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 놓인 풍경으로 집을 짓고, 구름의 모양으로 인사하고, 바다의 일렁임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이들이 있다. 유튜브 채널 ‘캠핑카 조아(CampingCar Joa)’의 두 얼굴 루시와 마크. 그들의 일상 속엔 어디로든 흘러가도 좋다는 확신,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다는 믿음 같은 것들이 놓여 묘한 위안을 준다. 잠시 정박해있던 캠핑카 바퀴가 다시 구르기 시작했고 기꺼이 이 여정에 마음 얹을 준비를 마친 지금, 루시에게 이런 안부를 건넸다.
일상의 테두리를 벗어났다고 느낀, 첫 번째 경험에 대해 회고해주세요.
혼자 떠났던 대만 여행이 기억에 남아요. 그 전 여행에서는 꼭 먹어야 할 것들과 봐야 할 것을 중심으로 강행군을 펼쳤거든요. 물론 대만도 시간과 분을 쪼개며 촘촘한 계획을 하고 갔지만, 지우펀에서 버스를 잘 못 타 계획이 틀어지며 여행의 새로운 국면을 맞은 거 같아요.
당황한 저를 보며 기사님이 버스를 잠시 세우고 찬찬히 지도를 집어가며 알려주셨어요. 현지인들도 인내심 있게 기다리며, 내릴 땐 물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지켜보시더라고요. 주말에 하루 연차를 붙여 다녀온 짧은 휴가였지만 맛있는 음식, 아름다운 풍경에 현지인들에게 받은 도움과 따뜻함이 덧대져 비로소 제대로 된 여행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자연 속에 여장을 풀면 일상생활에서 무뎌졌던 소리, 촉각, 후각 등 기본적인 감각에 충실해지는 기분이 들 거 같아요.
맞아요. 새소리, 흐르는 물소리,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히며 내는 잔잔한 음들도 들을 수 있어요. 아울러 비가 온 후 나는 흙냄새, 풀 냄새 등 자연이 만드는 향기도 느낄 수 있답니다. 가만히 서서 느끼지 않으면 손가락 사이로 스쳐 가는 무형의 감각들이지만, 자연 속에서는 그것들을 잡고 음미할 수 있게 해주는 순간을 마주하게 돼요. 감탄은 물론 감사하는 마음이 절로 들어요. 또 처음 본 식물과 동물을 만나면 호기심 많은 7살 어린 아이로 돌아가기도 한답니다.
‘캠핑카’와 ‘집’, 루시님이 느끼는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다면요.
공통점은 둘 다 안정감을 준다는 거예요. 제가 ‘집에 가서 쉬고 싶다’라고 말할 때 집이 바로 튜비(캠핑카)를 의미하거든요. 구조적인 공통점은 화장실, 침실, 주방이 있다는 거죠. 대신 이 지점에서 차이점이 생기기도 해요. 화장실은 주기적으로 덤프스테이션을 찾아가 버려야 하고, 주방에서 사용하는 물도 구해와야 하고, 전기는 태양전지판을 통해서 하우스 배터리를 충전시켜서 사용해야 하죠.
하지만 아무래도 캠핑카와 집의 가장 큰 다른 점은 어디로든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아닐까요. 하루는 해안절벽이 보이는 풍경이, 어떤 날은 야생마들에게 둘러싸인 곳이 제 앞마당이 되고, 사하라 사막 한가운데 별과 달빛이 지붕이 되기도 하니까요.
캠핑을 즐길 때 아침, 한낮, 일몰 등 좋아하는 시간대가 있으신가요. 그 시간 동안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해요.
주로 아침과 낮은 다른 곳으로 이동하거나 장보기, 손빨래, 물 찾으러 다니기 등 생활에 필요한 일들을 해결하는 시간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마치고 한숨 돌리는 때가 오후 3시쯤 돼요. 오후 3시부터 저녁 8시, 그 사이가 제일 좋아요. 캠핑 의자에 앉아서 햇볕을 쬐기도, 맥주 한잔하면서 석양을 보기도 하죠. 고장 난 캠핑카를 손볼 때도 있지만요.
많은 짐이 루시님께 불편함을 끼치는지, 오히려 장비가 부족한 상태가 더 불편하신가요. 맥시멀, 미니멀리스트 중 어느 쪽이세요.
저는 미니멀리스트예요. 마크와 제가 지내는 캠핑카가 봉고3 코치 12인승 차량이다 보니 내부 공간이 크진 않아요. 게다가 튜비를 디자인 했을 때 유라시아횡단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수납공간이 부족해 짐을 더 줄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어요. 지금도 물론 짐이 많진 않아요.
