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탄막을 피하듯 학교 선생님과 부모님, 그리고 의외의 천적인 ‘부모님 친구’들의 눈을 피해 필사적으로 오락실에 입장했던 그리운 추억. 무사히 입성 하더라도 무서운 형들의 호출에 불려 나가 ‘삥’을 뜯기기도 하고, ‘얍삽이’를 쓴다고 오락기 너머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얻어맞기도 했던 문명과 야생이 공존했던 공간. 그렇게 금기시되면서도 짜릿했던 추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지금이야 멋진 게임들이 스팀 라이브러리에 넘쳐흐르지만, 가끔은 콘크리트 바닥 위로 담배 연기와 먼지 자욱했던 오락실의 정취가 그리울 때가 있다. 다행히 요즘은 레트로 열풍 덕에 과거 오락실 게임을 PC나 콘솔로도 플레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의외의 복병을 만났다. 어떤 게임인지 기억은 나는데, 도무지 이름이 생각이 안 나는 것. 오락실과 손잡고 기능을 상실해가는 당신의 기억력을 위해 준비했다. 뭔지는 알아도 이름은 가물가물해진 그 멋진 오락실 게임 7개의 이름을 되찾아보자.
더 그레이트 래그타임쇼(부기윙스)
처음부터 이런 생소한 이름이. 하지만 다음의 두 단어를 들으면 무릎을 ‘탁’ 칠 것이다. ‘갈고리 비행기’. 이제 기억이 나는가? 마치 <태조 왕건>의 궁예처럼 갈고리에 매달린 철퇴로 용맹하게 적들의 뚝배기를 깨고 폭탄도 매달고 심지어는 대롱대롱 매달고 다니던 비행기의 모습을. 이 게임의 이름이 바로 <더 그레이트 래그타임 쇼(The Great Ragtime Show)>, 수출판 이름으로는 <부기 윙스(Boogie Wings)>라고 한다.
이 게임의 진정한 매력은 정신 나간 게임 센스와 그에 걸맞은 스펙타클한 게임 플레이에 있다. 비행기가 격추되었을 때 파일럿이 튀어나와 전차부터 스카이 콩콩까지 타고 다니면서 적들을 유린하는 그 게임성은 현란하다는 표현도 부족할 정도. 지금 생각해보면 어떻게 이런 것을 2D 스프라이트로 구현해냈는지 경이롭기까지 하다. 오락실에서 어깨너머로 구경하던 맛도 일품이었다.
야구격투 리그맨(닌자 베이스볼 배트맨)
이 게임을 빼놓고서는 오락실을 논할 수 없다. 팩 소주와 컵라면이 머리 위로 날아다니던, 혼돈과 파괴가 가득하고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90년대의 야구장. 그 열기를 오락실까지 이어간 인기작, <야구격투 리그맨>이 그 주인공이 되시겠다. 여러분의 추억 속에 ‘빠따맨’ 혹은 ‘야구왕’으로 각인되어 있는 그 게임이 맞다.
귀여운 캐릭터와 발랄한 모션과는 정반대로 ‘빠따’를 들고 살벌하게 야구공들의 먼지를 털어주는 박력 넘치는 타격감은 그 당시 야구장의 아비규환과 어딘지 닮아있다. 아이렘 특유의 독특한 테이스트와 고퀄리티 그래픽으로 언제나 기계 앞에 사람들이 붐비던 명작. 특히나 성능이 좋은 초록 빠따맨을 고르기 위해 친구들과 눈치 싸움을 했던 추억은 그립기만 하다.
나이트 스트라이커
체감형 게임기는 그야말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오락은 100원을 넣고 해야 한다는 초딩들의 고정관념을 무참히 박살 내며 무려 200원(혹은 그 이상)을 넣어야 했던 체감형 게임은 쉽사리 접근하지 못할 포스를 풍겼다. 하지만 누구나 하고 싶어 했다. <나이트 스트라이커> 또한 그런 게임이었다.
<전격 Z작전>의 키트… 는 아니지만 호버 주행하는 멋진 차량을 몰고 적들을 물리치는 단순한 게임 방식. 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매력은 게이머의 선택에 따라 역피라미드 형식으로 분기되며 천차만별 달라지는 스테이지의 돌파 방식에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며 미친 듯이 날아오는 미사일을 피하고 좁은 터널의 장애물을 통과하는 쾌감은 당시 우리에게 피 같은 200원을 아끼지 않게 했다. <데이토나 USA>나 <애프터 버너> 같은 체감형 게임의 절대 강자인 세가에게 밀리긴 했지만 아는 사람들은 아는 타이토의 숨겨진 명작.
