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은 유독 연극 무대에 도전하는 스크린 배우가 많은 한 해였다. 27년 만에 연극으로 돌아온 전도연이 그랬고, 데뷔 이래 처음 연극 무대를 밟는 이동휘, 유승호가 그랬다. 그리고 관심과 의아함을 한 몸에 받은 배우가 한 명 더 있었으니. 연극이 처음이라는 사실이 어쩐지 어색한 배우, 조승우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주연으로 열연한 햄릿은 전 회차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그의 티켓 파워를 여실히 입증했다.

조승우의 본거지는 말할 것도 없이 뮤지컬이다. 그럼에도 영화와 드라마, 심지어 연극에 이르기까지 그가 선택한 작품은 세간의 기대를 끌어모은다. 그 기저에는 명불허전의 연기력도 있겠지만, 조승우라는 사람 자체에 대한 인간적인 매력이 견고하게 깔려 있다. 오랜 시간 쌓아 올린 호감의 원천. 소년의 얼굴에 가려져 잘 몰랐던 인간 조승우의 강인하고 단단한 면면을 소개한다.
배우 조승우의 연기가 탄생하기까지
분석과 연구로 만들어지는 해석
조승우는 데뷔작인 <춘향뎐>으로 칸 영화제에 입성했다. 한국 남자 배우로는 최초였다. 이후 <클래식>, <말아톤>, <타짜> 등 걸출한 작품을 쌓아 올리며 탄탄대로를 걸었다. 이렇게만 보면 완벽히 타고난 연기 천재로 오해할 수 있겠다. 당연히 그에게 천부적인 소질이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재능 하나로 뭉뚱그려버리면 당사자는 조금 섭섭할지도.

그의 연습량은 직접 언급한 것보다 동료를 통해 전해져 내려오는 구전설화가 더 많다. 대본 리딩 때부터 대본을 전부 외워 대본집을 가져오지 않았다든지, 받은 지 하루 된 대본이 벌써 너덜너덜해진 걸 목격했다든지. 박칼린부터 전미도, 옥주현까지 업계에서 잔뼈 굵은 모두가 입을 모아 하는 말은, ‘조승우는 실력이 좋을 뿐만 아니라 어마어마한 노력파’라는 것이다.
그의 노력은 연기를 향한 열정으로부터 기인한다. 뮤지컬 CD와 자료를 사기 위해 고등학생 신분으로 공사 현장에서 일했을 정도. 공연 6시간 전에 연습실에 혼자 나올 정도로 완벽한 결과에 집착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타협점을 찾아 자신을 혹사하는 수준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최선을 다한다는 점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작품 속 캐릭터에 대한 완벽한 분석과 이해는 조승우의 강력한 무기이기도 하다.
조승우는 애드리브가 많은 배우다. 작품 대본집과 실제 대사를 비교하는 게 팬들의 소소한 재미이기도 하다. 백상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안겨준 <말아톤>은 절반 이상이 애드리브였다고. 그의 변화구는 의도적인 행위가 아니라, ‘이 인물이 지금 어떤 감정일까’를 끝없이 탐색한 끝에 터져 나오는 자연스러운 결과다. <신성한, 이혼>의 김소형 음악 감독은 조승우를 두고 ‘분석하고 해석해서 나에게 폐부를 찌르는 것 같은 질문을 던져 나를 긴장시키는 대단한 배우’라고 언급했다.

메소드 연기에는 그에 상응하는 몰입의 시간과 고뇌가 뒤따른다. 조승우는 캐릭터 구축을 위한 아이디어나 대사가 떠오르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메모할 정도다. 그렇게 작품 속 인물이 쌓아 올려지면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에서 조승우는 사라지고 캐릭터만이 남는다. 20년이 넘는 긴 시간을 활동하면서도 매번 그의 연기가 새로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외모는 소년, 취향은 클래식
남자의 로망을 싹 다 모은 수준
조승우의 취향은 꽤 명확하다. 클래식하고 아날로그적이다. 낭만을 표방하는 쪽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모티콘과 노트북으로 전해지는 사랑은 낭만적이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이니까. 1970년대 밴드가 시대를 살아가는 이야기를 만들 거라는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시나리오 한 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 <고고70>의 출연을 결정했다는 후일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미래보다는 과거에 두는 그의 마음을.
시계는 그의 취향을 대변하는 가장 상징적인 물건이다. 가볍게 좋아하는 수준을 넘어 연예계에서 손꼽히는 시계 애호가로 알려져 있다. 작품을 마무리할 때마다 ‘온 시간을 쏟았으니 시간을 선물 받아야겠다’라는 마음으로 하나씩 구매한다고. 기추 기준은 딱 하나.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가 변하지 않는 시계들만 수집한다. 롤렉스 데이토나부터 파텍필립 노틸러스, 오데마피게 로얄 오크, 파네라이 라디오미르 등 대중에 모습을 비춘 기종만 해도 두 손이 모자랄 정도다.

그의 부드러운 인상과 영 매치가 되지 않는 취미도 있다. 바이크다. 특히 두카티(DUCATI)의 열성팬인데, 2012년에는 두카티 슈퍼바이크 1199 파니갈레의 국내 1호 주인공으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처음 두카티 매장을 방문했을 때 바이크가 전하는 하체의 진동에서 ‘이건 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멀티스트라다를 타고 9시간을 우천 주행했다는 에피소드를 보면, 바이크가 선사하는 낭만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와닿지 않는가. 안전 운전에 심혈을 기울인다는 점도 조승우답다.

