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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셀린느 말고 ‘자기 거’하러 온 피비 파일로
2023-11-21T08:23:57+09:00

장르가 된 이름.

미니멀, 오버사이즈 테일러링, 우아함, 그리고 편안함. 자신이 입고 싶은 옷을 디자인했고, 그것으로 여성들의 워너비가 된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Phoebe Philo), 그녀가 복귀를 알렸다. 셀린느를 떠난 후 두문불출하던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 건 2020년 2월. 미국 글로벌 패션 매체 WWD는 피비 파일로가 독립 브랜드를 시작할 거라는 소문을 전했다. 올드 셀린느를 추앙하며 세계 곳곳 포진해 있는 파일로-파일(Philo-phile)들은 기대감에 들떴다.

시간은 흘렀고 10월 30일, 피비 파일로는 새빨간 타이포그래피를 박고 명징한 자태로 우리 앞에 섰다. 버선발로 마중 나가게 만든 그녀의 세계. 아직 몰랐지만, 언젠가는 알게될 이름 피비 파일로에 대한 이야기다.

Instagram@voguerunway

끌로에, 셀린느 그리고 피비 파일로

잇백을 내놓다

피비 파일로는 1973년 파리에서 태어나 두 살 무렵 영국으로 이주한다. 패션 명가 런던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에서 수학, 다시 파리로 넘어온 그녀는 1997년 동문인 스텔라 매카트니의 어시스턴트로 끌로에에 합류했다. 그러던 중 2001년 수석 디자이너로 있던 스텔라 매카트니가 구찌 그룹과 자신의 패션 하우스를 설립하기 위해 브랜드를 떠난다. 피비 파일로가 바로 그 자리에 앉게 된다.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끌로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재직하는 동안 그녀는 잇백, 패딩턴(Paddington) 백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소비자들에게 끌로에 가죽 가방에 대한 확실한 이미지를 심어준 것.

힐튼 자매, 니콜 리치, 미샤 바튼 등 당시 유명 스타들의 파파라치 컷에서 쉽게 잇백을 찾아볼 수 있었다. 가방이 출시된 해 브랜드 글로벌 매출은 60%나 증가했고 2005년 올해의 영국 디자이너 상도 받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육아와 가정생활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끌로에를 나오는 결단을 내렸다. 

그녀가 패션계에서 대체 불가 아이코닉한 존재로 인식된 곳은 바로 그다음 적을 둔 셀린느에서다. 2008년 LVMH가 손을 내밀었고 끌로에를 떠난 지 2년 만인 2008년 9월, 셀린느에 들어 온다. 그당시 브랜드는 마이크 코어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상태였다. 이 침체의 늪에서 구원 투수로 등장한 그녀는 여성의 이미지를 재정의하며 셀린느를 다른 차원으로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해낸다.

파일로는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남에게 비춰지는 모습에 연연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 원하는 옷을 입길 바라는 마음을 셀린느를 통해 전한다고. 정확히 그렇다. 페미닌함을 잃지 않으면서 활동성을 높여주는 편안한 실루엣, 여기에 고급스러움이 더해져 그녀가 말하는 시선에서 자유로운 여성상을 옷이 대변한다. 러기지, 카바스, 클래식, 트라이 폴드, 벨트백 등 그녀의 가방 컬렉션은 단종된 품목을 제외하고는 아직도 스테디로 사랑받는 중이다. 실용과 시크, 두 가지 미덕을 모두 잡은 탓이다.

사실 남자도 사랑했다

나도 피비 파일로처럼

피비 파일로의 스타일은 여자에게만 통용되는 스타일 언어는 아니었다. 물론 여성들을 위한 옷을 만들었지만, 남자 스타들도 피비 파일로의 옷을 입었다. 군더더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실루엣과 오버 사이즈 핏은 성별을 떠나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참새 방앗간이었을 거다. 2011년 예(Ye, 전 칸예 웨스트)는 셀린느 2011 봄/여름 컬렉션에 등장한 실크 블라우스를 청바지, 두꺼운 체인, 화려한 팔찌와 레이어드 했다.

Instagram@travisscott

트래비스 스콧(Travis Scott)도 이 블라우스에 찢어진 청바지, 나이키 x 꼼데가르송 에어포스원을 매치해 명품 브랜드와 스트릿 아이템을 섞었다.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은 2014 징글볼(2014 Jingle Ball)에서 셀린느 밀레니얼 핑크 크롬비 코트를 착용해 눈길을 끌었다. 2015년 GQ  매거진 2월호 표지에 등장한 그는 현란한 컬러의 셀린느 밍크코트를 입어 성별의 경계를 경쾌하게 지워버렸다.