다크 실 (게이트 오브 둠)
이 얼마나 미려한 그래픽인가. 쿼터뷰 시점이긴 하지만 중세 판타지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는 것이 캡콤의 벨트 스크롤 명작, <던전 앤 드래곤> 시리즈와 비슷해 보인다. 그래픽만으로도 많은 어린이들의 관심을 받은 <다크 실>은 자비심 없는 난이도로도 유명했다.
기사와 마법사 그리고 음유시인, 좀 뜬금 없긴 하지만 닌자까지. 개성이 흘러넘치는 주인공들이 등장하고, 수많은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 적절히 써줘야 하는 마법 등 익숙해지려면 꽤 많은 동전을 써야 했다. 하지만 한번 적응이 되면 특유의 재미에 헤어 나오지 못할 정도였다. 아이템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템 상자로 변신하려고 물음표 마법을 썼는데 돼지로 변해서 꿀꿀거리며 필사적으로 도망쳐 다니는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덩크 드림 (스트리트 후프)
아마 ‘길거리 농구’ 혹은 ‘스트리트 후프’라는 이름으로 친숙할 것 같다. 강렬한 BGM과 더불어 쉽고 간편한 조작으로 인기가 높았던 3 vs 3 농구 게임. 마침 손지창 형님의 멋진 고글이 돋보였던 <마지막 승부> 같은 농구 드라마가 있었기에 더욱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슈퍼샷 게이지를 모으면 공에서 불을 뿜어대고 사람이 서커스 단원처럼 빙글빙글 날아다니면서 덩크를 하는 등 호쾌한 연출이 무척 인상 깊었다. 몇 판 하고 나면 가슴 속이 농구에 대한 뽕으로 가득 차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가게 될 정도. 어린 마음에 덩크를 해보겠다고 골대로 날아올랐지만 그게 될 리가 있나. 게임에서 중요한 3점 슛 능력치가 좋은 타이완팀의 인기가 높았고 한국팀이 홀대받긴 했지만, 근성의 덩크로 극복했던 기억도 아련하다.
파워드 기어 (아머드 워리어스)
나왔다. 초딩의 로망인 로봇. 슈퍼로봇처럼 적들의 허리를 반으로 접어버리며 전진하는 게임은 아니지만, 어딘가 진한 밀리터리의 향이 첨가되어 리얼해 보였던 게임인 <파워드 기어>는 벨트 스크롤의 명가 캡콤에서 제작한 게임이다.
친구들과 함께 즐기면 거대로봇으로 합체하여 적들을 도륙 낼 수도 있고, 팔과 다리 그리고 어깨의 서브웨폰 파츠를 바꿔가면서 전략적으로 싸워야 하는 게임 디자인은 ‘과연 캡콤이다.’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게 한다. 인상 깊었던 것은 광선검으로 적 로봇을 썰어버리고 드릴로 무자비하게 갈아버리는 타격감.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아, 한 가지 더. 브리핑 화면에서 나왔던 씩씩한 오퍼레이터 누나가 무척 예뻤다.
컴뱃 스쿨
군대. 말만 들어도 손발이 벌벌 떨리고 눈물이 나서 밤에 잠도 안 오고 한숨만 나온다. 그래도 어린 시절에는 나름대로 군인에 대한 동경과 로망이 있지 않았을… 까? 오락실에서 즐겼던 <컴뱃 스쿨>은 멋진 군인을 꿈꾸는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기 충분했다. 물론 10년 뒤에는 후회가 막심했지만.
<컴뱃 스쿨>의 목적은 장애물 통과, 사격, 격투술 등을 익히며 최고의 졸업생이 되고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것. 게임으로써는 별다를 것 없는 목표이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묘미는 스테이지마다 바뀌는 장르라 할 수 있겠다. 대전 격투, 슈팅, 벨트 스크롤 액션. 오래된 기억이지만 어린 마음에 100원으로 여러 장르를 즐길 수 있는 사관 학교, <컴뱃스쿨>은 분명 혜자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