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와이너리를 생각해보면 저 멀리 유럽 어딘가에 위치한, 끝없이 펼쳐진 포도밭에서 백발의 할아버지가 빵 모자에 체크무늬 조끼를 입고 한 손엔 흙 한 움큼을, 다른 한 손엔 와인잔을 들고 다니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고풍스러운 유럽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그에 반해 패스트푸드를 생각해보면 정신없고, 시끄럽고, 천천히 음식을 음미하기보다는 얼른 한 끼 해치우고 나가야 할 것 같은 무언의 압박감이 떠오를 것이다. 이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가지가 합쳐질 수 있을까? 197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 오픈한 첫 버거킹 매장을 기념해서 La Despensa라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가 버거킹의 상징과도 같은 와퍼에 어울릴만한 와퍼 와인을 선보였다.
와인은 보통 스테이크, 생선요리, 파스타 등과 잘 어울린다고들 얘기한다. 그리고 햄버거엔 닥치고 무조건 콜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햄버거와 와인이 어울리지 않을 이유가 없다. 와퍼를 파헤쳐 보면 애피타이저인 샐러드, 빵 그리고 메인디쉬인 햄버그스테이크까지 꽤나 괜찮은 경양식 풀코스 메뉴의 구성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모든 걸 죄다 쌓아놨더니 조금 서민적(?)인 모습으로 변모했을 뿐. 근데 아니!! 소주에 스테이크를 썰던, 막걸리에 푸아그라를 곁들이던, 정종에 브리또를 먹던 자신이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는 거 아닌가? 게다가 이름부터 떡하니 와퍼 와인이라고 하는데 말이다.
솔직히 버거킹 매장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고급지게 와인을 즐길만한 용기는 아직 없다. 하지만 세트메뉴 하나 테이크아웃한 뒤, 집에 와서 분위기 있는 음악과 함께 차분하게 와퍼와 와인 한잔 즐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Bon appét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