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 교수는 세 권의 저서 출간과 tvN의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교수이자 건축가, 작가이자 방송인인 그의 핵심 아이덴티티는 역시 건축가.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그의 얼굴이 대중에 자주 노출될수록 개인의 인지도만 올라간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책과 방송을 접한 사람들은 자신이 자라왔고 지금도 살고있는, 한시도 떠나지 않고 매일 붙어있는 ‘도시’와 ‘건축’에 눈길을 주기 시작했다. 공간이 주는 가치를 보는 안목과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생겼다.
어렸을 적 그의 꿈은 발명가였다. 삐까뻔쩍한 하이테크 발명 말고 연필 뒤에 지우개를 붙이는 것 같은 기발한 생각을 실현하는 사람. 그랬던 그는 건축가가 됐다. 문, 창문, 현관, 엘리베이터 등 건물에 들어가는 기본 요소를 가지고 조합을 뒤틀고 발상을 뒤집는다. 그리고 말한다. 그가 지은 건축물 안에서 한 사람의 삶, 새로운 경험과 이야기가 탄생한다고. 그 이야기가 행복한 것이길 바라며 건축가를 꿈꾸었다고.
건축가가 사는 곳은 어떤 동네에 어떤 집일지 궁금합니다.
강남구 논현동 건축사무소 근처 아파트에 삽니다.
만족하시나요?
만족 못 하죠. 제 명의로 된 집이 아니라 고치지도 못하고 불편해 죽겠어요 지금. 우리 애 대학가기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동네에 대한 만족은 있어요. 여기가 제 고향이니까요.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이 동네에서 시간을 쭉 보내서 친구들도 동네에 많아요.
임볼든이 타깃으로 삼는 계층이 명확한 만큼 남성으로서의 입장을 좀 듣고 싶은데요. 우리나라에 어떤 공간이 만들어지면 남자들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질까요?
이건 비단 남자만이 아닌 모든 젊은 세대에게 해당하는 얘긴데요. 누가 만들어줄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고요. 도시 내에서 자투리 공간을 찾아서 자기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라고 권하고 싶어요. 서울이라는 도시가 한 귀퉁이라도 소유하기는 되게 힘들거든요. 저도 서울이란 도시에서 내 명의로 된 부동산을 소유한 건 사십 대 중반이 넘어서였어요.
결국 할 수 있는 방법은 공짜로 널려있는 공간을 잘 쓰는 거예요. ‘냉장고를 부탁해’같은 프로그램의 셰프 마인드로 버려져 있는 공간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하는 거죠. 그 일환이 을지로에 있는 가게를 찾아가는 것일 수도 있고, 내가 제일 편하게 생각하는 빈대떡 막걸릿집이 있을 수도 있고. 저 같은 경우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해서 한남대교 다리 밑을 종종 갑니다.
자꾸 훈련을 해야 해요. 사람들이 연애하는 게 궁극적으로는 좋아서 하는거지만 상대방때문에 내가 행복해지니까 하는거구요. 이 음악을 들으면 기분 좋기 때문에 자꾸 듣는 거고 찾는 건데, 보통 자신의 연애나 음악 취향에 대해선 많이 생각하고 알고 있지만 어떤 공간이 날 기쁘게 하는지는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결국 자신만의 특별한 공간을 찾고, 그걸 통해서 행복의 빈도수를 늘리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물론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같은 저서에서 소개해 주신 매력적인 공간들도 곳곳에 있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머물고 싶은 공간, 공짜로 갈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이는데.
사실 이 도시가 정상적이라면 제가 얘기하는 이런 공간들이 공짜로 지천에 펼쳐져 있어야 해요. 미국 뉴욕을 보면 걸어서 10분 안에 공원이 있어요. 하이라인 파크도 있고 리버사이드 파크, 센트럴 파크 등 도심 곳곳에 도보로 다를 수 있는 공원이 널려있죠. 도서관도 많고, 벤치도 서울의 50배쯤 많아요.
요즘 뉴욕이 건축적으로 최고의 핫플레이스에요. 그런데 뉴욕이 외환 사태 이후에 발전 동력을 뭘로 찾았냐면, 재건축입니다. 무서울 정도로 재건축을 많이 하거든요. 우리나라도 재건축하고 개발할 여지가 너무 많아요. 포텐셜이 어마어마한데 신도시만 만들고 있으니 답답하죠. 그것도 일획화된 아파트 단지만 늘어선 그런 신도시요.
재건축을 한다고 해도 정말 그곳에 살고 싶어지게끔 매력적으로 하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실리적인 사람이라 재건축하는 아파트 집값이 얼마인지는 아무 상관도 안 해요. 지금처럼 집값을 낮추는 방식 말고 다른 방식을 시도해야 한다고 봐요. 예를 들어서 펜트하우스를 지으면 100억, 200억에 파는 거죠. 그걸 한 열 채 팔아서 2,000억을 벌게 해 주고 대신 1층엔 1,500평짜리 공원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건을 두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재건축을 하면 임대주택을 반드시 20% 배정해서 소셜믹스를 하게 만들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재건축을 안 해요. 집값 내려간다고. 결과적으로 자꾸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똑같은 모양의 신도시만 늘어나고 더 삭막한 도시가 되어 가는거죠. 사고의 틀 자체를 바꿔야만 도시가 발전할 수 있어요. 사실 우리나라 아파트 수준은 소득 3만 불 시대에서 나올 수 없는 수준이에요. 훨씬 더 좋은 게 나와야 하는데 정체돼 있어요.