올해 봄에 모로코에서 튜비를 하이루프로 개조한 후 내부 수납공간을 늘리는 인테리어로 바꾸려고 계획하고 있었는데, 현재 코로나로 인해 모로코 국경이 닫혀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어요. 튜비를 다시 만들고 나면 적재 공간이 지금보다 많이 늘어나겠지만, 장비를 더 사진 않으려고 해요. 공간을 채우는 건 쉽지만 비우는 건 정말 힘들거든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해도 좋겠다’라는 느낌이 들었던 곳이 있나요. 그만큼 좋았던 곳이라고 해석해도 좋고요.
생을 마감해도 좋겠다고 하기엔, 아직 가보지 못한 곳들이 많아서. 길게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한 나라는 있어요. 핀란드인데요, 전반적으로 느긋한 분위기와 따뜻한 느낌을 받아서 일상을 보내며 이 나라를 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영원히 기억될 거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 저희와 일주일은 동행해야 모두 들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하나를 꼽자면 몽골에서 만난 가족들을 이야기를 꺼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러시아에서 몽골 국경을 건너는데 7시간 넘게 걸렸고, 어렵게 도착한 첫날 소금 평원에 차가 빠져버렸어요. 그 밑이 펄과 진흙인지 모르고 들어간 거죠.
마크는 차를 운전하고 저는 앞에서 밀며 안간힘을 쓰는 데 아저씨 두 분이 오셨어요. 도움이 필요하냐 물었고 그렇다고 답했죠. 함께 끙끙대며 차를 밀었어요. 요지부동이었지만.
마침 그중 한 분이 현대 포터 트럭이 있어 차도 구출하고, 초대까지 해주셔서 귀한 손님이 오면 대접한다는 호르학이라는 몽골 전통요리도 먹었답니다. 그리고 2박 3일 동안 집에 머물 수 있게 해주고 시장, 게르, 현지인들만 아는 장소 등도 데려갔어요. 떠나는 날에는 직접 만든 나무 상자도 선물로 주셨고요. 그 당시에도 정말 감사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랑과 호의는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는 것을 더욱 많이 느끼고 있어요.
현재 루시님께 여행은 단순 취미가 아닌 삶이 되셨는데요, 혹시 즐기는 다른 취미가 있으신가요.
회사 다닐 땐 삶이 반복적이다 보니 조금 더 다양하게 하루를 꾸리고 싶어 이것저것 배우고, 취미 만들기에 노력을 기울였어요. 여행하면서부터는 제 일상의 한 조각과 취미가 닿아 있네요. 예를 들어 노르웨이에 있었을 땐 블랙베리, 링곤베리 따러 다니며 잼을 만들고, 모로코에서는 화석을 채취하러 가곤 했으니까요.
요즘 차에서 즐겨 들으시는 플레이리스트를 공유해 주세요.
놀라실진 모르겠지만 저흰 음악을 듣지 않아요. 자연에 있을 땐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와 새소리, 그리고 하늘이 저희의 배경음악입니다.
영상 촬영을 제외하고 여행을 기록하는 또 다른 행위가 있다면.
캠핑 장소 좌표를 기록하는 거예요. 날짜, 날씨, 출발 시각, 출발 시 km, 도착 좌표 등 여행 중 만난 브라질 커플의 방식을 보고 영감을 받아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발을 디뎠던 곳, 노지 캠핑했던 장소 등을 기억하기 쉽도록요.
그다음은 한 줄 일기입니다. 여행 중에 일어나는 일들이 많지만, 가만히 앉아서 일기를 쓸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그날의 감정에 대해서 한 줄로 간단히 기록해요. 한 문장으로 그날을 떠올릴 수 있거든요. 특별한 일들이 있었던 날은 일기형식으로 에버노트에 적고, 시간이 나면 이 글을 다듬어 블로그에 올리기도 해요. 앞으로 다녀갈 여행자들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서요.
여행을 통해 삶을 대하는 방식에 변화가 생긴 지점이 있나요.
러시아-몽골-러시아 횡단을 하고 있을 때 변화가 생겼어요. 정말 많은 사람이 친절을 베풀어 주었는데 저희는 여행자다 보니 그 사람들의 호의를 받고 떠나야 하는 입장이더라고요. 받은 마음을 그들에게 다시 돌려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니,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내가 받은 친절을 전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부터 삶을 대하는 방식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된 거 같아요.
