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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핀 꽃을 지나치지 못하고 하루에 사진 20장씩 찍으며, 스마트폰 샤방하게 물들이고 있는 당신. 그래, 하나 보다는 둘이 나으니 같이 늙어가자. 이 천금 같은 귀한 봄날, 피곤함에 찌들어 회사로 향하는 당신을 새 학기 교복을 입고 교문을 들어서던 그때로, 첫사랑에 실패해 비틀거리던 어느 봄날로 입장시킬 노래를 골랐다. 지금 들어야 더 좋은, 봄의 여러 색깔을 담은 이 리스트로 당장 플레이리스트를 단장시키자.
에디터 푸네스의 추천곡
Track 01. 윈디시티 – Love is Understanding (Feat.임정희)
만물이 소생하는 시기, 겨우내 동작을 멈추었던 연애 세포도 잠자코 있을 리 없다. 뭐든 시작하기 좋은 계절인 만큼 뒷전으로 미뤘던 애정 전선에도 관심을 기울일 때. 때마침, 스치는 찰나의 눈빛에 당신의 마음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그녀가 있다면 이 노래에 마음을 얹어야 한다. 가사처럼 사랑은 서로를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진리를 곱씹으며, 부드러운 레게 소울에 두 귀를 맡겨보자. 이 곡은 봄비가 촉촉이 내리는 날 들으면 더욱 좋다.
Track 02. 9와 숫자들 – 삼청동에서
봄은 이별하기 좋은 때다. 위에선 사랑을 독려하더니 이게 무슨 망발인가 싶겠지만, 모든 것은 피고, 또 지고를 몸소 보여주는 계절이 바로 봄 아니겠는가. 하나의 계절이 당신을 관통하며 이별도 순리라는 위안을 주는데, 입에 문 이불 뱉고, 장판 그만 긁자.
이 노래는 청춘의 조각을 복고적인 분위기로 그려낸 9와 숫자들 1집 수록곡으로 꽃잎이 다 떨어진 빈 가지를 보듯, 상실의 정서를 담았다. 하지만 그 자리에 꽃의 얼굴을 한 봄은 다시 내려 앉을테고, 당신의 언 마음 위로 로맨스는 다시 날아들 테니까. 아울러 올해가 가려면 무려 세 개의 계절이 남지 않았던가.
Track 03. 유지태 – 그해 봄에
이 곡은 본래 제목보다 ‘라면 먹고 갈래’라는 한 줄이 더욱 회자되는 영화 ‘봄날은 간다’의 OST다. 그놈의 라면 타령 지겹기도 하지만, ‘라’에서 이미 현관 문턱 넘고 싶은 건 사실. 대게 이 영화의 배경음악을 동명 타이틀 김윤아의 노래로 먼저 떠올리겠지만, 가을과 또 다른 쓸쓸한 봄의 결은 이 곡에 더욱 진하게 묻어있다. 꿈결 같았던 아득한 한 때를 떠올리는 상우의 독백이 봄날처럼 아스라이 곁을 서성이는 곡.
에디터 형규의 추천곡
Track 04. Heartland – Carrie Ann
차가웠던 겨울이 가고 생명이 태동하는 봄이 오듯, 어두운 밤하늘이 걷힌 뒤에는 푸른 새벽과 함께 먼동이 떠오른다. 하트랜드(Heartland)의 셀프타이틀 데뷔작 <Heartland>는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작관적으로 전달해주는 AOR의 걸작이었다. 이슬을 머금은 촉촉한 새벽녘의 풀잎처럼 영롱하게 울려 퍼지는 기타 아르페지오는 이 곡의 백미. 성대를 자유롭게 조율하며 호소력 넘치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Chris Ousey의 보컬 역시 압도적이다.
