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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안 랩소디만큼 재밌는 음악 영화 7선
2023-02-22T19:28:01+09:00

‘보헤미안 랩소디’ 천만 관객을 예상하며 미리 설레발을 쳤던 에디터들의 취향.

이제야 이실직고한다. 사실 에디터들은 ‘보헤미안 랩소디'(Bohemian Rhapsody)가 당연히 천만 관객을 넘길 줄 알았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딱 그 타이밍에 맞춰 올릴 음악 영화 기획을 야심 차게 준비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엄청난 기세로 상승곡선을 그리던 관객 숫자는 산왕전 승리 후 참패해버린 북산처럼, 천만을 앞두고 993만에서 거짓말처럼 멈췄다. 김칫국을 사발째 들이켰는데 뒷북까지 친 셈이 됐다.

하지만 어쩌랴. 에디터들 모두 이미 추억 속 영화를 하나씩 끄집어내 유튜브 결제까지 해가며 되새김질해 버린 것을. 그래도 우리가 공들인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이 리스트에는 ‘보헤미안 랩소디’만큼, 또 어떤 이에게는 그 이상의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기준은 뮤지션의 일생을 다루거나 실제 뮤지션이 출연하는 영화로 한정했다.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 (Metallica: Through the Never, 2013)

천만 관객 영화가 될 뻔했던 ‘보헤미안 랩소디’에 비하면 ‘메탈리카 스루 더 네버’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국내 관객 동원 숫자는 단 9천여 명. 하지만 흥행 성적과 반대로 이 영화는 엄청난 자본이 투입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총 33대의 3D 아이맥스 카메라를 모든 방향에 때려 넣었고, 한 번의 공연을 위해 트레일러 40대 분량의 장비가 동원됐다.

“백스테이지 비추기에 급급한 뻔한 콘서트 영화는 만들고 싶지 않아서”라며 기획 의도를 설명하는 드러머 라스 울리히의 말에 영화의 핵심이 담겨있다. 공연하면서 영상도 담아낸 것이 아닌,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거액을 투자해가며 무대효과를 기획하고 연출했다. 특히 ‘Ride the Lightning’을 연주할 때 테슬라 코일로 진짜 번개를 연출하는 장면은 압권. 공연 현장과 동시에 트립이라는 로드매니저를 통해 진행되는 별개의 이야기도 있다. 보통의 콘서트 영화와는 180도 다른 분위기를 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중요한 건 이 영화의 제작비를 메탈리카가 모두 댔다는 점이다. 거액의 제작비와 음악 영화 특성상 불투명한 흥행 여부 때문에 투자자가 나타나지 않자 멤버들이 직접 돈을 각출했다고. 총 1,500만 달러를 아낌없이 퍼붓는 멤버들의 패기와 열정, 그리고 재력을 엿볼 수 있다. 러닝타임 92분.

레토 (Leto, 2018)

러시아인들은 그룹 ‘키노’의 리더 빅토르 최를 고려인 록 가수라 지칭하길 거부한다. 빅토르 최는 구소련 록의 전설이자 그 시대를 관통하는 청춘의 아이콘이기 때문이다. 1월 3일 새해와 함께 날아든 영화 ‘레토’, 이는 전기 영화라 정의될 수 없다. 인물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현 상트페테르부르크인 레닌그라드를 배경으로 무모하고 찬란한 젊음, 그들이 갈망하는 자유 등 시대정신이 고스란히 담겼다.

‘레토’의 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는 영화 후반부 촬영 중 가택 구금되어 마지막까지 현장에서 메가폰을 잡을 수 없었다. 반정부 성향의 영화를 제작해 온 감독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추측이 지배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71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후보작으로 선정되어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국내에서도 입소문을 타며 장기 상영에 들어갔다.

