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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와 모방의 아슬한 줄타기, 듀프 소비
2025-01-15T10:16:41+09:00

꿩 대신 닭, 근데 꿩을 많이 닮은 닭.

최근 미국에서는 월마트 표 가방이 세간의 화제였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마트의 PB 상품이 갑자기 품절 대란을 일으킨 느낌. 이유가 무엇인고 하니, 에르메스의 버킨백과 판박이였기 때문이다. 디자인은 구별이 어려울 정도로 흡사한데 가격은 100분의 1 수준이니 눈길을 끌 수밖에. 그거 짝퉁 아니냐고? 이게 바로 전 세계 소비문화를 장악하고 있는 듀프(Dupe)다.

명품이나 고가의 제품과 비슷한 실루엣을 하고 있지만, 비교적 접근성이 좋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는 게 듀프의 특징.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롱의 대상이었던 유사 디자인 제품이 어떻게 대세가 될 수 있었을까? 소비자가 듀프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듀프란 무엇인가

날 닮은 너 너 누구야

먼저 어원부터 살펴보자. 듀프는 복제, 복제품을 뜻하는 ‘Duplication’의 약자다. 원래 이 단어가 미국에서 쓰이는 뉘앙스는 소위 말하는 ‘짭’과 다를 바 없을 정도로 부정적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유행하는 듀프 소비는 가짜 제품의 구매를 장려하는 문화인 걸까? 닮은 구석이 있을지언정, 명백히 불법인 위조품과는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일종의 이데아가 되는 원본이 존재하는 건 동일하다. 하지만 상표까지 따라 해 버리는 카피 제품과 달리, 듀프로 일컬어지는 제품은 생산 브랜드를 명확히 밝힌다. 거기에 외관만 비슷한 수준을 넘어 품질 면에서도 소비자에게 만족을 선사한다. 즉 본래의 제품을 대신할 수 있는 ‘대체품’에 가까운 것이다. 시계 업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마주 시계와 개념적으로 유사하다.

(좌)포터 탱커 숄더 백 (우)유니클로 멀티포켓숄더백

사실 ‘듀프’라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을 뿐, 이러한 소비 형태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인지하지 못한 사이 우리의 삶에 스며든 거대한 흐름이자 추세인 것이다. 다들 약속이라도 한 듯 신상 컬렉션은 자라에서, 유용한 생활용품은 다이소에서 출시되기를 기다려 오지 않았나. 포터 제품을 닮은 유니클로의 숄더백은 품절은 기본, 2배가 넘는 값으로 리셀되기도 했다. 

듀프는 이제 단순한 복제를 넘어, 대체 소비라는 새로운 의미를 품고 긍정적인 이미지로 자리 잡고 있다. 마치 처음에는 멸칭으로 여겨졌던 ‘덕후’가 시간이 지나며 특정 분야에 열정을 가진 사람들의 대명사로 변모한 것처럼 말이다. 오늘날, 듀프 제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이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소비를 지향하는 사람으로 자부한다.

듀프에 한계는 없다

명품을 넘어 올라운더로

초창기에 듀프의 흥행을 견인한 분야는 단연 패션과 화장품이다. 럭셔리 브랜드의 제품은 으레 듀프의 표적이 되기 마련이지만, 의외로 가장 화제성이 두드러진 건 룰루레몬의 운동복이었다. 듀프의 홍수 속에서 룰루레몬이 펼친 남다른 행보 덕분인데, 유사 제품을 가져오면 정품으로 교환해 주는 캠페인을 펼친 것이다.

정품 구매를 장려하는 브랜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듀프는 더 많은 분야로 영향력을 뻗어나가는 중이다. 디자이너 가구는 이케아나 웨이페어에서 똑 닮은 모습으로 만날 수 있고, 우리에게 필요한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샤오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여행지까지 ‘듀프’한다. 서울 대신 타이베이, 방콕 대신 파타야, 몰디브 대신 팔라완으로.

이제는 듀프 제품을 찾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유희로 여겨지는 수준에 이르렀다. 동묘 좌판대의 옷 무더기에서 보물을 찾아내듯, 본품을 완벽히 대체할 수 있는 물건을 디깅하는 것이다. SNS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관련 콘텐츠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심지어 키워드만 넣으면 그 즉시 대체 제품을 찾아주는 홈페이지까지 생겨났다.

