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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커먼아이웨어가 적어 내린 9년의 기록 (+영상)
2025-11-27T15:02:35+09:00
언커먼아이웨어 이건 대표

K-안경은 어떻게 대호황을 맞이할 수 있었을까.

2025년 9월, 성수동 한복판에 거대하고 기묘한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워낙 규모가 크고 실루엣이 독특해 완공 전에도 이미 화제였던 곳. 젠틀몬스터 운영사인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사옥이다.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했다. “안경을 얼마나 팔았길래 건물까지 세우지?”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국내 아이웨어 산업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젠틀몬스터를 시작으로 수많은 브랜드가 호황의 흐름을 만들고 있다.

K-안경의 부상은 단순히 운이나 우연만으로 치부할 수 없다. 지난 시간, 묵묵히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온 브랜드들의 치열한 노력을 양분으로 비로소 세워진 결과다. 어느새 9년 차를 맞은 하우스 브랜드 언커먼아이웨어 역시 그 변화의 파도를 온몸으로 지나왔다. 그들이 바라보는 한국 아이웨어 산업의 현재는 무엇이며, 미래는 어떤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언커먼아이웨어의 이건 디렉터를 만나 질문을 던졌다.

언커먼아이웨어 이건 디렉터 인터뷰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것

간단하게 소개 부탁한다.

언커먼 아이웨어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건이라고 한다. 주로 브랜딩과 운영적인 부분을 담당한다. 생산 관련 업무는 공동대표인 김인표 대표가 맡고 있다.

언커먼아이웨어 이건 디렉터

안경업계로 들어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부모님의 권유로 안경광학과를 진학했다. 아버지가 자영업을 오래 하셨는데, 자영업이야말로 본인이 잘하는 만큼 결과로 돌아온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 부모님 주변에 안경 관련 종사자가 꽤 있기도 했었고. 당시 딱히 이견이 없어 안경 관련 전공을 택하게 됐다. 이후 학교에서 김인태 대표를 선후배 사이로 만났고, 함께 브랜드를 만들게 됐다.

과를 진학할 때부터 브랜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나.

어릴 때부터 옷에 관심이 많아 막연하게나마 의류 브랜드를 해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중고등학생 때는 용돈을 받거나 아르바이트해서 돈이 생기는 족족 옷을 샀다. 항상 형의 옷을 물려받아 입을 수밖에 없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결핍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다.(웃음)

그때도 안경을 패션으로 바라보는 편이었나.

전공을 선택하기 전에는 안경을 안 썼다. 시각 교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보니, 처음부터 안경을 패션의 영역으로 접근했다. 꾸미는 일의 일종이라고 봤으니까.

언커먼아이웨어 웨이브투어스

최근 몇 년 사이에 안경이 패션 아이템으로 급부상했다. 현장에서 체감이 되나.

물론이다. 일단 도수 없는 안경을 맞추러 방문하는 고객의 비중이 상당히 늘었다. 안경을 착용하는 여성이 많아진 것도 그렇다. 예전에는 집에 돌아오면 렌즈 빼고 쓰는 물건 정도지 않았나. 요즘은 패션 브랜드에서 안경을 출시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2010년대 초반쯤이었나. 캘빈 클라인 같은 브랜드 속옷을 입고, 로고가 보이게끔 연출하는 게 유행이었다. 당시 김인태 대표와 나눈 말이 기억난다. ‘이제 속옷까지 신경 쓰는 시대가 왔는데, 왜 안경에 대해서는 이렇게 신경을 안 쓸까?’ 패션 관련된 모든 아이템을 통틀어 안경이 가장 늦게 올라왔다고 생각한다. 국내 기준으로는 젠틀몬스터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하지 않았나 싶다.

젠틀몬스터의 등장은 안경 산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

한국 안경 브랜드가 하나의 주류로 자리 잡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고 본다. 안경 외적인 비주얼을 강조하는 경향 때문에 부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러한 의견에 크게 동의하지는 않는다. QWER 같은 존재랄까. QWER은 밴드의 정통성 같은 걸 떠나서 저변을 확대하고 대중을 이끄는 무언가가 있지 않나. 안경이 특정 마니아층만 선호하는 분야에서 대다수가 즐기는 영역으로 확장되는 데에는 젠틀몬스터의 공헌이 분명히 존재한다.