Track 05. 루싸이트 토끼 – Go
루싸이트 토끼의 세 번째 정규앨범 <Grow to Glow>는 팀의 음악적 전환점이 된 중요한 기점이다. 파스텔과 결별하고 매직스트로베리로 레이블을 옮기면서 이미 음악적 변화는 예고되었던 셈. 이 앨범 덕분에 루싸이트 토끼는 더이상 재주소년 여자버전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되었고, 음악적 스타일도 특유의 감성을 담은 신스팝 듀오로 거듭나게 된다. 그중에서도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트랙을 하나만 꼽으라면 역시 ‘Go’다.
Track 06. Dream Theater – Pull me Under
도대체 화창하고 설레는 봄과 이 무거운 프로그레시브 메탈이 무슨 상관관계를 갖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맞다. 이 곡은 사실 봄과 전혀 상관이 없다. 하지만 굳이 이걸 넣은 이유는 바로 절묘한 몬더그린 가사 덕분.
‘Pull me under’를 외치는 제임스 라브리에의 후렴구는 아무리 들어봐도 ‘봄이 온다’라는 한국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덕분에 국내 한정으로 이 곡의 비공식적 한국어 타이틀은 ‘봄이 온다’로 굳어져 버렸다. 실제로 과거 지상파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개그 소재로도 사용된 적이 있을 정도. 어쨌든, 코로나19 속에서도 결국 봄이 오긴 왔다.
에디터 신원의 추천곡
Track 07. 선우정아 – 삐뚤어졌어
연말, 연초가 되면 왠지 설레고 행복해야 할 것만 같은 공기가 온 세상을 감싸는 느낌이다. 행복한 기류가 아닌, ‘그래야 할 것 같다’는 왠지 모를 중압감이 짜증스럽게 짓누르기도 한다. 어찌 보면 봄도 같은 맥락에 있다. 달달하고 밝고 설레는게 자연의 이치처럼 여겨지니 말이다.
“지금 내 얼굴 어떠니 항상 난 숨이 막히고 답답해 다들 어쩌면 그렇게 평온한 얼굴을 할 수 있는지.” 다들 멋드러진 인스타 피드처럼 잘만 지내는데 나만 아닌 기분이 들 때, 봄이라고 인생이 술술 풀리는 것도 아닌데 괜히 엇나가는 마음이 솟을 때, 이 노래가 당신의 심정을 대변해 줄 거다.
Track 08. 우효 – 민들레
그런 노래가 있다. 듣는 순간 마음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신기한 노래. 분명 감정이 밑바닥을 치고 수심 500미터까지 가라앉고 있었는데, 갑자기 수면위로 튕겨 나오게 만드는 이상한 노래. 우효의 민들레가 그중 하나다. 덤덤하고 담백한 음색, 일기장을 읽어주듯 진솔하고 친근한 가사, 과하지 않은 밝음과 부담스럽지 않은 우울이 녹아있다. 이 미묘한 균형은 대체 어떻게 만든 걸까. ‘그래, 아이돌의 아이돌이라 불리우는 인디 가수가 된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지’라며 어벌쩡 넘겨 본다.
Track 09. 잔나비 – 주저하는 연인들을 위해
작년 봄, 이 노래를 들으며 참 많이도 걸었다. 그래서인지 곡의 전주만 들어도 마치 스위치를 켠 것처럼 그 봄날의 잔상이 자동으로 떠오른다. 아마 세 번째 데이트에서였을까. 햇살은 좋았고 바람은 살랑이고 이태원에서 청파동까지 계획도 없이 발걸음 닿는 곳으로 직감 따라 걷는데, 한창 잔나비 신드롬이 일던 시즌이라 골목이며 상점이며 자연스레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다시 봄이다. 앞뒤 재거나 복잡하게 생각지 말고, 속마음 훑고 갈 누군가를 기다리며 이 노래를 틀자. 마스크를 쓰거나 외출 불가던가 둘 중 하나 골라야 하는 갑갑한 날들, 마음만이라도 봄바람 출입할 수 있도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