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빠르게 음식은 기술과 데이트를 시작했다. 기술을 주제로 한 글을 쓰는 필자에게 음식은 기술이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인간다움’의 영역에 있는 듯했다. 푸드테크라는 이름으로 기술이 음식을 만들고, 배달하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
푸드테크, 고정관념을 뒤엎다
음식과 기술의 조합어인 푸드테크는 식품 산업에 다양한 기술이 합해진 것을 말한다. 음식을 가공 보존하는 기술인 ‘푸드 테크놀로지‘와는 조금 다르다. 이는 식품 관련 기술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말로, 크게 음식 배달과 대체식 제조, 음식 제조 및 판매, 음식점 관리 기술로 나뉜다. 한마디로 식품과 소비자에 연관된 기술 분야라 생각하면 쉽다. 식자재를 생산하는 것부터 푸드테크라고 보는 관점도 있지만, 그 분야는 ‘농업테크(AgriTech)‘라는 말로 지칭되어 경계가 모호하다.
푸드테크가 떠오르기 시작한 시기는 2014년, 비노드 코슬라가 설립한 코슬라 벤처스(Khosla Ventures)가 집중 투자를 하면서부터다. 당시 푸드테크 전체 투자 금액은 10.7억 달러로 2013년 대비 272%나 늘어났다. 푸드테크의 급성장에 놀랐던 이유는 음식은 로우테크 영역이라 기술이 들어갈 구석이 많지 않다고 생각한 탓이다. 로봇 주방장? 지금도 음식 공장에선 기계가 음식을 생산하고, 배달? 어차피 사람이 한다. 대체 음식? 예전부터 콩고기가 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
푸드테크 기업은 그런 고정관념을 깼다. ‘저스트’에서 만든 ‘저스트 에그’는 녹두를 원료로 만든 달걀 맛 식품 재료다. 이 재료를 프라이팬에 넣고 요리하면 스크램블 에그나 오믈렛 등을 만들 수 있다. ‘임파서블 푸드’에서 만든 ‘임파서블 버거’는 고기 맛을 내는 성분을 분석하여 식물 단백질에 더 했다. 덕분에 고기의 식감, 육즙, 풍미를 내는 대체 고기를 만들 수 있었다. 아울러 FDA로부터 안전 인증도 받았다.
푸드테크가 인류를 구하진 못하겠지만
푸드테크가 이끄는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슈가로직스는 모유 올리고당 성분을 이용해 건강에 좋은 설탕을 연구하고 있다. 임팩트비전은 인공지능을 이용해 식품을 분석, 신선도나 유효기간을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했다. 미미카에서 만든 스마트 식품 라벨은 유통기간이 지나면 라벨이 우그러들면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한다. 웨스트레스의 슈퍼마켓 솔루션은 유통기간이 가까워지면 식품 가격을 자동으로 저렴하게 책정해 음식이 버려지는 일을 줄인다.
푸드테크가 이끄는 변화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슈가로직스는 모유 올리고당 성분을 이용해 건강에 좋은 설탕을 연구하고 있다.
배달 솔루션으로 인해 유명 맛집 음식을 배달시켜 먹을 수 있게 되고, 산지 직송으로 신선한 음식 재료를 구할 수 있고, 3D 프린터로 음식을 출력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까지 말하려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니 넘어가자.
푸드테크가 성장할 수 있던 배경에 산업 곳곳에 퍼져나가기 시작한 디지털화 경향, 인구 급증과 도시화로 인한 식량난, 기후 변화 등으로 인해 환경을 지켜야 한다는 의식 변화, 채식주의 등 건강과 자연을 생각하는 소비자가 있다는 사실도 일단 언급만 하기로 한다.
일각에서는 푸드테크에 대한 비판도 존재한다. 특히 ‘만들어진 음식‘을 ‘조작된 식품‘으로 보는 주장은 예나 지금이나 강력하다. 이런 변화를 카운터 컬처와 자본주의 주류 문화가 만나 만들어진, 미국의 보보스(부르주아 보헤미안) 문화가 대중화됐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분명히, 고기가 없는 고기의 시대로 넘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있다. 어쩌면 영화 ‘옥자‘처럼, 자본주의 육식 시스템을 넘어설 방법을 찾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푸드테크가 그런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성급한 감이 있지만, 틈새일지라도 어떤 산업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