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블릿에 메모하고, 연필보다 스마트 펜슬을 쥘 일이 많은 시대다. 사용 효율을 높이기 위해 내가 기기에 적응을 해야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여기, 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점점 나에게 길드는 물건이 있다. 바로 만년필. 중고 시장이 활발하지 않은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다. 아날로그의 물성을 사랑한다면 만년필 한 번 들여보는 건 어떨까. 다이소에서도 구매할 수 있을 만큼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만년필 사기 전 알아야 할 정보와 입을 모아 칭찬하는 만년필 추천까지 준비했다.
만년필 고르는 법
닙 소재와 팁 크기
만년필 선택 기준 중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것이 바로 닙. 닙은 펜촉을 뜻한다. 어떤 펜촉을 고르느냐에 따라 만년필 특유 필기감이 달라지기 마련. 닙 소재 및 펜포인트 모양 등을 필히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물론 펜촉만이 절대적으로 필기감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만년필을 이루는 요소 하나하나가 모여 펜 특유의 필기 감각을 만든다.
펜촉 소재
일반적으로 금과 스테인리스 스틸을 사용한다. 클래식한 무드가 돋보이는 금을 닙으로 사용했을 때 꼽을 수 있는 장점은 바로 부식에 강하다는 것. 과거에는 잉크 성분이 강산성, 강염기성으로 만들어져 부식을 걱정해야 했기에 금의 이러한 특성이 굉장히 큰 장점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현재 시중 잉크 성분은 부식을 염려하지 않아도 될 수준으로 만들어진다.
또한 금은 탄력과 유연성도 뛰어나 탄성이 느껴지는 손맛을 취할 수 있다. 금촉을 사용했다고 모두가 연성닙은 아니다. 금에 다른 금속을 섞어 강성을 조절할 수 있고 후가공에 따라서도 단단하기 정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는 맞는 이야기지만 스틸 닙은 사용감이 딱딱하고, 금 닙은 부드럽다는 것은 지나친 비약. 14K, 18K, 21K를 사용한다. 펜촉의 끝부분, 종이와 닿는 펜포인트(팁)는 마모를 고려해 금이 아닌 이리듐 소재를 쓴다.
금 펜촉은 만년필 초기 버전에 사용되던 것으로 실용성보다는 그 순수성과 상징성에 방점이 찍힌다. 만년필 입문자라도 이 물건만이 갖는 중후한 멋과 금 닙의 조화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다.
스틸 닙은 입문용으로 제격이다. 가격대가 적정하기도 하고, 아직은 만년필 사용이 어색해 꾹꾹 눌러쓰기 십상이니까. 고로 필압이 높은 사용자도 단단한 스틸 소재 닙이 더 맞는다. 탄성은 떨어질 수 있으나 오래 사용할 시 손의 피로도는 낮아지며, 보통 금도금이나 크롬으로 마감해 얼핏 보면 금 닙 같은 멋스러운 무드도 가져갈 수 있다.
팁 크기 선택
학창 시절 필기구를 살 때 필기감은 물론 심의 굵기를 꼭 따져서 샀던 기억이 있다면 만년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서명, 필사, 켈리그라피 등 어떤 용도로 쓸지 우선 판단하고 그에 맞는 팁 굵기를 정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EF(Extra Fine), F(Fine), M(Medium)으로 분류된다. 세필촉부터 굵은촉까지, 얇은 순이다. F 촉을 기본촉이라고 부른다. 물론 더 얇은 UEF, M보다 두꺼운 B 촉도 있다. 사용감이 클수록 끝부분이 마모되면서 처음보다는 굵어진다는 점을 참고하도록. 보통 필기에는 EF, 단순 날인용으로 사용할 때는 M이 적합하다. 물론 정답은 없다. 이것 또한 기호의 영역. 아울러 같은 크기라도 브랜드마다 조금씩 편차가 있다는 것도 기억하자.
선물하기 좋은 만년필 추천 6
가성비와 클래식 사이, 마음껏 뛰노시라고 다양한 가격대를 선별했다.
스위스 메이드 제품 까렌다쉬. 펜 지름은 115mm로 얇은 편이며, 캐주얼한 느낌을 가미시켜 펜처럼 자주 손이 갈 것 같은 디자인이다. 육각 모양으로 설계된 덕, 펜이 책상에서 굴러 바닥으로 낙하할 일도 없다. 스틸닙 제품이며 바디는 알루미늄으로 제작됐다.
깃펜이 아닌 닙에 잉크통을 결합한 만년필을 만든 워터맨. 세계 최초 만년필 회사를 창립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브랜드다. 워터맨 엑스퍼트 3 시리즈는 그중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제품군. 무게감 있는 황동 배럴 바디를 사용했고, 강성 촉으로 단단하다. 적당히 부드럽고 사각거리는 필기감이 만족감을 높인다.
만년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M400. 독일 제품이다. 독특한 점은 우리나라에서 ‘필기 머신’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는 것. 특히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된다고. 그도 그럴 것이 바디가 플렉시 유리로 만들어져 상당히 가볍다. 촉은 14K 금 닙을 사용했다.
149 만년필이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다면 146을 선택하면 된다. 닙은 14K, 바디는 고급 수지를 사용했다. 부드러운 필기감이지만 무른 느낌은 아니다. 가장 마음의 드는 부분은 육중한 부피감에서 오는 아우라 그리고 캡탑 몽블랑 마크다. 만년필도 마크빨. 몽블랑에 입문하고 싶다면 이 제품을 권한다. 법정 스님도 사랑했던 몽블랑이다.
국민 만년필이라 불려도 좋을 라미. 친구에게 선물하기도 나쁘지 않은 가격대다. 라미 사파리는 그 중 브랜드를 대표하는 스테디 아이템으로 팝한 컬러감이 매력적. 바디는 ABS 플라스틱 소재, 팁은 스틸로 만들었다.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손이 편한 것도 장점. 필기감은 부드러운 편이다.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식물 생명력에서 영감을 받았다. 끈질기게 살아남는 것의 숭고함이 깃든 물건이다. 은은한 라벤더 레진 바디를 사용한 것이 미감을 자극한다. 14K 골드 촉을 사용했고, 기분 좋은 사각거림이 느껴진다. 장시간 필기해도 무리 없이 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