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더 무비’의 흥행을 필두로, 정말 오랜만에 모터스포츠를 향한 관심이 쏟아지고 있다. F1을 비롯한 모터스포츠가 우리나라에서야 인지도도 낮고 인기도 시들하지만, 전 세계를 기준에 두면 최정상급 인기를 구가하는 스포츠 중 하나다. 이제야 관심이 생겼다고 속상해하지 말자. 자고로 늦바람이 제일 무서운 법이니까. 지금껏 숨죽이며 지내온 국내 레이싱 공간 여럿이 도장 깨기를 기다리고 있다.
레이싱은 단시간에 할 수 있는 취미가 절대 아니다. 일반적인 도로와는 전혀 다른 서킷의 룰을 이해해야 하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계기판 속 세 자리 숫자를 감당해야 한다. 첫 주행을 하기까지 적잖은 시간과 돈도 투자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핸들을 놓지 않을 용기를 지녔다면, 차근히 스텝을 밟아나가 보자. 언젠가는 루이스 해밀턴처럼 서킷을 장악하는 드라이버가 될 날을 기약하며.
이건 첫 번째 레슨, 모터스포츠 관람하기
생각보다 레이싱 대회가 많다
자고로 스포츠는 현장에서 직접 그 열기를 만끽해야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모터스포츠 또한 해보기 전에 제대로 된 관람을 선행하기를 추천한다. 한평생 밟아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는 속도로 질주하는 차량의 향연, 스피커로는 들을 수 없었던 심장을 울리는 배기음. 모터스포츠의 현장감을 온몸으로 체감하면 있는지도 몰랐던 레이서의 피가 끓어오를지도 모른다.
종목 특성상 거대 자본이 투입된 공간이 마련돼야 경기를 진행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제야 빛을 보기 시작한 수준이라 인프라가 잘 갖춰졌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실패에 가까운 F1 유치 사태까지 겪으면서 모터스포츠는 긴 시간을 침잠해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진흙 속에서도 꽃은 피는 법. 오로지 모터스포츠를 향한 사랑과 열정만으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온 대회가 우리나라에도 존재한다.

슈퍼 레이스
2006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모터스포츠 리그. 보통 4월 중순부터 11월 초, 약 7개월에 걸쳐 경기가 이루어진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대회 중에서는 최상위에 속하는 슈퍼6000이 핵심 클래스다. 여름에는 화려한 조명 아래 벌어지는 야간 경주인 나이트레이스가 열리니 꼭 방문해 보자. 다양한 이벤트가 열리는 부스와 축하 공연 등 경기 외적으로도 콘텐츠가 풍성하다.
티켓 가격은 일반권 기준 1만 원대로 저렴하다. 골드권의 경우 일반보다 조금 비싸지만, 서킷 그리드에서 레이싱 카와 드라이버를 직접 만나고 사진까지 찍을 수 있는 그리드워크가 포함되니 기왕이면 골드권을 추천한다. 드라이버가 운행하는 레이싱 차량을 타고 서킷을 도는 ‘택시 타임’도 사전 신청 이벤트로 운영되니 행운을 시험해 보는 것도 좋겠다.

현대 N 페스티벌
국내 자동차 브랜드 중 모터스포츠에 진심으로 임하는 곳은 현대가 유일하다. 현대 N 페스티벌은 단일 차종으로 승부를 겨루는 원메이크 레이스의 대표 주자. 동일한 차량으로 경주하는 만큼 선수의 실력이 경기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다. 아이오닉 5 N, 아반떼 N1, N2 등 현대가 자랑하는 고성능 N 라인의 성능과 잠재력을 확인할 기회가 되기도 한다.
슈퍼레이스와 비슷한 일정으로 진행되며, 단순 관람의 경우 무료입장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슈퍼레이스와 달리 패독 클럽 티켓을 판매하는데, 금액대는 다소 높지만 코앞에서 경기를 관람하고 식사를 제공하는 등 메리트는 분명히 있다. 현대 N 모델 소유자라면 자차로 트랙을 주행할 수 있는 이벤트도 참여할 수 있으니 꼭 방문해 보자.

