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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헬스’ 전문가가 아니다. 스포츠 의학이나 해부학적 지식도 얄팍하다. 하지만 헬스에 대한 애착과 자긍심만큼은 소위 ‘헬창’ 못지않다고 생각한다. 지난 3년간 헬스를 꾸준히 해왔고, 나름 이런저런 공부도 계속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몸이 좋은 것은 아니고, 무게를 많이 드는 편도 아니다.
감히 헬스에 대해 왈가왈부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배경이다. 그래도 생전 처음으로 운동이라는 것을 배워 볼 결심을 한 사람들에게 약간의 자신감과 소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얘기는 있다. 헬스가 세상 모든 운동 중 가장 훌륭한 운동이라는, ‘헬스 만물설’이 그것이다. 다만, 그 ‘설’에 이르는 내 나름의 논리는 조금 다를 수 있을 듯하다.
헬스라고 다 같은 헬스가 아니다
헬스 경력이 긴 편은 아니지만, 운동 일반으로 따지자면 아예 무지렁이는 아니다. 과거 7년 간 아마추어 및 프로 복싱 선수 생활을 했었고, 이후 10년 넘게 건강 관리 차원에서 운동을 지속해왔다. 선수 시절 연을 맺었던 타 종목 선수 혹은 트레이너들 덕에 다른 운동도 접해봤는데, 무에타이와 레슬링은 흉내는 낼 수 있을 정도로 배웠고, 요가나 수영 등의 운동도 ‘찍먹’ 수준으로 해봤다.
내가 지금껏 접했던 모든 운동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헬스’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선수가 어느 정도 전문적인 수준으로 접어들면, 이 ‘헬스’가 경쟁에서의 승패를 좌우한다고까지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들이 말하는 ‘헬스’는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헬스와는 조금 다르다. 똑같은 턱걸이, 팔굽혀펴기, 역기 들기 등의 동작을 해도 목표와 원리의 차이가 뚜렷할 수 있다.
운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훈련들이 헬스장에서 하는 훈련들과 같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사실 ‘헬스’라는 표현은 우리나라만 사용하는 용어로서, 굉장히 다양한 종류의 운동을 포함한다. 보디빌딩, 웨이트 트레이닝, 컨디셔닝, 파워리프팅, 스트렝스 훈련, 펑셔널 트레이닝 등 꽤 많은 수의 훈련 방식 혹은 종목을 아울러 부르는 용어이다.
대개의 경우 ‘헬스’는 근육미를 목표로 하는 보디빌딩의 동의어로 간주되며, 비교적 최근까지 헬스장에 등록하면 받을 수 있는 훈련 또한 보디빌딩 식 훈련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요즘 들어서는 근육미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체력 증진, 신체 기능 발달, 타 운동 수행 시 퍼포먼스 증대, 치료나 재활 등 다양한 목적에 부합하는 훈련 프로그램들을 제공하는 곳이 많아졌다.
이처럼 헬스의 수행 방식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 근본적인 출발점은 동일하다. 수많은 근육 부위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효율적으로 응용해 근육과 근육의 기능성을 강화하는 것이 제1의 목표이다. 쉽게 말해, 근육을 제대로 쓰는 법을 익히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로 출발해 근육의 크기를 키우거나, 근육 움직임의 범위를 넓히거나, 특정한 몸동작을 더 강화하는 등 세부적인 목표에 맞는 훈련 방식으로 뻗어나가는 것이 헬스이다.
물론 헬스장에서 묻지도 않았는데 근육과 근육의 움직임을 해부학적으로 설명해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러나 ‘나는 식스팩을 만들 거야’, ‘나는 다이어트를 할 거야’ 같은 막연한 목표보다는, 헬스의 근본적인 목적인 근육과 근육의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선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더 제대로, 빠르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트레이너가 먼저 알려주지 않더라도, ‘저는 운동을 원리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어요’라고 요청해보자. 대부분은 기다렸다는 듯 근육에 대한 그들의 해박한 지식과 함께 당신의 모든 근육을 탈탈 털어줄 것이다.
운동을 처음 한다면, 무조건 헬스부터
제대로 운동을 배우는 것이 처음이라면, 나는 헬스로 시작하기를 권한다. 헬스가 우월해서도 아니고, 헬스를 해야만 다른 운동을 잘해서가 아니다. 헬스는 다른 운동 종목과 같이 순위 싸움이나 기록을 위한 것과는 거리가 있다. 근육을 어떻게 하면 더 잘 쓰고 발달시킬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 만큼, 자신의 몸과 운동 신경에 대한 교과서적 이해를 함양하기에 가장 적합하다.