오디오에도 꽤나 진심이다. 피아노를 전공한 변호사 역할을 맡았던 <신성한, 이혼> 메이킹 필름에는 조승우가 능수능란하게 오디오를 다루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당시 작품 속 휘황찬란한 오디오 세트가 화제였는데, 이는 조승우가 2010년부터 연을 이어오고 있는 오디오 업체 대표에게 직접 협찬을 받은 세팅이었다고. 지인을 위해 앰프, 튜너, 스피커, 턴테이블 등 오디오 시스템 전반을 조합하고 설치까지 해줬다는 미담은, 그의 따뜻한 마음씨와 더불어 전문가에 버금 가는 오디오 지식을 확인시켜 준다.
소신을 지키는 강단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은 것
연예인은 직업 특성상 싫은 소리를 입 밖으로 내기 어렵다. 아무리 옳은 말도 누군가에게는 거슬릴 수밖에 없고, 이미지가 전부인 연예인으로서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설수 아닌 구설수로 언론과 대중의 입방아에 적잖이 오르내렸던 조승우도 분명 그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말하고 행동했다. 뭇매를 맞을지언정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20대의 조승우는 유독 거침이 없었다. <말아톤> 출연 당시 자폐아 포즈를 요구하는 기자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공개 연애 시절에는 도 넘은 가십성 질문을 자행하는 기자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시절의 조승우에겐 ‘건방지다’, ‘까칠하다’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지금 보면 조승우는 시대의 기준보다 한 발짝 앞서 있었다. 똑같은 일이 현시점에 재현된다면 그의 행동을 탓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상복 많은 배우인 조승우에게 수상 소감 자리는 업계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장이었다. <마의>로 최우수상과 대상을 거머쥔 2012년 MBC 연기대상에서는 한국 드라마계의 병폐인 쪽대본 문제를 끄집어냈다. 더 뮤지컬 어워즈에서는 자신에게 와닿는 한국 창작 뮤지컬이 없었다고 언급하며 관심과 지원을 부탁했다. 수많은 질타를 부른 발언이었지만, 누구도 내지 못한 용기이자 애정 어린 공언임은 분명하다.

작품을 고르는 기준 또한 확고하다. 멋지고 화려한 작품보다는 밋밋하더라도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선택한다. 익숙함보다는 새로움을 추구한다. <말아톤>, <지킬 앤 하이드>를 잇달아 흥행시킨 그의 차기작은 트랜스젠더 배역의 <헤드윅>이었다. 지금은 대중에게 친숙한 작품이지만, 그가 맡았을 당시에는 초연인 데다 성전환자의 존재 자체가 낯설었기에 더욱 파격적인 선택으로 느껴졌다. 더없이 많은 쉬운 길이 있다는 건 그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좋은 방향으로 걸어갈 뿐이었다.
팬들이 사랑하는 인간미
짤 부자인 건 다들 알 테고
날카로운 구석이 있다고 해서 냉혈한으로 오해하진 말자.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야말로 지금까지 단단한 팬덤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니까. 어쩌면 유재석이나 강하늘의 뒤를 잇는 미담 자판기로 등극할지도 모르겠다. 친구나 지인을 챙긴 일화는 물론이거니와 일면식 없는 동료, 스태프와 엑스트라까지 입을 모아 칭찬할 지경. 지갑을 잃어버린 스태프의 휴대폰 케이스에 현금을 가득 채워줬다는 이야기는 당사자인 스태프가 <환승연애2>에 등장하며 다시 조명받기도 했다.

센스 넘치는 선물에 감동한 일화도 많다. 함께 작업했던 박희곤 감독의 생일에 맞춰 빈티지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그것도 그가 태어난 해에 생산된 모델을 선물로 준비했다. 오랜 인연을 이어온 오디오 업체 사장님 역시 깜짝선물을 받았다. 빈티지 오디오 매장에 완벽하게 어울리는 놀(Knoll)의 폴락 이그제큐티브 체어를 선물한 것. 선물 리스트만 봐도 그의 세심함과 예사롭지 않은 안목을 알 수 있다.
동물에 대한 깊은 애정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포털에 조승우를 검색하면 과거에 맡았던 ‘삽살개 홍보대사’ 이력이 경력란을 당당히 채운다. 2021년 안락사 직전이었던 유기견 곰자를 입양했고, 지금은 반려견 곰자의 극성 학부모로 맹활약 중이다. 유기 동물 입양 외에도 동물 보호 단체에 꾸준히 후원하며 지극한 동물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참고로 드라마를 기피했던 그가 출연을 결심하게 된 <마의> 또한 동물이 등장한다는 점이 결정에 큰 영향을 주었다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거부한 조승우는 아이러니하게도 누구보다 강렬한 존재감을 남긴다. 그가 언제나 진심으로 연기하고 진심으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완벽을 향해 달리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있다. 무대 위에서는 캐릭터에 완전히 녹아들고, 무대 아래에서는 신념과 예의를 지키며 인간미를 풍긴다.
소년의 얼굴에 어른의 낭만을 품은 배우, 조승우. 그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 위에서, 변치 않는 마음으로 시대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