AMC 국제 모터 페스티벌
아주자동차대학교에서 개최하는 모터쇼. 단순히 튜닝카를 전시하던 2011년의 첫 회차를 시작으로, 모터스포츠를 기반에 둔 체험형 축제로 성장했다. 정션 튜닝, 자세 튜닝, 서킷 튜닝카 등 세계 각국의 튜닝카와 튜닝 문화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고, F1 레이싱 카, 올드카, 레이스 리버리 등 볼거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차덕에게는 행복할 수밖에 없는 공간.
눈여겨볼 것은 현장에서 열리는 모터스포츠 경기다. 장애물이 세워진 코스를 통과하는 짐카나는 AMC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하다. 페스티벌은 1년에 1회 열리지만, 짐카나 경기는 여러 회차에 걸쳐 운영되니 한 번쯤 구경하러 갈 만하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짐카나 경기 특성상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는 점도 좋다.
연습이 중요하다, 모터스포츠 체험하기
위험할 수 있음을 유념할 것
한껏 달궈졌다면 이제는 핸들을 쥘 차례. 당장이라도 F1 드라이버로 데뷔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겠지만, 기분과 현실은 엄연히 다른 법이다. 엔진에도 예열이 필요하듯 우리에게도 준비와 연습이 필요하다. 극한의 드라이빙에 도달하는 데까지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이니까.

HMG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 센터
달리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정작 운전 실력은 배움이 절실한 수준인 자에게 안성맞춤인 곳이다. 드라이빙 익스피리언스에 준비된 프로그램은 운전이 처음인 왕초보부터 스포츠 드라이빙 테크닉을 배우고 싶은 서킷 꿈나무까지 폭넓게 커버하니까. 베이직부터 레벨 3까지 격파하며 차량에 관한 이해와 주행 실력을 높이면 N 드리프트, 트랙 익스피리언스처럼 모터스포츠를 배우고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참여할 수 있다.
1초라도 망설이면 매진될 정도로 예약이 어렵고, 레벨이 올라갈수록 비용의 압박이 크다는 점은 아쉽다. 하지만 그만큼 전문 교육자의 밀착 케어를 받을 기회가 흔치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 외에도 서킷과 일반 도로를 달리는 테스트 드라이브, 태안 일대를 주행하는 시닉 드라이브 등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으니 누구라도 한 번쯤은 가볼 법하다.
Information
주소: 충남 태안군 남면 기업도시로 1298
운영시간: 목-일 9:00~18:00(월-수 휴무)
가격: 베이직 4만 원, 레벨 1 11만 원, 레벨 2 23만 원 등
인스타그램: @hmgdrivingexperience

BMW 드라이빙 센터
BMW 코리아에서 운영하는 드라이빙 체험 센터. 다른 차도 아닌 BMW로 교육을 들을 수 있고, 교통도 다른 곳보다 훨씬 좋은 편이라는 장점이 있다. 체험에 가까운 익스피리언스 프로그램과 본격적인 훈련에 해당하는 트레이닝 프로그램이 나뉘어져 있다. 익스피리언스에서는 M 택시를 추천한다. 루프탑을 열어 천장이 뻥 뚫린 상태로 서킷을 질주하는 경험은 어디서도 하기 힘드니까. 10분이라는 운행 시간이 짧아 보일 수 있으나, 막상 타보면 오히려 길다고 느껴질 정도로 순간적인 임팩트가 엄청나다.
BMW 드라이빙 센터의 간판 프로그램인 스타터 팩은 면허 취득일이 아닌 실제 운전 경력 1년 이상을 요한다. 운전이 너무 미숙한 상태에서 참가하면 본인에게도 무의미한 교육이 될 테지만,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피해가 되기도 하니 유의하자. 스타터 팩을 이수하면 더 심화된 프로그램을 등록할 수 있다. 2025년 12월 31일에 BMW의 부지 사용 기한이 만료될 예정이므로, 추후 상황이 미지수인 만큼 꼭 올해 안에 방문하자.
Information
주소: 인천 중구 공항동로 136
운영시간: 화-일 9:00~18:00(월 휴무)
가격: M 택시 6~7만 원, 스타터 팩 20~24만 원 등
인스타그램: @bmw_korea

