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미지의 영역에 서서 기준을 정하고, 스스로 그 답을 찾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 그 지난한 여정을 시작한 브랜드가 있다. 한국 최초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 기원(KI ONE)이다. 그들은 전형을 따르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위스키’에 대해 고심한다. 그 결과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기에 기대할 수 없었던 국내 위스키 산업을 세계가 주목하게 만든 이름이 됐다.
‘IWSC 2025’와 ‘샌프란시스코 세계 주류 경연대회 2025(SFWSC)’에서 최고상을 거머쥘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기원의 마스터 디스틸러, 앤드류 샌드(Andrew Shand)가 있다. 특별하다고 평가받는 기원 위스키는 머무르지 않고 새로움을 위해 나아가는 그의 삶의 궤적과도 닮아 있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한국 최초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 기원의 스피리추얼 어드바이저 앤드류 샌드다. 16살에 무작정 학교를 그만두고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했다. 공식적으로는 위스키에 몸담은 지 올해 45년 차지만, 50년은 훌쩍 넘었을 거다. 증류소에서 태어났고, 증류소에서 컸으니까.
증류소에서 태어났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
태어난 병원이 증류소 바로 옆이었다. 아버지가 증류소에서 일하셨고, 집도 증류소 안에 있었다.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 벤리악과 롱몬, 이 두 증류소 사이를 오가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겨울이 되면 쿠퍼들이 스키를 만들어 준 기억이 있다. 오크통 나무판 두 개에 부츠를 나사로 고정하고, 빗자루 손잡이 두 개를 들고 그냥 내려오는 거다. 그게 내가 처음 배운 스키다. 동네 아이들 모두 그렇게 탔다. (웃음)
쿠퍼들과 함께 일했기 때문에 열 살 무렵에는 캐스크를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할 수 있었다. 위스키 증류기 일부를 다루는 일도 그때 이미 익혔고. 증류소가 곧 내 놀이터였다. 내가 아는 건 증류소 일이 전부다.

아마 가장 많은 사람이 궁금해할 질문일 거다. 스코틀랜드, 일본, 미국을 거쳐 다음 행선지를 한국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
스코틀랜드를 떠나 미국에서 5년 정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미국은 내가 오래 머물고 싶은 나라는 아니었다. 훌륭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굉장히 흥미로운 곳이긴 하지만 정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즈음 기원 창립자인 브라이언 도(도정한 대표)에게 연락이 왔고, 한국에 증류소를 하나 지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엔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한국에 대해서는 아는 정보가 전무하기도 했지만, 일본에서 일할 때의 작업 방식이 나와는 맞지 않다고 느꼈으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브라이언이 서울에 3~4일만 와보라고 설득했다.

잠시 머물렀던 며칠 동안 한국에 꽤 좋은 인상을 받았나 보다.
완전히 반했다. 시골에서 자랐는데 한국이 스코틀랜드와 굉장히 닮았다는 느낌이 들더라. 한국에 도착해서는 그냥 돌아다녔다. 목적지 없이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한국 사람들은 굉장히 친절하고, 따뜻하고, 호기심도 많았다. 처음엔 좀 수줍어하지만, 막상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 마음을 연다. 그런 부분들이 정말 좋았다.
무엇보다 한국 최초의 싱글 몰트 위스키 증류소를 만든다는 기회는 자주 오는 일이 아니지 않나. 무언가의 ‘처음’이 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니까. 나의 실험적인 위스키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같은 걸 반복하면서 가만히 앉아 있는 성격이 못 된다. 한번 도전해 보자고 생각했고, 벌써 8년 전 이야기가 되었다.