왜 듀프인가

지금이 절묘한 타이밍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경제 불황이 가장 큰 요인이겠다. 맞는 말이다. 전 세계적으로 경기가 어려워지니 지갑을 열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모방품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는데, 듀프는 어떻게 하나의 소비문화가 될 수 있었을까? 

‘가격과 퀄리티는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인식은 이전부터 있어 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힘이 실리고 있다. 기술력을 기반으로 생산 단가를 낮추면서도 양질의 제품을 전개하는 브랜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통 과정을 배제한다거나, 노브랜드처럼 브랜드파워를 아예 지우는 등 코스트를 낮추는 다양한 전략이 펼쳐지고 있다. 실제로 고품질의 제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게다가 인터넷과 SNS가 너무나 익숙한 세대가 주 소비 연령층으로 진입했다. 소재나 함량과 같은 객관적인 정보를 확인하고, 블로그나 유튜브에서 실구매자의 리뷰를 찾아보는 건 그들에게 지당한 일.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비교우위를 가리기 쉬워졌고, 깐깐하게 따져가며 구매하는 게 현명한 소비라는 인식이 널리 퍼지게 됐다.

물론 명품 브랜드가 제공하는 가치는 단순히 품질에만 기인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랜 역사와 전통으로 구축한 헤리티지, 필요를 넘어서 소유하고 싶게 만드는 희소성이나 상징성과 같은 의미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하지만 오로지 제품력으로만 판단하는 소비 세태 속에서 무형적 가치는 퇴색되기 마련. 게다가 디올 가방의 원가가 8만 원에 불과하다는 논란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꼴이 돼버렸다.

문제는 없을까

판단은 개인의 몫

일각에서는 듀프 소비자의 양면성을 꼬집는다. 합리적인 소비가 목적이라면 굳이 명품과 닮아 있는 제품이 아니어도 상관없지 않은가. 결국 듀프 제품을 구매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본품이 존재한다는 데 있다. 단순히 양질의 물품을 사기 위함이 아닌, 고가의 제품을 갖고 싶은 욕구가 그 기저에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듀프 제품이 오히려 명품의 위상을 높여준다는 주장도 있다. 따라 하는 제품이 나온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입증하는 셈이니까. 하지만 LVMH의 매출은 하락세인 반면 SPA 브랜드의 실적은 나날이 고공행진 중이다. 복합적인 원인이 반영된 결과겠지만, 세계적인 소비 동향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 리가 만무하다.

듀프 트렌드와 함께 덩달아 화제가 된 saturdayhouse의 레터링백

또한 법적 처벌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윤리적인 문제가 남아 있다. 듀프 제품은 디자인을 비롯해 아이덴티티까지 원본에 완전히 기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모방이 합법의 테두리 안에 있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할 수 있을까? 가구 브랜드 헬러(HELLER)의 CEO 존 에델만은 “복제품은 디자인의 미래를 죽인다”고까지 말했다.

듀프 소비가 상류층의 특권이던 럭셔리 제품의 민주화를 이끈 영웅인지, 저작 의식의 퇴보를 초래한 빌런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의 차이일 뿐, 개인의 선택은 존중받아 마땅하다. 다만 어떠한 판단도 없이 흐름에 편승하기보다는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질 필요가 있다. ‘합리적인 소비란 무엇인지’를 말이다.

이왕이면 제대로, 듀프 제품 추천 6

01
자피드러너 계보를 잇다

자라 리미티드 에디션 레더 스니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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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라는 듀프의 천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브랜드에서 새로운 컬렉션을 발표하면 머지않아 자라 매장에서도 만날 수 있을지니. 뉴발란스와 미우미우의 컬래버 스니커즈를 눈독 들이고 있었다면, 이 신발도 고려해 보시길 바란다. 

두 제품을 구별하려면 눈 부릅뜨고 봐야겠다. 날렵하게 빠진 옆태와 부드러운 스웨이드 소재, 은은한 브라운 색감까지 비슷하니까. 100% 소가죽 갑피로 퀄리티까지 챙겼다. 불편한 착화감으로 악명이 높았던 자라의 제품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가볍고 편안하게 신을 수 있다.

02
이름 헷갈리지 마세요

에르메스 떼르 데르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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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르메스가 무슨 듀프냐고 역정 내지 마시라. 상대는 고가 향수로 명성이 자자한 로자 퍼퓸이다. 수십만 원에서 비싸게는 수백만 원까지 호가하다 보니, 10만 원대 향수는 본품의 반의반도 안 되는 가격이 되어 버린다.

