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열린 APEC 정상회의에서 눈길을 끈 주인공이 있다. 바로 중국이 만찬주로 선보인 ‘몽지람’이다. 대중적으로 흔히 접하는 술은 아니기에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사실 몽지람은 국내 주당과 미식가 사이에서 꾸준히 사랑받아 온 고급 바이주(백주)의 대명사다. 위스키와 와인의 자리를 넘보는 차세대 주류, 바이주가 궁금하다면? 바이주 입문 가이드 하나만 읽어도 충분하다.
그간 바이주는 이른바 ‘아재술’이라는 고루한 이미지에 갇혀 있었다. 실제로 중국 현지에서조차 젊은 세대가 바이주를 선호하지 않는 경향을 보인다고. 하지만 위기는 곧 기회 아니겠는가. 활로를 찾기 위한 기업들의 과감한 시도 덕분에, 지금의 바이주 시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감각적이고 다채로운 선택지를 갖추게 되었다. 바이주의 세계에 발을 들이기에 이보다 더 완벽한 타이밍이 있을까?
바이주, 오해부터 풀고 가자
가격부터 숙취까지 전부 해명합니다

바이주는 고량주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바이주’와 ‘고량주’를 동의어로 쓰는 경우가 왕왕 있다. 완전히 틀렸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확히 따지자면 옳은 표현은 아니다. 바이주는 곡물을 활용한 중국 전통 증류주를 통칭하고, 고량주는 그중에서도 수수(고량)를 주원료로 만든 술이다. 즉 바이주가 더 큰 카테고리인 것이다. 우리나라에 유통되는 바이주 대부분이 수수로 제작된 종류이긴 하지만.
그렇다면 우리가 흔히 마시는 연태고량주도 ‘수수로 만든 술’이라는 뜻일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유통되는 연태고량주는 ‘산동연태양주유한공사’의 제품인데, 수수를 뜻하는 고량(高梁)이 아닌 옛 기법을 의미하는 고량(古酿)으로 표기한다. 읽는 법 또한 ‘연태구냥’으로 다르다. 그렇다고 이 제품이 잘못됐다는 말은 더더욱 아니다. 표기가 그럴 뿐 연태구냥도 수수를 주원료로 만들어진다. 헷갈리지만 말자.
바이주는 비싸다?
보통 고급 중식당 메뉴판에서나 바이주를 대면하기에 비싸다는 인식이 공공연하다. 여느 술과 마찬가지로 초호화 바이주도 당연히 존재하지만, 3만 원 이하 엔트리급에도 훌륭한 바이주가 적지 않게 포진되어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는 공직자 대상 사치 금지령이 내려지면서 바이주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상황. 시간이 지날수록 더 합리적인 가격으로 바이주를 만나게 될 확률이 높다.

바이주는 숙취가 심하다?
바이주 좀 마셔봤다고 하는 사람이 선호하는 알코올 도수는 52~53도. 소주는 명함도 못 내밀 압도적인 수치에 다음 날 숙취를 걱정하는 이가 종종 있다. 사실은 정반대. 제대로 만든 바이주를 마시면 일반적인 술보다 훨씬 깔끔하게 다음날을 맞이할 수 있다. 정밀한 증류 과정을 거치면서 숙취의 주범인 아세트알데하이드, 퓨젤 오일 같은 불순물이 걸러지기 때문. 물론 과도한 음주 앞에서는 바이주도 예외 없다.
연도 표기는 숙성 기한이다?
위스키는 블렌딩 시 가장 어린 원액의 숙성 기간을 표기해야 하는 분명한 기준이 존재한다. 그에 비해 바이주는 아직 명확한 업계 표준이 정립되지 않았다. 라벨에 적힌 연도는 해당 연도의 원액이 아주 극소량 포함되었거나, 단순히 제품의 등급이나 전통(발효 구덩이의 수명 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연도 숫자를 절대적인 숙성 기간으로 믿기보다는, 브랜드 내에서의 등급을 구분하는 지표 정도로만 참고하자.
아는 척하기 좋은 바이주 상식
다른 술과 만드는 방식이 다르다?

