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홍빛 그러데이션으로 물드는 석양의 하늘은 사람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든다. 눈에 자동으로 콩깍지가 입혀지는 이 풍경 앞에서라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이고, 감성 게이지도 만렙을 찍는다. 여기에 배경음악까지 들어가면 금상첨화. 멀쩡한 사람도 감성충으로 만드는 이 마법 같은 일몰의 BGM 리스트에서 에디터들은 또 얼마나 손발이 오그라드는 곡들을 준비했는지 확인해보자.
<에디터 Sonny의 추천곡>
Track 01. Miles Davis – Générique
태양이 지구의 어느 한 지점에서 가장 멀어질 때, 그곳에서 보이는 빛의 파장은 붉은색으로 치우친다. 붉은색의 느낌인 곡. 날카로우면서도 혼곤한 소리. 나는 석양 하면 구슬프게 늘어지는 트럼펫이 떠오른다. 그 인상은 나 혼자만 받는 게 아니었나 보다. 마일즈 데이비스의 이 트럼펫 곡은 영화 ‘버닝’에서 여주인공이 석양을 보며 춤추던 음악이기도 하다.
Track 02. Courtly Love – Jolene
고작 서너 곡을 발표하고 자취를 감춘 런던의 인디 사이키델릭 블루스 밴드 Courtly Love. 유튜브 구독자 수는 단 1천 명으로 인지도는 거의 없다고 보면 되겠다. 그러나 그 서너 곡에서 찾아볼 수 있는 특색은 뚜렷하다. 블루지한 기타와 특유의 끈적한 보컬을 듣고 있자면 당장 칵테일이라도 한 잔 말고 싶어지는 밴드. 수년째 감감무소식이지만 그들만의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고 언젠가는 컴백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리스트에 올려본다.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3. 선우정아 – 구애
낮과 밤의 경계가 흐려지는 하늘을 바라보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실없는 고백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당신의 오늘을 묻다가 덜컥 비집고 나온 마음을 전한대도 하루가 허물어지는 풍경 앞에서라면 외로움도, 사랑도 별스럽지 않은 언어처럼 느껴질 거 같아서다.
선우정아의 구애는 사랑을 얻고 싶은 어떤 존재를 향한 목소리다. 당신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꺼내 보고 싶다면 두 눈에 시린 빛이 물드는 이 시간을 노려보자. 오늘 서울 기준 일몰 시각은 저녁 7시 1분.
Track 04. 코스모스 사운드 – 스무살
쓸쓸함을 말하는 코스모스 사운드 윤석의 목소리가 어쿠스틱 기타 소리와 어우러져 그녀가 떠나간 빈자리를 메운다. 이 노래는 여름밤보다는 추운 겨울, 초저녁 석양이 드리울 때 꺼내자. 코트 안 찬 공기를 껴안고 당신의 둔중한 그림자 끌며 걷는 길, 이 사운드가 흐르면 마음속 들어찬 적막함에 주먹 물고 주저앉아 눈물을 훔칠지도 모르지만.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5. Midnight – Sunset
일몰을 등 뒤에 두고 BGM으로 깔기에 이만큼 잘 어울리는 곡이 또 있을까. 미국 캘리포니아의 신스웨이브 듀오인 미드나잇(The Midnight)이 마치 작정하고 지은듯한 이 곡은 제목까지 완벽한 ‘Sunset’. 리듬 파트로 시작되는 인트로에 이어 신비로운 멜로디로 점차 살을 붙여가고, 두근거리는 심장 박동처럼 전개되는 베이스라인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아름다운 석양을 만났을 때 느낄 수 있는 가슴 벅찬 감동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아마 딱 이런 곡이 나오지 않을까.
Track 06. FM84 – Running in the Night
영국 스코틀랜드 출신의 프로듀서 콜 베넷의 레트로 신스팝 프로젝트인 FM84가 2016년에 발표한 첫 풀렝스 앨범 <Atlas>에 수록된 곡. Farra 출신의 보컬리스트인 올리 라이드가 이 앨범에서 두 곡이나 피처링을 해줬다. ‘Running in the Night’은 그중 한 곡. 특유의 아련한 무드로 가득한 올리 라이드의 보컬은 80년대풍의 몽환적인 감각으로 충만한 송라이팅과 찰떡궁합을 이룬다. 참고로 뮤직비디오까지 제작이 됐는데, 영상미 또한 압권이라 필청을 권한다.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07. Ben Harper – Another Lonely Day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고 하는데, 바꿔 말해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지기도 한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였던 찬란한 순간이 지나고 이별 후 혼자인 그만 남았다. “그래, 정말 난 다시 혼자야. 그래서 지금은 그저 또 다른 외로운 날일 뿐이야.” 낮게 읊조리는 벤 하퍼의 목소리는 오랜 친구와의 대화처럼 익숙하고 편안하다. 그의 잔잔한 독백은 부담스러울 만큼 절절하거나 처절하지 않다.
어딘지 모르게 공허함과 체념이 깔린, 담백하고 담담한. 노을빛 처럼 부드럽게 스며드는 가사와 멜로디가 이 곡의 매력이다. 석양과 외로움 그리고 Another Lonely Day 이 세 가지 조합이 누구도 알아줄 것 같지 않은 당신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도닥여 줄 거다. 살다 보면 외로움을 사람으로 막을 수 있다는 믿음이야말로 가장 순진하고 부질없는 희망임을 깨닫는다. 그러니 사람 말고 노을, 그리고 노래를 곁들이자. 아, 이왕이면 위스키도 한 잔.
Track 08. 이병우 – 돌이킬 수 없는 걸음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은 기타 그리고 이병우여야 한다. 그의 손끝이 만들어내는 구슬픈 기타의 선율, 그 자체로 언어가 되는 이 곡을 들어보면 알 수 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련함과 애잔함을 연주로 그려냈다.
영화 장화홍련의 결말을 완성한 OST. 영화의 주인공 수미가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걸었듯 우리도 매 순간 다신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지나고 있다. 이 노래를 들으며 그간 지나온 자취들을 돌이켜보자. 마음 한구석 수북이 먼지 쌓인 추억들을 불러올 타이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