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은 라이프스타일의 결과물. 스타일은 단순한 옷차림을 넘어, 그 사람의 취향과 생활 방식, 공간, 습관이 쌓여 만들어진다. 옷은 말보다 앞서 누군가를 설명하기도 한다. 스타일이라는 단서를 따라가다 보면, 그 삶의 태도가 자연스레 드러난다.
지난 6월, 성수동에 새롭게 문을 연 편집숍 나우마스는 ‘직접 입고 쓰는 옷을 소개한다’는 콘셉트로 시작된 공간이다. 취향을 큐레이션하는 이들은 어떤 옷을, 어떤 태도로 입고 있을까. 한 공간, 서로 다른 옷차림 속에서 ‘잘 만든 옷’의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흐름이 자연스럽게 읽혔다.

이신우
오늘 스타일링 포인트는?
디시 화이트(DC WHITE)를 중심으로 스타일링했다. 미국 워싱턴 D.C 화이트 하우스에서 모티프를 따온 브랜드로, 클래식한 아메리칸 무드를 기반으로 하는 브랜드다. 다만 정통 아이비룩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편안한, 어른의 캐주얼을 생각했다.
구두는 너무 딱딱한 드레스 슈즈대신, 스니커즈 감각이 있는 하이브리드 슈즈로 밸런스를 맞췄다. 컬러감 있는 셔츠를 더해 여름 분위기를 강조했고, 마지막으로 라피아 소재 아이템으로 계절감을 덧입혔다.
오늘 착장에서 가장 애착 가는 아이템은?
지금 신고 있는 신발이다. 미네조 스포츠 슈즈라는, 아직 일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브랜드다. 작은 아틀리에에서 직접 제작하는 수제화 브랜드. 인스타그램 리서치 중 우연히 발견했고, 첫눈에 반해서 무작정 주문을 넣었다.

옷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엔 여자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였다. 어느 날 잡지에서 본 <여자들이 선호하는 남성의 조건> 앙케트에서, 압도적인 1위가 ‘옷 잘 입는 남자’더라. “이거부터 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옷을 입고, 보고, 사다 보니 옷 자체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됐다. 일본에서 대학 생활을 했는데, 중고 의류 시장이 워낙 활발하다 보니 빈티지 의류를 접할 기회가 많았다. 자연스럽게 원단, 디테일, 마감 같은 디테일한 요소에도 관심을 갖게 됐고.
일본에서 오랜 시간 지내면서, 옷을 지역성과 연결해 보는 시각도 생겼을 것 같다. 일본 브랜드를 자주 다루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까?
일본에서 옷을 접하다 보니, 지역성과 연결이 자연스레 보이더라. 일본은 각 지역의 인프라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지역 전통이나 정체성을 반영해 제품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셔츠는 도호쿠, 데님은 오카야마, 양말은 나라, 구두는 도쿄 아사쿠사처럼. 지역마다 특화된 아이템이 명확하게 존재한다.
이는 단순히 제품을 소비하는 걸 넘어서, 그 지역이 가진 맥락까지 함께 입는 느낌을 준다. 일본 브랜드가 가진 힘이자, 내가 일본 옷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반면 한국은 대부분 서울에 집중되어 있고, 지역 기반의 생산 특성이나 문화적 연결성은 아직 뚜렷하다고 보긴 어렵다. 그래서 옷을 통해 어떤 배경이나 이야기까지 함께 경험하는 재미는 상대적으로 덜한 편이다.

일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도시는?
도쿄. 살아본 적도 있고, 지금도 갈 때마다 늘 자극을 받는다. 단순히 도시가 크고 멋있다는 느낌보다, 섬세한 디테일에서 오는 감동이다. 보도블록 하나를 깔아도 마감 처리 방식, 건축의 디테일, 생활 공간의 구성에 따라 섬세하게 배치되어 있더라. 그 정성은 결국 옷에도 고스란히 드러나기 마련이고.
다른 지방도 물론 섬세하지만, 도쿄는 일본이라는 나라의 정수가 모인 곳. 그 섬세함을 가장 깊게 체험할 수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사람에게서도 그 섬세함을 느낄 수 있나
일본에서 만난 브랜드 디렉터들은 완성도를 끝없이 추구하려 했다. 더 나아질 수 있다면 계속 고치고 다듬으려 하는 자세. 그 섬세함이 결국 좋은 옷을 만들어냈고, 그게 사람에게서도 느껴진다. 말투, 쓰는 단어, 일하는 속도, 접근 방식 전반에서. 나도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천성이 그렇게 섬세한 편은 아니라서 항상 배우는 중이다.