제조 과정
기본적인 흐름은 이렇다. 찐 곡물에 누룩을 섞고, 땅을 파서 만든 구덩이에 넣어 발효한다. 발효가 끝난 곡물 더미를 증류해 술이 만들어지면 도기에 담아 숙성에 돌입. 이렇게 3~4년 숙성한 술과 15년, 20년 이상 묵힌 술을 섞어 원하는 향미를 배합하면 상품으로 만나는 바이주가 완성된다.
일반적인 증류주는 곡물을 물에 담가 액체 상태로 발효시키지만, 바이주는 수분을 머금은 곡물 그 자체로 발효하는 고체 발효 과정을 거친다. ‘고태법’으로 불리는 이 전통 방식은 특유의 향과 풍미를 배가하는 핵심이다. 최근에는 효율적인 대량 생산을 위해 식용 주정에 향료를 섞는 ‘액태법’, 전통 원액과 주정을 일정 비율로 배합한 ‘고액결합법’ 등도 널리 활용된다.
향
바이주의 핵심은 향이다. 미국이 버번위스키의 조건을 정립했듯, 중국은 바이주에 대해 12가지 표준 향형을 제정했다. 전문가 지망생이 아니라면 3가지만 알아도 충분하다. 발효된 장의 향을 품은 장향, 달콤하고 부드러운 농향, 맑고 깨끗한 청향. 이제 막 바이주에 입문했다면 농향, 청향, 장향 순으로 경험하기를 권하고 싶다. 특히 장향은 애호가의 사랑을 듬뿍 받지만, 누룩 내음 때문에 진입장벽이 높은 편이니 유의하자.

누룩
국내에서도 유명한 ‘양하대곡’의 곡(曲)이 바로 누룩을 뜻하는 말. 중국에서는 누룩을 술의 뼈대라 부를 만큼 술의 향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로 여긴다. 곱게 간 곡물을 반죽해 틀로 모양을 잡은 뒤, 통제된 환경에 두고 미생물을 번식시켜 제작한다.
누룩은 크게 대곡과 소곡으로 나뉘는데, 대부분의 프리미엄 바이주는 커다란 벽돌 모양의 대곡을 사용한다. 오랜 발효로 만들어지는 대곡은 술에 진하고 깊은 향을 더해준다. 반대로 작고 둥근 모양의 소곡은 주로 쌀 바이주나 황주에 주로 쓰이며, 상대적으로 깔끔하고 가벼운 맛을 만들어낸다.
발효 구덩이
와인에 떼루아가 있다면, 바이주에는 니교(泥窖)가 있다. 바이주는 술을 얼마나 숙성하는 지만큼이나 어디에서 숙성하는지가 중요하다. 니교는 진흙 구덩이라는 뜻으로, 배양균을 품은 이곳에서 바이주의 숙성 발효가 이루어진다. 말 그대로 흙이기 때문에 지역의 기후와 토양 환경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독특한 점은 니교가 오래될수록 술맛이 좋아진다는 점이다.
수십, 수백 년간 발효를 반복한 구덩이에는 미생물 군집이 끊임없이 최적화되어 인공적으로 재현할 수 없는 최적의 양조 생태환경이 조성된다. 이 때문에 오래된 니교는 바이주 브랜드의 마케팅 포인트. 중국 3대 명주로 알려진 ‘우량예’는 명나라 때부터 600년 넘게 유지 중인 발효 갱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새 저장고에서 고품질의 바이주 원액이 나오는 비율은 100년 이상 된 저장고 대비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알려져 있다.
바이주 즐기는 법
구매부터 음용까지

어디서 사야 할까
안타깝게도 중국 술은 다른 종류에 비해 짝퉁의 위험이 크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검증이 된 대형 마트나 편의점, 면세점 등을 이용하는 편이 좋다. 좀 더 다양한 라인업을 경험하고 싶다면? 바이주 성지로 정평이 난 대림의 천리마대박마트를 방문해 보자. 저렴한 가격은 기본, 세상 친절한 사장님이 눈높이에 맞춰 추천해 주신다. 매장에서 판매하는 바이주의 간단한 설명은 블로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안주는 무조건
입문자에게 안주 없이 바이주를 마시는 일은 다소 하드코어다. 알코올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든든한 안주를 곁들이도록 하자. 중국 술 답게 탕수육, 깐풍기, 마라샹궈 등 웬만한 중식에는 다 잘 어울린다. 중화요리를 비롯한 기름지고 간이 센 계열에는 깔끔한 청향이 적격이다.
스테이크나 생선구이, 양꼬치 등 구이류는 어떤 유형과 함께해도 무난하게 어우러진다. 회나 스시처럼 맛이 강하지 않은 음식과의 페어링은 초보자에게 난도가 있어 추천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다면 농향이나 장향처럼 향미가 짙은 종류를 선택하자. 매운 안주에는 향보다 낮은 도수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 이롭다. 매운맛 하나도 벅찬데 독한 술까지 더해지면 타는 듯한 입안과 속을 감당하기 힘들 테니 말이다.