떼르 데르메스는 로자 퍼퓸의 대표적인 향수 중 하나인 이솔라 블루를 닮은 향수로 익히 알려져 있다. 시트러스한 뉘앙스가 강하지만, 동시에 우디함을 품고 있는 두 매력의 향이다. 뿌리기만 해도 청량하면서도 묵직한 아우라를 풍기는 남자로 변신 완료. 지속력이 좋은 편은 아니니 참고하자.

Specification

  • 탑 노트 : 오렌지, 자몽
  • 미들 노트 : 페퍼, 펠라르고늄, 플린트
  • 베이스 노트 : 베티버, 시더우드, 파출리, 벤조인
03
그 자체로 좋은 술

웰러 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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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번위스키의 산증인이자 끝판왕, 패피 반 윙클. 가격도 가격이지만 워낙 매물이 없어 구하는 게 하늘의 별 따기다. 어떻게든 그 향취를 느끼고 싶다면 웰러가 제격이다. 패피 반 윙클과 동일한 증류소인 버팔로 트레이스에서 같은 레시피로 만들어지기 때문. 

보통의 버번위스키가 강렬한 캐릭터를 보여준다면, 밀 버번인 웰러는 비교적 유한 모습을 담고 있다. 바닐라의 향으로 시작해 부드럽고 달콤하게 퍼지는 풍미가 압권이다. 패피 반 윙클의 인기에 힘입어 웰러도 품귀 현상이라 하니, 마주하게 된다면 고민 없이 쟁여두도록 하자.

테이스팅 노트

  • Nose : 아몬드, 크림, 옥수수, 바닐라
  • Palate : 밀, 복합적인, 달콤한
  • Finish : 긴 여운, 부드러운, 오크
04
별은 내 가슴에

스타인하트 오션 39 블랙 세라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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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좀 안다 하는 사람이라면 시계 업계의 듀프, 오마주 시계를 모를 수가 없다. 인지도가 높은 디자인이라면 수도 없이 나오는 게 오마주니까. 그중 서브마리너는 가장 많은 오마주 시계를 양산했다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거머쥔 상징적인 모델이다.

무수한 듀프 속에서 스타인하트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를 꼽자면 단연 무브먼트다. 오마주 시계는 내실이 아쉽다는 평가에서 스타인하트는 예외 사항. 양질의 메이드 인 스위스 무브먼트를 채택하며 디자인과 안정성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

Specification

  • 케이스 직경 : 39mm
  • 케이스 소재 : 스테인리스 스틸
  • 무브먼트 : ETA 2824-2/SW 200
  • 방수 : 300m
05
입문용으로 딱

로얄엔필드 클래식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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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는 남자의 로망을 제대로 자극하는 분야. 할리 데이비슨은 그중에서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지금은 단종돼 버린, 감성만 놓고 보자면 최고봉인 아이언 883을 듀프한다면? 로얄엔필드의 클래식 350이 적합하겠다.

이름값을 하려는 건지, 클래식 350은 클래식 바이크의 표본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전통적인 디자인을 뽐낸다. 핸들부터 연료 탱크, 안장까지 부드럽게 이어지는 곡선은 미끄럼틀 타고 싶을 정도. 다양한 연료 탱크 옵션이 구비돼 있으니 나만의 듀프 바이크를 완성해 보자.

Specification

  • 엔진 : 공랭식 4 스트로크 단기통
  • 배기량 : 349cc
  • 최대 출력 : 20마력/6,100rpm
  • 최대 토크 : 27Nm/4,000rpm
06
대륙의 위엄

홍치 H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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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최고급 자동차를 제작하는 홍치에서 롤스로이스를 닮은 차가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차량 디자인을 총괄한 인물이 롤스로이스의 수석 디자이너 출신이기 때문이다. 폭포수를 모티브로 제작했다는 거대한 라디에이터 그릴은 팬텀의 그것과 꽤나 닮아 보인다.

5.1m에 달하는 풀사이즈 전장으로 그려낸 실루엣은 강렬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아무래도 가격 경쟁력. 거진 10억에 근접하는 팬텀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이니, 이 가격으로 의전 대우 바이브를 경험할 수 있는 건 H9이 유일하지 않을까.

Specification

  • 파워트레인 : 2.0L 터보 I4
  • 최고 출력 : 252마력
  • 최대 토크 : 380Nm
  • 변속기 : 7단 듀얼 클러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