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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행의 근본, 애스턴마틴 DBX707 시승기
2023-09-26T09:46:45+09:00

707마력 SUV, 끌어만 봤어요.

포르쉐 카이엔을 필두로 슈퍼카들도 자본주의 미명아래 피할 수 없었던 SUV 전쟁에 참전했다. 람보르기니 우루스나 페라리 푸로산게, 벤틀리 도미네이터, 롤스로이스 컬리넌 등 콧대 높은 브랜드에서 하이엔드 슈퍼카급 성능을 보여주는 SUV들을 줄줄이 내놓았고, 작년에는 맥라렌까지 이 행렬에 가세한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애스턴마틴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9년 브랜드 최초 5인승 모델 DBX를 출시하며 명품, 스포츠카 그리고 SUV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여기에 이식했다. 이번에 시승한 DBX707은 이 후속 모델로 DBX 성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린 차량. 

‘가장 강력한 SUV’라는 수식을 단 DBX707 시승을 위해 총 세 명의 에디터가 운전대를 잡았다. 브랜드가 설명하는 것처럼 가장 빠르고, 가장 강력하며, 최강의 핸들링 성능을 탑재한 물건인지 그 면면을 뜯어보려고. 자칭 ‘애스턴마틴 빠’ 에디터 Steve, 평소 스피드를 좋아하는 에디터 Kim, 실용보다는 감성을 추종하는 Funes의 시승기다.

디자인

호와 불호, 어느 편에 설 것인가

Editor Steve : 과거 애스턴마틴의 디자인 헤리티지를 계승했다고 하지만, 흔히들 말하는 ‘현대적 해석’이라는 것은 항상 논란의 여지가 된다. 필자에게  2000년대 이후 애스턴마틴의 디자인은 불호까지는 아니더라도 과거 모델에 비해 영 아쉽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게 했으니까. DBX가 처음 공개됐을 때 내 심정은 포르쉐가 카이옌을 처음 선보였을 때 그리고 페라리가 푸로산게를 발표했을 때 기존 팬들이 기겁했던 것과 비슷한 심정이었다. 하지만 DBX707을 실물을 처음 보고 그 생각이 틀렸음을 직감했다.

특히 질게 찢어진 원형 모양의 헤드램프는 날렵함과 유려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 프런트 윈도우에서 그릴까지 떨어지는 보닛 라인과 좋은 밸런스를 보여줬다. 그릴 양엽으로 자리하고 있는 1자 주간주행등도 반드시 있어야 할 곳에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측면으로 가면 도어 부분의의 과하지 않은 굴곡과 더불어 뒤로 갈수록 낮게 떨어지는 후드 라인의 각도는 그간 봤던 모든 SUV 차량 중 최상의 각도였다.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은 멋을 부렸고 ‘나 3억짜리 차야!’라고 뽐내는 것 없이 묵직하게 귀티를 풍긴다. 아쉬운 점은 전면 개구리 입 모양 정도?

Editor Kim : 차량의 외형만큼 취향의 편차가 큰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불호에 가깝다.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붕어가 생각나기도 하고. 하지만 2024년부터 모든 자동차에 크롬 도금 금지하는 법을 의식한 건지 고급 차량임에도 불구하고 크롬 장식 없이도 멋을 낼 줄 안다는 생각, 심지어 로고와 오너먼트도 무광 블랙으로 묵직한 분위기기를 잡아낸다.

또한 DB11처럼 프레임 리스 도어인 점, 후드가 반대로 열리지는 않더라도 후드 형상이 프런트 펜더를 포함하고 있는 방식이라 SUV지만 ‘애스턴마틴임을 강조‘하는 듯한 디테일도 인상적이다. 리어 스포일러에 카본 장식이 적용되어 있는데 다운포스나 기능적인 면을 떠나서 디자인 자체는 멋지다. 소비자가 뭘 원하는지 그 부분을 정확히 알고 만든 것 같은 느낌이랄까.