당신이 마주할 흑백 화면 속에는 실제와 환상이 교차하고, 키노의 음악은 물론 토킹 헤즈 ‘사이코 킬러’, 이기 팝 ‘패신저’, 루 리드 ‘퍼펙트 데이’ 등이 흘러나온다. 금기를 껌처럼 씹다 버리고 싶었던 세태에 대한 반항, 어딘지 모르게 애매한 사랑도 펼쳐지니 영화 제목처럼 이 뜨거운 계절 속에 몸을 부비고 싶은 이에게 ‘레토’를 추천한다. 빅토르 최는 한국 배우 유태오가 연기했다. 러닝타임 128분.

록 스타 (Rock Star, 2001)

마크 윌버그 주연의 ‘록 스타’는 영화적 관점에서 보면 새로울 것도, 참신할 것도 없는 평범한 작품이다. 하지만 록·메탈의 황금기였던 80년대를 기억하는 마니아들에게는 선물과도 같은 영화다. 잭 와일드, 마일스 케네디, 제프 스콧 소토 같은 실제 록스타들이 대거 출연했고 키스, 본조비, 머틀리 크루의 익숙한 명곡도 영화를 수놓는다. 윌버그가 연기하는 크리스 이지 콜의 노래도 스틸하트의 밀젠코 마티예비치가 불렀다.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스틸드래곤이라는 영화 속 유명 밴드를 추종하는 트리뷰트 그룹 보컬이 거짓말처럼 진짜 스틸드래곤에 가입하지만, 록스타의 삶을 살아가면서 고뇌와 갈등을 느끼다 결국 밴드를 떠나는 과정을 다룬다.

그래도 벅찬 감동을 주는 엔딩은 록 스타를 꽤 볼만한 영화로 만들어준다. 영화 종반 머리를 짧게 자른 이지 콜의 모습은 헤비메탈이 쇠락하고 시애틀 그런지로 세대교체가 된 1990년대 록 씬의 분위기를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작품이 완전 허구는 아니다. 전설적인 헤비메탈 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았기 때문. 다만 롭 헬포드의 뒤를 이어 가입한 팀 ‘리퍼’ 오웬스는 영화 속 이지 콜처럼 방탕한 삶을 살지도 않았고, 훌륭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팬들로부터 과소평가를 받아 록 스타 같은 삶도 살지 못했다. 밴드가 전임 보컬과 재결합하자 오웬스는 거의 쫓겨나다시피 밴드를 떠났고, 그래도 여전히 헤비메탈을 한다는 점도 다르다. 러닝타임 105분.

아임 낫 데어 (I’m Not There, 2007)

밥 딜런의 여섯 가지 페르소나를 여섯 명의 배우가 연기한다. 다만 극 중 밥 딜런의 이름은 한 번도 거론되지 않고, 여섯 명의 캐릭터는 제각각의 이름과 삶이 있다. 혁명가, 시인, 반항아, 신앙인, 은둔자 등 딜런의 여러 면모를 그리지만, 단순히 여러 단편 영화를 모은 형태는 아니다. 마치 딜런의 환생을 보는 것처럼 유명 뮤지션이었다가, 기차 여행을 하는 흑인 소년이었다가, 남편이자 아버지였다가,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한다. 뒤죽박죽인 타임라인은 평행우주처럼 얽혀 있다.

크리스찬 베일, 케이트 블란쳇, 히스 레저, 벤 위쇼, 리차드 기어, 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밥 딜런 역을 맡았다. 필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케이트 블란쳇이 남자로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블란쳇의 캐스팅은 화제가 되었다. 러닝타임 135분.

십자로 (Crossroads, 1986)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이른 나이에 별세한 블루스의 전설 로버트 존슨. 속설에 의하면 그는 뛰어난 기타 실력을 얻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다고 한다. 그가 남긴 스물아홉 곡 중에는 십자로와 악마가 언급된 곡이 여럿 있다. 이 영화는 그 전설에 기반한 영화다.

