욕은 나이키와 살로몬, 니들스, 골드윈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했고, 히든 뉴욕의 독특한 무드를 입은 제품들은 출시마다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히든 뉴욕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브랜드 Hidden을 론칭했고,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디자인한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양말과 후디, 재털이, 가구 등 모든 것에 히든 뉴욕을 상징하는 h 로고를 붙였다.
하지만 히든 뉴욕 제품을 구매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공식 홈페이지에 들어가려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밀번호 찾기 기능도 없다. 비밀번호를 알아낼 방법은? 히든 뉴욕의 유료 커뮤니티 서비스 Hidden RSRCH에 가입하는 것뿐. 이 서비스에 가입하면 취향에 맞는 패션 소식과 함께 비밀번호를 알려준다고 한다.
취향은 최고의 브랜딩 방법
어떤 가치를 보여줄 것인가?
히든 뉴욕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펴보면 유기적인 느낌이 든다. 하나하나 계획되고 정돈된 느낌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 비슷한 무드와 방향을 나타내고 있달까. 이 시계와 자동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무슨 옷을 입고, 어떤 태도로 삶을 대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캐릭터가 그려진다. 이렇게 일관된 이미지 속에 광고 상품을 하나 끼워 넣는다 해도 어색함은 없을 것이다. 기존 이미지와 어우러져 하나의 통일된 무드를 만들 뿐.
다른 사람에게서 찾지 마세요. 무엇이 당신에게 영감을 주었는지, 무엇이 당신의 취향을 발전시켰는지에 집중하세요. 그리고 그것을 표현하세요. 이 세상에서 눈에 띄는 유일한 방법은 독특해지는 것입니다.
– <Highsnobiety> 인터뷰에서
이는 개인의 취향이 가장 좋은 브랜딩 방법임을 말해준다. 지금은 정보가 너무 많아, 오히려 자신만의 취향을 갖추기 어려운 시대. 쏟아지는 취향 사이에서 자신의 것을 선별하고 만들어낸 ‘취향 유기물’은 보다 쉽게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나열이 내 일상 사진보다 날 더 잘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당장 나만의 무드 보드를 시작해야 할 때다. 언젠가 제2의 히든 뉴욕을 넘어선, 세계적인 브랜드를 갖게 될지도 모르니.
브랜드가 사랑한 히든 뉴욕
무드 보드에서 패션 커뮤니티로, 그리고 하나의 브랜드로 성장한 히든 뉴욕. 세계적인 브랜드와 히든 뉴욕이 함께한 협업 아이템을 소개한다.
화이트 메쉬 어퍼에 히든 뉴욕을 상징하는 초록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픽셀처럼 처리한 h 로고는 히든 뉴욕이 디지털 뿌리를 둔 것에 대한 경의의 표시. 지난 3월 뉴욕에선 두 브랜드의 협업을 기념하는 팝업 스토어가 열리기도 했다.
지샥 창립 40주년을 기념한 협업. 레진 소재의 케이스와 스트랩은 반투명한 옐로 컬러로 변색 걱정을 미리 덜었다. 시계를 뒤집으면 히든 뉴욕의 시그니처 이미지가 나타나며, 백라이트를 켜면 다이얼에 히든 뉴욕 로고가 표시된다.
크림 컬러와 에메랄드 그린 컬러의 조합이 산뜻하다. 살로몬 XT-4을 기반으로 했으며, 하이킹 또는 트레일 러닝에 적합하다. 스니커헤드 사이에서는 이청아가 신은 신발로 더 유명하다.
헤어리한 스웨이드 가죽이 돋보이는 클락스 오리지널 왈라비 부츠. 메이플과 코발트, 그린 총 세 가지 컬러가 있으며, 측면 h 로고는 각기 다른 컬러로 새겨졌다. 일반 왈라비 부츠보다 한층 두터운 아웃솔을 적용하여 보다 편안하다.
히든 뉴욕 운영자의 팬심 가득 담긴 협업. 어릴 적 일본 스트리트 브랜드를 좋아했던 마음은 니들스와의 협업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비뚤비뚤한 티셔츠 라인은 사용하고 남은 원단을 재사용한 흔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