초기에는 말도 안 되는 조형물을 설치하는 식의 젠틀몬스터의 행보가 조금 과하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이를 꾸준히 이어 나가면서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정립하는 모습을 보며 리스펙을 하게 되더라. 지금은 수많은 브랜드가 비슷한 방식을 차용한다. 제품 디자인도 따라가고. 젠틀몬스터가 K-아이웨어 브랜드의 수장 역할을 도맡으면서 알게 모르게 우리도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모든 브랜드가 특정 브랜드의 행보를 쫓는다는 게 좋지만은 않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로 좋은 브랜드의 기준은 생존이라고 생각한다. 매출보다는 얼마나 오래 살아남는지. 누군가 잘 되면 따라 하고 싶은 사람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브랜드는 얼마 못 가 망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레 발생하는 현상일 뿐,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브랜드와는 결이 다르다 보니 딱히 경쟁 상대라고 느껴지지도 않고.

진저아이웨어 레이버
(좌) 진저아이웨어 (우) 레이버

눈여겨보는 브랜드가 있나.

자기만의 색이 있고, 추구하는 바가 확실하게 보이는 브랜드를 선호한다. 상업적인 브랜드의 미덕은 잘 팔리는 데에 있지만, 잘 팔리든 안 팔리든 만들고 싶은 안경을 만드는 브랜드가 개인적으로는 좋다. 그런 면에서 진저아이웨어나 레이버(Labor)가 그들만의 것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커먼아이웨어도 어느덧 9년이 되어간다. 소회가 어떤가.

감사함과 어려움이 공존한다. 처음 브랜드를 시작할 때는 10년 존속이 목표였다. 10년의 세월이 20년, 30년을 가능케 하는 저력을 만들어 줄 거라 믿었으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브랜드의 외형은 커졌지만, 운영의 난도는 가면 갈수록 높아진다. 점점 취향이 세분되고 있지 않나. ‘이런 식으로 운영하면 이런 반응이 올 거다’라는 예측이 어렵다. 요즘이 언커먼아이웨어를 운영하면서 가장 고민이 많은 시기다.

그려내고자 한 청사진이 있었나.

일종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 그 일환으로 언커먼아이웨어뿐만 아니라 언커먼 키즈, 미완경, 프로그레스라는 브랜드를 만들게 된 것이다. 언커먼아이웨어를 착용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어 아이가 생기면 언커먼 키즈를 구매하고, 조금 더 좋은 안경을 쓰고 싶으면 미완경에 관심을 가져도 보고. 취미가 생기면 프로그레스에서 고글도 사는 식으로 말이다.

미완경 프로그레스
(좌) 미완경 (우) 프로그레스

브랜드를 시작할 때 이것만큼은 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지점이 있다면.

진정성 있는 브랜드로 다가가고 싶었다. 패션도 패션이지만, 언커먼아이웨어는 옵티컬 성향이 강한 브랜드다. 내가 생각하는 안경은 렌즈까지 결합한 형태다. 프레임만 판매하고 렌즈는 알아서 맞추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래서 디자인부터 렌즈, 사후 관리까지 책임지는 콘셉트로 시작했다. 지금도 그 부분은 변함이 없다. 오프라인 매장을 굳이 운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안경원에 입점하지 않았던 이유도 누가 그 제품을 파는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진이 최우선인 사람보다는, 브랜드에 대한 분명한 이해도를 갖춘 사람이 판매하길 바랐다. 합리적인 가격을 위해서 유통 비용을 줄여야 하기도 했고.

지금도 안경원에는 입점하지 않는 건가.

현재는 몇몇 군데 입점을 한 상태다. 너무 많은 분이 직접 착용해 볼 데가 없다고 아쉬움을 표하시더라.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걸 고집하는 게 꼭 답은 아닐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신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우리의 제안 사항을 완전히 수용할 수 있는 곳에만 유통했다. 어쨌거나 판매처가 많아질수록 브랜드의 가치는 훼손된다고 생각해서, 관리할 수 있는 선에서만 확장하려고 생각 중이다.

