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좋아해도 선천적으로 항마력이 제로에 가까운 필자는 소위 오그라드는 남녀상열지사에 강한 거부감이 있다. 그 정도가 심해서, 나는 아무리 친한 친구의 결혼식을 가도 차마 제정신으로는 닭살 돋는 광경을 보고 있기가 괴로운 탓에 예식은 으레 패스한 뒤, “신랑·신부 친구 및 직장 동료분들 나와주세요” 같은 사진 촬영 안내가 나오면 그제야 뭉그적거리며 식장 안으로 들어가기 일쑤였다. 당연히 로맨틱 코미디 따위는 평생 볼 일 없는 그런 하찮은 장르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지난달 24일 개봉한 <연애 빠진 로맨스> 같은 영화를 자의로 보러 갔다는 사실에 새삼 스스로 놀라는 중이다.
갈수록 자만추가 어려워진다는 걸 느끼는 30대 남자가 최후의 보루처럼 건드려보는 게 결국 소개팅 어플이라니.
20살 대학생의 달달하고 풋풋한 로맨스는 이미 애저녁에 날려버린 30대 언저리의 남녀. 처음 만난 두 사람이 1차에서부터 냉면에 소주를 까고, 한껏 필 받은 채 MT에 입성해 속궁합을 맞춰보고, 그 후에도 서로를 특별한 관계로 규정짓지 못하고 이리저리 일단 흘러가는 대로 만나는 일련의 이 흐름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갈수록 자만추가 어려워진다는 걸 느끼는 30대 남자가 최후의 보루처럼 건드려보는 게 결국 소개팅 어플이라니. 심지어 그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남자 주인공의 직업이 잡지사 에디터라는 설정. 이건 아무리 봐도 정확히 나를 위한 시놉시스였다. 다행히 영화는 질질 짜는 신파나 오그라드는 고백 혹은 키스신 같은 것들을 쿨하게 생략한 덕분에, 항마력 찌질이인 나조차도 큰 거부감 없이 담백하게 완주할 수 있었다.
자. 그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냐고? 별거 없다. 그저 소개팅 혹은 데이팅 어플을 실제로 스마트폰에 설치해서 사용해보고 직접 사람까지 만나본 적 있는 어플을 몇 개 리뷰해보려고 이토록 장황하게 신변잡기를 풀었다. 별거 아닌 개소리를 쓰더라도, 일단 구실이라도 그럴듯해야 뭐 한 글자라도 읽어보지 않을까 싶어서.
위피
2017년 출시된 어플로, 대놓고 소개팅 및 데이팅 목적으로 홍보하기보다는 ‘동네 친구’를 내세운 캐치프레이즈로 어필하는 앱이다. 그래서인지 위피는 기본적으로 이용자들의 분위기가 무겁고 진지하게 연애할 사람을 찾는 것보다, 가벼운(물론 여기서 가볍다는 표현이 원나잇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남사친, 여사친을 찾는다거나 혹은 동네 친구에 포커스가 많이 맞춰져 있다. 앱을 실행하면 추천해주는 상대의 프로필 항목 중 현재 나의 GSP 기준으로 몇 km나 떨어져 있는지를 꽤 명확하게 표시해준다. 이건 위피가 그만큼 누군가를 만날 때 있어서 ‘거리’라는 지리적 개념을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생각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이보다 1년 먼저 출시해 상당히 많은 가입자 수를 확보한 ‘글램’과 콘셉트 및 인터페이스가 어느 정도 비슷한 느낌도 있는데, 과금 유도 역시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오늘의 추천’이라는 기능을 통해 정기적으로 새로운 이성의 프로필을 확인하거나 친구신청을 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위픽’ 탭을 주로 활용하는 게 좋다. 이성의 프로필을 한 번에 최대 5명까지 ‘괜찮아요’나 ‘별로예요’ 중 양자택일로 평가하는 메뉴로, 25명을 채우면 무료 젤리를 한 개씩 제공한다. 마치 손오공이 원기옥 모으듯 이걸 착실히 모으면 굳이 과금을 쓰지 않고도 친구신청과 대화신청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확보할 수 있다. 다만 친구신청에 보통 젤리 3~4개가, 그 후에 대화신청에도 젤 리가 8개 정도로 꽤 많은 숫자가 쓰인다. 따라서 정말 마음에 든다 싶을 때 신중히 쓰는 게 좋다. 어디까지나 과금 유도가 ‘덜’ 하다는 것이지, 묻지마 신청을 하다 보면 순식간에 젤리가 동이 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쨌든 여기서 만난 3명의 공통점은 모두 처음부터 실제 소개팅에 준하는 목적을 상정하고 자리에 나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경험담: 위피의 경우 20대 사용자의 비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지만, 나도 양심이 있는지라 20대는 알아서 패스했다. 그래서일까? 프로필에 ‘진지하게 만나실 분 찾습니다’ 같은 멘트를 적어놓은 사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대화했던 상대 역시 상당수가 진지한 접근보다는 운동, 술, 맛집 같은 가벼운 스몰토크로 시작해 만남으로 이어지곤 했으며, 거리도 -물론 설정이 가능하지만- 꽤 가까운 곳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는5명과 대화를 나눴고, 이 중에서 실제로 만난 3명 중 연애까지 간 사람이 1명, 동네 친구가 된 사람이 2명이 있었다. 물론 여사친 명목으로 만난 두 사람의 연락은 현재 끊긴 상태다.