Editor Funes : DBX에서 변화를 준 카본 프런트 스플리터, 로커 패널의 사이드 스커트, 커진 리어 디퓨저, 리어 스포일러, 미러 캡 등 요소요소가 우아하게 어우러진다. 707마력을 내는 강력한 모델이지만 공격적이라는 말보다 우아함, 경쾌하고 스포티하기보다 고급스럽다는 단어를 붙여줘야 할 것 같다. 전반적으로 둥글게 떨어지는 실루엣이 이런 수식과 더불어 애스턴마틴만의 헤리티지를 더욱 확고하게 만든다. 곳곳에 카본을 아낌없이 사용한 부분도 마음에 든다.

프런트, 리어 펜더에 에어벤트가 실제 구멍이 아닌 점은 살짝 아쉽다. 23인치 거대한 휠, 대구경 세라믹 스포츠 브레이크 디스크, 황금색 애스턴마틴 6P 캘리퍼는 압도적인 위용을 자랑한다.

실내

온통 가죽

Editor Steve : 실내는 온통 가죽이다. 가죽 아닌 곳을 찾는 것이 빠를 정도. 개인적으로는 시각보다 촉각적인 부분이 더 마음에 들었다. 실내를 뒤덮고 있는 가죽은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견고한 느낌을 줬고, 이는 시트에 등과 머리가 닿을 때나 핸들을 잡았을 때 가장 만족스럽게 다가왔다. 광활하게 펼쳐진 선루프도 훌륭하다.

2열의 경우 레그룸은 크게 넓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으나 180~185cm 성인이 앉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낮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 때문에 헤드룸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본인은 180cm의 키, 짧은 다리, 긴 허리라는 스펙을 가졌는데 머리 위로 최소 주먹 하나는 더 들어갈 만큼 넉넉했다. 적재 공간도 만족스럽다. 2열이 폴딩 돼어 차박도 가능. 물론 이 차를 차박용으로 쓰진 않겠지만 말이다.

Editor Kim : 베젤 리스 룸미러만 봐도 ‘우아함’이 주제임이 느껴진다. 실내 거의 모든 요소가 따듯한 소재를 사용하였는데 유일하게 차가운 금속으로 마감을 한 부분이 패들시프트였다. 시동을 걸기 전 스티어링을 감아쥘 때부터 ‘이 차는 스포티한 차야’ 설명해 주는 듯하다. 특히 DB11을 계승해서 그런지 스티어링이 아니라 컬럼에 고정되어 있는 패들시프트의 ‘철컥’ 거리는 조작감이 매우 좋았고 디자인도 멋스러웠다.

버킷 시트 모양을 하고 있다 보니 1열 시트의 헤드레스트는 높이 고정형이고, 운전석, 조수석 모두 전동으로 작동했다. 시트고는 SUV답게 높은 편이다. 대시보드, 센터패시아 모두 고급스럽게 마감해 플라스틱을 최소화하고 가죽을 많이 사용한 모습. 러기지 스크린까지 가죽으로 장식돼 있지만 접이식이나 롤링 형식이 아니고 탈착만 가능한 고정형인 점은 아쉬웠다.

Editor Funes : 자리에 앉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띄었던 건 자동차 송풍구. 가로로 눕힌 8자 모양으로 설계된 독특한 디자인과 시트 가죽 색깔과 어우러지는 무광 금속 테두리, 가볍게 말아쥐고 돌리며 조작하는 노브가 괜한 클래식한 감성을 자극한다. 쓸데없어도 예쁜 건 진리다. 아울러 마치 명품 가방 안에 들어와 앉아있는 듯 견고한 바느질과 구태여 시선이 잘 가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모두 가죽을 사용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자본의 향기’ 가죽 냄새까지 완벽했다.