기원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는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 도전에서 비롯된 시행착오도 있었는지 궁금하다.
스카치위스키를 흉내 내는 증류소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진짜 한국적인 정체성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떠올린 게 한국 음식이었다. 한국 식탁에는 주요리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수많은 반찬이 놓인다. 우리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위스키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반찬처럼 작은 맛들이 여러 겹으로 펼쳐지는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다.
그 과정이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다. 늘 무언가 하나씩 문제가 발생했다. 물이 적합하지 않거나, 지자체에서 허가를 해주지 않거나, 부지가 너무 작거나, 땅값이 말도 안 되게 비싼 경우도 있었다. 결국 2020년 지금의 남양주 증류소 부지를 만나게 되었는데 이곳을 통해 한국의 기후가 얼마나 극단적인지 알게 됐다. 연교차가 큰 기후를 장점으로 삼아 독특한 스타일의 위스키를 만들 수 있겠다고 느꼈다.
한국에 처음 왔던 그해에 바로 증류소를 지었다면 이 온도 차이를 전혀 깨닫지 못했을 거다. 아마 완전히 다른 위스키가 나왔겠지. 처음 부지 선정 과정에서 답답한 일이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기원 위스키에 있어 가장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한국 기후에서 숙성된 위스키는 스코틀랜드 위스키와 구체적으로 어떤 맛의 차이를 갖게 되나.
여름에는 나무가 팽창하면서 위스키가 나무 속 깊숙이 스며든다. 한국에서는 이 시기 캐스크 안의 위스키 온도가 섭씨 30도 가까이 올라가지만, 스코틀랜드에서는 9~10도를 넘는 상황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겨울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온이 영하 22도 안팎으로 장기간 유지되며 나무가 강하게 수축하게 되는데 이처럼 계절마다 반복되는 나무의 팽창과 수축 과정에서 위스키가 나무 안팎을 오가고, 그만큼 훨씬 풍부한 풍미를 끌어내게 되는 것이다. 카발란을 만드는 대만을 봐도 더위는 있지만 추위는 거의 없다.
게다가 여름에는 160시간짜리 장기 발효를 한다. 그만큼 락틱 애시드가 많이 생긴다. 대부분의 증류소는 이걸 피하려고 하지만 우리는 끝까지 가려고 한다. 그래서 풍미가 아주 독특해지고, 좋은 소주처럼 마시기 쉽고, 깔끔한 위스키가 된다.

한국이라는 환경이 위스키에 개성을 더해주는 장점이 있다면, 반대로 스코틀랜드나 미국, 일본에 비해 더 까다롭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다.
문제는 인프라다. 증류소를 지을 당시 한국은 거의 백지상태였다. 스코틀랜드에서는 부품이 필요하면 선택지가 많고, 현장에서 일하는 기술자들도 증류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증류소라는 개념 자체가 생소했다. 용접 같은 기술적인 부분은 엔지니어의 도움을 받았지만 나와 브라이언이 장비를 전부 사 와서 대부분을 직접 설치했다.
사람들을 교육하는 일도 필요했다. 공정 중에 문제가 생기면 빨리 복구해야 하는데, 얼마나 급한 상황인지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조금만 멈춰도 큰 손실로 이어지지만, 위스키 제조 공정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다.