한편 과금을 쓰기 싫다면 상대 얼굴을 모르는 상태에서 진행할 수 있는 랜덤 보이스톡 기능도 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통화보다 텍스트를 선호하는 타입이라 한 번도 써보진 않았는데, 필자와 반대의 성향이라면 활용해보는 것도 좋겠다. 어쨌든 여기서 만난 3명의 공통점은 모두 처음부터 실제 소개팅에 준하는 목적을 상정하고 자리에 나온 이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초장부터 “제가 벌써 30대 중반이라 혼기가…” 따위의 소리나 언급하며 분위기 싸하게 만들 것 같은 텐선비라면, 만남이 성사되더라도 다소 마음을 비우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가길. 하지만 동네 여사친을, 물론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감정이 발전할 수 있지만, 또 반대의 상황에도 개의치 않는 사람이라면 부담 없이 즐겨봐도 좋겠다.
숨짝
자만추가 어려운 나이가 됐다고 해도, 소개팅 어플을 이용한다고 대놓고 자신 있게 말하는 건 쉽지 않다. 아무래도 이런 앱들이 그동안 대중에게 주로 각인되어온 이미지-불건전하다거나, 혹은 부정적인 측면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 그런 면에서 보면 ‘숨짝’은 가장 건전하고 진정성 있는 데이팅 앱이다. 30대 이상의 직장인을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데, 실제로도 이용자는 타 어플 대비 30대가 가장 많은 편이며, 40대 초반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입 시 심사가 조금 까다로운데, 여기서 까다롭다는 말은 단순히 사진에서 보이는 비주얼을 말하는 게 아니다. 정면으로 얼굴이 명확히 인식되는 사진, 그리고 프로필에 기입하는 각종 정보를 관리자가 꽤 디테일하게 평가한 뒤 가입자의 이용 여부를 심사하기 때문. 그리고 미혼, 직업, 학력, 주택, 차량 등 서류 증빙을 통해 추가로 인증할 수 있는 항목이 있는데, 이걸 수행하면 보너스 하트를 준다. 하지만 굳이 이걸 하지 않아도 매일매일 접속할 경우 기본 하트가 제공되며, 30초에서 1분 내외의 광고를 시청해도 하트를 준다. 게다가 하트를 써서 소개팅을 신청했지만, 상대가 나를 거절하더라도 하트 절반을 보상받을 수 있다. 돈 한 푼 쓰지 않아도 불편함이 전혀 없을 정도로 초조하게 현금 결제를 유도하는 일이 없고, 운영진의 모니터링도 지속적으로 엄격하게 이뤄진다. 개발자의 의도가 대단히 순수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부분.
이용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직장인의 소개팅 어플’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잘 구현되어 있다. 돌싱 이용자의 비율이 높은 것 또한 특징 중 하나다.
경험담: 이용자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직장인의 소개팅 어플’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잘 구현되어 있다. 확실히 타 어플에 비해 진지한 만남이라던가 결혼을 전제로 하는 소개팅의 목적성이 짙다. 물론 어떤 앱이든 첫 대화는 가볍게 시작하겠지만, 실제로 얼굴을 보기 전부터 직업관이나 사람 관계에 대한 조금 진지한 테마의 대화를 시도하는 상대도 3명 중 2명이나 있었다.
다만 어플이 소개해줄 수 있는 이성의 풀이 넓진 않다. 심지어 몇 주 전에 본 상대가 나를 또 보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정도. 그리고 돌싱 이용자의 비율이 높은 것 또한 특징 중 하나다. 물론 개인적으로는 돌싱에 대해 ‘그저 서류만 한 줄 더 적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여길 정도로 스스로 열려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이미 자녀를 양육 중인 분까지 받아들일 정도로 관대한 사람도 되진 못했다. 아무래도 미혼 입장에서는 꺼려지는 것도 솔직한 마음일 터. 반대로 돌싱에게는 더 많은 기회의 장이 될 수도 있다. 다만 다운로드 숫자에서 짐작했겠지만, 아직은 더 많은 가입자 확보가 시급해 보인다.