블루스를 사랑하는 어린 유진은 뉴욕에서 클래시컬 기타를 전공한다. 그는 로버트 존슨이 세상에 알리지 못한 서른 번째 곡이 존재한다고 믿고, 뒷조사를 통해 로버트 존슨의 어릴 적 친구 윌리 브라운을 찾아낸다. 살인 혐의로 감금되어 있는 윌리 브라운은 탈출을 도와주면 그 서른 번째 곡의 행방을 알려주겠다고 약속한다. 결국 그들은 함께 델타 블루스의 고장 미시시피로 떠난다. 유진은 알지 못하지만, 사실 윌리는 자신의 일생을 불행하게 만든 악마를 다시 만나기 위해 십자로로 가는 것이다.

유진은 이 여정에서 어느 소녀를 만나 사랑하게 되고 또 상실을 맛보며 조금씩 진정한 블루스의 혼을 배워가기 시작한다. 이때 윌리 브라운은 명언을 남긴다. “Blues ain’t nothing but a good man feelin’ bad.” 블루스란 그저 나쁜 일을 겪은 착한 사람의 이야기일 뿐.

각본가 존 푸스코는 실제로도 재능 있는 블루스 뮤지션이다. 클라이맥스에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또 다른 사내와의 기타 대결 장면이 있는 만큼 사운드트랙도 기대할 만하다. 라이 쿠더가 작곡, 스티브 바이가 기타 연주, 그리고 써니 테리가 하모니카 연주를 맡았다. 러닝타임 96분.

터네이셔스 D (Tenacious D in The Pick of Destiny, 2006)

위대한 뮤지션이 되고 싶으나 왜 자신들은 ‘대박’이 안 터지는지 도저히 모르겠는 JB와 카일 가스는 세계적인 록커들이 나온 잡지 표지를 보고 의문을 품는다. 이들은 왜 공통적으로 똑같이 생긴 피크를 쓰고 있을까.

전설의 반열에 오르기 위해 그들은 신비한 힘을 지닌 악마의 피크를 찾아 나선다. 아니나 다를까, 그 길의 끝에는 또 악마와의 락 배틀이 준비돼 있다. 잭 블랙의 유쾌한 가사, 로니 제임스 디오의 카메오, 그리고 전 너바나 드러머이자 푸 파이터스의 리더 데이브 그롤의 악마 역이 이토록 반가울 수 없다. 야망과 탐욕에 찌든 병맛 영화. 한 가지 아쉬운 건 쉴 새 없이 등장하는 맛깔나는 욕이 번역으로는 온전히 와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 터네이셔스 D는 실제로 활동하는 밴드니 일반 앨범도 한번 찾아보자. 러닝타임 94분.

에이미 (Amy, 2015)

음악에 조예가 깊다면 ‘27’이라는 숫자의 의미를 잘 알 것이다. 지미 헨드릭스, 재니스 조플린, 짐 모리슨, 로버트 존슨, 커트 코베인 등 전설적인 뮤지션들이 모두 27세에 생을 마감했다. 이 리스트에는 에이미 와인하우스도 있다. 하지만 ‘에이미’는 짧은 생애를 살다 간 그의 천재성에 집중하는 영화가 아니다. 알코올과 약물로 얼룩진 에이미가 왜 그토록 비극적인 삶을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진솔하게 드러내는 다큐멘터리다.

아시프 카파디아 감독이 밝힌 바에 의하면 영화 제작에만 총 3년의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를 위해 에이미의 지인들, 일반인의 사적인 자료까지 총동원됐다. 당연히 영상 소스의 퀄리티는 기대하기 힘들다. 하지만 에이미의 삶과 노래를 교차로 편집하며 보여주는 연출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내게서 재능을 거둬가더라도 이 거리를 다시 평범하게 거닐 수 있다면 그렇게 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에이미의 진솔한 고백이 심장을 먹먹하게 만든다. 러닝타임 127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