풀 베이지 시트는 청바지 등 오염이 신경 쓰이는데 1, 2열 모두 브라운·베이지 투톤 적용되어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을 듯. 애스턴마틴이 가지고 있는 질곡의 역사 속에서도 그들이 지키려 한 ‘까리’한 자동차를 만드는 일을 SUV에서도 고수하려는 흔적을 디테일에서 엿볼 수 있었다.

주행

근본을 구현하다

Editor Steve : 자동차의 근본이 뭘까? 복잡할 것 없이 ‘잘 달리는 것’이다. 다른 애스턴마틴 차량은 타 보지 못했지만, 최소 DBX707만큼은 이런 근본에 편집증적으로 매달린다는 인상을 받았다. DBX707은 힘과 스피드를 운전자가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하며 ‘나 겁나게 빨라’라고 여과 없이 드러내는 슈퍼카와 지향성이 완전히 달랐다. 급가속할 때 다른 슈퍼카는 액셀러레이터를 밟자마자 몸이 시트에 붙는 것 같이 자동차에 운전자가 압도되는 느낌인 데 반해, DBX707은 액셀을 밟고 아주 서서히 그리고 우아하게 가속감을 전달해 준다.

레이스 스타트(런치 컨트롤 유사 기능) 기능 발동 시에도 휠 스핀 없이 급가속이 가능하다. 또한 차별성은 코너링과 브레이킹에서도 관찰된다. 워커힐로와 중미산 고갯길의 구불구불한 코너를 감속 없이 돌면서도 롤링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방지턱이나 요철 등을 넘을 때 발생하는 충격은 ‘쿵’이라는 느낌보다 ‘둥실’이라는 느낌에 가까울 만큼 고급스럽게 조절하며 급제동 시에도 믿기 어려울 만큼 몸이 앞으로 쏠리는 현상을 최소화해 준다. 약 0.5초의 영상 클립 프레임을 0.001초 단위로 쪼개 충격을 완화해 주는 느낌이라고 할까.

Editor Kim : 시동음부터 우렁찼고 저단 토크감도 대단했다. 계기판을 보니 드라이브 모드를 바꾸지 않은 ‘기본 모드’가 ‘GT’ 모드였고 이 부분이 차량의 성격을 드러내는 단적인 예라고 볼 수 있다. 시내 운전에서 스티어링 조작감은 지나치게 무겁지 않게 적당히 묵직했고, 서스펜션 느낌도 우아하고 안락한 세단 보다는 단단한 스포츠카의 느낌을 많이 준다. 프런트 서스펜션이 더블 위시본임에도 부드럽고 우아한 셋업보다는 단단하고 묵직한 느낌에 초점을 두고 개발한 듯하다.

가속할 때 엔진음이 너무 좋아서 ‘이 차에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달려있나’ 잠시 착각했으나 엔진이 트윈 터보 v8이었다. 엔진음에 취해 배기음을 느끼지 못했는데 드라이브 모드를 Sport+로 두자 완전히 차가 달라졌다. 스로틀을 밟고 뗄 때마다 터지는 팝앤뱅 소리가 인상적이었다. ‘큰 소리‘를 내려고 억지로 튜닝을 한 팝콘, 팝앤뱅 소리가 아니라 ‘적절히 디자인된’ 사운드였다. 터널에서 급가속을 할 때도 터널 전체를 가득 메우는 불쾌한 ‘총소리’가 아닌 ‘고급 스포츠카‘의 냄새가 났다.

Editor Funes : 주행 시 가장 인상적인 모드는 Sports+로 변경했을 때다. 심장을 뛰게 하는 팝콘 소리와 더불어 토크, 가속감, 다운포스 등 모든 물리력이 말단에서부터 세포 하나하나에 전달되는 느낌. 청각적인 자극과 페달 감각, 브레이크 응답성, 코너링에서의 탄탄한 접지와 민첩함 등 모든 감각을 사용해 이 차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시야가 높아 순정 타이어는 ‘피렐리‘의 ‘피제로’ 제품이 달려있었는데 워낙 정평이 난 스포츠 성향 타이어기도 하고 차량 성격과 잘 맞아떨어졌다. 요란하지 않지만 강렬하다.