앞서 다른 운동 종목에서 행하는 ‘헬스’가 우리가 생각하는 ‘헬스’와 다르다고 언급했다. 각 종목은 운동 특성에 맞는 특정 근육, 특정 근육 기능을 더 발달시켜야 하기 때문에, 선택과 집중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물론 코어와 같이 종목을 막론하고 필수적으로 단련해야 할 부위도 있다). 예를 들어, 복싱의 경우 어깨, 전완, 삼두, 대퇴사두, 종아리 등의 근육 개입이 많은 편이라 이 부위들을 단련할 수 있는 훈련에 집중한다. 또한, 근육의 매스를 키우는 것보다는 장기간 여러 차례 펀치를 내거나 풋워크를 할 수 있는 지근 발달을 위한 훈련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문제는, 국가대표 선수촌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어떤 종목이 되었든 일반 체육관에서 전문적인 ‘헬스’ 프로그램을 제공받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프로 선수들이나 국가대표 선수들 같은 경우 기술 훈련 외에도 스트렝스·컨디셔닝 코치가 따로 있어 제대로 된 근육 훈련을 받을 수 있지만, 비선수들이 대중적으로 접할 수 있는 체육관에서 기술 훈련 외에 근육과 관련한 적확한 트레이닝을 제공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덤벨이나 바벨 등의 기구를 사용해 이런저런 동작을 하라고 알려주기는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지도자들이 선수 시절, 혹은 곁눈질로 배운 동작을 원리에 대한 이해 없이 부정확한 자세로 가르치거나 관절과 인대에 무리가 갈 수 있는 방향으로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확한 동작은 정작 각 종목에서 발달시키고자 하는 근신경 발달로 직결되지 않아, 엉뚱한 부위를 발달시키거나 비효율적인 훈련 프로세스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수학을 할 때도 단순히 암기해서 문제를 푸는 것과 원리를 알고 문제를 푸는 학생들의 수준은 시간이 갈수록 벌어지지 않는가. 운동도 마찬가지다. 어떤 종목을 선택하든, 모든 것은 정확하고 적절한 근육과 관절의 움직임에서부터 시작한다. 무작정 뛰어들지 말고, 기초 공사부터 착실히 다져놓자. 헬스로 시작해 헬스를 계속하든 다른 운동으로 가든, 기초만 잘 잡혀있다면 더 건강하고 효율적인 성장이 가능할 것이다.
건강한 삶, 더 다양한 스포츠 활동을 위해서
‘만일 죽을 때까지 하나의 운동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라는 질문이 던져진다면, 나는 주저 없이 헬스를 택할 것이다. 일단 건강 측면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나이가 들수록 근력 운동에 신경써야 한다는 것은 일주일에 수 차례씩 신문 기사로 접할 것이다. 평균적으로 30대 전후 근육이 감소하기 시작하는데, 60세 이상은 약 30%, 80세 이상은 약 50%의 근육을 손실하게 된다. 관절을 단단하게 지지해주는 근육이 약화되면서 걷고 앉아있는 등의 활동이 불편해지고, 심혈관질환을 포함한 만성질환의 위험도 상승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다. 때문에 근육도 연금처럼 차곡차곡 쌓아놔야 한다.
거듭해서 말하지만, 헬스가 건강한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왕도는 아니다. 다만, 원하는 부위를 가장 직접적으로 타게팅해 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효율적’이다. 또한, 정확한 원리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헬스는 부상 위험도 낮춰준다. 책상에 앉아있는 시간이 많은 사람의 경우 특히 젊은 나이부터 허리디스크나 거북목 현상 등으로 일찌감치 고생을 시작하는데, 헬스를 통해 더욱 빠른 개선 효과를 봤다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건강 외적인 이유도 있다. 헬스 외 다른 운동을 할 때 퍼포먼스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나의 경우 선수 시절 배웠던 근육 훈련과 헬스를 배우고 난 후 근육훈련 사이에서 매우 큰 간극을 느낀다. 더 젊고 더 건강했던 선수 시절보다 오히려 지금 가용할 수 있는 근력, 지구력, 순발력 등이 더 효과적으로 느껴진다. 물론 지속적으로 운동하며 노하우가 쌓인 탓도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 과거와 현재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확한 판단이 아닐 순 있다.
하지만 선수 시절이 아니더라도 불과 1년 전과 지금을 비교했을 때 차이도 확실히 느껴진다. 예컨대, 복싱 훈련 중 펀치를 낼 때 과거 습관대로 내는 것과, 좀 더 적절한 근육을 컨트롤하며 냈을 때의 파워는 확실한 차이를 보였다. 나의 사례가 아니더라도, 프로 골퍼인 지인 또한 웨이트 트레이닝 프로그램에 집중한 이후 스윙할 때 실리는 파워와 비거리 상승뿐만 아니라, 허리에 가는 부담도 확실히 줄었다고 한다. 실제로 유명 스포츠 스타들이 기술 훈련보다 스트렝스·컨디셔닝 훈련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도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헬스 만물설을 위한 변명
헬스가 모든 운동 중 가장 우월하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모든 운동의 중핵에 있는 ‘근육’에 대해 가장 치열하게 고민하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운동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물론 헬스가 여전히 보디빌딩 식의 육체미 훈련 일변도 경향이 있지만, 전보다 많은 트레이너들이 건강을 위한 훈련이나 기능성 운동의 장점을 발굴해 대중에게 소개하는 추세도 늘어나고 있다. 꼭 ‘헬창’이 아니더라도, 헬스의 다채로운 매력에 심취한 동호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나의 몸을 더 잘 알고 더 잘 쓰기 위한 첫걸음, 바로 이 의미라면 나는 헬스 만물설을 강력하게 주창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