너랑나랑
‘너랑나랑’은 위의 ‘숨짝’과는 반대로 많은 다운로드 수 덕분에 폭넓은 이용자 풀을 가진 어플이다. 연령층은 20~30대에서 꽤 다양하게 분포한 느낌인데, 이는 아무래도 회원 수 자체가 많은 것에 따른 자연적인 특성에 가깝다. 게다가 실제로도 앱이 기본 무료로 보여주는 상대방의 숫자가 하루 기본 16명으로 대단히 넉넉하다. 대신 직관성이라는 요소가 가출한 인터페이스 및 난잡한 디자인은 조금 참기 힘든 수준으로, 어느 정도 사용이나 구성이 익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이 16명이라는 숫자는 조금 특이하게도, 2명 중 한 명을 꼭 선택해야 하는 방식이다. 2명 다 선택할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는 1차전에서 16명 중 8명을 선별하고, 다시 2단계로 계속 상대방을 선택하면서 점층적으로 최후 1인과 매칭되는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첫 단계에서 이미 16명을 화끈하게 보여주고 시작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혹했다가, 사용하다 보면 묘하게 과금을 요구하는 구조로 설계된 것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대신 이성 매칭 자체에만 집중하는 다른 어플과 달리 이용자가 많고, ‘포토제닉’, ‘타로점’, ‘매거진’ 등 뭔가 잡다하게 읽을거리들이 있다. 잡지 보면서 사람 구경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묘한 앱이다.
처음부터 제대로 이용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알량한 과금 유도 방식에 빈정이 상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만.
경험담: 시작할 때 기본 하트를 50개나 주기 때문에 굉장히 여유 있어 보인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접속자를 보여주는데, 그 풍부한 이성 유저의 풀을 훑다 보면 나도 모르게 ‘설마 이 중에서 한 명이 안 걸리겠냐’ 같은 알량한 기대를 하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어플을 사용하면 1단계부터 상대방의 프로필 사진을 제대로 확인하는 것조차 하트가 소모되며, 2단계, 3단계로 갈수록 과금을 유도하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결과적으로 다른 두 어플과 달리 ‘너랑나랑’은 단 한 번도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애초에 필자는 모든 소개팅 어플에 있어서 ‘실제 과금까지 가야 할 정도라면, 그건 뭘 해도 안 될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처음부터 제대로 이용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알량한 과금 유도 방식에 빈정이 상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 되겠지만.
특정한 ‘의도’를 버려라
고작 소개팅 어플 3~4개 정도를 써본 것이 전부다. 유의미한 데이터베이스가 쌓일 리도 만무하다. 하지만 하나의 확실한 포인트는 있었다. 비즈니스 문제가 아닌 이상에야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특정한 ‘의도’를 버리고 일단 사람 대 사람으로 시작해야 한다는 가장 원론적인 사실이었다.
소개팅 어플로 <연애 빠진 로맨스>처럼 영화 같은 연애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고, 외롭진 않은데 욕구는 차오르니 원나잇이라는 홈런을 터뜨릴 각오로 설치하기 버튼을 누를 수도 있다. 연애가 아니어도 좋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라도 연애의 감정을 싹틔울 수 있는 대학 예비합격자의 마음가짐으로 이성을 만나려는 이가 있을 테고, 마치 트렌드처럼 다들 하나쯤 있으면 좋을 것 같은 동네 여사친을 만들려는 경우도 있다.
소개팅 어플도 결국은 멀티 엔딩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루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니까.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십수년 전 내가 만났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대화를 나누고 상대를 알아가다 보니 자연히 호감이 생기고, 감정이 피어나 연애를 했을 뿐이다. 무도회장에서 만나 하룻밤 안에 휘발했던 원나잇 상대 역시 마찬가지다. 그 시끄러운 공간에서 상대를 끌어당겨 귓속말을 외쳤고, 그녀가 대화에 응했고, 결국 -약간의 술기운도 빌려- 이야기로 서로를 파악한 뒤에야 MT에 입성하곤 했다.
소개팅 어플 역시 마찬가지다. 어디서 어떻게 만나는 것보다 더 유의미한 건 누구를 만나 어떻게 교감을 나누느냐가 아닐까. 아무리 어플마다 성향이 다르다 해도, 결국 누가 나올 지도 모르는 마당에 원나잇이건 결혼 전제 연애건 이런 건 전부 만난 후에나 생각해 볼 일이다. 소개팅 어플도 결국 멀티 엔딩으로 이어지는 수많은 루트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