그녀가 디자인한 옷뿐만 아니라 피비 파일로의 스타일 자체도 남성들에게 영감이 된다. 헐렁한 스웨터에 볼륨감 있는 팬츠 여기에 스탠스미스를 매치하는 그 감각을 고스란히 가져와도 좋을 것이다.

‘올드 셀린느’를 아시나요

이 정도면 유행어 제조기

Instagram@daniela_kocianova

하지만 영원한 건 없었다. 셀레니즘, 셀리니제이션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낼 정도로 브랜드가 곧 그녀였던 끈끈한 유착 관계에도 끝은 있었다. 그녀는 쉼을 위해 10년간 몸담았던 셀린느와 이별을 고했다.

피비 파일로의 후임으로 등장한 인물은 바로 디올 옴므와 생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했던 에디 슬리먼(Hedi Slimane). 새로운 지향점을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그는 입생로랑(Yves Saint-Laurent)에서 입생(Yves)을 삭제한 것처럼 브랜드 서체를 바꾸고, 계정 SNS 피드 사진들을 모조리 지웠다. 이러한 일들은 아직도 사람들이 그녀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기폭제가 됐다.

Instagram@diet_prada

사람들은 에디 슬리먼 취임 전을 ‘올드 셀린느’, 후를 ‘뉴 셀린느’라 부르기 시작했다. 셀린느라는 브랜드를 그녀와 그녀 아닌 시절로 나눈 것이다. 올드 샤넬, 뉴 샤넬을 들어본 적이 있던가. 전무후무한 일이다. 또한 올드 셀린느(@oldceline)라는 SNS 계정이 생겨났고, 그녀가 디자인한 중고 가방 가격이 치솟았다. 바뀐 브랜드 서체 위 양음 부호를 찍어 과거로 회귀시킨(Céline) 사진들을 공유하며 그녀가 있었던 셀린느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마음껏 매만졌다. 그런 그녀가 돌아온 것이다.

이름을 건 브랜드, 피비 파일로

솔드아웃 행렬

5년 만이다. 2021년부터 LVMH의 투자를 받아 만든 그녀의 독립 브랜드 피비 파일로를 드디어 공개했다. 10월 30일 웹사이트(phoebephilo.com)에서 Edit A1라는 이름으로 첫 번째 컬렉션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이템은 150여 가지다. 재킷, 팬츠, 시어링 코트, 스퀘어 토 펌프스, 선글라스, 오버사이즈 핸드백 등 그녀가 잘하는 것들뿐이다. 올드 셀린느 시절보다 과감하다. 피비 파일로 특유의 색깔은 가지고 가지만 ‘자기 거’하러 왔다는 느낌을 여실히 전달한다.

현재 몇 개의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거의 품절 상태다. 2024년 봄에 공개될 Edit A2 챕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녀는 지속 가능성을 염두하고 제품 개수를 한정적으로만 생산할 예정이라고 하니 말이다.

사람이 곧 브랜드이자, 하나의 장르가 된 피비 파일로의 이야기는 여기서 다시 시작하자. 그녀는 이제 자신이 말하고 싶었던 소설의 첫 문장을 써 내려갔을 뿐이니. 당신과 나는 피비 파일로가 건네는 이 매혹적인 서사를 이제 마음껏 즐기면 된다.

남자도 입고 싶은 피비 파일로 아이템 5

미니멀하지만 단순하지 않은 디자인은 남자의 마음도 홀린다. 그래서 탐내본 아이템 다섯 가지다.

01
편안한 무드

업라이트-칼라 셔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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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핀스트라이프 셔츠로 넉넉한 핏이다. 깃을 세워 멋스럽게 연출하거나 티를 레이어드해 재킷처럼 걸쳐도 예쁘다. 원단을 워싱 처리하여 부드러운 촉감을 자랑한다고.

02
빅백이 대세

XL 카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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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은 돌고 돈다. 다시 빅백이다. 부드러운 검정 송아지 가죽을 사용했고, 안감은 스웨이드 처리했다. 실버 톤 클립 잠금을 적용해 보부상 사생활 보호까지 해준다.

03
독특한 디테일

스카프 탈부착 트렌치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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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 소재 더블 브레스티드 트렌치코트다. 어깨 견장이 클래식함을 더하고 단추로 탈부착하는 양면 가죽 스카프로 유니크한 매력을 발산한다.

04
소두로 만들어 주는

봄베 오버 사이즈 프레임 선글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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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지향적인 느낌 물씬 풍기는 오버 사이즈 선글라스. 그윽한 다크 브라운 렌즈와 유독 넓고 각진 안경다리, 두꺼운 프레임이 특징이다.

05
유행 타지 않는 멋

맨즈 코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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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일러링 장인 피비 파일로의 감각 묻어난 아이템. 셀린느 시절 런웨이를 연상케 한다. 넉넉한 어깨와 밑으로 떨어지는 절개 라인이 멋스럽다.