디캔팅이 필요해
와인보다는 정도가 덜하지만, 바이주에도 디캔팅의 개념인 싱지우(醒酒)가 있다. 장향형의 경우 싱지우가 특히 중요하다. 고숙성 장향 백주를 개봉하자마자 마시면 코를 찌르는 냄새와 떫은맛 때문에 제대로 즐길 수 없다. 10년 미만 숙성이라면 마시기 10분에서 30분 전에, 그 이상 오랜 숙성을 거친 바이주라면 30분 이상 미리 분주기에 옮겨두기를 추천한다. 다만 저도수 백주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왕이면 상온으로
기본적으로 바이주는 차게 마시는 술이 아니다. 이유는 분명하다. 바이주를 얼리거나 차갑게 두면 뿌옇게 침전물이 생기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침전물이 바로 바이주의 향을 책임지는 성분. 그 상태로 마시면 당연히 고유의 향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백주의 향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온도는 20~25도 정도니 가급적 상온에 두고 마시도록 하자.

향을 즐겨 보세요
바이주 음용법은 위스키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편하다. 전용 잔이 있다면 가장 좋지만, 없다면 소주잔에 1/3 정도 채우면 엇비슷하다. 저도수라면 원샷해도 무방, 50도 이상 고급 바이주라면 맛이 느껴질 정도만 조금씩 나눠 마시며 향을 음미하도록 하자.
먼저 잔을 들어 가벼운 들숨으로 향을 만끽하고, 한 모금 마신 뒤 목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질감을 즐긴다. 이후 코로 숨을 길게 내뱉으면 다시 한번 잔향을 느낄 수 있다. 위스키를 마시듯 입안에 머금고 천천히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도 풍부한 향미를 느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재미로 보는 바이주 티어리스트
마오타이는 어디에 있지?
어떤 바이주 브랜드가 좋은 브랜드인지에 대해서는 현지인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전문가와 일반 소비자가 대부분 공감하는 대략적인 틀은 존재한다. 등급은 참고 사항일 뿐, 모든 바이주는 각자의 매력이 있으니 재미로만 읽도록 하자.

1등급: 중국 주류 시장을 지배하는 브랜드
귀주모태주
모두가 인정하는 세계 가치 1위 브랜드. 그 유명한 ‘마오타이’가 바로 귀주모태주다.
오량액
농향형 바이주의 황제, 마오타이의 유일한 대항마. ‘우량예’의 폭발적인 과일 향은 따라올 수가 없다.
2등급: 비즈니스 접대의 정석
노주노교
농향형의 대표 주자. 1573년부터 이어진 발효 구덩이에서 유래한 ‘국교1573’은 중국의 국가 무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검남춘
최근에는 명성이 많이 내려왔지만, 오랜 시간 중국 대표 3대 바이주 브랜드로 손꼽힌 곳이다. 가장 인지도 높은 라인은 ‘수정검’.
양하
싸이, 임태훈 셰프 등 국내에서도 여러 인물이 소개한 ‘몽지람’을 여기서 만든다. 지역을 대표하는 부드러운 맛의 명주.

3등급: 대중적 인지도와 프리미엄을 동시에
수정방
한국인에게 가장 익숙한 프리미엄 브랜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증류 양조장으로 알려져 있다.
서봉주
청향과 농향 사이 그 어딘가의 맛이 특징인 봉향형 바이주의 대표 주자. 깔끔하면서 향의 여운이 깊다.
4등급: 믿고 마시는 실속형 브랜드
금세연
전통과 현대 양조법의 조화가 빚어낸 세련된 맛과 향이 특징. 저도수 위주의 라인업으로 혼례, 모임 등 회합의 자리에서 자주 찾는다.
백운변
이태백의 시에서 비롯한 이름. 농향과 장향, 청향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겸향형 바이주로 유명하다.
소호도선
가격 대비 뛰어난 퍼포먼스로 애주가 사이에서 평판이 높다. 달콤한 향과 부드러운 여운이 인상적인 농향형 백주를 생산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