증평 벨포레 리조트 모토 아레나
모터스포츠를 즐기기 위해서는 서킷과 스피드에 익숙해지는 게 급선무. 입문자가 트랙과 친해지기 위한 방법으로는, 어쩌면 자동차보다 카트가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 공도와는 완전히 다른 루트를 비교적 쉽고 안전하게 경험해 볼 수 있으니까. 모토 아레나는 국내 유일 FIA와 CIK-FIA 공식 인증을 받은 국제카트경기장으로, 레이싱 카트와 레저 카트를 모두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최대 시속이 100km가 넘는 레이싱 카트는 카트 스쿨 교육을 거치거나 BIMA 라이선스 취득 시 이용할 수 있다. 레저 카트로는 아쉬울 것 같지만, 이 또한 최대 시속 60km까지 달릴 수 있을 정도로 빠르다는 사실. 어떻게 운전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의 경험을 할 수 있으니, 기왕이면 기본적인 주행을 익히고 방문하도록 하자. 이색 데이트로도 제격이다.
Information
주소: 충북 증평군 도안면 벨포레길 346
운영시간: 화-일 10:00~17:20 (월 휴무)
가격: 레저 카트 기준 1인승 39,000원, 2인승 48,000원
인스타그램: @bsbelleforet
이제는 달릴 시간, 모터스포츠 주행하기
나에게 어울리는 서킷은 어디?
모든 준비를 마친 자, 서킷으로 향하자. 일반인이 모터스포츠에 접근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의 차량으로 서킷을 달리는 스포츠 주행을 시도하는 것이다. 자차가 레이싱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웬만한 차종은 다 허용될 정도로 특별한 제한이 없으니 걱정하지 말자. 다만 전기차는 서킷에 따라 참가가 어려울 수 있으니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
대부분의 서킷은 라이선스가 있어야 스포츠 주행이 가능하다. 라이선스는 주행 전 서킷에 방문해 이론과 실전 수행을 거치면 취득할 수 있다.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면 안전도 안전이지만 끔찍한 재정적 손실을 떠안게 될 수 있으니, 방문 전 타이어와 구동계 상태 점검은 필수다.

코리아 인터내셔널 서킷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FIA 공인 1등급 서킷. 5.615km의 트랙, 18개의 코너를 갖췄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주행하는 독특한 특징을 지녔다. 총 3개의 섹터로 나뉘는데, 각 구간에 따라 필요한 성능이 다르다. 직선 스피드 및 브레이크 성능이 중요한 코스가 있는 반면, 코너링 성능을 발휘해야 하는 곳도 있다. 확연히 다른 테마 덕분에 다채로운 주행이 가능하다.
라이선스는 현장 접수로 이루어진다. 아쉽게도 다른 서킷처럼 스포츠 주행이 상시로 이루어지지는 않고, 트랙데이로 지정된 날짜에만 이용할 수 있다. 보통 주말에 열리며, 일정한 규칙 없이 열리니 홈페이지 캘린더를 주기적으로 확인하도록 하자. 동계 시즌의 경우 1일권, 1주권 등 기간을 기준으로 주행권을 판매한다. 견인 고리와 소화기를 의무로 챙겨야 한다.
Information
주소: 전남 영암군 삼호읍 에프원로 2
가격: 라이선스 10만 원, 트랙데이 상설 트랙 1일 20만 원
인스타그램: @kic.official_korea

인제 스피디움
국내 모터스포츠 문화의 중심이 되는 공간. 가장 많은 자동차 출시 이벤트와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19개의 코너로 이루어진 3.908km의 트랙을 보유하고 있다. 산을 깎아 만들어진 코스답게 급격한 경사도가 특징적이며, 고저 차가 큰 지형을 활용한 역동적인 주행이 가능하다. 이곳에 자리한 ‘현대 N 라운지 인제’는 국내 최고 수준의 서킷 전용 고객 편의 시설을 제공하기도 한다.
필수 준비물은 면허증, 긴팔과 긴바지, 운동화, 헬멧. 헬멧은 2만 원에 대여할 수 있다. 라이선스 취득 과정의 이론 교육은 온라인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미리 듣고 시간을 절약하는 편이 좋겠다. 라이선스 취득 후 당일 주행이 가능하지만, 서킷 일정에 따라 스포츠 주행이 열리지 않을 수 있으니 반드시 홈페이지에서 일정을 확인하고 방문하도록 하자.
Information
주소: 강원 인제군 기린면 상하답로 130
가격: 라이선스 10만 원, 주행 세션(20분)당 6만 원
인스타그램: @injespeedium

태백 스피드웨이
무한도전 스피드 레이서 특집 당시 멤버들이 연습한 바로 그곳. 길이는 2.5km로 짧은 편이다. 코너도 6개뿐이지만 섬세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코너가 많아 주행 기술을 향상하기에 적합하다. 직선 구간이 길어 제대로 질주하는 기분을 만끽할 수 있다. 해발고도 700m가 넘는 고지대 속에 자리하고 있는 서킷인 만큼, 자연 속에 둘러싸인 상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심각한 타이어 마모부터 점프대 구간까지 고루 갖춘 열악한 노면 상태로 악명이 자자했다. 최근 아스팔트 재포장을 통해 모든 문제는 깔끔하게 해결. 다른 서킷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인 편이니, 접근성 문제만 해결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장점이 많은 곳이다.
Information
주소: 강원 태백시 사군드리길 240
가격: 라이선스 10만 원, 주행 세션(20분)당 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