옷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10년 이상 입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예쁘거나 감각적인 건 당연한 기본이고, 퀄리티가 받쳐주지 않으면 그 어떤 스타일도 오래 갈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건 내 자신 스타일에 대한 확신이다. 이 옷이 예쁜가보다, 내 캐릭터에 잘 맞는가, 내 스타일의 연장선인가를 더 중점적으로 보는 거다. 단순히 예쁜 옷을 고르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그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지에 따라 옷을 선택한다.
옷을 입는데 캐릭터성은 왜 중요할까?
옷은 결국 ‘나’를 드러내는 도구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캐릭터를 가졌는지가 가장 먼저다.
예를 들어 100만 원 넘는 신발을 샀는데, 기스 하나에도 민감해서 제대로 못 신는다면? 그건 오히려 내가 신발에 내가 잡아먹히고 있는 거지. 옷이든 신발이든 철저히 도구로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 쓰라는 얘기는 아니다. 잘 신되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런 시간이 쌓이면 결국 그 사람만의 캐릭터가 생긴다. “저 사람은 항상 저런 스타일을 입는다”라는 인상이 생기는 거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나 자신을 잘 아는 것과 같은 의미일까
요즘 세상에서 자기 객관화라는 말을 자주 쓴다. 결국 스타일이란 건 자신을 얼마나 잘 알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싶은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한다. 처음엔 누구나 흉내 내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쳐야 ‘이걸 입었을 때 가장 나다운 느낌’을 찾을 수 있다.
나는 모자를 자주 쓴다. 안 쓴 날보다 쓴 날이 훨씬 많고, 덕분에 ‘항상 모자 쓰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생겼다. 그게 내 캐릭터 중 하나가 됐고.

스타일은 쉽게 변하지 않는 걸까?
그렇다고 생각한다. 옷을 좋아한 지 20년쯤 됐는데, 한 12년 전부터는 스타일의 큰 흐름이 거의 변한 적이 없다. 좋아하는 브랜드는 바뀔 수 있지만, 기본적인 스타일 방향성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거의 그대로더라.
사실 ‘패션’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패션은 유행이고, 유행은 계속 바뀌니까. 그보다는 스타일이란 단어를 더 좋아한다. 트렌드에 휘둘리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는 정체성 같은 것. 슈케어(구두 관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이의 연장선이다. 스타일을 오래 유지하려면 입는 것만큼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니까.
왜 하필 구두인가. 특별한 이유가 있나?
가죽이니까. 좋은 원단도 오래가지만, 가죽은 관리만 잘하면 100년도 거뜬하다. 구두는 사람보다 오래 살 수도 있다. 내가 앞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50~60년 정도라고 보면, 지금 신고 있는 구두는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아남을 수도 있는 거다. 그런 점에서 구두는 관리할 가치가 충분하고, 의미 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한다.

음유승
오늘 스타일링 포인트는?
특정 콘셉트를 의식하고 입은 건 아니다. 다만 캐피탈 셔츠를 걸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히피 문화나 네이티브 무드가 떠오르더라. 그래서 바지는 스트레이트 핏으로 밸런스를 맞췄다. 부츠컷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셔츠엔 스트레이트 핏이 더 어울린다고 느꼈다.
신발은 아치 케리 서비스 슈즈처럼 밀리터리 느낌이 살짝 느껴지는 걸로 골랐다. 전체적인 인상이 너무 가볍지 않도록 마무리하고 싶어서. 액세서리도 네이티브 요소가 있다 보니, 스타일링 전체가 과하게 기울면 자칫 코스프레처럼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오늘 착장에서 가장 애착 가는 아이템은?
아치 케리 구두. 나우마스에서 바잉하면서 알게 된 브랜드다. 네이비 슈즈를 찾던 중 아치 케리를 보게 됐고, 첫눈에 반해서 바로 구매했다. 처음에는 디자인이 전부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 에이징 된 상태에서 바라보니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
핸드 소운 웰트(Hand-sewn welt) 방식으로 제작됐다. 구두 공법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고급 제법이다. 전체적으로는 스포티한 러닝화 스타일, 그 만듦새는 클래식한 드레스 슈즈라 착용감과 완성도 모두 뛰어나다.