편의 기능

내비게이션에서 갸우뚱

Editor Steve : 소신 발언하자면 솔직히 편의성은 국산 차가 최고 아닌가? 반박 시 여러분 말이 맞지만 가격 대비 국산 차만큼 편의성이 높은 차도 없을 것이다. 이 말을 왜 하냐 하면, 애초에 외제 차 그것도 이런 하이엔드급 차에 편의성을 기대할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벤츠 컨트롤 패널 방식을 선호하지 않는 나로서는 더 박한 평가를 내릴 수밖에.

효율성 떨어지는 내비게이션, 스포티함을 표방하는 이 차에 기어봉도 아닌 버튼식 기어를 대시보드 상단 정중앙에 두었고, 핸들 조작 버튼 등은 다소 직관성이 아쉬웠다. 서라운드 뷰, 후방 카메라도 특별할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그냥 잔재주, 기교 정도로 생각될 뿐이다. 차의 근본과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부차적인 요소다. 아마 DBX707의 시동을 걸고 엑셀을 밟고 나면 당신도 생각이 달라질 거다.

Editor Kim : 전체적으로 ‘사람을 기계에 맞추는’ 적응기가 필요해 보이는 부분이 있었다. 센터패시아 상단에 위치한 시동 버튼과 버튼식 기어(P, R, N, D) 위치와 터치가 되지 않는 순정 내비게이션 조작 등. 특히 후자는 차량의 일체감과 우아함 때문에 휴대전화 거치대는 절대 쓰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필히 적응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의 경우 반나절 정도 시승하니 어느 정도 몸에 익긴 하더라.

시트는 디자인만 좋은 게 아니라 착좌감도 매우 우수했다. 작은 체구인 내 몸에 딱 맞고 사이드 볼스터가 몸을 적당히 감싸주고 있어 코너링에도 몸을 잘 받쳐주었다. 장거리 운전에도 피로감을 덜어줄 것 같은 편안함이었다. 또 하나 마음에 들었던 건 통풍 시트. 일반적으로 가랑이 부분에 쏠려있는 통풍 라인이 아니라 등, 허리 쪽에도 바람을 보내주는 방식이라 매우 ‘편하게’ 시원했다.

Editor Funes : 기계치인 내가 다루기에는 한계가 있는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덕 출발 못 하고 한참 헤맸다. 소시민 관점, 본전 생각나게 하는 기능적인 부분은 아쉽다. 하지만 이 정도의 불편함은 충분히 감수하며 DBX707을 선택하라고 과감히 손짓하는 이 자신감은 주행 퍼포먼스에서 나오는 것인가 싶었다.

한편 센터 콘솔 앞부분에 있는 휴대전화 무선 충전 기능을 사용하려 했으나 바닥재가 미끄러워 계속 휴대전화 충전 포인트를 놓치게 됐다. 미끄럼 방지 조치가 필요하겠다. 하지만 이런 요소들은 차체가 주는 우아함으로 모든 걸 소위 ‘퉁’ 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용서할 수 있는 정도.

한 줄 총평

정리하자면

Editor Steve : 빠르고, 강하고, 부드럽고, 우아하고 품격있는. 이 모든 수식어를 이질감 없이 한 데 섞어 놓은 차의 근본.

Editor Kim : 가격이 3억을 넘어가는 만큼 수많은 선택지와 주변의 질문, 질타를 이겨낼 수 있는 재력과 고집이 있는 사람만 가질 수 있다.

Editor Funes : 시장원리에 무릎 꿇었다 한들 절대 굽히지 않는 애스턴마틴만의 꼿꼿한 감성과 성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