한국 아파트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우리나라 아파트가 좋은 점도 많긴 한데 테라스도 없고, 모양도 다 똑같이 생겼고 천정고도 같고. 어떤 아파트든 개성이 없이 다 똑같이 생기니까 사람들이 자기 집 가치의 기준을 자꾸 집값에만 두게 되는 거잖아요. 나만이 갖는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전 국민 60%가 다 동일한 곳에 살고 나머지 40%는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고요.
그래서 국민들이 가지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이 정량화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다양성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러면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죠. 경제 규모가 적었던 1960년대는 가능했지만, 지금은 규모도 커지고 굉장히 구조가 복잡해졌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국가가 통제하기엔 어려움이 많은 상황이죠.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요즘 들어 가장 답답했던 부분이 있다면?
제가 성수동에 디자인하는 빌딩이 있어요. 성수역 바로 옆에 있는 땅인데, 그러면 출퇴근도 편하고 살기 얼마나 좋아요. 그래서 주거지역을 넣으려 했더니 여긴 상업시설이라 상가가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대체 그 고층 빌딩을 다 어떤 가게로 채워야 할까요?
쇼핑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가면서 상업지도가 많이 바뀌었어요. 3층 이상 상가는 채울 것도 없습니다. 7~8년 전엔 그 상가를 헬스클럽이 채웠어요. 사람으로 못 채우니까 기계로 채운 거죠. 지금은 위워크 정도가 유력한데, 그 옆에 건물은 뭐로 채울까요? 주거시설이 들어오면 딱인데 그게 법적으로 허용이 안 되는 겁니다.
주객이 전도된 거네요?
시대도 사람도 라이프스타일도 다 변했습니다. 이제 발상을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봐야 하는데 아직도 도시 정책은 과거에 머물러있어요. 상업시설에 주거시설이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로 드는 또 하나가 학교가 없다는 거예요. 1인 가구가 타깃인데, 거기 거주하는 사람들이 애를 낳을까요? 사람들이 애를 안 낳는데 왜 학교가 필요할까요? 논리가 안 통합니다. 시대가 바뀐 만큼 건축 법률도 그에 맞춰 나아가야 해요.
건축적으로 다사다난한 서울이 좀 더 살기 좋은 도시가 되기 위해서 건축 종사자나 정치인 말고 일반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건축이 하나의 일상적 가십으로 떠오를 만큼 가까워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장 왕성한 20~30대 청년들이 술 마시면서 건축 얘기를 하는 수준. 맨날 만나서 연예인이나 맛집, 일상 얘기하는 그 정도 관심의 20%, 아니 10% 만이라도 건축에 관심을 가지면 나아질 겁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패스트 러너입니다. 굉장히 빨리 배워요. 1980년대만 해도 전 세계에서 남자 패션 랭킹을 냈는데 한국이 꼴찌 했어요. 양복에 흰 양말 신고다니던 시절이죠. 물빠진 청바지 온 국민이 다 입고 다니고. 지금은 굉장히 스타일리시하고 멋있어졌어요. 불과 15년만에요. 대중이 조금씩 건축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면, 금방 따라갈 수 있을 거예요.
도시에 대해, 건축에 대해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어올리는 데 교수님 활동이나 저서가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요?
어제 반가운 소식을 하나 들었어요. 다른 건축설계사무소 소장을 만났는데 저 때문에 피곤하다는 거에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설계해서 건축주에게 들고가면 건축주가 말하길 “제가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읽었는데요,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여기 나온거랑 설계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자꾸 이렇게 말한다더라고요.
기분 좋으셨겠는데요? 건축을 대하는 사람들의 안목이 높아진 것 같아요.
이제 ‘내가 건축주가 되려면 유현준 책 한 권은 읽고 시작해야지.’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다는 거죠.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얘기할 거리가 생긴 겁니다. 제 책을 읽고도 이게 맞는 얘기냐 틀린 얘기냐 논할 수 있는 시작 포인트가 됐어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광고 중 하나가 Philippe Starck의 레몬 스퀴저 광고에요. 언뜻 보면 우주선 같기도 하고 삼발이처럼 희한하게 생긴 스퀴저인데, 광고할 때 스퀴저라고 하지 않고 “Conversation Starter”라는 문구가 나와요. 대화를 시작하게 하는 물건이라고.
집에 누군가 찾아와서 그걸 보곤 “이게 뭐예요?” 하면서 대화가 시작된다는 거죠. 그 순간부터 그 레몬 스퀴저가 있느냐 없느냐는 완전 다른 얘기거든요. 제가 쓴 칼럼이나 책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대화가 시작되는 포인트가 되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두게 될 거고, 그러면 서울이 뉴욕 맨해튼보다도 훨씬 더 좋아질 거라 확신합니다.
마지막은 공통 질문인데요, 매일 몸에 지니고 다니는 소지품은 어떤 게 있나요?
네 가지 정도 되요. 제가 맨날 쓰는 볼펜이 하나 있구요. 그 다음에 머니클립을 항상 갖고 다니고. 나머지는 핸드폰, 자동차 열쇠, 시계, 그리고 요즘 에코백에 꽂혔어요.
에코백이야말로 저의 패션 아이템인 것 같아요. 가격도 저렴하잖아요. 근데 색깔도 되게 다양하고. 제가 아트페어를 많이 가거든요. 아트페어를 가면 꼭 에코백을 하나씩 만들더라고요. 그때그때 사 두는 편이에요. 이제 나이가 들면 무거운 가방을 못 듭니다. 이런 게 저한테는 패션 아이템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