옷을 살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예전엔 아메카지 스타일처럼 특정한 원류나 배경이 있는 옷들을 더 선호했다. 하지만 점점 다양한 스타일을 접하면서 그런 고정관념이 많이 사라졌다. 단순히 예쁘다는 감각 자체에 집중하게 됐다고 할까.
예쁘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잘 만든 옷을 보면 예쁘다는 생각이 든다. 디테일과 완성도가 느껴지는 옷 말이다. 요즘은 원단이나 소재의 독특함도 중요하게 보고 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일본 브랜드들을 많이 보게 됐다.
잘 만들었다는 말은 매우 주관적이다
사람마다 기준은 다르겠지만, 나는 크게 세 가지를 본다. 먼저 원단. 같은 코트라도 어떤 소재를 쓰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옷이 된다. 실크 혼방이나 독특한 직조 방식처럼 손에 닿는 순간 정성이 느껴지는 원단이 있다. 만들기 까다로운 원단은 보면 다 티가 난다.
두 번째는 봉제와 마감. 박음직의 땀 수나 라인의 정교함 같은 디테일에서 옷에 얼마나 수고가 들어갔는지가 느껴진다. 겉보기엔 단순한 직선도, 자세히 보면 예쁜 직선과 틀어진 직선은 분명 다르더라. 마지막은 실루엣. 브랜드가 지향하는 스타일을 얼마나 완성도 있게 구현했느냐를 본다. 예를 들어 DC White처럼, 클래식한 미국 스타일을 추구하는 브랜드는 과거 레퍼런스를 현대적으로 어떻게 풀어냈는지가 중요하다.
결국 좋은 옷이란, 원단–봉제–실루엣 위에 브랜드의 철학과 정성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는 옷이라고 생각한다. 일정 가격대를 넘어서면, 그런 수고로움은 눈에 보이기 마련이다.

브랜드를 발견하는 기준이 있나
예전에는 브랜드의 연혁이나 얼마나 오래됐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요즘은 디렉터가 어떤 생각을 갖고 브랜드를 운영하는지를 훨씬 중요하게 여긴다. 인터뷰나 실제 만남에서 그 사람의 방향성과 진심이 느껴질 때, 제품 자체에 대한 신뢰도도 올라가더라.
디렉터의 철학이 크게 반영되는 브랜드들이 있다. 그 철학과 의도가 제품에 고스란히 담길 때, 우리는 이에 공감해서 옷을 입게 된다. 브랜드 디렉터와 인터뷰 할 때 꼭 묻는 말이 있다. ‘어떤 분이 당신 브랜드 옷을 입었으면 좋겠나요?’ 듣게 되는 답변은 모두 명확하다. 디렉터의 철학과 입는 사람의 결이 맞아야 비로소 옷이 온전히 살아나는 것 같다.
어느 부분에서 디렉터의 의도를 느낄 수 있을까?
원단 종류에 따라 봉제 방식이 달라진다. 팔을 몸판에 붙이는 방식도 셔츠나 티셔츠, 재킷마다 전혀 다르고. 가죽, 코튼, 실크 모두 다른데, 전부 디렉터의 의도다.
전부 디렉터가 고민하고 설계한다. 어깨선을 라글란으로 할지, 직선으로 갈지, 겉으로 드러나게 할지, 안쪽에 숨길지. 각 방식에 따라서 옷의 착용감, 실루엣, 전체적인 인상 모두 달라진다. 결국 입어보면 느껴지게 된다. 몸에 닿는 감각도 다르고. 눈으로 봤을 때의 밸런스나 인상도 다르다.

옷을 좋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드 가먼츠(Engineered Garments) 룩북을 처음 봤을 때의 충격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남자 옷이 저럴 수도 있구나. 나도 저런 분위기를 갖고 싶다.’ 그 이미지에 완전히 매료됐다.
처음으로 산 ‘비싼 옷’도 엔지니어드 가먼츠였다. 물론 가격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겐 큰 결심이었다.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시작이었고. 지금도 브랜드 디렉터 다이키 스즈키(Daiki Suzuki)를 선망하고 있다. 여전히 옷장엔 엔지니어드 가먼츠 옷이 네다섯 벌 남아 있다.
패션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는지
업계에서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게 가장 크다. 그다음은 잡지와 유튜브. 특히 일본 잡지는 여전히 양질의 정보가 많다. 요즘은 번역기 돌리면 다 읽을 수 있으니 예전보다 접근하기 쉬워졌고. 최근에는 <2nd>라는 매거진을 자주 본다. 로퍼 특집, 자켓 특집 같은 특별판은 장르적인 깊이가 있어서 굉장히 재미있더라.
유튜브는 디렉터 이시카와 슌스케의 채널을 자주 본다. 제품을 직접 소개하면서 왜 이걸 만들었는지, 무엇이 좋은지 말해주는데, 매우 디테일해 공부가 많이 된다. 물론 일본어가 익숙하지 않으면 좀 어려울 수 있지만, 번역과 맥락으로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최근 일본 출장에 다녀왔다. 무엇이 가장 좋았나
일본은 옷 자체보단 그 나라의 문화 전반이 좋아서 가는 느낌에 더 가깝다. 옷이라는 것도 결국 문화의 결정체니까. 그 문화 전체를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건축물에 관심이 많아져서 건물 구경을 많이 했다. 최근에 갔을 때는 우에노 국립서양미술관에 가보고 싶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들어갔다.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한 건물이라서 꼭 보고 싶었는데.
옷뿐만 아니라 가구나 공간, 실제적인 구조물들에 관심이 깊어졌다. 사유나 이론보다는 직접 구현된 형태들, 그걸 만든 사람들의 생각과 철학에 더 끌리는 것 같다. 그래서 옷도 좋아하게 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