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은 왠지 먼 세계처럼 보인다. 콘크리트와 도면, 구조와 법규처럼 딱딱하고 무거운 언어 때문이다. 하지만 건축은 우리의 일상과도 맞닿아 있다. 문을 열고, 계단을 오르는 일상에는 늘 건축이 있다.
건축은 어떻게 가까워질 수 있을까?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의 JYA 건축사사무소는 그 답을 버터에서 찾는다. 사무실 옆에 버터 가게를 열고, 단단한 건축을 부드러운 버터로 녹여낸다. 건축가가 만든 버터, 아키텍츠버터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버터가 된 건축
아키텍츠버터 위원우 팀장과 함께

건축사사무소에서 버터 가게를 열었다는 게 재미있다. 왜 하필 버터였나?
원래 요리에 관심이 많았다. 버터는 굉장히 범용성이 넓은 재료라고 생각했다. 달콤한 재료, 짭짤한 재료 무엇이든 섞을 수 있고, 활용 방식도 다양하니까. 그 자체로 잠재력이 큰 재료라고 느꼈다.
결정적인 계기는 프랑스에서 먹었던 보르디에 버터였다. 다양한 재료가 섞인 버터를 접하면서, 한국에서도 충분히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마침 사무소 안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해보자는 분위기가 있었다. 지금 이 공간은 원래 자재실이었는데 오래 비어 있었다.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다가, 자연스럽게 버터 가게로 이어졌다.
버터 맛은 사무소가 설계한 9가지 건축 작품에서 비롯됐다. 처음부터 건축과 연결하려는 의도가 있었나.
사실 그건 아니었다. 오히려 건축과는 다른 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그런데 버터를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축적인 사고가 개입되기 시작하더라. 재료 하나하나가 가진 성질을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는 과정이 건축에서 재료를 다루는 방식과 닮아 있었다.
각 버터에 건축 재료의 이름을 붙이고, 실제 프로젝트와 1:1로 연결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글래스 버터는 바질과 피스타치오가 들어갔는데, ‘글래스’ 이름에서 기대하는 맛과 실제로 먹었을 때 느껴지는 맛 사이의 간극이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맛이 느껴지면서 건축적 상상력이 작동하는 거다. 그 과정 자체가 흥미로울 거라고 생각했다.

콘크리트, 우드, 라이트.. 버터 이름이 건축 재료인 점이 인상적이다.
각 버터를 하나의 건축 개념처럼 다루고 있다. 실제 건축 프로젝트와 1:1로 매칭하기도 했고. 예를 들어 우드는 오렌지와 시나몬이 들어가는데, 나무껍질 같은 질감과 향을 떠올리면서 설계했다. 단순히 맛이 아니라, 그 재료가 주는 감각을 연결한 거다.
라이트는 레몬과 민트를 사용했다. 빛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가벼움, 산뜻함 같은 걸 맛으로 풀어내고 싶었다. 콘크리트 버터는 조금 더 구조적인데, 들깨나 트러플처럼 입자가 다른 재료들을 섞어서 만들었다. 여러 재료가 섞여 만들어지는 콘크리트처럼. 결국 맛을 설계한다는 건 건축처럼 조합하고 구조화하는 일과 비슷하더라.
단단한 건축을 부드러운 버터로 녹여낸 것 같다.
각 건축 프로젝트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건물은 빛이 핵심이 될 수도 있고, 어떤 건물은 유리나 돌이 중심이 될 수도 있다. 모든 건물에 유리가 들어가지만, 그 유리를 얼마나 중요한 요소로 쓰느냐는 완전히 다르다. 버터도 비슷하게 접근했다. 각 프로젝트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요소를 하나 뽑아서, 그걸 맛으로 번역한 거다.
버터를 설계도로 설명하는 방식도 인상적이다.
설계도는 어떤 구조를 설명하는 데 있어 가장 효율적인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건축이든, 어떤 구축된 대상이든 마찬가지다. 버터도 구조가 있다. 위에서 본 모습이 있고, 잘랐을 때의 단면이 있고. 그 안에 들어간 재료들 또한 다 다르다. 이런 점이 건축과 굉장히 닮아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버터를 설계도처럼 표현했다. 그림과 텍스트를 같이 배치해서, 한 번 보면 전체 구조를 이해할 수 있도록. 물론 설계도는 처음 보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는 설명 방식이 불친절해서라기보다, 건축이 다루는 대상이 너무 크고 멀어 보이기 때문일 거다. 건축이라 하면 스케일이 크고, 일상에서 바로 체감하기 어려운 영역처럼 보이니까.
그래서 최대한 읽히는 설계도를 만들려고 했다. 클라이언트에게 설명하듯이, 한 번 보고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다만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만큼, 조금 더 대중적인 표현을 쓰려고 했다. 전문성도 유지해야 했다. 건축 사무소에서 만든 결과물이니까.
버터 가게가 건축을 접하는 하나의 입구처럼 느껴진다.
건축사사무소는 일반적으로 들어오기 어려운 공간이다. 하지만 버터 가게는 훨씬 가볍게 들어올 수 있지 않나. 길 가다가 여긴 뭐지? 하고 들어오고, 옆에 있는 건축사사무소에 대해 질문하기도 하고. 자연스럽게 안쪽까지 보게 되면서, 건축에 관심 갖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건축 프로젝트를 맡기고 싶은데 바로 사무실로 들어가긴 부담스러운 분들이 버터 가게를 찾기도 한다. 마치 건축으로 들어가기 전 단계, 일종의 중간 지대 같은 역할을 하는 거다.
월간 버터 행사도 흥미롭다. 버터 가게에서 플리마켓을 열고, 사람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등 사람들을 건축 사무소 안으로 초대한다.
동네에 대한 애착이 있다. 버터 가게가 단순히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장이 되었으면 했다. 건축사사무소는 주민들과 관계 맺는 게 쉽지 않다. 하지만 버터 가게는 훨씬 열려 있다. 플리마켓을 연 것도 같은 이유다. 건축사사무소에서 플리마켓을 하면 어색하지만, 버터 가게에서 빵을 굽고 시식하면서 행사를 열면 훨씬 자연스럽다. 버터 가게가 일종의 매개가 되길 바랐다.