주세법 역시 쉽지 않았다. 내가 처음 왔을 때는 미국, 일본, 스코틀랜드에서 수입한 위스키에는 세금이 100% 부과됐지만, 한국에서 만든 위스키는 119%의 세금을 지불해야 했다. 하물며 병, 라벨, 코르크 등 모든 패키지까지 말이다.
이해는 한다. 전례가 없는 산업이었고, 위스키를 기준으로 만든 법이 아니었으니까. 아마 소주의 도수를 낮추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을 거다. 하지만 우리 같은 소규모 증류소에게는 상당히 좌절스러운 환경이었다. 다행히 법은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제는 그런 현실을 어느 정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부딪혀야 하는 도전과 장벽, 제약들을 감안하면서 일을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은 잠재력이 엄청난 나라라고 생각한다. 빠른 숙성을 돕는 기후, 신선한 물, 남쪽에서는 보리도 재배 가능해 모든 조건이 다 갖춰져 있다. 일본만큼,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커질 수도 있는 나라다. 정부에서 공정한 출발선을 만들어 준다면 또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일본 위스키가 전성기를 맞은 듯하다.
90년대에 닛카 위스키에서 일했는데, 그때의 닛카는 글렌리벳 같은 위스키를 원했다. 과거 글렌리벳 제조 방식을 기준으로 삼고 일본의 기후, 온도 같은 조건들과 끊임없이 맞서며 위스키를 만들었다. 반면 나는 미국에서 일하면서 ‘있는 것을 가지고 가자’는 태도를 갖게 됐다.
한국 식탁에는 주요리를 중심으로 그 주변에 수많은 반찬이 놓인다. 우리는 달콤하면서도 매콤한 위스키를 기본으로 하고, 그 위에 반찬처럼 작은 맛들이 여러 겹으로 펼쳐지는 위스키를 만들고자 했다.
마치 많은 증류소가 발효조가 뜨거워지는 것을 기피하지만, 기원 위스키가 지역 기후의 열을 그대로 쓰는 것처럼 말이다. 다른 증류가들이 단점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나는 전부 장점으로 본다. 있는 것으로 작업하면 되는 거다. 그 덕분에 예상치 못한 풍미가 튀어나오고, 아주 펑키한 위스키를 만나게 되지 않았나.
기원 위스키는 아이디어가 정말 독특하다. 이런 아이디어들은 어디서 나오나.
재래시장 돌아다니는 걸 좋아한다. 여러 재료를 보면서 ‘이걸 병에 넣으면 어떨까?’ 상상도 하고. 한국에서는 인퓨징이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는 재료를 직접 캐스크에 스며들게 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더욱 창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요즘 나를 가장 괴롭히는 건 버섯 위스키다. 아직까지는 도저히 안 된다. 미치겠다. (웃음)

최근 출시된 ‘레드페퍼 캐스크 위스키’도 많은 관심을 받았다. 처음 그 아이디어를 냈을 때 주변 평은 어땠나.
재료가 너무 강해 위스키에는 부적합하다는 반응이었고, 다들 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위스키가 잘 만들어진 이유는 우리가 처음부터 잡았던 원칙, 메인 요리와 반찬 구조를 그대로 지켰기 때문이다.
굉장히 맵긴 한데, 맛이 되게 독특한 방식으로 온다. 처음 마시면 일반적인 위스키처럼 느껴지다가 약 1초 정도 딜레이가 있고, 그다음 확 매운맛이 터진다. 몇 사람에게 맛을 보여줬더니 아이디어는 정말 골 때리는데 막상 마셔보면 꽤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음식에도 관심이 많은 편인가.
관심이 많은 편이다. 위스키는 직업이고, 음식에는 훨씬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그렇다면 식사할 때 맛의 구조 같은 걸 계속 분석하기도 하나.
맞다. 내가 나고 자란 스코틀랜드는 재료 본연의 맛이 없어질 때까지 삶는 음식들이 많다. 나이가 들고 나서 좋은 식당들을 다니며 음식에 맛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맛의 세계를 알아가는 재미가 컸다.
매운 음식도 정말 좋아한다. 재밌는 건 한국에서 아내와 식당에 가면 항상 직원들이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솔직히 대부분의 한국인보다 훨씬 더 매운 걸 잘 먹는다. 매일 위스키를 20~30종씩 시음하다 보니 감각이 좀 무뎌지기도 하는데 강한 맛의 음식이 그런 균형을 잡아준다.