하나의 예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정박할 때, 밤 11시쯤 지친 기색이 역력한 캠퍼가 도착했어요. 마실 물도 못 샀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5L 생수통을 주니, 의아함이 밴 표정을 지었어요. 그 모습에서 여행 초반 제 모습이 보였어요. “왜 잘해주지? 다른 의도가 있는 건 아닐까?” 같은 질문이 담긴 표정이요.
다음 날 아침 그 사람이 저희 캠핑카에 와서 생수 값을 주겠다고 하길래, 여행하면서 받았던 마음을 이야기해주고, 그 친절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해주는 것뿐이라고 말을 하니 이해를 하더라고요.
가보신 곳 중 국내 노지, 혹은 캠핑장 차박 명소 3곳을 추천해 주신다면.
첫 번째는 무주 부남면 체육공원 근처 대소교 다리 아래입니다. 시냇물이 흐르고 갈대가 흔들리고, 산이 보여 경치가 아름다워요. 그리고 사람이 많지 않아 그 공간을 혼자 오롯이 사용할 수도 있답니다.
포항 북구 이가리 해수욕장은 루프 텐트, 카라반, 트럭캠퍼, 캠핑카 등 캠핑의 다양한 형태를 한눈에 담아 볼 수 있는 곳이라 흥미로운 장소에요. 아울러 반려견까지 동반 가능해요.
마지막은 기성 망양해수욕장. 모래사장 근처에 자갈이 깔린 곳들이 있어서 2륜이라도 해변에 가깝게 주차를 한 후 캠핑을 즐길 수 있었어요. 트렁크를 열면 보이는 모래사장과 바다의 풍경이 압권이고 비수기에는 사람들이 없어 한적해요. 그런데 저희가 2년 동안 해외에 나와 있어 이곳들의 분위기가 바뀌었을 수도 있을 거 같네요.
귀차니즘 캠퍼에게 추천하고 싶은 간편하게 만들어 먹기 좋은 캠핑 요리 레시피를 알려주세요.
저희가 아점으로 자주 해 먹는 요리, 쿠스쿠스입니다. 필수재료는 병에 든 페스토, 방울토마토, 쿠스쿠스, 있으면 맛이 배가되는 재료는 오이, 올리브입니다. 방울토마토(오이, 올리브)는 먹기 좋은 한입 크기로 썰어주세요. 자르기 귀찮으면 과감히 패스하셔도 좋습니다.
물 한 컵 반을 냄비에 넣고 점화 후 끓어오르면 가스를 끄고, 쿠스쿠스 한 컵을 넣어줍니다. 5분 뒤에 쿠스쿠스를 뭉치지 않게 뒤적여 주고, 페스토 한 병과 썰어놓은 방울토마토(오이, 올리브)를 넣어 주세요. 그리고 쿠스쿠스와 함께 섞어주면 끝입니다. 2인분 기준이니 참고해주세요.
항상 가지고 다니는 유용한 캠핑 EDC를 소개해 주세요.
커피를 정말 많이 마셔요. 매일 아침 커피 2잔으로 시작하는데, ‘카플라노 클래식’에 원두를 갈아서 내려 마시고 있답니다. 캠핑카 여행인지라 세탁기가 없으니 손빨래를 하는데 그게 가능한 이유는 ‘스크러바 워시백(Scrubba Wash Bag)’, 이 빨래 가방 덕분이에요. 옷, 세제, 물을 넣어서 흔들어주면 빨래가 되는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좋아서 한 개 더 구매해 사용하고 있어요.
‘옴니아(Omnia)’는 가스버너에 사용할 수 있는 오븐이에요. 가끔 피자, 빵을 구워 먹고 싶어 구매했는데 크리스마스에는 케이크, 치킨 윙, 베이비 립까지 옴니아로 만들어 먹는답니다. ‘오난코리아 루메나2 N9 랜턴’은 밤에 캠퍼들끼리 모일 때 사용해요.
마지막으로 유튜브 채널 구독자분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있으시다면.
제가 만났던 사람들의 이야기, 감동들을 영상을 통해서 같이 공유하고 싶어요. 제가 있는 이곳의 삶, 여기서 만난 이들과 이런 감정을 나누며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이 인터뷰가 나갔을 때 모로코 국경이 열린다면, 아마 올해 말쯤엔 다시 캠핑카 자작을 하는 모습으로 구독자분들을 만나게 될 거 같아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공유하면서 구독자 분들의 꿈들도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