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에서는 뒷방 신세였던 SF 장르가 히든카드로 떠오르고 있다. 호와 불호는 명확히 갈렸지만,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에는 딱히 이견이 없는 ‘승리호’의 이슈 몰이도 이를 반증한다. 아울러 ‘서복’, ‘원더랜드’ 등 국내 유명 감독들도 SF에 출사표를 던져 장르의 지각변동, 아니 저변 확장을 기대해볼 만하다. 공상, 망상, 상상이 특기인 당신, 한국판 SF 만끽 전 상상력 예열 좀 해보시라고 넷플릭스에 거주 중인 SF 장르 드라마를 딱 5개만 추려봤다.
블랙 미러
기술 발전이 유토피아를 그린다면 애초에 세상 많은 이야기는 증발했을 터. ‘블랙 미러’도 눈부시고 찬란한 미래가 아닌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을 보여주며, 우리의 미래 혹은 현재일지도 모를 인간상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이 작품의 진입 장벽이 다소 높은 이유가 바로 첫 번째 시즌 1화 때문일 텐데, 옴니버스 형식이라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하지만 시즌3 ‘샌 주니페로’화는 필히 봐야 마땅하다. 대체로 어두운 내용과 자극적인 묘사가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몰아보기는 비추천. 한편씩 꼭꼭 씹어 삼켜야 체하지 않을 거다.
러브, 데스+로봇
18개의 단편을 모은 성인용 애니메이션 앤솔로지. 제목에서 등장하는 ‘사랑’, ‘죽음’, ‘로봇’의 소재가 적어도 하나씩은 각 편마다 들어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SF로 분류할 만한 에피소드가 상당히 많은 편이다. 각 회차에 따라 감독부터 연출, 작화까지 전부 달라서 어떤 것은 정말 애니메이션 같지만, 또 어떤 것은 실사에 가까운 수준의 그래픽으로 영화처럼 볼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에피소드가 뛰어난 작품성과 참신한 아이디어로 점철되어 있지만, 그중에서도 8회차의 ‘독수리자리 너머’는 꼭 필청을 권한다. SF를 주제로 이만큼 우울한 반전을 선사하는 작품은 정말 근래에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시간 여행자
미래가 없는 지구를 구원하고자 리더, 의사, 전술가 등 5명이 한 팀으로 결성된다. 이들은 디렉터의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이런 설명으로는 뻔하디뻔한 타임 슬립 물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 낯설게 다가오는 설정은 그들이 자신의 몸으로 과거로 흘러간 것이 아닌 죽음이 확정된 인간의 몸에 정신만 설치된다는 것. 임무 수행 과정은 물론 숙주로서 겪는 여러 에피소드도 관전 포인트다. 화려한 CG를 기대하면 실망할 것이고, 명작이라는 수식을 붙일 정도는 아니지만 잔잔하게 볼만한 SF 작품을 원한다면 시간을 맡겨봐도 좋을 듯.
익스팅션: 종의 구원자
평화로운 일상 속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은 예지몽을 느끼던 피터는 주변 사람에게 이를 열심히 설명하지만, 모두가 그를 미친 사람 취급한다. 안타깝게도 그 불길한 예감은 맞았다. 결국 벌어진 전쟁은 흡사 영화 ‘터미네이터’에서 인류를 심판하러 온 스카이넷과 흡사한 구도지만, 뚜껑을 열고 보면 이야기는 또 엄청나게 다르다. 어떻게 보면 진부한 소재를 나름대로 꼬아서 상당히 흥미롭게 만든 작품. 벤 영 감독이 연출한 2018년 넷플릭스 개봉작이다.
로스트 인 스페이스
원작은 무려 1965년부터 방영되었던 CBS 드라마다. 로빈슨 가족이 우주 여행의 본래 목적과는 다른 행성에 떨어져 그곳에서 살아남는 이야기를 다룬 이야기. 넷플릭스의 ‘로스트 인 스페이스’는 바로 이 미드의 고전을 지난 2018년 새롭게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시놉시스는 비슷하지만 중요한 몇 가지 설정은 바뀌었다. 예컨대 로빈슨 가족은 원작처럼 진정한 의미의 개척자가 아닌, 24번 째 이민단이라는 설정 같은. 현재 시즌 2까지 나온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