언커먼아이웨어 이건 디렉터

처음과 비교했을 때 달라진 점이 더 있나.

예전에는 우리가 하고 싶은 것만 했다. 시장이 어떻든, 트렌드가 어떻든. 지금도 그 생각이 크게 변하진 않았지만, 너무 외면하지 말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오만한 표현이지만 전에는 뭘 좀 아는 사람들이 우리를 좋아해 줬으면 했다.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도 우리를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어느 순간 초심이라는 게 ‘누구를 위한 초심인가?’ 싶더라. 당장 나조차도 쓰고 입는 게 10년 전과 비교했을 때 그대로냐, 하면 전혀 아니다. 브랜드는 바뀌지 않았다. 내가 바뀌었을 뿐. 우리가 초기의 모습을 유지한다고 해서, 언제까지고 소비자가 좋아해 주리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그래서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거다. 

지금은 현재 상태에서 우리를 바라봤을 때 멋있었으면 좋겠다. 2025년에는 2025년에 맞게 멋있고, 2035년에는 2035년스럽게 멋있고. 결국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다.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우리가 추구하는 방향과 맞다는 게 지금의 결론이다.

그간 국내 아이웨어 산업도 많이 변했다.

매출 규모만 놓고 보더라도 산업이 엄청나게 커졌음을 알 수 있다. 내가 학생이었을 때는 안경이 사양산업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라식이나 라섹이 대중화되면 굳이 불편한 안경에 돈 쓸 이유가 없어질 테니까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안경을 예쁘게 쓰려고 라식을 하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다. 렌즈가 너무 두꺼우면 안 예쁘니까.

언커먼아이웨어 성수점

우리나라는 유독 빠르게 성장한 느낌이다. 이유가 있을까.

전부터 안경 산업이 발전하기 좋은 환경이 갖춰져 있었다. 우선 동아시아인의 근시 비율이 높다. 2023년 기준 안경을 착용하는 13~19세 인구가 85% 정도 된다더라. 안경 산업이 성장하기 위한 완벽한 조건을 갖춘 셈이다. 나라가 작은 것도 영향을 끼친다. 요즘 안경 당일 맞춤이 외국인 관광 상품으로 뜨고 있지 않나. 이는 렌즈 배송이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당장 서울이 아닌 다른 지역만 하더라도 그렇게 빨리 못 한다.

이렇게 인프라가 구축된 상태에서 젠틀몬스터가 등장하고, 미우미우와 같은 패션 브랜드가 안경 트렌드를 선도한 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중요한 건 안경이 패션 카테고리로 들어왔다는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옷이나 신발에는 큰돈을 쓰면서 비싼 안경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안경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분이 워낙 많지 않은가.

긱시크 트렌드 다음으로 알아두면 좋을 안경 트렌드가 있나.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테크와 결합한 스마트 글라스가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외관상 큰 차이가 없으면서 기술도 자연스러워지면 안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처음에는 이질적이었던 무선 이어폰이나 전기차도 지금은 일상이 됐다. 스마트 글라스를 직접 착용해 보기도 했는데, 진짜 좋더라. 사진 촬영은 기본이고, 상대방의 입 모양을 인식해 실시간으로 번역까지 해준다.

언커먼아이웨어 벅

향후 목표가 있다면.

언커먼아이웨어를 전에도, 지금도 좋아해 주고 잘 사용해 주는 분들이 있다. 그런 분들에게 ‘좋아하는 브랜드’로 남아 있고 싶다는 소망이 있다. 당장 소비하지 않더라도 ‘전에 좋아했던 브랜드인데 여전히 잘하고 있네’ 같은 평가를 받고 싶은 마음이랄까. 그런 마음이 우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잘 전달돼서, 좋은 평가를 머금고 브랜드가 커가기를 바란다. 건전하게 성장하고 싶은 느낌.

그간 여러 브랜드가 생기고 사라졌다.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적어도 나는 평생직장이라 생각하면서 브랜드를 시작했다. 분명 최전선에서 일할 수 없는 순간은 올 거다. 그럼에도 가능한 한 오래도록 좋은 평가를 받으며 생존하는, 살아 있는 브랜드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