앞으로 도전해 보고 싶은 캐스크가 있나.
뉴 오크다. 처음 시작할 때부터 뉴 오크를 사용하는 증류소는 거의 없다. 미국에서는 흔한 선택이지만, 스코틀랜드와 일본에서는 오크 맛이 너무 빨리 강해진다는 이유로 꺼리는 편이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관리만 잘하면 18개월만 지나도 완성도 높은 위스키가 나온다.
스코틀랜드는 위스키는 숙성 연도가 오래되어야 한다는 인식을 업계에 너무 잘 주입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기후일 뿐인데 말이다. 인도, 대만, 한국 위스키를 마셔보면 훨씬 대담한 풍미다. 신생 브랜드 위스키를 꼭 마셔보길 바란다. 정말 놀라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거다.
음식 얘기로 돌아가서, 기원 위스키와 어떤 안주를 먹으면 좋은지를 묻는 글들이 종종 눈에 띈다. 최근에 누군가는 유니콘과 방어를 추천하기도 했다. 혹시 기원 위스키와 즐겨 먹는 안주 조합이 있나.
음식이랑 위스키를 같이 마시지 않는다. 완전히 따로 즐긴다. 위스키는 단독으로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구독 중인 위스키 혹은 주류 유튜버가 있다면.
위스키 유튜버를 보면 입을 헹구지 않고 다른 술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99%는 된다. 그건 블렌딩이지 테이스팅이 아니다. 한 잔 마시고 설명하고, 바로 다음 잔을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시음 방식이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남양주 증류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낼 텐데, 평소 좋아하는 취미는 무엇인지.
여름엔 매일 자전거로 출근한다. 서울에서 이곳까지 35km, 오르막 구간만 1시간 40분이 걸린다. 퇴근길은 내리막이라 좋다. (웃음) 보통 새벽 4시에 출발해서 6시에 도착한다. 주말에는 더 멀리 가는 편이다.
서울에서 동해까지는 산맥을 네 개나 넘어야 한다. 보통 새벽 5시에 출발해서 저녁 7시나 8시쯤 도착하는데 중간중간 먹고,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나에겐 휴식이다. 무엇보다 자전거를 타면서 제일 좋은 점은 페달을 밟고, 조향하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다는 거다. 그 덕분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되니까.
위스키 레시피가 잘 풀리지 않거나, 증류소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가만히 앉아 있어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자전거를 타고 두어 시간만 지나면 생각이 명확해진다. 그래서 그 시간이 참 좋다.
요즘 K-푸드가 하나의 장르가 됐다. K-위스키는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보는가.
자기 길을 가야 한다. 다른 게 되려고 하지 말고, ‘한국 위스키’로 존재하면 된다. 스코틀랜드에 지역별 위스키가 있듯이, 한국 역시 앞으로 증류소가 늘어나면 지역에 따른 스타일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라 본다.
얼마 전, 트레이드 쇼를 위해 부산에 방문했었는데 그곳은 확실히 훨씬 따뜻했다. 여기 남양주에서 숙성한 위스키와는 전혀 다른 성격의 위스키가 나올 환경이다. 그러니까 결국 한국 위스키는 한국답게 가면 된다.

마지막 질문이다. 국내 첫 싱글몰트 위스키를 만드는 기원은 한국 위스키의 기준이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훗날 ‘한국 위스키의 기준’을 묻는 질문에 기원은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길 바라나.
위스키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밸런스다. 하나의 맛만 튀는 위스키는 선호하지 않는다. 가끔 피트 위스키를 마시면 재를 한 입 문 듯한 맛만 남는 경우가 있지 않나. 여러 가지 맛이 겹겹이 이어지는 위스키가 좋다. 누군가 정말 많은 공을 들였다는 것이 느껴지는 위스키 말이다.
피트를 한 덩어리 넣는 일은 쉽지만 그 피트를 맛있게 만드는 건 정말 어렵다.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여러 풍미가 균형 있게 어우러지는 위스키의 기준을 남기고 싶다. 한 가지 맛이 아니라 네다섯 가지 맛이 이어지는 위스키. 그 기준을 기원이 꽤 높게 세워놨다고 생각한다.
다른 게 되려고 하지 말고, ‘한국 위스키’로 존재하면 된다. 스코틀랜드에 지역별 위스키가 있듯이, 한국 역시 앞으로 증류소가 늘어나면 지역에 따른 스타일 차이가 분명해질 것이라 본다.
뒤따라오는 증류소들이 그 수준까지 도달하고, 나아가 그것을 뛰어넘는다면 좋겠다. 새로 시작하는 사람들은 시행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과정이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특히 가장 어려운 것은 ‘일관성’이다. 어제 잘되던 일이 오늘은 전혀 다른 결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그 이유를 파악하고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몇 번의 굴곡을 지나서, 우리 기준에 도달하고 각자의 스타일을 만들어간다면 한국 위스키는 전 세계에서 충분히 통할 것이라 본다. 나는 진심으로 한국에 위스키 산업이 단단히 자리 잡기를 바란다. 모두, 건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