첫 플리마켓 반응은 어땠나?
생각보다 훨씬 좋았다. 가게 앞에 가판을 펼쳐놓고 버터를 무료로 시식하게 했는데, 시간대에 맞춰서 메뉴도 다르게 구성했다. 아침에는 빵에 어울리는 버터, 점심에는 다른 음식에 곁들일 수 있는 버터 같은 식으로.
동네 주민들이 많이 왔고, 많은 사람이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런 방식이 가능하구나’ 하는 확신이 들더라. 그 이후 버터로 만든 요리를 같이 나누고, 보드게임 모임이나 시식 행사 같은 것을 이어갈 수 있었다.
보드게임 모임, 영화 감상회 같은 행사는 어떤가.
동네 주민도 오고,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도 많이 온다. 성격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한 공간에 모이는 게 재밌다. 건축사 사무소는 지역과도 연결되고, 동시에 건축이라는 전문 영역과도 연결돼 있으니까. 그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관계가 만들어지는 삼각형 구조가 흥미롭다.

분위기가 어색하지는 않나?
전혀. 그게 오히려 신기할 정도다. 행사에서 버터에 대한 피드백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좋다. 버터라는 재료는 반응이 늦게 오기 마련이다. 인터넷 후기나 재방문율같이 어느 정도 뒤에 반응을 알 수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이런 피드백을 여기 아니면 어디서 받아볼 수 있을까?
월간 버터 행사를 통해 사람들이 건축과 더 가까워졌을까.
건축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모습이 분명히 있다. 건축에는 ‘오픈하우스’나 ‘오픈 스튜디오’ 같은 개념이 있다. 말 그대로 건축가의 공간을 열어보는 거다. 건축가가 만들어 놓은 집은 너무 개인적인 공간으로, 평소에는 들어갈 수 없다. 하지만 오픈하우스가 열리면 건축가와 함께 건축물 안팎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다.
오픈 스튜디오는 건축사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보는 프로그램이다. 건축가의 생각과 철학이 건물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건축사사무실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거다. 두 프로그램 모두 건축 전공자들이 주로 참여한다.
여기에서는 월간 버터 행사를 통해 건축사사무실의 문이 열린다. 건축가가 일하는 공간을 직접 보고, 그 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는지 경험하는 거다. 이를 보며 건축 전공자들은 디테일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편이라면, 일반 방문객들은 훨씬 직관적으로 반응한다. “이런 공간에서 일하는구나. 건축이라는 게 이렇게 굴러가는구나!” 같은 감각적인 이해를 한다.
이런 관계들까지 건축의 일부라고 볼 수 있을까.
건축한다는 건 결국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디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를 공간으로 풀어내는 거니까. 이런 점에서 보면, 동네 사람들과 관계 맺고 가까워지는 과정 자체가 건축과 완전히 무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축의 확장된 형태일 수도 있고. 결국 건축은 사람, 도시와 관계 맺는 일이다.

건축과 버터, 둘 중 무엇이 더 친밀하게 느껴지나.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르다. 건축은 한 사람과 깊게 연결되는 일이다. 집의 역사, 건축주의 삶, 주변 환경까지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이니까. 반면 버터 가게는 훨씬 더 많은 사람과 넓게 연결된다. 같은 동네를 기반으로 하지만, 전혀 다른 방식으로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버터도 JYA 작품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까?
그렇다. 지어진 건물만을 결과물이라고 보지 않는다. 사무소 이름으로 나가는 모든 것은 완성도를 가져야 하고, 버터도 마찬가지다. 버터 또한 하나의 완결된 결과물이고, 건축을 구성하는 작은 요소처럼 보이길 바랐다. 마치 벽돌처럼. 큰 건축도 결국 작은 재료 하나하나 모여서 만들어지듯이, 이 버터도 하나의 건축 단위라고 보면 재밌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